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을 높이 평가했어요. 늘 '부정을 외면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감연히 일어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분들(시위 희생자)을 걱정했어요. '그때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고 하던데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어요. 내가 '국가에서 보훈도 해주고 잘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니까 이 전 대통령은 '잘 됐구나. 내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그런 일이 생겨서 유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李仁秀·80·전 명지대 교수)씨가 19일 오전 9시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이기수 전 고려대총장)와 함께 서울 수유동 4·19묘역을 참배 및 헌화하고 당시 희생된 학생과 유족들에게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 전 대통령의 유족 대표인 이씨와 기념사업회가 4·19묘역을 참배하고 사죄성명을 공식 발표하는 것은 1960년 4·19혁명 이후 51년 만에 처음이다.
- ▲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앞에서 이 전 대통령 양자인 이인수씨가 4·19혁명 당시 희생된 학생들과 유족에 대한 사죄성명을 발표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씨는“이번 사죄성명이 국가 발전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60년 4월 26일 하야(下野) 후 이해 5월 29일 하와이로 떠나 1965년 7월 19일 서거할 때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씨는 1961년 11월 전주이씨 종친회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의 양자가 되어 이해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4개월간 하와이에서 이 전 대통령을 모셨다. 이후 귀국했다가 1964년 1월부터 4월까지 이 전 대통령과 함께했고, 1965년 7월 다시 출국해 이 전 대통령의 임종을 지켰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3·15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한 번은 하와이에서 '한국은 어떠냐'고 물어 '잘 된다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남이 잘 돼간다고 하는 말 믿지 마라. 내가 그런 말 하는 거 듣다가 이렇게 됐다'고 했다"면서 "이 대통령은 조병옥 박사의 서거로 단독 후보가 되었기 때문에 부정선거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부정선거는 당시 이기붕 후보가 출마한 부통령 선거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이 대통령은 부정선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통치기간 발생한 일인 까닭에 책임을 지고 하야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51년이 지난 지금에서 사죄하는 이유에 대해 "그전에는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온 세월이었지만 지금은 '건국 대통령'으로서의 이 대통령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면서 "그래서 이 전 대통령의 뜻이기도 한 4·19묘역 참배를 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지난 3월 28일 이기수 기념사업회장과 함께 고려대 4·18기념탑에 헌화하고 '장하다 4·18정신'이라고 리본에 써서 달았다고 했다. 이씨는 "학생들이 장하다고 한 말은 이 대통령이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서 조명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과 건국운동에 모두 참여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건국 대통령'인데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무시하고 자기 영광만을 위해 일해 온 것 같다"면서 "젊은이들에게 정체성 있는 역사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이승만 대통령기념관을 건립하고 이화장 등 유적 보존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4·19혁명희생자유족회는 "아직 성명 내용 등에 관한 검토가 끝나지 않아 지금 입장을 내놓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201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