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곤파스가 태풍의 위력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지나갔다.
수도권을 강타한 곤파스는 우리집에도 흔적을 남겼다.
아내와 새벽기도를 갔다오니 잠자던 아이들은 일어나 거실에 모여있고 바람결이 썰렁했으며
주방에는 유리조각이 널려 난장판이었다.
베란다 창문이 열려 있다가 강한 바람에 의해 문턱과 부딪혀 박살이 난 것이었다.
자던 아이들이 놀라 깨어나 거실에 모여있었던 것이다.
태풍이 우리집 유리창을 깨트렸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변의 나무가지들을 부러뜨려 관리하는 아저씨들의 일감을 많이도 만들었다.
바람소리도 얼마나 요란하던지 영화에나 나오는 귀곡산장에의 이상한 소리를 연상케 했다.
나야 워낙 잠을 잘 자기 때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 수 있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잠들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뉴스를 보니 가로수가 넘어지는 등 교통대란이 일어나 출근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매스컴을 통해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등교시간을 10시로 늦출 정도였으니 태풍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학교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덕분에 태풍이 반가왔을지도 모른다.
바람은 불어야 하고 많은 유익을 주지만 태풍이 되어 한꺼번에 빠른 속도로 불면 피해를 주게 된다.
아무리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이다.
좋은 음식도 과식하면 결국 배탈나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 또 9호 태풍 '말로'가 북상하고 있다니 이번에는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말로'가 지나갈 때까지 깨진 유리창문을 그대로 두어야할까보다.
사나운 놈이면 또한번 그 위력을 보여주려고 애쓸테니 말이다.
태풍이 우리집에 흔적을 남기고 갔듯이 사람들도 흔적을 남기며 살게 된다.
나도 지금까지 여러 모양의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주변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그 흔적이 어떤 모양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좋은 흔적을 남길 때도 있었던반면 나쁜 흔적을 남길 때도 있었을 것이다.
흔적의 평가는 그 주인공이 세상을 떠났을 때 드러나는 사람들의 반응일 것이다.
바울사도는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했는데 참으로 부러운 흔적이다.
예수님의 흔적을 살아가는 길목 길목에 남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태풍이 남기고 간 사나운 흔적이 아니라 바울사도와 같은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도록 순간순간을 소중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