본문: 행 27:20-26
제목: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바울사도는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복음전파를 위해 그렇게 소원했던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호송길에는 백부장 율리오의 책임하에 다른 죄수 몇 사람도 포함되었습니다. 바울의 일행에는 누가와 아리스다고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들은 가이사랴에서 배를 타고 시돈을 거쳐 무라시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서 다시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배를 갈아타고 그레데의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항해가 위험하다며 미항에서 겨울을 나자고 주장하였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항해를 계속하여 뵈닉스라는 곳에서 겨울을 나기를 원했습니다. 최종결정권을 가졌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경험이 많은 선장과 선원들의 말을 믿고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처음에는 항해가 매우 순조로웠지만 얼마 못되어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결국 선장을 비롯하여 배에 탄 276명의 사람들은 14일 동안 광풍과 사투를 벌였고 배는 파선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충고를 무시하여 낭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유라굴라 광풍으로 인해 두려워하며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갔습니다. 심히 애쓰다가 짐을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를 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먹지도 못했습니다.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졌습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 백부장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무기력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바울사도가 등장합니다. 무시당하던 죄수가 드디어 배의 선장 역할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살리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22절입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34절입니다.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또한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먹기를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이후에 멜리데섬에 상륙하여 목숨을 건졌고 로마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위기 중에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사명(23~24절)
23~24절,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사명입니다. 사명이 있으면 죽지 않습니다. 사명이 끝나지 않는 한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를 향해 이송되어 가고 있었지만 사명을 붙잡았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가지고 세계선교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비록 유라굴라라는 광풍이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로마로 가서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을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로 가서 복음전하는 사명이 다하기 까지는 어떤 위기가 있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바울로 인해 함께 배에 타고 있던 276명 전체가 구원받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사명으로 인해 배안에 함께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자가 맡은 사명을 다하기까지 그들이 당하는 모든 위기와 환난 가운데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각지로 떠나는 제자들을 향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1)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명자는 그 사명을 마치기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므로 안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위험과 환난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모든 위험과 환난 속에서 건지심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충성스런 사명자 한 사람이 공동체 전체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덩달아 살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가족들은 아브라함으로 인해 덤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들이 오늘 살아가는 것도 주변의 어떤 사명을 가진 분들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제부터 내가 사명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걸고 사명을 감당할 때 인생의 풍랑을 극복하며 당당하게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는 사명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의 종류는 달라도 각자에게 사명을 주신 것은 분명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 때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혀 두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며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주십니다.
사도바울도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만나주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주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겐그레아교회 여자집사였던 뵈뵈를 대단히 신뢰했습니다. 로마교회에 보낼 로마서를 그녀에게 맡길 정도였습니다. 남자의 힘으로도 낯선 곳에 가는 것은 힘들고 험한 길인데 여자의 몸으로 중요한 서신을 가지고 장거리 여행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위험이 따르는 여행이었습니다. 가정과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로마로 떠나야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경험했던 어려움들을 그대로 겪을 수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전달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신실한 일꾼 두기고가 전달했습니다. 이처럼 편지는 아무에게나 보내지 않습니다. 디모데와 두기고와 같은 믿을만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뵈뵈는 사명을 맡으면 확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자였지만 로마서를 맡길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녀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로마서는 읽을 수 없는 서신이 되었고, 기독교의 중요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로마서가 없었다면 루터가 로마서를 읽지 못했고 종교개혁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로마교회에 로마서가 전달되었다는 것은 세계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책임진 사람이 바로 뵈뵈 집사님이었습니다. 겐그레아교회를 섬기면서 바울과 성도들에게 신뢰를 받았습니다. 어떤 일을 맡기든지 잘 감당했습니다. 복음과 교회를 위해, 주의 종 사도 바울을 위한 일이라면 기쁨으로 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뵈뵈를 믿고 로마교회에 로마서를 전달하는 막중한 사명을 맡겼던 것입니다. 그 사명으로 인해 하나님이 뵈뵈를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사명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이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자리가 있고 일터에서 일감이 있고 가정에서 자기자리가 있는 것이 복입니다. 사명이 끝나는 순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어떤 고난과 환난이 닥쳐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던 성경속의 인물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까지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40년 처가살이를 하면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자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히 3:5에 보면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모세의 충성을 인정하고 신뢰하셨습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애굽에 팔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을 관리하는 것이 직접적인 하나님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할지라도 성실하게 감당할 때 그 집의 모든 소유를 위임받아 관리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면서도 감옥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디를 보내주셔도 사명으로 알고 성실하게 감당하여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어떻습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포로의 신분임에도 왕에게 가장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먼저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지만 어디에 있든 사명으로 알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인 예배, 선교, 교육, 봉사, 교제의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우리교회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위기 중에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믿음(25~26절)
25~26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두려워서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갔습니다. 짐을 바다에 던지고 배의 기구를 버렸습니다. 14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구원의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습니다. 생을 포기했습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도 바울 사도는 담대했습니다.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되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확신있게 선포합니다. 반드시 한 섬에 걸려 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포기하는 상황에서 바울사도만은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반드시 살게 될 것이라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별이 어두울수록 빛나듯이 믿음의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원의 빛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믿음의 사람이 드러납니다. 교회가 어려울수록 믿음의 사람이 빛을 발합니다. 모두가 포기하고 절망하는 상황에서 우뚝 서서 구원을 선포하고 소망을 던집니다.
진정한 평안이란 눈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눈으로 얻어지는 평안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사라지면 곧 사라지고 말지만 믿음을 통해서 얻는 평안은 눈앞에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늘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는 믿음을 가지고 물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강한 바람과 거대한 풍랑을 보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평안이 사라져 물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으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 믿음을 잃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물속으로 빠져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는 거대한 풍랑이 일렁이는 바다 위에서도 안심할 수가 있었지만 믿음을 잃어버린 후에는 눈앞에 주님이 계셔도 안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이 평안의 열쇠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과 역경이 닥쳐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안전한 가운데 있어도 불안합니다.
(예화)플라시보 효과
의학적으로 플라시보 효과가 있습니다. 플라시보란 실제로는 아무 효능이나 효과도 없는 설탕 등으로 만든 가짜약 따위를 말합니다. 환자에게 가짜약을 주면서 효과가 있다고 말하면 실제 약을 먹었을 때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연구원들은 인간의 마음이 치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고 때로는 약보다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의사의 말을 단순히 믿을 때 병이 호전되었습니다. 믿음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단순히 마음으로 믿었을 때도 이런 효과가 있는데, 하물며 우주만물의 창조주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떤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26: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을 견고히 하면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100%신뢰했습니다. 로마에 도착하여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과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도 안전할 것이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여러분이여 안심하라”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불안을 몰아내고 안심하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위대합니다. 믿음의 사람 바울이 배를 위기에서 구하는 구원자의 역할을 합니다.
(예화)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갈 수 있었던 용기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던 다윗이 어떻게 담대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돈과 권력, 명예, 지식 등 여러 가지 무기들로 무장한 세상 앞에 우리가 어떻게 나갈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능력이 모자라도, 힘과 지식이 부족해도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해야 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세상 앞에 주눅 들지 않게 만듭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담대한 믿음의 선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난과 위협과 풍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을 세상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기는 평균 2천번을 넘어져야 걸음마를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일어섰다 다시 쿵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납니다. 이런 과정을 무려 2천번을 해야 걸을 수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평생 걸을 수 없습니다. 풍랑을 무서워하면 평생 배를 탈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넘어져도 하나님이 일으켜 세워 주실 줄 믿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물에 몸을 맡기고 물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때때로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막힌 담을 뛰어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믿음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었기 때문에 풍랑 속에서도 혼자 평안할 수 있었고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이여 안심하라’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교회와 가정에도 유라굴라와 같은 광풍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냥 바람에 맡기고 떠밀려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반드시 구원의 섬에 이르게 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위기 중에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격려(33~36절)
33~36절,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14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작은 희망마저 잃고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바울사도는 음식 먹기를 권면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격려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 떼어 먹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바울사도의 격려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던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격려의 말과 믿음의 행동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예화-아이젠하워 대통령)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인 시절 수년째 소령에서 진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은 중령, 대령으로 진급하는데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 보기도 민망했습니다. 이런 경우 부인들의 성화는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인 매미 여사는 언제나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전 당신을 믿어요. 진급은 생각지 말고 교육의 일인자만 되세요. 반드시 당신에게 기회가 올 거예요.”
교육장교인 그는 부인의 격려에 힘을 얻고 군사교육에 더욱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정받는 일인자가 되었고 고속 승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중령, 대령, 장군, 해군사령관,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미국 대통령 가운데 믿음이 가장 좋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부인의 격려하는 말과 행동이 의기소침하던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소망의 사람입니다.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여 죽을 자리에서도 하늘을 쳐다보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만 안심하고 소망을 갖는 것을 넘어 주변의 사람들까지 안심시킬 수 있는 격려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고난과 위기가 닥치면 마음이 약해지고 낙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배에 타고 있던 276명 중에 바울 사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절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상황에서 백부장, 선장, 선주도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줄 수 없었습니다. 배안의 그 어떤 지도자도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과 소망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함께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 사도바울은 죄수의 몸이었지만 위기 때 빛을 발합니다. 배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먼저 행동으로 안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바울의 말을 무시했지만 위기의 순간에 죄수인 바울사도가 그 배의 선장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떡을 받아먹었다는 것은 살 희망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소망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격려하는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삶에 대한 의지를 갖게 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절망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못된 말과 행동은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려울 때 말씀으로 용기를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을 때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데리고 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아들 한 명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뭇별과 같은 셀 수 없는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삭이 흉년이 들어 살던 땅을 떠나 그랄지방으로 갔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으로 격려해주셨습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3~4) 흉년이 들어 그랄지방으로 이주한 이삭에게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고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또한 야곱에게도 격려해주셨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고 분노한 형 에서의 칼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는 야곱에게 꿈에 나타나 말씀으로 격려해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돌아올 기약이 없이 떠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시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격려해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이 하는 격려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함께 떡을 먹으며 안심했던 사람들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격려하시고 행동으로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이 힘들고 불안하십니까? 요즘 살기 어려운데 교회까지 혼란하니 얼마나 힘드십니까? 마치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해매는 알렉산드리아배와 같습니까? 그래도 주님은 말씀합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어떤 위기 속에서도 살길을 열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살 수 있는 한 섬에 걸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삶의 풍랑 속에서도 안심하기를 원하십니까? 사명을 점검하고 사명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점검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말과 행동으로 서로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이 풍랑 속에서도 사명과 믿음과 격려를 통해 안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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