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조하문목사

하마사 2011. 7. 22. 10:06

잘나갈수록 피폐해졌다
가수로 세상 인기 다 누렸지만 자살 마음먹을 정도로 방황했어요
낮아지자 평안해졌다
캐나다서 목회 생활, 그리고 한국行… 도심 속 선교사로 인생 3막 엽니다

 

조하문(52) 목사. 아직 많은 사람이 그를 '해야'와 '이 밤을 다시 한번'을 부른 가수로 기억하는 조 목사가 최근 '인생 3막'을 시작했다. 2003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가, 여러 해 동안 토론토의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했던 그가 두 달 전 귀국했다. 캐나다 한인교회 목사 생활을 그만두고 돌아와 또 새 삶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1년쯤 걸려서 쓴 A4용지 240쪽 분량의 원고를 모아 새 책 '조하문의 회복일기'(홍성사)도 펴냈다.

"왜냐"고 물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토론토에서는 목회도 가정도 모두 평화로웠습니다. 거기서 인생을 마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한국에서 생각지 못했던 많은 사람이 '할 일이 많으니 돌아오라'고 불렀어요. 미국 교회에도 요청을 받으면 가서 설교하곤 했는데, '가수 조하문'을 보러 왔다가 변화하는 분을 많이 봤어요." 조 목사는 "부족한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지난 1~2년간 줄곧 기도하고 응답을 구했다"고 했다.

8년 만에 캐나다에서 돌아온 조하문 목사는“방황이 깊었던 만큼 내 거듭남과 변화에 대해 더욱 감사하려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 같은 방황을 하지 않도록 돕는 도심 속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5월 대전에서 열린 콘서트 모습. /사진가 임신애씨 제공
격렬하거나 아름다웠던 그의 노래들처럼, 그의 삶 또한 극적이었다. 조하문은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룹 마그마의 보컬로 '해야'를 불러 은상을 받았고 솔로 가수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사업가로도 성공했지만 화려한 무대 뒤의 인생은 황폐해졌다. 알코올 의존증, 우울증, 공황장애…. 오랜 방황 끝에 건강까지 잃으며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두 번째 인생은 38세 되던 1997년에 찾아왔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는 요한복음 구절이 시작이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한 아내의 권유에도 꿈쩍 않던 그는 극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다. 사업과 연예계 생활도 모두 접고 1999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국제대학원(ACTS)에 입학, 2002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조하문 목사(왼쪽)와 부인 최지원씨. 최씨는 배우 최수종씨의 친누나다. /이태훈 기자

2003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뒤, 그는 토론토 하나교회를 섬겼다. 조 목사는 "목회를 하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고백이야말로 나도 살리고 주변도 살리는 길이란 걸 깨달았다"고 했다. "부부 싸움을 할 때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먼저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고 싶다가도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여긴다면 자살을 다시 생각해보겠지요." 그는 "스스로 모자람을 인정하는 '나사 빠진 바보 온달' 같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도 했다. "고집으로는 담배 하나도 끊을 수 없어요. 주님 앞에 누가 더 옳고 잘났다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조 목사는 귀국한 뒤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그는 "서로 싸우지 않아도, 때리지 않아도, 자살하지 않아도 되는 '예수 안에서 회복된 삶'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드리는 것이 내 소명"이라고 했다. 지난 5월 28일 대전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때는 엑스포아트홀 1200석이 꽉 찼다. 크고 작은 교회나 기업 강연, 자살 방지 운동을 준비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등에 나가 설교도 했다. '도심 속 선교사'의 삶이다. 그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내 경험을 들려주고, 나처럼 긴 고민과 방황을 하지 않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목사 조하문은 화려한 조명과 관객들의 열광이 정말 그립지 않은 걸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전혀 미련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좋은 것들로 주시는데, 10원, 100원짜리 동전을 왜 계속 손에 쥐고 있겠어요?"

 

-조선일보, 201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