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칠레 광부 33인 '기적의 생환'

하마사 2010. 10. 14. 20:55

 

[사설]인간 정신과 희망의 힘 증명한 칠레 광부 구출

 

 

서른한 살 광부 아발로스가 13일 낮 12시 11분(한국시각) 지하 700m 깜깜한 절망에 갇힌 지 69일 만에 다시 세상의 햇빛과 만나는 순간 칠레 전역엔 "비바(만세)! 칠레"가 울려 퍼졌다. CNN, BBC 등의 생중계로 칠레 산골마을 산호세 광산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매몰 광부 구조 드라마를 지켜보던 세계인도 함께 만세를 불렀다. 아발로스 다음으로 세풀베다와 안드레스, 이웃 볼리비아 출신 광부 마마니가 구조용 캡슐 '피닉스'호를 타고 한 시간마다 차례대로 구출됐다. 붕괴 당시 현장감독 우르수아는 "모두가 구조된 다음에 나가겠다"고 다짐한 대로 마지막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첫 구조자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며 "칠레의 정신·힘·신념, 그리고 희망이 광부 33명과 함께 부활했다"고 선언했다.

8월 5일 산호세 광산에서 갱도가 무너져 33명의 광부가 700m 아래 갇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사상 최악의 탄광사고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8월 22일 생존자를 확인하기 위해 뚫고 내려간 구조대 드릴에 광부들이 '우리는 피신처에 모두 살아있다'고 쓴 메모가 올라오면서 절망은 희망을 캐내는 드라마로 바뀌었다. 탈진해 있을 줄 알았던 광부들이 8월 26일 지름 15㎝ 구멍으로 내려간 동영상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국가(國歌)를 합창하자 칠레 정부와 국민은 광부 구출에 온몸을 던졌다.

광부들이 습도 90%, 섭씨 35도 넘는 지하에서 48시간마다 참치 두 스푼과 우유 반 컵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사이 연대(連帶) 의식과 서로에 대한 격려 덕분이었다. 광부들은 연장자 고메스를 리더로 뽑고 그의 지휘에 따라 간호사 출신 광부는 동료들 건강을 돌보고, 팝송 잘 부르는 광부는 레크리에이션으로 활력을 돋우고, 날마다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광부들은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이 자는 사이 다른 팀은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하며 69일을 버텼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도움으로 구조 캡슐이 완성돼 구출작전이 임박하자 광부들은 서로 나중에 캡슐을 타겠다고 양보했다. 한 사람 구출하는 데 한 시간쯤 걸리니 마지막 사람은 길게는 하루 반을 더 어둠 속에 머물러야 하는데도 서로 뒤차례를 자청(自請)했다. 광부들은 공동체와 동료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나눠지는 인간의 선한 의지를 입증해 보였다. 그 중심에 광부들이 선출한 고메스와 현장감독 우르수아가 있었다.

칠레 정부의 신속하고 침착한 대응, 구조현장의 혼란을 줄이고자 대표 기자를 뽑아 취재를 맡긴 칠레 언론의 책임있는 태도도 빛났다. 워싱턴포스트는 "광부 구조드라마를 통해 칠레는 자신의 정신(Soul)을 보여 줌으로써 안으론 국민적 단합, 바깥으론 강력한 힘을 과시하게 됐다"고 했다. 절망 속에서 광부들이 보여준 의지와 지혜, 리더십, 칠레 정부의 슬기로운 대처가 나라의 재앙을 나라의 격(格)을 높이는 계기로 바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201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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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 33인 '기적의 생환']

이틀에 과자 반쪽·우유 반컵… 매몰 초기 17일 버텨

지하에서 어떻게 지냈나
경험 많은 조장의 리더십 건강체크·기록·오락… 광부들에게 역할 분담
임시화장실 만들고 지하수 폭포에서 샤워도

지난 8월 5일 저녁 8시쯤 터널 붕괴로 지하 700m(후에 구조 대기장소인 지하 622m 지점으로 이동)의 갱도에 갇혔던 광부들은 사고 17일 후 지상과 연락이 닿기 전까진 살아 돌아가리란 보장이 없었다. 이 기간 광부들을 지탱해준 것은 현장 감독(작업 조장) 루이스 우르수아(54)의 지휘하에 결속된 강한 조직력이었다.

생존자들은 철저히 우르수아의 통제에 따랐다. 터널 붕괴 후 매몰된 것을 직감한 우르수아는 광부들을 모아 상황을 설명하고, 생존을 위해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식량 배급량을 책정해 48시간마다 과자 반 조각, 참치통조림 두 숟가락, 우유 반 컵을 배급했다. 간호사 출신 광부에게 건강 체크,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잘 내는 광부에게 오락을 맡기는 등 역할을 분담했다. 기록 담당 광부에겐 하루하루 광부들의 상태와 일상에 대해 기록하도록 했다. 그리고 항상 희망과 유머를 잃지 말자고 독려했다.
하이메 마날리치 칠레 보건장관은 지난달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규율과 위계질서가 군대만큼 엄격하다"며 "오랜 경험과 리더십을 가진 우르수아가 광부들을 잘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33인은 갱도 대피소에 있던 광산용 트럭 9대 안에서 잠을 잤다. 2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혹시 모를 추가 붕괴에 대비했다. 붕괴 현장 근처에 임시 화장실을 만들어 배변을 해결했고 갱도 내 작은 지하수 폭포에서 샤워도 했다. 첫 17일 동안 이들의 체중은 약 8~9㎏ 줄었다.

8월 22일 기적적으로 지상과 연락이 닿았다. 구조대는 지름 13㎝의 구멍을 뚫어 간이변기와 책, 항우울제, 가족의 편지를 제일 먼저 내려보냈으며 이어 식량과 물을 공급했다. 다음으로 조명과 통신기기, 정신건강을 위한 카드게임·주사위·소형 비디오재생기 등을 내려보냈다. '비둘기'라는 별명이 붙은 지름 12㎝ 크기의 금속캡슐이 사용됐다. 식사량도 1일 남자 성인 기준 2200칼로리에 맞춰 제공됐다. 살이 찌지 않고 '날씬한 몸매'가 유지되도록 했다.

우르수아는 구조대의 조언에 따라 광부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도록 일정표를 꾸렸다.

아침 7시에 기상해 아침식사와 샤워를 했다. 3개 조를 나눠 오전에는 갱도의 공기와 붕괴 상태를 체크하고 외부와 연락을 취하는 등 각각 임무를 수행했다. 정오에 점심 식사 후 전체회의를 열고 기도도 빠뜨리지 않았다. 오후에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음악을 들었고 지상에서 보내준 카드, 도미노 게임을 했다. 교황이 직접 보내준 성경책을 읽기도 했다. 저녁에는 조명을 줄여 낮과 밤의 개념을 잊지 않도록 했다. 의료담당의 지시에 따라 간단한 신체검사와 약 복용을 마치고 밤 10시 정각에 취침했다.

 

-조선일보, 201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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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일 드라마' 칠레가 세계를 감동시켰다

산호세 광산(칠레)=전병근 기자

지진 이어 광부 매몰에 침착한 대처…
국민통합 이끌어내며 위기를 기회로

광산이 무너졌던 자리. 2010년 지상 최고의 인간 드라마는 각본이 없었다. 아니 지난 69일 동안 철저하게 준비된 과학적·의학적·사회적 구출각본이 있었다. 12일 자정(한국시각 13일 정오) 무렵.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땅, 칠레 북부 아타카마사막 산호세 광산. 이곳은 우주선을 쏘아 올린 발사기지 같았다. 사방이 온통 칠흑인데 광산 주변에 자리 잡은 '희망 캠프'만 홀로 빛났다. 땅밑 622m 광부 33인은 이미 영웅이었다. 구조용 캡슐 설치대는 세계 33개국 취재진의 대형 라이트가 겹치며 대낮이었다. 한순간 모두 숨을 죽였다.

13일 0시 11분. 길이 4.5m 지름 55㎝, 칠레 국기를 상징하는 백-적-청색 몸뚱이의 철제 캡슐이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불사조란 뜻의 '피닉스 2'호. 문이 열리자 녹색 작업복에 붉은색 특수헬멧을 쓴 사내가 걸어나왔다. 밤이지만 검정 선글라스를 썼다. "비바 칠레" "비바 칠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사방에서 환호와 함성이 터졌다. 밤하늘이 떠나갈 듯했다. 칠레 전역에서는 신에게 감사하는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첫 생환을 신고한 주인공은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 매몰 당시 부조장이었다. 지하에서 구조 캡슐에 몸을 실은 지 16분 만이었다. 식구들이 달려가 안겼다. 구조대원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도 차례로 얼싸안았다. 지켜보던 다른 가족들 눈가에 물기가 비쳤다. 누군가 폭죽과 오색종이를 날렸다. 칠레 국기 문양의 은박 풍선 수십 개가 하늘로 솟았다.

땅밑 622m에서 생환… 그리고 영웅이 되었다… 영원히 갇힐 뻔했던 지하 622m 갱도에서 탈출하는 기적이 69일 만에 일어났다. 13일 새벽 0시 11분(한국시각 낮 12시 11분) 33인의 광부 가운데 첫 번째로 구조 캡슐에서 내린 플로렌시오 아발로스(사진 가운데 왼쪽)가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대통령의 뒤에서 아발로스의 아들 바이론과 부인 모니카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작업이 순조로워 한국시각으로 14일 오전 1시까지 16명이 구조됐다. /AFP

피녜라 대통령이 구조 개시를 공식 선포한 지 1시간이 채 안 돼 거둔 첫 개가였다. 지난 8월 5일 구리·금광 매몰로 시작된 절망의 사투가 생존자 구조라는 기적 같은 드라마로 승화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국가를 선창했다. 이들의 합창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따라 부르지 못하는 외국인은 박수를 쳤다.

800명 가까운 가족 친지들, 각국에서 모여든 250개사 취재진 2500여명은 지상 최대의 드라마 앞에서 갑자기 숙연해졌다. 이 순간만은 모두가 칠레 국민이 된 것 같았다. 아직 지하에 남아있는 광부 알렉스 베가(32)의 사촌형인 아르놀도 플라사 베가(46)는 "이날이 올 거라고는 믿었지만 정말 현실이 될까 했었다"며 입술을 떨었다.

다음번 불사조를 타고 올라온 이는 마리오 세풀베다(39). 매몰 당시 전기 기술자였다. 지하 광부들이 지상으로 올린 동영상에 자주 등장했던 사내였다. 그는 땅 위로 올라와서도 특유의 쇼맨십을 발휘했다. 응원 단장처럼 구호를 선창했다. "치치칠, 렐렐레, 미네로스, 데-칠레(칠레, 칠레의 광부들이란 뜻)." 3-3-7 박수에 맞춘 구호였다. 칠레인들의 축구시합 응원구호를 변형한 것이다. 이날 희망캠프에서는 이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세풀베다는 기자회견장에서 가족과 함께 앉았다. "신과 악마가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이 승리했습니다." 세 번째 구조자 후안 일라네스(52)는 웃으며 "크루즈를 타는 것 같았다"고 구조 캡슐 탑승 소감을 밝혔다.

네 번째는 33인 중 유일한 볼리비아인 광부 카를로스 마마니(23). 이웃나라로 돈을 벌러 왔다가 출근 첫날 봉변을 당한 청년이다. 볼리비아 국기를 손에 꼭 쥔 아내 베로니카 키스페와 아기를 함께 부둥켜안았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마마니가 구조된 후 약 5시간30분 만인 산호세 광산에 도착, 임시 진료소에 있는 마마니와 만났다.

최연장자로 건강이 좋지 않아 구조대원들의 맘을 졸이게 했던 마리오 고메스(63)는 오전 8시쯤 9번째로 구조돼 부인·자녀·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침 햇살을 맞았다.

구조 작업은 순조로웠다. 희망캠프는 곧바로 축제의 장이 됐다. 바비큐 파티에 노래가 이어졌다. 대개 온도는 3도, 체감 온도는 영하를 오가는 날씨. 사람들은 몸이 시리지 않았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 현장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이었다. 그새 초반 구출자들을 실은 헬기가 코피아포를 향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모두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광부들은 여기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코피아포시 병원으로 가서 이틀간 검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외딴 광산에서 펼쳐진 드라마는 경이(驚異)다. 낮에 보면 이곳은 달 어느 곳에 불시착한 것 같다. 차를 타고 가면 라디오도 끊긴다. 무선통신도 두절이다. 세상이 외면한 곳 같다. 구리와 금 같은 일확천금에 눈먼 사람만 올 것 같다. 그런 광산에 어느 날 암반이 무너졌고 땅밑에 33명이 갇혔다.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기필코 살아 돌아간다'는 그들의 희망은 땅 위 가족·친지·동료들의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란 또 다른 희망과 조응했다. 그 후 희망캠프에서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이 시작됐고, 69일 만에 희망은 꿈같은 현실이 됐다.

이날 구조 작업은 캡슐을 내려 보낼 플랫폼의 준비 상황과 땅 밑의 광부들 모습, 가족들의 표정이 나란히 3원 생중계됐다. 피녜라 대통령은 연설에서 "매몰된 광부들의 서사는 우리 국가의 영혼을 밝혀주었고 칠레 국민정신을 한층 강하게 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201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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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근 기자

33인의 캡틴… "가족을 위해 우린 이겨냈다"
칠레 대통령… "당신이 이 나라를 바꾸었다"
"이제 어떤 나라도 칠레를 얕보지 못해"

"전 세계가 기다리고 있던 것을 우리는 해냈습니다."

69일간 사투(死鬪)에서 살아 돌아온 마지막 주인공은 지상에서 첫 말문을 이렇게 열었다. 13일 밤 9시 56분(현지시각) 칠레 산호세 광산. 긴 사이렌과 함께 불사조 '페닉스2'호가 품고 올라온 광부를 땅 위에 내려놓았다. 녹색 작업복에 붉은색 특수철모를 쓴 건장한 체격. 매몰 당시 작업조장 루이스 우르수아(54)였다.

"우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싸우고자 했습니다. 바로 우리 가족을 위해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래 땅 밑에서 인내하며 벼르고 별러 마음속에 담아온 문장들이었다. 목소리는 바위처럼 침착했다. 안구 보호를 위해 검은 선글라스로 가린 그의 눈빛이 궁금했다.

"위대한 캡틴." 마중나와 있던 지상의 대통령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은 달라졌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라도 달라졌습니다. 당신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지하의 캡틴은 화답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칠레는 또 한 번 도약할 것입니다."

'치치칠 렐레레' 구호에 이어 두 지도자가 선창했다. 구조대원들도 흰 철모를 벗어 가슴에 얹고 한목소리를 냈다. 또 한 번 울려 퍼진 칠레 국가였다. "칠레는 고난당하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리니…." 귀에 익은 후렴구였다. 국가는 곧바로 전국에 메아리가 되었다.

33번째 마지막으로 올라온 '캡틴'… 칠레 산호세 광산에 매몰됐던 33명의 광부 중 마지막으로 구조 캡슐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 루이스 우르수아(가운데)가 오른손을 하늘로 내뻗으며 환호하고 있다. 13일 오후 9시 56분(현지시각) 그가 지상에 발을 디딘 순간 매몰 광부 33명의 생존 드라마는 기적 같은‘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오른쪽은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AP 뉴시스

사막 오지 광산에서 수도 산티아고까지, 화면에 비친 코피아포 시민의 눈가에도, 이를 보고 있던 광부 가족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치치칠 렐레레' 구호에 이미 거칠어진 목은 북받치는 감동으로 다시 한 번 메었다. 산티아고 도심 플라사 이탈리아 현장에도 시민들이 어깨동무한 장면이 대형 스크린에 비쳤다. 도로의 차량 경적과 광장의 부부젤라 소리가 합창이 되었다.

첫 구조 광부 플로렌시오 아발로스의 가족 텐트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샴페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 올라왔을 때도 아껴두었던 샴페인을 그제서야 터뜨렸다. "이제야 비로소 구조는 성공한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칠레 국기 색인 적·백·청색을 입힌 은박 풍선 33개가 하늘로 날았다.

그 아래 언덕으로 가족과 친지들이 달려갔다. 광부들이 지상에 없는 동안 국기 33개가 그들을 대신해 서 있던 곳이었다. 오마르 레이가다 할아버지가 구조된 어제가 자신의 생일이었다는 카르렛(11)도 노란 풍선을 들고 뛰어갔다. 언덕으로 몰려간 이들은 기적에 감사했다. 다시 한 번 국가가 찬 밤공기를 갈랐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재해도 이 나라를 무릎 꿇게 하지 못하고, 어떤 나라도 감히 얕보지 못할 것 같았다. 감동에 빠진 수천명의 외국 기자들도 전율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있다는 독일 바덴 뷔르스텐베르그 영화아카데미의 안나 바르톨디가 속삭였다. "아무것도 없었던 사막 위에서 어떻게 이런 거대한 일이 벌어졌는지 꼭 영상에 담고 말겠어."

이미 취재진도 희망 캠프 주민이 돼 있었다. 사람들은 직사광선과 사막 모래 바람에 광부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광산에나 어울림 직한 작업복에 밤이면 이마에는 랜턴을 단 기자들이 기사를 캐러 다녔다. 이제 광부 가족들과 서로 키스하고 포옹하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얼마 후 지하 모습이 비쳤다. '임무 완수, 칠레.' 지하에 남은 6명의 구조대원들이 굵은 글씨가 적힌 흰 천을 들어 보였다. 지하에서 올린 마지막 동영상이었다. 33인을 무사히 지상으로 귀환시킨 구조대원 6명의 경과 보고였다. 그로부터 2시간 반 뒤 구조대원으로 가장 먼저 내려갔던 마누엘 곤살레스가 동영상으로 마지막 경례를 한 후 손을 흔들고는 지상으로 복귀했다.

모든 구조 작전은 공식적으로 0시 35분(한국시각 낮 12시 35분)을 기해 종료했다. 전날 오후 11시 15분 시작해 마지막 구조대원이 지상에 복귀한 시점이었다. 33인의 구조만을 생각하면 22시간이 조금 더 걸린 셈이었다. 당초 계획보다 절반 정도 단축했다.

피녜라 대통령이 다시 광산 입구에 섰다. "광부들은 8월 5일 매몰된 사람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더 강해져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교훈을 줬습니다. 하지만 칠레 역시 예전의 칠레가 아닙니다." TV가 생중계로 받았다. "오늘 칠레는 예전보다 더욱 단결되고 강해졌고 세계에서 더욱 존경받고 가치롭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비극이 될 뻔한 시작이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으로 끝났습니다. 구조작전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나아가 세계에도."

축제의 여운은 밤새 이어졌다. 기자는 비운의 참사 현장으로 취재 왔다가 대화합과 축제의 장을 떠났다.

 

-조선일보, 201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