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막 1:21-28
제목: 예수님의 가르침
목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살게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을 크게 셋으로 구분하면 복음전파, 교육, 봉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택하여 각 성과 촌으로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시며 올바른 삶의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 삶의 고통을 공감해주시면서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들 중에는 육신적인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었고 정신적으로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귀신이 들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하신 후에 갈릴리에 오셔서 처음으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후에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불러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본문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가르침이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침은
1. 권세있는 가르침입니다.(21-22)
21-22절, “[21]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세상에는 여러 가르침이 있습니다. 공자나 석가의 가르침도 있고 여러 성현들의 가르침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가르침도 있습니다. 자기가 존경하는 어떤 사람들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여러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을 가지고 가르치는 여러 학자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의 가르침보다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랐다고 기록합니다. 목수 출신이었던 예수님이 어떻게 그러한 지혜를 나타내 보일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 그들의 깊은 의문점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 마가는 '교훈'이란 말에 덧붙여 특별한 이유, 곧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는 설명구를 달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방법과 내용이 서기관들과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1)예수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신 것에 반해 서기관들의 설교는 대부분이 와전된 것이었고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사변적인 것들이었습니다. (2)예수님께서는 중대한 의미가 담긴 문제들, 곧 생명과 사망 그리고 영원에 관한 문제들을 제시하셨지만 서기관들은 하찮은 문제들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였습니다. (3)예수님께서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례들을 사용하심으로써 청중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셨지만 서기관들의 설교는 고루하고 형식적인데만 얽매여 있었으므로 메마른 심령들의 갈급함을 채워줄 수 없었습니다. (4)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자요, 그들의 영원한 축복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자로서 말씀하셨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사람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서기관들은 가장 중요한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5)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본 구절에 진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권세'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가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요, 실행능력을 겸비한 탁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대부분 그들의 스승들의 교훈을 인용하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에 지도층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가르침보다 권세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2. 악령을 물리치는 가르침입니다.(23-26)
23-26절,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예수님이 거룩한 분임을 안다며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면서 우리를 멸하러 왔느냐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를 볼 때 귀신도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안다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아는 것과 구원받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지식적으로 안다고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을 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또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말씀합니다. 귀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거룩하신 분으로 알았지만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악령들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악령에게 꾸짖고 명령했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령하자 더러운 귀신이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은 이처럼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마귀와 악령을 쫓아내는 권세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의 능력을 덧입어 사는 우리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3. 새로운 가르침입니다.(27-28)
27-28절,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예수님의 교훈은 새로운 가르침이었습니다. 귀신까지 복종하는 권세있는 교훈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교훈이었고 감동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귀신에게 압도되어 주술이나 마술, 제사 등을 통하여 위로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떠나게 하였습니다. 또한 더 강한 귀신을 불러 약한 귀신을 내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귀신을 쫓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은 사건은 귀신들을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권세있는 분이라는 것과 더불어 예수님을 통해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교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새로운 가르침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를 밤에 만나 말씀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정오에 물을 길러온 외로운 사마리아여인을 변화시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소개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금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던 세리장 삭개오를 변화시켜 새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를 변화시켜 예수님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던 여인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을 교육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전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며 주님의 교훈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세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악령을 물리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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