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차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
운동하는 시간이라 중간에 멈추고 아들을 태워주고 와서 다시 테니스를 치기도 한다.
그동안 아들은 학교가 멀어서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학교가 멀다고 푸념하기에 1년 동안 차를 태워주기로 하고 등교를 시키고 있다.
조금만 일찍 일어나 서두르면 좋으련만 느긋하다.
늦어도 별로 서두르지 않는다.
참 편하게 사는 아들이라 답답할 때도 있지만 아버지보다는 세상을 여유롭게 살아가리라 믿어진다.
아들을 태우고 학교까지 갈 때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는 극동방송을 틀어놓고 운전하고 아들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부자간에 관심영역이 다르다.
아들이 극동방송 전파선교사라고 알려주어도 별로 관심이 없다.
나도 그 때는 아들과 똑 같았을 것이다.
이제 얼마 후에는 학교까지 차를 태워줄 일도 없을 듯하다.
수능시험을 치고 나면 등교시간도 늦어지니 혼자서 다니게 될 것이다.
아들의 등교를 시켜주면서 귀찮고 미안할 때도 있다.
테니스 복식경기를 하다가 멈추고 갈 때면 함께 운동하는 분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이 이런 아빠의 사정은 알고 있는지?
고마운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는 듯하다.
이야기를 해도 그 때 뿐이다.
철이 들면 아빠의 수고와 고마움을 알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아들을 등교시키면서 나의 등교길을 생각해 보았다.
초등학교 때는 책가방이 없어서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서 허리춤에 둘러매고 다녔다.
중학교 때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며 등교를 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근처에 방을 얻어놓고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대학교 때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직하고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는 자가용으로 학교를 다녔다.
나의 등교길을 생각해보면 시대의 변천사를 보는 듯하다.
평생 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와 함께 등교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자가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비교하면 얼마나 행복한 아들의 등교길인가?
우리나라도 많이 변했다.
불과 수 십 년 사이에 자가용이 가정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자가용이 없는 집이 없고 한 집에 여러 대의 자동차가 있는 집들도 있다.
생활형편이 좋아지면서 우리들의 생각도 많이 변했다.
감사한 일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상도 권위보다는 친구 같은 아버지로 변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어려웠는데 시대가 많이 변한 모양이다.
아버지와 함께 등교하겠다는 아들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들을 학교에 등교시킬 일도 없어질 것이다.
대학교에 가면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군대에 다녀오고 취업하고 결혼하여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아침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차 안에서 별 말없이 등교하는 바로 그 시간이 훗날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간직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