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물가 쇼크… "진짜 밥먹고 살기 힘드네요"
점심값 부담에 도시락 싸고 싼 밥집 찾아 수십분 걸어…
택시기사, 기사식당도 비싸 삼각김밥·우유로 끼니 때워
노숙자 급식 등 구호도 타격… "100인분짜리 닭개장에 닭 3마리만 넣어 끓여요"
"요새 5000원 들고 점심 때우기 어림없어요. 어지간하면 콩국수도 8000원 넘는데…."
맞벌이를 하는 민모(여·36)씨 부부는 지난달부터 두 사람 모두 도시락을 싸서 출근한다. 민씨는 "지난달 계산을 해보니 부부가 매달 점심값으로 40만~50만원씩 쓰고 있어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씨는 "나야 우리 회사 여직원 4~5명이 매일 도시락을 싸오기 때문에 어색할 게 없는데 남편이 좀 난처해하는 것 같다"면서 "아파트 중도금 끝날 때까지만 참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 화장실은 점심시간이 끝나면 전기밥통과 밥그릇을 설거지하려는 사람들이 차지한다. 배달시켜 먹는 김치·된장찌개 백반이 올 초 5500~6000원에서 7000원으로 오르면서 업주들이 직원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밥을 짓기 때문이다. 용산 나진상가 업주 윤모(36)씨는 "대부분의 매장이 6~7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점심을 다 사먹으면 한 달에 120만~130만원이 깨진다"고 말했다.
"나이 일흔에 이렇게 차 안에서 김밥을 먹어요. 기사식당 점심값이 무서워서."
택시 경력 43년째인 김모(70)씨는 지난해 말부터 점심때 기사식당을 가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와 우유 1개를 사서 택시 안에서 해결한다. 점심값으로 3000원을 넘기는 일이 없다. 김씨는 "2~3년 전만 해도 기사식당에 4000원짜리 밥도 푸짐했는데, 요즘은 아무리 싼 곳을 가도 6000~7000원씩 해서 겁이 나서 못 가겠다"면서 "소화도 잘 안 되고 허기가 지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고 벌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 ▲ 최근 물가 상승으로 밥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기사식당에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4일 오후 1시쯤 서울 용산의 한 기사식당에서 택시기사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원래 한창 붐빌 시간이지만 손님이 둘뿐이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택시기사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기사식당이 썰렁해졌다.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 도로변의 한 기사식당은 손님이 2명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택시기사들이 몰려들 '피크타임'이다. 개인택시 기사 이모(45)씨는 "'기사식당은 싸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면서 "이제는 6000~7000원은 줘야 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 마포에 직장이 있는 최모(41)씨는 "거의 매일 오늘은 점심을 건너뛸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단골손님의 눈치를 보며 봄부터 가격 인상을 망설이던 식당들은 여름에 들어서면서 대부분 가격을 올렸다. 돼지고기, 마늘, 콩, 생선 등 식탁에 자주 올라가는 식품 가격이 작년 5월 대비 30~60%씩 급격하게 오른 영향이 크다.
노숙자, 독거노인 등에게 점심 무료 급식을 하는 구호단체들도 점심 식단 차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용산구 한강로 3가에서 노숙자 무료 급식을 하는 '하나님의 집'에선 요즘 100인분짜리 닭개장에 들어가는 닭이 세 마리에 불과하다. 유연옥(44) 하나님의 집 대표는 "가스비와 채소, 밀가루, 양념 가격이 일제히 20~30%씩 올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정진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민들이 받는 물가 충격은 점심값처럼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 하는 부분에서 더 크게 온다"면서 "정부가 물가 안정에서 신경을 많이 써야 될 부분인데 놓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