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행복한 대한민국 "고마워요 김연아"

하마사 2010. 2. 27. 10:26

세계新으로 金메달, 피겨의 역사를 바꿔… 세계 언론 "여왕 폐하 만세" 찬사

 

전 세계를 숨죽이게 했던 4분9초. 그 '마법(魔法)의 시간'을 마친 김연아(20)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퀸 유나(Queen Yuna)'의 연기에 홀렸던 세계를 숙연하게 만든 이 눈물은 정작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감동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묘한 힘을 지녔다.

'스피드 코리아'의 기적을 벅찬 심정으로 지켜본 지 며칠 만에 김연아는 '동계올림픽의 꽃'인 피겨 여자 싱글 우승으로 '미러클(miracle) 코리아'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고 있다.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신세대(新世代)의 겁 없는 도전이 또 한 번 '한국은 안 된다'고 했던 벽을 넘어선 것이다.

‘밴쿠버의 여왕’김연아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은 또 하나의 명품 브랜드다. 동계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로 한국의 국가 및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가 수조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메달 시상식 후 김연아가 환한 얼굴로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의 링크를 돌고 있다. / 밴쿠버=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김연아는 눈물의 이유에 대해 "경기 끝나고 처음 울어봤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너무 기뻤고, 모든 게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의 1만5000여 관중은 기립박수와 환호성으로 '새 전설'의 탄생을 축하했다.

피겨의 역사를 바꿔 놓은 믿어지지 않는 밴쿠버의 밤이었다. 김연아는 26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역대 세계 최고 점수인 150.06점을 받았다.

역시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던 쇼트 프로그램의 78.50점을 더해 합계 228.56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10월 자신이 세웠던 여자 싱글 역대 최고 점수(210.03점)를 18.53점이나 뛰어넘는 기록이다. 2위 아사다 마오(일본)는 무려 23.06점이나 모자랐다. 미국 NBC방송 해설자는 중계 도중 "눈부시게 아름다운 연기…. 여왕 폐하 만세"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김연아가 출전한 프리 스케이팅의 최고 시청률은 41.9%에 달했다.

 

-2010/2/27, 조선일보 일면 머리기사

 

 

김연아, 압도적인 기량으로 피겨의 옛 전설들 뛰어넘어

 

228.56점. 김연아는 밴쿠버에서 '새 전설(傳說)'이 됐다. 압도적인 기량에 외신들도 "단 하나의 흠결도 찾을 수 없는 연기"(더 타임스), "김연아의 점수는 자신 외에는 누구도 근접할 수 없을 것"(밴쿠버 선)이라며 극찬했다. 김연아는 200점(2009 세계선수권·207.71)과 210점(2009 그랑프리 1차·210.03)대를 역대 최초로 돌파한 데 이어 이번엔 무려 230점에 육박하는 점수로 세계 피겨사를 다시 썼다.

김연아의 눈부신 경기력에 '옛 전설'들의 명성도 빛이 바랬다. 전문가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펼친 김연아의 연기가 '피겨 여제' 카타리나 비트와 비견된다고 평가했다. 구 동독 출신의 비트는 1984년과 1988년 올림픽 2연패(連覇)를 달성한 수퍼스타다. 하지만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점프에 있다. 점프의 높이와 비거리에서 80년대의 비트는 힘과 스피드를 갖춘 김연아에 밀린다는 평가다.

김연아는 이번 금메달로 자신의 우상인 미셸 콴(미국)도 자연스럽게 넘어섰다. 세계선수권에서 5회 정상에 선 콴은 특유의 스핀을 앞세워 예술성에서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두 차례의 올림픽(1998·2002)에서 은 1·동 1에 그쳤다. 큰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담대함에서 김연아는 콴을 능가했다. 콴과 함께 세계 피겨계를 양분했던 이리나 슬러츠카야(러시아) 역시 올림픽에선 '노 골드'에 그쳤다.

싱겁게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가 남자 싱글 종목에 출전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남자부가 여자부에 비해 프로그램 구성 점수에 대한 가중치가 높은 것을 감안하고, 김연아에게 남자와 같은 가중치를 적용한다면 쇼트 프로그램은 85점, 프리 스케이팅은 165점, 합계 250점이 가능하다. 라이사첵(미국)의 우승점수가 257.67점이었고, 다카하시 다이스케(일본)가 247.23점으로 3위를 했다. 김연아는 남자부에서 경쟁했어도 메달권이라는 얘기다.

 

-2020/2/27, 조선일보

 

 

세계를 홀린 4분9초
기본 10점 '명품점프' 후 날개 돋친듯 연속 점프… 가산점만 17.4점 쏟아져

피땀이 만든 주름… 김연아의 실제 사이즈 발 모형 이 작은 발에서 세계를 홀린 마법의 연기가 나왔다. 딱딱한 피겨 부츠를 오래 신은 탓인지 김연아의 오른발 새끼발가락은 약간 발바닥 쪽으로 말려들어가 있었다. 사진은 김연아 풋 프린트 모양을 본뜬 금형을 실물 크기 그대로 촬영한 것이다. 김연아는 지난 2007년 현대카드 수퍼매치 피겨스케이팅 갈라쇼를 앞두고 이 풋 프린트를 찍었다. 이 금형으로 측정한 김연아의 발 길이는 220㎜였다./현대카드 제공

26일 오후 1시 21분(한국시각). 파란 드레스를 곱게 입은 김연아가 은반 위에 들어섰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프리 스케이팅의 21번째 선수였다. 경기장을 가볍게 한 바퀴 돌며 숨을 고른 김연아는 링크 중앙에 서서 양팔을 벌리고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연기를 펼칠 준비가 됐다는 신호였다. 곧 배경음악인 '피아노 협주곡 F장조(조지 거쉰 작곡)'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김연아가 매혹적인 은반의 요정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요정의 마법 같은 연기가 4분9초 동안 펼쳐졌다.

화려했던 명품 '비행'

김연아의 첫 번째 연기는 3회전 연속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기본점수 10점)'이었다. 이날 프리 스케이팅에서 기본점수 10점 이상의 점프를 시도한 선수가 김연아 외엔 아무도 없을 정도로 고난도 과제였다. 하지만 김연아에겐 시작부터 경쟁자들의 기를 죽일 수 있는 '명품 점프'였고, 김연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두 번의 점프를 완성했다. 미국의 피겨 전설인 미셸 콴이 "역대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가 구사했던 '3회전+3회전 점프' 중 가장 수준이 높았다"고 찬사를 보낼 만했다.

김연아에겐 날개가 돋은 듯했다. 약 20초 뒤 이어진 3회전 단독점프인 '트리플 플립'도 완벽했다. 종전 프리 스케이팅 최고 점수(133.95점)를 세웠던 '에릭 봉파르(2009년 10월)' 대회에서 실수로 0점을 받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12개 과제 중 유일한 3연속 점프(2회전 반+2회전+2회전)인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에서도 김연아는 오른손을 높이 들며 마지막 점프를 장식해 관객의 혼을 빼놓았다.

김연아는 이날 연기 시작 2분 후부터 총 7번 중 4번의 점프를 뛰었다. 선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2분 후 점프 연기엔 기본점수에 '시간 보너스' 10%가 붙는다. 하지만 이미 날개를 펼친 김연아는 2회전 반+3회전 연속 점프인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부터 3번의 단독 3회전 점프에서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김연아는 이날 12개 과제에서 주심이 재량껏 주는 가산점(-3~+3점)을 17.4점 챙겼다. 완벽했단 뜻이었다.

'유나 스핀(Yu-na spin)'

요정처럼 하늘을 날았던 김연아는 은반 위에 내려앉아서도 그만의 '대표상품'으로 라이벌을 압도했다. 점프하며 회전해 그 힘으로 빙판 위에서도 회전을 이어가는 '플라잉 콤비네이션 스핀' 속엔 김연아의 이름을 딴 '유나 스핀'이 있다.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다리를 뒤에서 잡고 회전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로 '유나 스핀'이다.

한쪽 다리를 들고 빙판을 활주하는 '스파이럴 시퀀스'는 물론 경기를 마무리하는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발을 바꿔가며 회전하는 동작)'에서도 김연아의 모습은 뭔가 달랐다. 신이 내린 '황금 몸매'를 가진 김연아의 긴 팔·다리는 작은 손짓 하나도 더욱 우아해 보이게 만들었다. 이날 예술성으로 평가되는 김연아의 구성점수(PCS)는 무려 71.76점. 자신의 역대 최고 기록이었던 68.40점을 3.36점이나 넘어선 것이었다. 김연아는 기술과 예술,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요정이었다.

밴쿠버올림픽 최대 라이벌 대결은 김연아(오른쪽)의 완승으로 끝났다.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시상대에서 기쁨의 눈물을 닦았고, 아사다 마오는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뉴시스

-2010/2/27,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