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원망을 희망으로 바꾼 펜팔

하마사 2011. 1. 3. 20:10

현직 검사, 자신이 기소한 재소자와 5년간 편지 교류
중·고 검정고시 이어 독학사 따고 복지사 꿈 갖게 해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권모(36)씨는 지금까지 소년원과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만 20년이 넘는다. 14세 때 소년원에 보내졌다가 출소한 뒤 다시 범죄를 저질러 수감되는 일을 반복했다. 삶의 희망은 사라지고 사회에 대한 원망만 남았다. 절도·강도·살인미수·방화죄 같은 전과(前科)만 쌓여갔다.

그런 그가 오는 5월 출소를 앞두고 사회복지사가 될 꿈에 빠져 있다. 2006~2007년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잇따라 합격했고, 작년 12월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독학사 시험에도 붙었다.

그를 변화시킨 건 자신을 기소했던 검사와 교도소에서 5년간 이어온 '펜팔'이었다. 경북 지역에서 자란 권씨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 9세 무렵 생모(生母)와 함께 외할아버지 집으로 갔지만 어머니가 돈을 벌러 집을 떠나면서 외톨이가 됐다. 12세 때 가출한 그는 2년 뒤 서울역 앞 만화방에서 다른 사람의 여행가방을 훔치다 처음으로 소년원에 가게 됐다. 출소와 수감을 반복하던 그는 한때 폭력조직에 몸담았다가 살인미수·방화죄 등으로 교도소에서 10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의 삶이 바뀐 건 김수민(38·연수원 33기) 인천지검 검사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권씨가 2005년 강도상해죄로 구속되면서 두 사람은 검사와 피의자로 처음 만났다. 당시 권씨를 기소한 김 검사는 "사회에서 장기간 격리해 교화해야 한다"며 징역 10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권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권씨는 법정에서 "유영철도 사회에서 도와주지 않아 그렇게 됐는데, 교도소에서 정말 교화가 된다고 생각하느냐"며 김 검사와 사회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김 검사는 권씨를 나무라지 않았다. 김 검사는 검찰청으로 권씨를 불러 "개인적인 얘기를 잘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지만 세상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며 다독였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펜팔'이 시작됐다.

김 검사는 초등학교 이후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권씨에게 새 출발을 하려면 공부부터 하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권씨에게 큰 힘이 된 건 "난 너를 믿는다"는 김 검사의 말이었다. 권씨는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너를 믿는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고, 검사님에게 그 말을 여러 번 들으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교도소에서 대학 과정까지 마친 권씨의 다음 목표는 심리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다.

지난 12월 29일 교도소에서 만난 그는 "어려운 아이들도 나처럼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