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노출/삶자락이야기

성적표

하마사 2009. 10. 14. 14:10

아들이 중간고사를 치르더니 성적표를 가지고 와서 도장을 찍어달라고 하여 점수를 보니 기대에 못 미친다.

1학기 때보다는 향상되었으니 잘했다고 칭찬했다.

사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꾹 참고 도장을 찍어 아들의 손에 들려주었다.

나름대로 얼마나 수고했다고 생각하겠는가?

지금 다니는 학원이 힘들다며 다른 학원으로 옮기겠다는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여러 번 들었다.

너무 엄하게 공부를 시키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내가 자랄 때와 비교하면 아들의 말이 이해가 된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학교 다녀오면 냇가에서 수영하기, 자치기, 비석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병뚜껑 딱지놀이, 말뚝박기, 땅따먹기, 참새잡기, 논에서 축구와 야구하기, 쥐불놀이, 물고기 잡기, 잠자리와 매미잡기, 메뚜기 잡기 등 수없이 많은 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눈사람 만들기, 눈싸움, 스케이트 타기, 개구리잡기, 비료부대로 만든 눈썰매 타기, 산토끼 잡기, 볏집가리 놀이 등 놀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그 때도 부모님은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노는 것이 좋아 귓전으로 듣고 말았었다.

그런데 지금 아들들을 기르면서 내가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아들들은 내가 어릴 적에 놀던 놀이와는 다르게 나름대로 재미있게 노는 문화에 익숙해 있다.

컴퓨터 게임하기, 농구하기, 만화책 읽기, 축구하기, 채팅하기 등등

내가 부모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지 않았듯이 아이들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언젠가 나처럼 자기 자리에서 잘 살게 되겠지만 아이들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듯이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옛날처럼 살면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자기 합리화를 시켜 보기도 한다.

아들의 성적표를 보면서 그 때의 내 성적표도 그리 훌륭하지 못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 비해 도시학교에서 학원을 다니며 공부한다는 환경이 달라진 것뿐이지 그 때나 지금이나 놀고 싶은 것은 아이들의 똑 같은 마음이다.

학교성적표가 모든 것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성적표로 아이들을 평가하고자 하는 아빠의 마음이 혼란을 가져온다.

때를 놓치면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결국 성적표에 집착하게 만들고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학교 성적보다도 도덕성이나 정서와 사회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성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이들이 학교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기꺼이 그 길로 안내하고 후원하기를 원한다. 아이들 스스로 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 길을 걷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빠가 되길 소원한다.

그리고 아들의 성적표를 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목사로서의 내 성적표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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