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代 사업가, 연세대에… "박영필 교수에게 받은 사랑 보답"
지난달 1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외협력처 사무실에 정장 차림의 50대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모교인 연세대에 3억원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깜짝 놀란 직원들이 "누구시냐"고 묻자 그는 "이름은 묻지 말고 그 돈으로 '박영필 장학기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2주 뒤 그는 약속대로 3억원을 연세대 계좌로 송금했다. 그는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나왔고 성은 차씨"라는 말만 할 뿐, 신원을 밝히기를 꺼렸다.
차씨는 "교수님 성함이 돋보여야 하는데 제 이름이 밝혀지면 저를 알리자고 한 일이 된다"고 했다. 박영필(62·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그의 스승이다.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차씨는 "3억원은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은사(恩師)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차씨는 대학교 2학년 때인 197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연세대 기계공학과 조교수로 부임한 박 교수와 처음 만났다. 박 교수는 수시로 학생들의 호주머니를 검사했다. 차씨는 "교수님은 제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비싼 담배가 나오거나 사치품이 나오면 호되게 꾸짖으셨다"며 "겉멋 들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는 "교수님은 일방적으로 가르치시는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셨다"며 "당시 전공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교수님 질문에 답변을 잘하기 위해 책을 뒤적이며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계공학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했다.
차씨가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박 교수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70년대 한국은 가난에 찌든 나라였다"며 "교수님은 '공학도는 자신의 기술을 이용해 돈을 벌고 이 나라에 보탬도 돼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했다.
은사의 한마디를 가슴에 담은 제자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건물 청소와 구두닦이 등으로 생활비를 마련해 공부한 끝에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차씨는 대학, 연구소에 들어가는 대신 1995년 지금의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종업원 200여명을 둔 중견 의료기기 업체로 성장했다.
차씨는 "교수님이 없었다면 유학을 가거나 사업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교수님의 몇 마디 말씀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제자가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은 박 교수는 "민망하고 쑥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을 지나다 보면 그 제자의 회사 공장이 보인다"며 "그때마다 일행에게 몇 번이나 '내 제자 회사다'라며 자랑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형편이 어렵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장학기금을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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