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잘 못 믿겠지만 법 공부는 너무나 재미있어요. 학생들에게도 항상 이 말을 해주는데 처음에는 '뭔 소리 하는 거야'라는 반응을 보이다가 학기가 끝나면 '다음 학기 수업 들을 때까지 못 기다리겠다'고 하죠."
지난해 11월 하버드 법대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 첫 종신교수직을 받은 석지영(미국명 지니 석·38) 교수가 13일 워싱턴 DC 윌러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미주(美洲)한인의날 기념식에서 한미경제연구소(KEI)로부터 '자랑스러운 한인상'을 받았다. 미주 한인의날은 지난 1903년 첫 한국 이민자들이 미국땅을 밟은 날을 기념해 지정된 것이다.
- ▲ 연합뉴스
석 교수는 6살 때인 1979년 부모를 따라 뉴욕 퀸스로 왔다. 부친은 뉴욕에서 개업한 소화기 내과전문의 석창호씨이고 모친은 글로벌 어린이재단 뉴욕지부 최성남 회장이다. 석 교수는 어릴 적 완전히 새롭고 낯선 환경에 던져지고 적응했던 경험이 삶을 발전시켜온 큰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원래 쉬지 않고 혼자서 재잘거리는 아이였지만,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전혀 영어를 못해 한마디 말도 할 수 없게 됐어요. 완전히 새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방황하고 소외감을 느꼈던 경험은 나의 기억 속에 고통으로 남아 있죠."
하지만 그는 "매일 겪고 또 극복해가는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삶을 헤쳐나가고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했고, 단지 어울리는 것만이 아니라 상황을 더 낫게 만들어가는 힘도 주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0대 초반에는 발레 학교에 다니며 발레리나를 꿈꿨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포기하고 발레에만 집중하라고 하자 어머니가 발레를 그만두라고 했다고 한다. 대신 어머니는 매일같이 석 교수와 여동생을 동네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석 교수는 "엄마로부터 책을 찾는 방법을 배우고 스스로 보고 싶은 책을 찾아다니며 혼자서 은밀한 발견을 하는 즐거움을 누렸고, 자유를 추구하는 힘을 키웠던 것 같다"며 법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성장과정을 어머니의 영향으로 돌렸다.
그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딴 후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다. 2006년 하버드 법대 교수에 임용됐고, 다시 4년 만에 종신교수직을 받았다. 그는 "형법과 가정법 등에서 최고의 학자, 최고의 선생이 되고 싶다"며 "미래에 영향력을 끼칠 학생들을 책임감 있게 가르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했다.
이날 석 교수와 함께 서남표(74)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과 박윤식(71)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자랑스러운 한인'상을 받았다.
-조선일보, 20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