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2:25-33
찬송: 490장
제목: 기다리면 됩니다.
목표: 믿음과 소망으로 성령과 교통하는 기다림의 승리자가 되게한다.
우물을 잘 파기로 소문이 난 업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만둔 곳에서도 그는 곧잘 우물을 파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우물을 잘 팝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우물을 파는 데 실패한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실패한 곳에 곧잘 불려 다니지요. 내가 우물을 잘 파는 비결은 딱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은 물이 나올 곳을 골라서 파다가 안 나오면 포기하지만, 나는 아무 곳이라도 물이 나올 때까지 팝니다.” 이런 인내심을 가지고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더니 역시나 오지 않았다, 혹시나 시험 점수가 잘 나올 줄 알았더니 역시나 안나왔다와 같은 말에 쓰입니다. 세상일은 이럴 수가 있습니다. 혹시나 기대를 해보지만 역시나 기대가 무너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역시나 안 오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혹시나 하고 기도했는데 역시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믿으면 진짜로 됩니다. 믿으면 진짜로 이루어집니다. 믿고 기다리면 만나주십니다.
이런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의 기다림은
1. 믿음의 기다림입니다(25절 상반절).
25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입니다. ‘시므온’이란 이름은 유대 사회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흔한 이름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시므온이 잘 알려진 유대랍비 힐렐의 아들이며 가말리엘의 아버지로 A.D. 13년에 산헤드린의 회장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볼 때 시므온은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법을 준수하는’, ‘정직한’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앞에 무죄하다거나 흠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단어는 세례요한의 부모였던 사가랴와 엘리사벳,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했던 아리마대 요셉, 로마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에게도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행한다는 뜻이고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기다림은 믿음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을 때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므온이 메시야를 기다릴 수 있었던 힘은 의롭고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고 메시야가 오면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의롭고 경건하게 생활하면서 메시야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개를 훈련할 때 가장 힘든 것이 기다리게 하는 훈련이라고 합니다. 군견이나 마약 등을 탐지하는 탐지견들을 훈련할 때 최종적으로 하는 훈련이 기다림의 훈련입니다.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명령을 내리고 끝까지 기다리면 훈련이 잘 된 개라고 합니다. 먹을 것을 주고 주인이 먹으라고 명령을 내릴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면 훈련이 잘 된 개가 됩니다. 기다리는 훈련을 할 때 개가 주인을 믿도록 해야 합니다. ‘기다려’ 명령을 내리고 난 후에 주인은 반드시 다시 돌아가야 개가 주인을 믿고 다음에도 기다립니다. 이처럼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쓴 ‘춤추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에 갔다가 그네 타기 곡예사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로 해마다 1주일 혹은 2주일씩 서커스단에 합류하여 돌아다닐 때 서커스단 리더가 말했습니다.
"헨리, 만인이 내게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허공에 뛰어올라 거꾸로 공중제비 하는 것을 보며 다들 나를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영웅은 잡는 사람입니다. 내가하는 일이라고는 팔을 내밀고 믿는 것뿐입니다. 잡는 사람이 나를 잡아 끌어올려 주리라고 믿는 것뿐입니다."
공중곡예를 펼치는 서커스단원도 공중에서 몸을 돌리면서 떨어질 수 있는 이유는 자기를 잡아줄 사람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공중에서 손을 놓을 수도 있고 메시야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삶을 둘러싸고 계시며 우리를 잡아 주고 붙들어 주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좋을 때만 아니라 힘들 때에도, 승승장구하는 순간만 아니라 앞길이 막막한 순간에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건져지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그 끝은 영광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했던 아둘람굴 생활이 그리 오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들이 처한 아둘람굴에서의 기다림 역시 오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문제, 건강문제, 가정문제, 자녀문제, 직장과 사업의 문제, 물질문제, 인간관계 문제 등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면 해결해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면 됩니다.
시므온의 기다림은
2. 소망의 기다림입니다(25절 중반절) .
25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란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 받는 위로를 가리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영감받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러한 오랜 침묵의 시대에 살면서도 시므온은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끈기있게 믿음으로 기다린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시므온으로 하여금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소망을 간직한 시므온은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 안겨 성전에 온 아기 예수를 최초로 만나 평생의 소원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소망은 기다림입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소망가운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소망이 없는 사람은 기다리다가 지쳐 낙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인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님이 쓰신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연단을 통해 배운게 하나있다. 그것은 '기다림'이다. 돌이켜보면 '기다림'을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이 내게 고난과 연단을 허락하셨다는 생각마저 든다.” 고난과 연단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그의 믿음과 소망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기다릴 수 있고 소망이 있을 때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예화) 도쿠가와의 기다림
국민일보 겨자씨에 실린 글입니다. 일본 춘추전국시대에 천하를 주름잡았던 세 인물이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들입니다. 어느 날 현자가 그들에게 울지 않는 앵무새를 보여주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제일 먼저 오다는 “울지 않거든 죽여버리자”고 했으며, 다음으로 도요토미는 “울지 않거든 울게 만들자”고 했고, 마지막으로 도쿠가와는 “울지 않거든 울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그때 현자는 도쿠가와에게 언젠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 말하고는 그 앞에 절을 했다고 합니다. 성급하고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 오다,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권모술수의 인물 도요토미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무섭도록 차가운 사람 도쿠가와 가운데 이 현자의 예언대로 도쿠가와가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막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1년이 시작되면서 송구영신예배 때 소원을 품었던 기도제목들이 응답되기를 믿고 기다리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12월이 되었습니다. 2011년이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가 지치지는 않았습니까? 해결되리라 믿었던 교회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리라 믿었던 자녀들이 짝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리라 기대했던 자녀들이 기대만큼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합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하리라 믿었는데 취업의 문이 닫혀서 방황하는 자녀들을 볼 때 속이 타들어갑니다. 가정 경제도 회복되리라 믿었는데 오히려 더 어려워집니다. 기다려보지만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치고 짜증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어떠했을까요? 400년 동안 선지자도 없고 하나님의 계시도 없던 시대에 주변의 경건한 사람들마저도 메시야가 오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세속에 물든 생활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무력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외치며 무기를 가지고 로마에 대항하기도 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소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영화롭게 만드실 것이라는 소망을 간직했습니다.
우리들은 시므온보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외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무 때나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소망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함께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예화) 준비된 사람이 쓰입니다.
영국의 어느 극단에 배우가 되기를 갈망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배우가 되는 길은 참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배역을 맡기란 불가능하고 겨우 단역을 하나 맡는 것도 오랜 세월동안 청소나 잔심부름을 한 뒤에 겨우 발탁되는 것입니다. 이 소년도 연극배우가 될 꿈을 가지고 시작은 했으나 하는 일은 몇 년 동안 심부름과 청소 잡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무대 뒤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이 소년에게 조연출자가 와서는 단역 배우 한사람이 사정상 빠지게 되었으니 대역을 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그 역은 임금이 궁중에서 만찬을 베풀고 있는 때에 병사 하나가 들어와서 전쟁의 급보를 전하는 한 장면뿐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자신에게 주어진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이 역을 두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이미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동료에게 무대에 올라 갈 시간이 임박하면 연락해 달라고 말한 뒤에 복장을 갖추고 무대 뒤뜰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계속 뛰기 시작했습니다. 땀이 흘러 얼굴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신발이 먼지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숨은 턱에까지 차올라 금방 쓰러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신호가 왔습니다. 무대에 올라 갈 시간이 된 것입니다. 드디어 이 소년이 무대에 등장했을 때 모든 관객은 정말 먼 전쟁터에서 며칠 밤낮을 달려온 한 병사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영국의 연극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았고 후에 작위까지 받은 유명한 연극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긴 기다림과 같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기다림의 사람들입니다. 고난가운데서 구원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소망으로 기다리면 됩니다. 소망으로 기다리면 영광과 기쁨이 있습니다. 기다리면 이깁니다.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났듯이 올해가 가기 전에 아니 주님이 문제해결을 하실 때까지 소망으로 기다리면 위로받고 승리하는 감격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시므온의 기다림은
3. 성령과 교통하는 기다림입니다(25-27).
25-27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본문을 보면 시므온을 소개하면서 25절에서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했고 26절에서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했습니다. 또 27절을 보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하나님의 계시가 단절되었던 영적 암흑기였던 그 시대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는 의인이 있었으며 항상 성령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얼마나 시므온이 성령충만한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령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에 사로잡히면 돈이 이끄는 데로 행동합니다. 쾌락에 사로잡히면 쾌락을 따라 여기저기 끌려 다닙니다. 명예에 사로잡힌 사람은 명예를 찾아서, 권력에 사로잡힌 사람은 부나방처럼 권력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가룟유다처럼 마귀에 사로잡히면 마귀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성령의 인도와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사람이기에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는 것은 그가 성령을 높이는 겸손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사람위에 계셔야지 사람이 성령위에 군림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성령을 거스려 육체의 소욕대로 살려고 합니다. 성령을 하인부리 듯이 하여 성령을 근심케 하기도 합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는 말씀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응답받고 지시를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시므온은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갈망하며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그가 죽기 전에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는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메시야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란 뜻입니다. 즉 시므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표현입니다. 결국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감동에 따른 것이고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분도 바로 성령이셨습니다.
성전은 주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전에 나오는 것은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 베델에서 보았던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함께 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경험하는 장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시므온을 성전에 가도록 하신 것처럼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 중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신앙생활은 성령으로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요한복음 6:28-29에 보면 “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도록 역사하는 영입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교훈하는 지혜의 영이기도 합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하심과 감동을 받아 살았으므로 시대의 조류에 밀리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에 꼭 메시야를 볼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믿고 기다리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어떻게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여호와의 신 즉 성령을 통해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기에 백성을 인도해 가나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신명기 34:9절은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예화)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습니다. 당신 손에 있는 권세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됩니다. 당신은 노련한 전문가인 수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이 제각기 자기의 전문적인 지식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고, 당신은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다 귀를 기울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은 보좌진들의 말을 모두 다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우리의 마음은 보좌관입니다. 마음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수학적이고 논리정연하고 사회학적이며 통계적인 것들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릴 때는 성령이 해야 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서 행하게 되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대강절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성탄절 전의 4주간 동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시므온이 예수님을 기다리다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듯이 우리들도 시므온처럼 예수님을 기다리다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다림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입니다. 중간에 기다림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다가 역시나 하고 실패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도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과정입니다. 삶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도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믿음과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과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과 교통할 때 기다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기다리며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다린 것이 은혜입니다. 교회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낙망하지 않고 기다려온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악에 휩쓸리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려운 중에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은혜입니다. 성령님과 교통하며 살아온 것이 은혜입니다.
기다렸는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올해가 다 갔다고 절망하지 맙시다. 내년이 있고 내 후년이 있습니다. 시므온처럼 끝까지 기다리면 영광의 날이 있습니다.
‘혹시나’ 기다렸더니 ‘역시나’가 아니라 ‘믿고’ 기다렸더니 ‘진짜로’ 이루어졌다고 할 날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면 됩니다. 소망으로 기다리면 됩니다. 성령과 교통하며 기다리면 됩니다.
이런 기다림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온에서 임하는 복 (0) | 2012.01.21 |
---|---|
그리하면 살리라 (0) | 2011.12.16 |
지혜로운 사람 (0) | 2011.11.20 |
극복하는 복음의 능력 (0) | 2011.10.19 |
며칠같은 칠년의 사랑 (0) | 2011.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