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인종차별 갈등 110년 만의 화해

하마사 2011. 6. 8. 10:17

 

흑백 후손들이 손잡고 인종평등 교육재단 세워

한 세기 전 '인종 차별' 문제로 법정에서 대립했던 원고와 판사의 후손들이 '인종 평등'을 알리는 시민 교육 재단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6일 보도했다.

주인공은 뉴올리언스에 사는 키이스 플레시(57)와 피비 퍼거슨(57·여). 이들은 각각 미국 헌법 역사상 '인종 차별' 판결로 유명한 '플레시 vs. 퍼거슨' 판결에서 대립했던 원고 호머 아돌프 플레시의 첫 조카의 증손자와 판사 존 하워드 퍼거슨의 고손녀다.

플레시와 퍼거슨의 역사적 첫 만남은 1892년 6월 6일 혼혈인 호머 플레시가 일부러 백인들만 타는 1등석 객차에 탔다가 체포되면서 이루어졌다. 그는 흑·백인이 각기 다른 공공시설을 써야 하는 현실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퍼거슨 판사가 있던 루이지애나 법원은 플레시와 시민단체가 제기한 소(訴)에 대해 '평등하지만 분리해야 한다(separate but equal)'는 원칙에 입각해 '흑백 분리 시설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판결했다. '플레시 vs. 퍼거슨' 판결의 효력은 1954년 미 연방 법원이 공립학교의 흑백분리가 부당하다고 한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이 있기까지 지속됐다.

선대(先代)의 악연을 끊고 인종평등 운동에 힘을 합친 플레시(오른쪽), 퍼거슨(가운데)과 둘의 만남을 주선한 민권운동가 키이스 메들리. /‘플레시와 퍼거슨’재단 제공
각각 호텔 벨보이와 영화감독으로 살아왔던 플레시와 퍼거슨의 대(代)를 이은 만남은 2004년 민권 운동가들의 주선으로 '화해(Reconciliation)'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이뤄졌다고 WP가 전했다. "왠지 당신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다"는 퍼거슨에게 플레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제 우리가 모두 바꿀 차례다. 더 이상 '플레시 대 퍼거슨'이 아니라 '플레시와 퍼거슨'이 되자."

그렇게 탄생한 '플레시와 퍼거슨 재단'은 현재 뉴올리언스를 근거지로 인종평등 투쟁사(史)를 알리는 교육과 캠페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 20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