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교육

절대 남과 비교말라… 천성을 싹 뜯어고쳐라

하마사 2011. 7. 14. 10:18

 

[콩쿠르 휩쓴 손열음·김선욱의 스승 김대진, 그가 말하는 나의 교수법]
피아노는 원래 생긴대로 치는 법, 천성 바꿔줘야 무너지지 않아…
제자 입상 집착하는 나를 깨닫고 열음이·선욱이 잊으려 노력 중

"샘나진 않아요. 저보단 제자들이 무대에서 빛날 때가 훨씬 더 뿌듯해요. 제가 피아노 연주를 계속하는 것도 제자들이 제 무대를 보며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기 위해서예요. 백 마디 설명보다 직접 보여줄 때 딱 받아들이더라고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김대진(49)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숨은 공로자다. 콩쿠르의 꽃이라 할 피아노 부문에서 2위 입상한 손열음(25), 2006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23)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르쳤다. 김선욱은 한예종 입학 당시 희망 지도교수 1·2·3지망에 '김대진'만 써냈다. 명성은 현해탄을 건너 재일교포 학부모들까지 자녀의 피아노 교습을 그에게 맡기고 싶다고 청해올 정도다.

김대진 교수는“피아니스트·지휘자·선생 중 하나만 하라면 선생을 하겠다. 피아노 연주활동을 계속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제자들에게‘같은 악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김대진의 교수법(敎授法)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 11일 연구실에서 '선생'으로 만난 그는 무슨 말이든 5초 이상 뜸을 들였고, 단어도 신중히 골랐다. 평소의 막힘없는 언변과는 다른 모습. 학부생 15명, 예비학교생 9명을 맡아 가르치고 있는 그는 현재 17년차 교수다.

생긴 대로 친다

그는 "곡을 가르치는 것과 사람을 가르치는 것 중 나는 후자를 택한 사람"이라 했다. "곡을 빨리 치는 사람은 어떤 곡을 치든 속도가 빨라져요. 함부로 말하자면 생긴 대로 치기 때문이지요. 실제 대화를 나눠보면 말이 점점 빨라지고, 식사하면 밥 먹는 속도가 빨라지고, 산책하면 걸음걸이가 빨라져요."

천성(天性)을 바꾸기 위해 그는 객관적 틀 6가지를 만들었다. 어떤 '소리'를 내는지, '박자'를 잘 맞추는지, '리듬감'이 있는지, '악구'(프레이징·음악 주제가 비교적 완성된 두 소절에서 네 소절 정도까지의 구분)에 대한 느낌이 몸에 배어 있는지, '페달'을 깨끗하게 쓰는지, 마지막으로 '끼'가 있는지다. "틀을 제대로 갖추면 개성 있게 흥을 담아 치더라도 무너지지 않아요. 물론 고통스럽고 눈물 쏙 빼지요."

기본 틀을 파악하기 위해 학생의 연주는 반드시 직접 가서 본다. 연주 전체에 대한 느낌은 일기처럼 적어둔다. 그렇게 쌓이는 파일이 1년에 50개 이상. 한 번 만든 파일은 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최신 정보를 계속 보태기 때문에 10년쯤 지나면 해당 학생의 장·단점, 연주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늘 변화하는 열음 vs. 욕심쟁이 선욱

손열음과 김선욱은 그에게도 특별한 제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손열음은 "같은 곡을 연달아 두 번 치면서 똑같이 친 적이 한 번도 없는 아이"다. 대단한 장점이었지만 '다름'을 틀 안에 넣어 '개성'으로 다듬어줄 필요가 있었다. 단점을 일일이 지적하기보다 "좀 더 열정적으로 치면 좋겠다"는 큰 방향만 제시했다. 대신 6가지 틀을 옭아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게 강조했다. 그래도 열음은 한 번도 짜증 내거나 화내지 않았다.

2011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손열음(사진 왼쪽)과 2006 리즈 콩쿠르 우승 김선욱.

김선욱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아이였다. 피아노 연습만 해도 모자랄 나이에 미술관·박물관 안 가는 데가 없었다. "심지어 콩쿠르에 나가면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유명한 상점도 들러야 했으니까요." 중학생이 된 선욱을 컵을 집어던질 정도로 심하게 혼낸 날이었다. '아이작 스턴은 맨해튼 남북을 오가는 버스를 수십 번 타며 자기 삶을 고민했는데 너는 고민이란 단어가 뭔지 알긴 아니?'라고 다그쳤다. 그날 레슨을 마치고 예술의전당 앞 지하차도를 지나는 그의 눈에 선욱이 들어왔다. 높이 2m 난간에 올라앉아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놀란 그가 뭐 하는 거냐고 소리치자 선욱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고민하는데요."

비교는 금물(禁物)

그는 "제각기 다른 아이들을 틀에 맞춰 조율해야 하는 레슨은 그래서 눈물과 분노와 독설이 뒤범벅된 과정"이라 했다. 레슨 때 절대 피하는 건 '비교'다. "제가 줄리아드음악원 학생일 때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3악장을 정말 못 쳤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동급생을 불러 그 아이에게 쳐보라고 시키고는 '들었지? 얘한테 좀 배워'라고 했어요. 잊지 못할 순간이지요."

다른 나라 아이들은 얼마나 치는지 파악하기 위해 클리블랜드·베토벤·부조니 등 세계 주요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자주 맡는다. 그가 보기에 한국이나 일본 중고생의 연주 기능은 유럽 대학생과 맞먹지만 해석과 표현은 너무 똑같아 민망할 정도다. 중국 아이들에게서는 대륙의 호탕함과 자신감이 묻어나나 전체적 색깔은 역시 서로 닮았다. 정돈된 틀 안에서 마음껏 느낌을 표출하고, 표현의 진폭도 다른 연주를 하도록 이끌어주는 게 지금 그의 목표다.

그는 "선욱이와 열음이를 잊으려 노력 중"이라 했다. 콩쿠르 입상에 욕심 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후부터다. "제자들이 30년 이상 활동하며 인정받는 피아니스트가 된다면 그땐 진짜 훌륭한 선생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으로서 이름을 알리기보다 학생만 바라보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설계해주고 싶어요."

 

-조선일보, 201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