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 넘는 불볕더위가 열흘 넘게 이어졌다.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물을 아껴 쓰자는 담화문을 냈다. 1976년 8월 1일 일요일 아침 캐나다에서 날아든 승전보가 국민의 타는 목을 단비처럼 축여줬다.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가 건국 이래 첫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몽골 오이도프는 양정모에게 판정승을 하고도 고개를 떨궜다. 패배한 양정모는 껑충껑충 뛰며 기뻐했다.
▶당시 레슬링 채점은 기술을 당한 선수에게 벌점을 주는 방식이었다. 두 어깨가 바닥에 닿는 폴패(敗)는 4점, 판정패는 3점이었다. 양정모는 결승리그 벌점 합계 3점으로 오이도프보다 1점이 적어 우승했다. 신문들은 앞다퉈 호외를 찍어냈다. 방송사는 축하 노래를 틀었다. "애국가 우렁차다 올림픽 광장에/ 얼마나 기다렸나 우승의 금메달/ 싸워서 승리한 양정모 선수야/ 그대의 자랑은 대한의 자랑." 기다렸다는 듯 하늘이 장대비를 쏟아내 이튿날까지 대지를 적셨다.
▶레슬링은 기원전 8세기부터 고대 올림픽 종목이었다. 플라톤도 레슬링으로 다부진 근육질 몸매를 다졌다. 레슬링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했다. 그는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대신 '떡 벌어진 어깨'를 뜻하는 플라톤으로 불렸다. 피타고라스도 레슬링과 복싱을 합친 판크라티온 챔피언이었다. 고대 그리스는 지식과 체력을 함께 갖춘 인간을 이상형으로 여겼다.
▶레슬링을 인기 종목으로 띄운 이가 '빠떼루 아저씨' 김영준씨다. 그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레슬링을 해설하며 "저 선수 빠떼루 줘야 함다"고 외쳐댔다. 공격을 머뭇거리거나 반칙하는 선수를 무릎 꿇리고 뒤에서 공격하게 하는 벌칙이다. 이 파테르가 올림픽에서 레슬링이 쫓겨나는 빌미가 됐다. 파테르로 시간을 질질 끌면서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퇴출 위기에 몰렸던 태권도는 경기 방식을 역동적으로 바꿔 살아남았다. 재미가 모든 스포츠의 가치를 따지는 잣대가 됐다. 고대 올림픽 스포츠의 뿌리 레슬링도 그 잣대 앞에 무사하지 못했다. 플라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설 일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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