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공연장 시테드라뮤직. 프랑스 정상급 현대음악 단체인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렝의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 수잔나 멜키는 객석에 앉아있던 작곡가 김택수(32)씨를 무대로 불러냈다. 파리 청중의 박수 속에 무대에 올라선 김씨는 "환하게 웃으려고 했는데 정작 무대에서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혼났다"고 했다. 그의 작품인 '불안의 토카타(Toccata Inquieta)'가 세계 초연되던 현장이다.
김씨는 화학자를 꿈꾸던 '과학 영재' 출신이다.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8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서 은메달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어디까지나 과학이 우선이었고, 오히려 음악에 지나치게 빠질까봐 항상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열 살 때부터는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하지만 고교 시절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음악보다는 학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언제나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해야 했고, 학원 강사부터 편곡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조수미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음반에서도 편곡 작업을 맡았다.
-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작곡가로 화려한 데뷔 무대를 가진 김택수(왼쪽)씨와 그를 추천한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 진은숙씨. /김성현 특파원
대학 졸업 후에 다시 작곡과로 편입 시험을 치른 그는 서울대 작곡과 석사과정을 거쳐 지난 8월 미국 인디애나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2006년부터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 진은숙씨가 진행하는 무료 마스터클래스를 수강했고, 진씨의 추천으로 파리에서 작품 발표 기회를 잡았다. 진씨는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하는 집중력과 잠재력이 돋보이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이날 파리 초연 무대에서 그는 바로크 시대의 건반악기 하프시코드를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프시코드는 보통 맑고 정갈한 음색이지만, 거꾸로 그의 작품 속에서는 미끄러져 내려가는 오케스트라의 현악과 어울리면서 불안함과 초조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김씨는 "귓가에서는 음악이 맴돌고 있지만 정작 작품 진도는 나가지 않고 밤새 뒤척여야 하는 작곡가의 고민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파리 무대에 이어 올해 독일의 현대음악 단체인 앙상블 모데른이 그에게 작품을 위촉하면서 기회는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음악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나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작곡가로서 꿈"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20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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