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가 발주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자로 한국전력이 주도하는 '한국형 원전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한국형 원전 수출을 위해 UAE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과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은 27일 정상회담을 갖고 계약을 확정지었다.
우리나라 사상 첫 원전 플랜트 수출이고 우리에게 원전 기술을 가르쳤던 미국, 프랑스 그리고 일본과 겨뤄 일군 승리다. 세계에 원전을 수출할 능력을 가진 나라는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일본 등 5개국뿐이었다. 이제 우리가 6번째 원전 수출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원자력 원천 기술 없이 자립하고 수출까지 이룬 경우는 우리가 유일한 경우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데 이어 대한민국이 세운 또 하나의 신기원이다.
수주 액수는 모두 400억달러(47조여원)에 달한다. 발전소 시공 등 건설 부문의 수주액만 200억달러로 NF쏘나타 100만대 또는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80척을 수출하는 금액과 맞먹고, 신규 고용 창출 효과도 건설 기간 10년간 11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또 원전 수명 60년 동안 운전, 기기교체 등의 운영에 참여해 추가로 200억달러를 받을 수 있다.
원자력 발전은 핵물리학·기계·전자·전기 등 공학의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한 기술이며 200만개 기기가 한 치 오차 없이 들어맞아야 정상 운전되는 첨단 기술의 집합체다. 다른 제품과 달리 안전이 생명인 원전을 수입하는 나라는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기술 수준을 최우선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원전 수출은 우리 공학 전 분야가 외국이 자국의 안전을 맡길 정도로 신뢰를 얻게 됐다는 증거다.
세계적으로 석유와 석탄 값이 오르고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원자력 발전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으로 세계 각국에 새로 지어질 원전은 총 수천조원이 넘는 시장을 창출할 전망이다. 원전 수출엔 기술 못지않게 시공 경험도 중시된다. 우리는 이번 원전 수출로 엄청난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
한전은 미국 웨스팅하우스, 일본 도시바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들의 특허 기술을 사용하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능력으로 볼 때 이런 몇 가지 기술도 경제성만 확보되면 개발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한다. 원전 수출로 완전한 기술 자립도 멀지 않게 됐다.
원전 수출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기술력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수출국의 외교력이 기술력과 결합돼야 한다. 이번 UAE 원전 입찰에서 우리나라와 경쟁했던 미국과 프랑스는 UAE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을 정도로 UAE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해 초 UAE가 원전 유치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UAE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고 원전 기술 협력을 맺으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막판엔 UAE 전투기 교체, 프랑스군 증파, 루브르 박물관 분원 설치까지 제안했다.
우리가 이런 기술 선진국이면서 핵 강국인 나라들과 경쟁하는 것은 언뜻 힘겨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운영률, 불시 정지율 등 운영 능력을 앞세우고 정부가 보이지 않게 지원하면서 한발 한발 추격했다. 수주전 전 과정을 막후 지휘하던 이 대통령이 막판에 UAE로 직접 날아가 외교 총력전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대통령으로선 UAE에 대한 고등훈련기 T-50 수출이 이탈리아에 밀렸던 것을 한 번에 만회한 셈이 됐다. 원전, 군사무기와 같은 거대 비즈니스는 정상 외교 능력에 크게 좌우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자국의 원전, 전투기, 잠수함의 세일즈맨을 자처하고 있다. 러시아가 소치에 2014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 것은 푸틴 전 대통령의 개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경제 외교 분야에서 세계 어느 정상에도 뒤지지 않을 경쟁력을 갖고 있다. 우리 기술력과 대통령의 경제 외교력이 합쳐지면 앞으로도 좋은 소식이 이어질 것이다.
-2009/12/28,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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