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대학엔 왜 전사한 선배들 기념물 없나
- ▲ 신동소 서울대 명예교수
1932년 미국 하버드대는 캠퍼스 안에 '메모리얼 교회(Memorial Church)'라는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이 교회는 세계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동문들을 추모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탄생했다. 하버드대는 교회 한쪽에 '희생(The Sacrifice)'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조각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사한 동문 373명의 이름을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 넣었다. 그 후로 이곳에는 세계 2차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동문들의 이름이 하나씩 더해졌다. 후배들은 이곳에서 낯선 나라에서 목숨을 바친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올해 6·25전쟁 60주년을 맞았지만, 각 대학·고교에는 메모리얼 교회와 같이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물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전국의 학생들은 조국의 부름에 응해 북한군과 싸우며 나라를 지켰다. 학도병으로 자원해 교복을 입은 채 전장(戰場)에 나선 학생들도 많았다. 그리고 숱한 학생들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지금 후학(後學)들이 6·25전쟁의 아픔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와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한 선배들의 공적을 기려야 할 책무를 게을리하는 느낌이다. 6·25는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불과 60년 전 역사이며, 생생한 현실이다.
전국의 각 대학·고교에는 민주화를 위해 애쓰다 숨져간 이들을 추모(追慕)하는 기념물이 적지 않다. 서울대의 경우 '4월 학생혁명기념탑'이 있고,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군을 비롯, 열사라는 칭호가 붙은 10여명의 동상 또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물론 민주화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바친 학생들의 희생은 고귀하다. 하지만 6·25전쟁 때 북한의 침략을 막아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 데 애쓴 선배들의 희생이 결코 덜 값지다고 할 수 없다.
올해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각 학교에 전몰 동문을 기리는 기념물을 건립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국립대인 서울대가 모범(模範)을 보여 먼저 기념물을 세우고 전국의 학교로 퍼져나갔으면 한다. 하버드대 외에도 해외 각 대학들은 전쟁에서 숨진 동문들을 한 명 한 명 기억하려 애쓴다.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프린스턴대 낫소홀에도 전쟁에서 숨진 동문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6·25전쟁에서 숨진 하버드대생도 모교에 이름을 남겼는데, 당사자 격인 우리나라 각 학교에서 동문을 추모하는 비석 하나 없다는 건 선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난 3월 22일자 조선일보 '나와 6·25' 기획에 강원도 춘천농공고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6·25 당시 학도병 182명의 이름을 새긴 기념탑을 세웠다는 기사를 읽었다. 매우 뜻깊은 일을 했다고 본다. 이를 본받아 각 대학·고교가 하루빨리 6·25전쟁 위령탑 같은 기념물을 세워 재학생 및 어린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현장으로 삼아야 한다.
기념물을 세우는 일은 단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다. 나라가 위기(危機)에 빠졌을 때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하고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영웅(英雄)을 제대로 추모하지 않으면 앞으로 닥쳐올 위기에서 또 다른 영웅이 나오기 어렵다. 후학들이 캠퍼스에 세워진 위령탑에 헌화하면서 선배들의 값진 희생을 추모하는 광경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조선일보, 2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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