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 10:32-39
제목: 믿음을 가진 자
찬송: 397장
목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게한다.
어떤 일간지에서 설문조사를 하면서 ‘누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빌 게이츠 29.4%, 나 자신 23.7%,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16.6%,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 11.1% 순이었습니다. 돈과 행복은 무관하다고 답한 비율은 7.2%로 조사대상 10개국 중 가장 낮았습니다. 즉 우리나라 국민 73%는 돈이 행복과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물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명예, 지식, 재능, 미모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당장은 힘들고 불편해도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어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약속어음을 발행해주셨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음은 부도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어음은 부도날 염려가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어음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가장 귀한 것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1. 담대합니다.(35)
35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믿음을 가진 자는 담대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주눅 들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32절부터 34절까지를 보면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성도들은 비방과 환난으로 사람들의 구경거리와 조롱거리가 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함께 아픔을 겪기도 하고 재산을 빼앗기는 고통도 기쁘게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늘에 있는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교회의 상황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문제로 세상 사람들의 구경거리와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교회사태로 아픔을 겪는 분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재정의 손실도 많이 보았습니다. 왜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당하지 않았을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기쁘게 당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낫고 영구한 하늘의 큰 상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픔이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갈 수 있었던 용기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던 다윗이 어떻게 담대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돈과 권력, 명예, 지식 등 여러 가지 무기들로 무장한 세상 앞에 우리가 어떻게 나갈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능력이 모자라도, 힘과 지식이 부족해도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해야 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세상 앞에 주눅 들지 않게 만듭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담대한 믿음의 선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사람들은 담대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3:12절에는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는 당당해야 합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두렵고 떨릴 수밖에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와 허물이 있는 우리들이 감히 설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의인이 되었으므로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 앞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마귀가 아무리 방해하고 조롱해도 그리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아기는 평균 2천번을 넘어져야 걸음마를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일어섰다 다시 쿵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납니다. 이런 과정을 무려 2천번을 해야 걸을 수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평생 걸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넘어져도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줄 믿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물에 몸을 맡기고 물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때때로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막힌 담을 뛰어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더 큰 상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상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 황당한 요구를 하십니다. 세찬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라고 하시거나 장애물을 뛰어넘으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던 40년 동안 애굽 왕궁에서 배웠던 학술과 능력을 잃고 힘이 완전히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할 수 없다고 하는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시며 애굽의 바로에게 보내셨습니다. 도망쳐 나왔던 애굽왕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세상을 거스리는 일이었기에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믿음으로 무장한 모세는 당시 대제국 애굽의 바로 앞에 나아가 “내 백성을 보내라”고 담대하게 외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령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떻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공회 앞에 끌려 나갔을 때 공회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자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용기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도망쳤던 사람들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믿음을 회복했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담대히 말씀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해야 합니다. 환난을 당하고 고난과 역경의 현장 속에서도 절대로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마귀나 열악한 환경 앞에 무릎 꿇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얼마전에 신약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동안도 많이 읽었던 내용이고 수없이 들었던 말씀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요 19:9-11절 말씀입니다.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예수님과 빌라도와의 대화 내용입니다. 당시에 사람을 죽이고 살릴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빌라도의 권세 앞에서 예수님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권세를 가진 자와 믿음을 가진 예수님의 모습이 대조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해야 하지만 믿음을 가진 예수님은 담대하셨습니다.
(예화)
미국의 17대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은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열 살에 양복점을 들어가 성실하게 일해서 자수성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야 읽고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에 존슨은 주지사, 상원의원이 된 후에 링컨이 암살된 후...17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을 때 상대편이 맹렬히 비판하였습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자 존슨은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 여러분!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 앞에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열악한 환경 앞에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삶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 앞에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2. 인내합니다.(36-37)
36-37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의 약속어음인 믿음을 가지고도 넘어지고 실패하는 이유는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지만 그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 40년 동안 광야생활하면서 인내하지 못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광야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참지 못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물과 고기를 요구했습니다. 광야생활이 얼마나 힘든 세월입니까? 우리는 어려움을 당한지 7년이 지났는데도 견디지 못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법적인 문제로 인해 불가피하게 보류하고 있는 것들을 마치 교회가 숨기고 있는 듯이 몰아세웁니다. 모세를 향해서 했던 불평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속에 똑같이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후세에 그 기록을 읽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불평했을까 하며 안타까워 할 때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버리고 인내하고 기다리면 이해되고 기뻐할 날이 올줄 믿습니다.
야고보서 1:4절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화)
귀뚜라미는 허구한 날 초저녁부터 울기 시작하여 새벽녘까지 울어댑니다. 어떤 귀뚜라미는 하룻밤에 무려 11시간을 운다고 합니다. 귀뚜라미는 윗날개를 서로 비벼 소리를 내는데 만일 사람이 팔을 뒤로 한 채 서로 엇갈리게 움직이는 운동을 11시간 동안 계속한다고 상상해보면 실로 엄청난 노동입니다. 그렇다면 귀뚜라미 수컷들은 밤마다 왜 그리도 끔찍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일까요? 암컷 귀뚜라미의 마음을 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수컷 귀뚜라미도 암컷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밤새도록 세레나데를 부르는 기다림과 인내가 있습니다. 암컷이 듣고 마음을 열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최상의 울음소리를 10시간 이상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친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고 천사를 통해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분명한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바심이 생깁니다. 기다리고 인내하면 손해 볼 것 같습니다. 기다린 세월을 보상받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해합니다.
하나님은 귀한 것을 쉽게 주시지 않습니다. 인내와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메시야를 기다렸던 수많은 경건한 사람들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가장 귀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회복과 성숙을 위해서는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울어야 하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어대는 인내가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화)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한 동작을 익히기 위해서 만 번을 연습합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열심히 쓴 극본을 읽어보던 그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이거 완전히 쓰레기네요"
그러자 버나드 쇼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쓰레기가 맞소. 하지만 일곱 번째 수정원고가 나올 때는 달라질 거요."
만 번까지의 인내가 오늘의 김연아선수를 만들었고 일곱 번 이상 수정하는 인내가 노벨문학상을 탄생하게 만들었습니다. 인내하지 않고 얻어지는 공짜는 없습니다. 설령 주어진다고 해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저희 교구에 화가인 김명곤집사님이 계시는데 얼마 전에 부인 되시는 이수연집사님과 함께 대화하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그림을 많이 그리다보니 왼쪽 팔이 아프다고 호소한답니다. 오른손으로는 붓을 들고 움직이지만 왼손은 물감을 들고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통증이 생긴답니다. 쉽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있지만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대충 그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혼신의 힘과 정성을 다하여 작품을 그려간다고 했습니다.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도 결국 인내의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억지로 인내하기보다 즐기면서 기쁨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미국 시카고 대학의 인간계발연구소 소장인 블름 박사는 한 시대에 각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 20명을 선정하여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연구했습니다. 운동선수, 음악가, 정치인, 의사, 종교인, 법률가 등을 선정하여 성공한 이유를 연구한 결과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다섯 가지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첫째, 결심입니다.
성공하겠다는 결심이 확실하게 서 있었던 사람들이고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둘째, 추진력입니다.
한번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어떤 난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었습니다.
셋째, 학구열입니다.
공부하고 배우는 일에 불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 탁원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미치다시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넷째, 인내심입니다.
참아내고 견뎌내는 힘이 무섭도록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훈련하고 계발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섯째,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하고 소망 중에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도 인내심이 있어야 하듯이 믿음을 가진 사람도 인내해야 합니다. 천국을 확신하는 사람은 천국에 입성할 때까지 인내합니다. 승리를 믿는 사람은 승리할 때까지 인내합니다.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있던 욥의 고백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정금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단련 후에 만들어집니다.
예수님도 인내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1-2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견디시고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참고 인내하면 선한 열매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생활을 경주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인내 없이 경주를 마칠 수 없습니다. 마라톤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강인한 지구력이듯이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달려야 합니다. 인내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필수적인 성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도중에 포기하면 후회와 시련만 남고, 끝까지 참고 가면 간증이 남는다."
믿음을 가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후회와 시련을 남기시렵니까? 멋있는 간증을 남기시렵니까? 간증을 남기기 원하시면 인내해야 합니다.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3. 전진합니다.(38-39)
38-39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할 때 힘들고 어려우면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애굽을 떠올렸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광야보다는 행복하다고 믿고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뒤로 물러가는 것은 침륜에 빠지는 것이고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뒤로 물러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홍해가 가로 막혔을 때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말고 그리고 뒤로 돌아가지도 말고 홍해를 갈라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막힌 장애물을 뚫고 전진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났을 때 요단강이 가로막았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여리고성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에도 이렇듯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믿음생활을 잘 한다고 장애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장벽이 있어도 뒤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믿음으로 장벽을 딛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 모세가 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랬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백성들 앞에서 보고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장대한 아낙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밤새도록 소리를 높여 곡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쳤습니다.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하며 전진하여 왔지만 더 이상은 갈 수 없다며 뒤로 돌아갈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아낙자손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며 앞으로 전진할 것을 외쳤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거슬립니다. 불신의 눈을 가진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믿음 없이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보조를 맞추지 않습니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장벽을 넘어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뒤로 물러서면 안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고난의 장벽을 넘어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밤새 잠을 설치고 뒤척이다 아침 일찍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이삭과 두 명의 종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3일 길을 가면서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수없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갈등이 심했겠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뒤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물러서지 않고 앞을 향해 전진해 갔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순종할 때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롯의 아내가 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까?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길로 들어왔으면 세상 등지고 앞만 보고 전진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22장은 다윗이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삼하 22:29-30)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가로막힌 성벽을 뛰어넘었다고 했습니다. 적군이 가로막고 성벽이 막아서도 물러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이나 명예, 권력, 지식과 능력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합니다. 인내합니다. 전진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담대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앞으로 전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세상의 그 어떤 상보다 크고 영원한 상을 얻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