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잔소리 싫어" 불질러 가족 죽인 중학생

하마사 2010. 10. 22. 13:12

 

藝高진학 막은 아버지에 불만 휘발유 뿌려 일가족 4명 사망
방화후엔 엄마 찾으며 눈물 "아버지와 소통 부족이 원인"

 

21일 오전 3시 35분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한 아파트 13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150여㎡(46평) 아파트 전체를 태운 불은 소방관 80여명에 의해 24분 만에 꺼졌다. 이 사고로 이모(13)군을 제외한 아버지(46)와 어머니 최모(38)씨, 여동생(9)과 할머니 박모(71)씨 등 가족 4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주민들은 화재 당시 집에 없던 아들 이군이라도 살아남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경찰조사 결과 이군은 사건 발생 4시간여 만에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판·검사 되라는 아버지만 없으면 행복"

서울 성북구 한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군은 공부도 곧잘 했고 집안 사정도 좋았다. 172㎝ 키에 몸무게가 76㎏으로 어른 체격이었다. 평소 사진찍기와 춤추는 것을 좋아해 홍대 입구에서 길거리 공연도 자주 했던 이군은 "적성상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공부를 해서 판·검사가 되라는 아버지와 자주 다퉜다"고 진술했다. 아버지 이씨는 이군과 말다툼 중 욕설을 하고 골프채를 들어 배를 찌르거나 뺨을 때리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군은 "아버지만 없으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해 사고 전날(19일) 범행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이군은 "학교 과학 시간 준비물"이라며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8.5L를 사서 배낭에 담아 집으로 옮겼다. 다음날 새벽 이군은 아버지가 자던 큰방에서부터 부엌, 거실, 현관입구까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이군은 처음에는 거실과 작은 방에서 자던 다른 가족들은 구하겠다고 생각했지만, '펑' 하는 소리를 내며 빠르게 번지는 불길 속에 겁이 나자 현관문을 열고 도망쳤다. 같이 살던 고모는 새벽 시간 동대문시장에 일하러 나가 화를 면했다.

범행 후 침착한 행동

이군은 도망치면서 엘리베이터 CC(폐쇄회로)TV에 찍히지 않기 위해 계단을 이용했다. 휘발유 냄새가 가득했던 잠바는 노숙자에게 벗어줬다. 1시간 30분 동안 주위를 배회하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주민들의 대피모습에 상황이 궁금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군은 자기 집에 불이 났다는 경비원 말을 듣고 "우리 엄마"라고 외치며 주민들 앞에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어디 갔었느냐"고 주민들이 묻자 "홍대 앞에 갔었다"고 태연히 대답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머리가 불에 그슬린 이군을 방화 피의자로 의심했다. 휘발유통을 들고 나오다 계단 뒤쪽에 버리는 장면이 1층 CCTV에 고스란히 찍혔기 때문이다. 경찰은 만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여서 처벌할 수 없는 이군을 서울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군이 아버지에 대해서는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지만 나머지 가족에 대해 말할 때는 울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청소년기 아버지와 소통 부족이 원인"

경찰은 이군이 가족을 살해 후 방화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숨진 가족 4명의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지난 1994년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박모(당시 23세)씨가 도박에 빠진 자신을 나무란다는 이유로 부모를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질렀고, 2006년에는 경기도 분당에서 이모(당시 23세)씨가 대학교수 아버지와 갈등을 겪다 할머니와 아버지를 살해한 뒤 방화한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범죄의 경우 단순히 패륜으로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청소년기 남자아이들과 아버지 간에 정상적인 대화가 부족해 생긴 사고"라고 말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약자 입장에서 극적인 상황의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 충동적으로 불을 지르는 소년범이 많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0/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