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전국을 돌며 콘서트를 펼치는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윤복희. 주름살이 그대로 보이는,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은‘65세의 민낯’에서 60년 무대 인생의 영화(榮華)와 굴곡이 가감 없이 전해진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이제 그가 자신의 치열한 과거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팬들을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30일부터 시작될 '데뷔 60주년 기념 스페셜 콘서트' 전국 투어다. 20일 밤 서울 대흥동 한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함께 연습하기로 했던 연주자가 오지 않아 발 동동 구르던 그는 "지난 60년간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생 환갑도 대단한데 무대 환갑이라면 조금은 자축할 만한 일일수도 있겠다."
―단독 콘서트는 처음인 듯하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내 이름을 걸고 투어까지 하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주로 뮤지컬을 해왔으니까. 내가 그냥 가수였으면 데뷔 60주년을 맞는 기분이 좀 더 특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늘 수십, 수백명과 뒹굴면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며 연기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투어는 나를 위한 게 아니다. 그간 나와 함께한 사람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한 자리다."
―무척 어린 나이에 데뷔했다.
"아버지 쇼단을 따라다니면서 컸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아침에 눈만 뜨면 배우들이 셰익스피어 연극을 연습하고 발레 또는 탭댄스를 추는 걸 봤다. 그리고 따라 했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이 돼버린 것이다."
―연예인 생활에 대한 염증도 일찍 느꼈을 법한데.
"왜 없었겠나. 매일 괴로웠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꼬박꼬박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스운 건, 데뷔는 내가 졸라서 했다는 거다. 그 어린 나이에 무대에 오르고 싶어서 '연기 안 시켜주면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며 양철필통을 들고 아버지를 위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회의를 느꼈다. 오빠(가수·예음예술종합신학교 총장 윤항기)가 시골에서 차분하게 학교 다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오빠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건가.
"아버지 친구가 교장으로 있는 공주의 한 초등학교에 맡겨졌다. 숙식은 아버지 친구 집에서 했다. 오빠는 거기서 계속 자랐다. 아들이라서 그렇게 했던 건지…. 어쨌든 나와는 많이 다른 인생을 살았다."
―1963년 루이 암스트롱이 내한공연했을 때 함께 출연해 모창을 했다던데.
"내가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할 때 암스트롱의 히트곡을 흉내 낸 게 화제가 됐다. 그 목소리를 여자가 따라 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미군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본국의 암스트롱 귀에까지 내 얘기가 들어간 모양이다. 암스트롱이 나를 찾았을 때는 정말 쇼크였다. 2주간 공연하면서 매일 나를 무대에 세웠는데 두 사람이 똑같이 한 손에는 트럼펫 또 다른 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노래했다. 전 세계 재즈 뮤지션의 꿈이 그의 곁에 서는 거였는데…."
―윤복희를 얘기하면서 미니스커트를 빼놓긴 힘들다.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내가 미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공연하는 사진이 한국에서 화제가 됐을 뿐이다. 그 스타일이 한국에서 유행을 했든 말든 난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거리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 적도 없고. 솔직히 평소에 그런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가. 더군다나 겨울이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바지를 입고 다녀야지."
―나이가 있는데도 여전히 힘찬 가창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나는 내 노래를 돈 주고 들으러 가고 싶지는 않은데…. 이런 건 있다. 언젠가부터 난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연기를 해왔다. 70년대부터 뮤지컬 무대를 개척하면서 하도 힘든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무대에 일단 오르면 조금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거의 발악을 하는 수준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게 좋게 비쳐진다면 고마운 일이지."
―요즘 젊은 가수들의 연기와 노래를 평가한다면.
"난 무서워서 TV를 못 본다. 왜 이렇게 성형수술을 한 사람이 많나. 얼굴에 손을 대면 연기도 노래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진정한 배우와 가수라면 내 몸 자체가 무대라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피부를 당기고 뼈를 깎은 상태에서 자신의 감정이 얼굴로 제대로 표현되겠는가. 구강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는데 노래가 정상적으로 나올 리도 없다. 연기 잘하는 사람이 노래도 잘하는데, 그런 사람은 절대 성형수술 안 한다. 김혜자, 강부자씨를 봐라."
-조선일보, 201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