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 떠난 우리 두 커플의 우정, 내 장례식 때 꼭 얘기해줘"
政敵이었지만 평생 친구… 그녀의 마지막 소망은 美 정치인들의 화합이었다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베티(1918~ 2011) 여사의 장례식이 12일 오전 캘리포니아 팜데저트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여사도 참석했다. "내가 죽거든 꼭 당신이 조사를 읽어야 한다"던 베티 여사의 생전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사다트 장례식에서 시작된 우정
약 5년 전 포드 전 대통령이 별세했을 때는 카터 전 대통령이 조사를 읽었다. 1976년 대선에서 격돌했던 라이벌이었지만 퇴임 후엔 가장 절친한 벗으로 지냈던 두 전직 대통령 부부의 우정이 베티 여사의 별세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 ▲ 포드 낙선 직후 만난 두 부부… 제럴드 포드(왼쪽에서 세번째) 전 미국 대통령이 1976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오른쪽 끝) 민주당 후보에게 패한 뒤 백악관에서 만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 두 전직 대통령 부부는 선거에서는 라이벌이었지만 퇴임 후 평생 함께 우정을 나눴고 정파를 초월해 사회봉사 활동도 함께했다. 최근 미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부부채 한도를 늘리는 문제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별세한 베티 포드(왼쪽에서 두 번째) 여사가 로절린 카터(왼쪽 끝) 여사에게“내가 세상을 떠나면 미국 정치권의 화합을 주문하는 내용으로 조사를 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
베티와 로절린의 관계는 악연으로 시작됐다. 1974년 부통령이었던 포드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닉슨이 사임하자 선거 없이 대통령이 됐다. 1976년 카터와 맞붙은 포드는 아내에게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카터에게 패했을 때 포드 부부는 좌절했다. 그때의 충격으로 베티는 알코올·약물 중독에 빠져들었다. 베티는 훗날 '내 인생의 시간'이란 자서전에서 "카터 대통령 취임식장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다"고 고백했다.
두 부부의 악연은 그러나 카터가 레이건에게 패한 뒤 우정으로 변해갔다. 첫 계기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장례식에 함께 참석하면서 마련됐다.
카터 대통령은 이 여행에서 "우리는 둘 다 해군 출신이고,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으며 무엇보다 아름답고 똑똑하며 아주 독립적인 여자들과 결혼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공화당(포드)과 민주당(카터)으로 정치적 성향이 달랐지만 퇴임 후 20개 이상의 공동 프로젝트를 함께 구상해 실천했다.
◆초당적 우정 나눈 전직 대통령 부부
부인들은 따로 뭉쳤다. 알코올과 약물 중독 경험을 바탕으로 중독자 재활 사업을 펼치던 베티와 정신적인 질병과 싸우는 이들을 위해 뛰던 로절린은 1994년 두 사업을 통합해 관리하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함께 의회를 설득하는 작업을 펼쳤다. 카터는 "두 여자가 워싱턴 정가에 나타나 펼치는 로비 협공을 당해내는 의원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포드 부부의 외동딸 수전은 카터가 설립한 카터 센터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2006년 12월 포드 전 대통령이 별세하자 베티는 로절린에게 남편의 시신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일주하는 데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고 로절린은 흔쾌히 응했다.
베티 여사와 이별하는 마지막 자리에서 로절린 여사는 '남편들이 초당적 우정을 나누며 국정을 이끌 때 대통령 부인들이 어떻게 뒷받침을 했는지'에 대해 들려줬다. 참석자들은 퇴임 후 협력하고 우정을 나눈 전직 대통령 부부의 삶을 떠올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장례식에는 로절린 외에도 미셸 오바마, 낸시 레이건, 힐러리 클린턴 등 전·현직 퍼스트레이디들이 참석했다.
-조선일보, 201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