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독교(예수)만이 유일한 참 종교(구세주)인가? ( 이명진 목사칼럼35)
샬롬 시내산 회원과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은 말세라 전통적인 기독교 진리를 부인하고 혼탁하게 하는 사상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 밖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도 이런 세속적인 악한 사상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
우리는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 상당한 주의가 요청됩니다 이번에는 지금 가장 많이 유행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혼합주의)를 다루었습니다 이 글이 여러분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고 올바른 신앙과
교리를 확신하고 그릇된 사상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왜 기독교(예수)만이 유일한 참 종교(구세주)인가?
I 서 론
1. 문제제기
기독교외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여하에 따라 역사 속에서 교회의 의미와 위치가 좌우된다 - Walter Kasper
소위 기독교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의 공통된 진술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말씀)은 좋은데,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너무 속이 좁다”는 것이다. ‘종교와 신앙은 개인의 선택이지 강요의 대상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종교와 신앙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종교다원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라는 정통적인 기독교의 믿음과 고백은 기독교인이 아닌 타종교인들을 상당히 자극하는 것이 사실이다. 타종교인들이 보았을 때 기독교의 이러한 주장은 매우 배타적이고 편협하고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인들은 관용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여된 무지에 기초해서 그러한 배타적 주장을 맹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진리만이 절대적으로 유일한 구원이 길이며 다른 종교에는 구원의 진리가 없는가 하는 토의는 기독교계 뿐이란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과 지적 호기심을 가진 많은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즐거운 논쟁 중에 하나이다 이같은 논란은 기독교선교의 역사 속에서 처음부터 대두되어 온 것이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 발생은 그 당시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앙 공도체의 출현을 의미하였다 초대교회 신자들대부터 복음전파는 다원적인 종교사회 안에서 수행되었다 교회사의 첫 3세기는 혼합주의의 유혹적인 세력에 대항하여 교회가 생사를 건 투쟁을 한 시기였다 (뉴비긴)
자신이 믿는 종교와 신앙의 유일성을 숨기거나 포기한 채 보다 보편적인 종교성과 만나려는 노력은 비단 한국 교회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십 여 년 전부터 개신교와 카톨릭에 속한 세계적인 신학자들의 주도아래 조직적인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모름지기 다른 종교와의 타협과 조화, 다른 신앙 간의 이해와 포용을 추구하는 정신은 현대 교회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교회사적 흐름에 민감한 사람들은“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인용하면서, 이 시대를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종교와 다른 신앙을 비판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눈엣 가시같은 존재로 취급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권면한다. 그것이 다양하고 복잡한 종교와 문화와 사회적 요구가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교회와 성도가 취해야 하는 종교적 성숙함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다면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빌 3:9),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요 14:6), 오직 그리스도로서만(행 4:12)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 구절은 꾸며낸 진술인가?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출 20:2-3),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원자이시며(살전 5:9), 오직 성령만이 성도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요 16:13)이시라는 말씀은 거짓이고 위선인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계시이며(요 1:1), 오직 그 말씀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며(딤후 3:15),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할 것이라(사 40:8)는 말씀은 근거 없는 낭설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당신이 진정코 믿고자 하는 기독교의 유일성은 무엇인가? 당신이 알고자 하는 기독교의 진실은 무엇인가?
2. 종교다원 사상이 발생된 배경들
복음과 타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처음부터 계속되어 온것이지만 우리 시대에는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시대의 특수한 양상에 대하여 생각하고 우리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에 종교다원사상이 활발하게 토론되고 큰 관심과 문제가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장신대 서정운 교수)
(1). 생활 환경의 급변
교통수단과 통신수단 발달로 이난 지구촌 시대의 발달이 가져온 새로운 상황에 의하여 복음과 타종교에 대한 생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오래동안 세계주요종교들이 일정한 지대에 분리되어 있어 그들의 예배처나 신봉자들도 서로 분리되어 존재해 왔으나 사람들이 빈번하게 교류하게되면서 종교인들의 혼합생활이 시작되고 세계도처에 교회 ,성당 절, 힌두교사원 회교사원이 공존하게 되고 어디서나 서로 다른 종교의 존재를 쉽게 대하고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 매스 미디어의 발달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비디오 신업의 발달과 급속한 보급으로 전세계의 종교들의 교훈이나 생활 특징들이 서로가 훨씬 쉽게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도서출판의 발달로 다른 종교의 지식이나 정보를 아주 쉽게 접하게 되었다
(3). 인문주의 사상의 발달
꾸준히 발달해 온 인문주의 사상의 발달 과정 속에서 문화와 종교의 절대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어 왔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많은 지식인들이나 합리적인 인간들에 의해
그 절대성이 거부되고 있는 경향이 강하게 발달되어 절대화는 불공평하고 교만한 편견으로 몰리고 있다
(4). 다른 종교들의 부흥과 선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식민지들이 정치적 독립을 성취한 이후에 전통문화와 종교의 부흥이 일어났다 그들 자신의 역사와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여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자기 고유의 종교를 국교화하거나 거의 국교적인 차원으로 굳히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경우
그들 자신들의 종교는 애국적이고 민족적 사상 및 감정과 혼합되어 강렬한 정신으로 응결되는 양상을 보이기가지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복고적이며 근본적인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배타적이며 선교적이다
(5). 인류의 공존과 일치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위한 주장과 염원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인ㄹ생존과 문화보존에 대한 위협이 종교인들과 지식인들로 하여금 인류의 평화적 공존과 연합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느끼게 하고 그의 시급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환경오염 , 핵전쟁 위기에 처하여 인류의 구원과 복지를 지향한다는 종교가 서로 바목하고 적대시하여 인류 보전과 번영에 해를 끼치는 것은 종교본연의 정신이나 교훈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도처에서 종교적 분쟁이 정치적 분쟁으로 비화하고 확대되는 예가 적지않기 때문에 이와같은 견해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많은 지식인들에게까지 파급되고 있다
(6). 서구기독교의 선교 과오에 대한 도전(역습)
서구기독교의 선교가 끼친 공헌과 과오는 여러측면에서 관찰되기 때문에 간단하게 취급되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한 피선교지 출신의 학자의 눈으로 본 그들이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파니카)
1) 선교사들은 자신만이 의롭다는 종교적 도덕적 의인 의식을 가졌었다
2) 기독교선교사들은 정치적 제국주의 운동과 연루되어 있었다
3) 선교사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진 서구인의 우월감이 현장에서 많은 부정적인 반응을 조성하게 되었다
4) 기독교 여러교파들간의 경쟁과 비난이 선교사들이 사역을 저해하였다
5) 서구사회 기독교신앙의 영향의 약화가 기독교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7). 선교열의 약화
기독교 특히 서구 기독교가 상당 기간동안 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기독교 자체안에서 기독교 사활이 걸린 계시에 대한 신앙과 확신이 흔들리고 서로 분열된지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과거에는 계시의 내용을 묻고 생각했는데 현재는 게시자체를 회의하고 질문하고 해석한다 팔레스틴 지역의 유대인을 중심으로 연결된 특정한 역사적 사실들을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계시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거나 그 계시를 여러모로 뜯어보는 가운데 예수그리스도의 유일한 왕권과 구주성에 대한 확신을 회의하고 부정하는 신학이 대두했고 그같은 의심 때문에 선교에 대한 동기나 열심이 쇠퇘하거나 없어지는 추세를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이상 강력하게 열거한 이유들이 상호작용해서 과거 어느때보다 우리 시대에 와서 종교다원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는 반면 기독교의 유일성과 절대성은 갈릴리 바다의 풍파 속에 휘말린 배와 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아카데믹한 신학의 마당에서는 이같은 표현이 과장이 아닌 현실이다
또한 종교다원주의 가 등장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서구와 서구기독교의 쇠퇴에 원인이 있었고 19세기에 시작된 성경비평주의라는 자유주의 신학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시대가 자신의 신앙을 절대화하는 것을 싫어하고 상대주의 분위기가 보수주의 교회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식민주의와 전쟁을 일으킨 서양문명의 죄악을 기독교와 도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노예제도와 식민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한 것은 서구 크리스천들이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히틀러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또한 신학적으로 현재의 제도적 교회는 신약의 참교회가 아니라는 제도권 교회에 대한 거부가 종교적 다원주의를 더욱 정당화하고 있다
II. 타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신학적 입장
오래동안 기독교는 타종교를 마귀의 종교요 악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오늘날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다른 종교는 악한가 ?거기에도 진리가 있는가 ? 기도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종교요 진리와 생명=영생을 얻는 종교인가? 이런 질문은 독일에서 자유주의산학이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로마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기점으로 타 종교에도 성스러운 어떤 것이 있고 진리의 파편들이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칼 라너의 이른바 포용주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며 라너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예들은 더욱 과격하게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게 되엇다 로마천주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 교회 내부의 신학자들 중에도 특히 불교 힌두교 유교권에서 자란 신학자들 상당수가 종교다원주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1. 배타주의 입장
(가)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 :
이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사상이다 . 초대교회로부터 정통 교회가 오래동안 주장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초대 감독 키프리안은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 ”고 선언하였다 1215년 제2차 라테란 회의에서도 “교회 밖에는 전혀 구원이 없다”를 정통교리로 확인하고 1442년 풀로렌스 공의회에서 다시 확인 하다 “ ”자선을 하고 그리스도 이름을 위해 피를 흘렸다할지라도 카톨릭 교회 울타리 안, 통일성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받을수 없다“ 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오래동안 주장하던 교리가 1962-1965년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포용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제2차바틴칸 공의회는 제도적 교회 밖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 은총을 주장한다 교회 밖의 그리스도인의 가능성 시인한다. 교회중심적 배타주의는 공식적으로 페지되었다 한편 개신교 보수주의교회: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를 신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나) 그리스도 중심적 배타주의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 신앙(예수님과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서 명백하게 고백하는 신앙 )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다 소위 칼 라너등 포용주의자들이 말하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반대한다 로마천주교나 종교다원주의자들은 타종교에서도 궁극적 실재에 대한 체험 혹은 신체험을 하며 그것은 사실상 그리스도 은총의 체험이기 때문에 타종교들도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보며 타종교를 믿고 있으나 그리스도 은총을 받고 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배타주의는 이를 부인한다 (사도행전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 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리스도 중심의 배타주의는 그리스도 밖의 성경 밖에 존재하는 계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은총이나 일반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모두에게 베푸시는 은총과 계시이다 이 일반은총이나 계시로는 인간이 구원 받을수 없다 배타주의자들과 정통적인 교회는 일반계시(창조계시)와 특별계시(선교 복음전도를 위해, 교회를 통해주시는 구원계시)를 구분한다 타 종교는 은총이 아닌 율법적일 뿐이다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 밖에서 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1974년 로잔 대회 선언은 배타주의 입당을 대변하고 있다 제3항 : 한 구세주(예수)와 한 복음만 있다 즉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높여져 있다 ...일반 계시는 전혀 구속적 가치가 없다
제 4항 : 전도는 사람들이 그에게 나오도록 설득하여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로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닐라 로잔II 대회 에서도 배타주의 입장을 재천명한다
마닐라 선언 제7항 : 다른 종교와 이데올로기들은 하나님께 이르는 대안과 길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지 않는다면 인간의 영성은 하나님께로가 아니라 심판으로 인도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배타주의는 교회 밖, 기독교 밖의 진리, 은총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을 하지 않는 취약점이 있을 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문자적 증언과 일치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확립한다. 배타주의는 타종교에 분노와 거부감을 일으키지만 세상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생명의 복음을 흐리지 않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전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주신 지상명령인 복음선교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킨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아미타 불교와 박티힌두교를 은총의 신앙을 강조하는 비율법적 종교라고 주장하지만 아미타나 박티힌두교 모두 본류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한 분파일 뿐이다 그것으로 전세계 타 종교에도 기독교와 같은 구원의 은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장신대 김명용 교수)
2. 포용주의 입장 ( Inclucivism) =포괄주의, 우월주의
포용주의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는데 그 구원은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신비한 방법으로 다른 종교에서도 현존하고 활동하기에 다른 종교도 신실하게 신봉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한다 예수복음을 들어보지 못한자 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을수 있다 누가복음 ,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의 구원이 우주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행17:22 이하의 바울 설교를 중시하고 있다 (행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1) 칼 라너
포용주의의 대표적인 신학자는 로마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이다 <기독교와 비기독교들>가 대표적 저작이다 칼 라너는 20세기 로마카톨릭 신학자로서 현대 로마천주교 교리의 기초를 쌓은 자이다 제2 바티칸 공의회 교리는 라너의 사상을 채택하였다
(가) 칼 라너의 주장
세상종교에는 하나님 은혜를 받아서 구원에 이르는 보통 방법과 기독교복음을 통해 얻는 특별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태여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들 속에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가 활동하고 게신다 그들은 이미 다른 이름을 가진 익명의 그리스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근거로 삼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그리스도 중심주의)와 교회 밖에 구원이없다는(교회중심주의) 전통적인 교리는 거부되고 신중심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그 누구나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 산다 누구든지 이 그리스도의 은총을 경험할 가능성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타종교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의화된 자들)이 있다 마음을 개방하는 이는 누구나 그리스도 영 혹은 그리스도 은총으로 살아가게 된다 명시적으로는 모르나 그리스도 은총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이들,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고등 종교에 많다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 곧 인간을 구원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계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과 계시를 나타낸 것이다
기독교는 절대적 구원이 있고(구원을 위한 절대종교이다) 타 종교에는 상대적 구원이 있다 타 종교인은 상대적으로 그리스도 은총을 안다 이런 이유는 그들에게도 예수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예수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지가 결정적으로 완전하게 나타났다 하나님 구언은 총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결정적으로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하고도 결정적으로 구원을 얻는다 예수에게 나타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 어느 한민족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밖에 존재하는 그리스도 은총이 있는 것이디 타 종교인도 구원받는 것은 역시 그리스도 은총 덕분이다 불교신도는 부처를 믿으나 실은 그리스도 은총을 받아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 라너는 과거 예수를 모르는 자가 다 지옥에 가는 것에 대한 회의를 가짐)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를 알든지 모르든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리스도 은총에 들러싸여 있다 하나님 구원의지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 그리스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도 하나님 구원의지에 둘러싸여있고 하나님 은총에 의해 살아가는 의화된 그리스도인들 즉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칼 라너는 초자연질서(특별은총)과 자연질서(일반은총)이 구분을 반대한다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초자연적 질서 속에 있으며 하나님 구원의 은총에 둘러싸여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의지와 은총과 분리된 자연질서 속에서만 사는 인간은 없다
타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은 있으나 기독교는 타종교와는 달리 다른 것이 추월할 수 없는 절대적인 종교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 때문이다 부활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계시하셨다 예수는 하나님의 자기현시이다 타종교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날수는 있지만 그것은 부분적이고 명료하지 못하고 상당부분 어둠에 쌓여있다 시독만이 절대적인 구원의 종교이다 타종교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정향되어 있다 타종에서 발견되는 초월적 실재와 사랑과 자비는 내용상 이미 그리스도가 나탄내신의 것의 흔적이다 선교는 보다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리도를 통해 더욱 명료하고 풍성한 단계로 진입시키는 것이 선교이다 기독교는 모든 종교의 규범이자 표준이다 가장 절대적인 종교는 로마천주교 그다음 개신교, 다음이 유대교 그다음으로는 세계고등종교이다
(2) Raymund Panikkar
파니카는 스페인의 천주교신자인 어머니와 힌두교도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난 천주교 학자이자 힌두교 학자이다
파니카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발전시켰다 우주적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에게 성육신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안에 유일하게 규범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안에 역사적 인물 안에 한정시킬 수 없다 하나님 이름이 여럿이다 야훼 엘 알라 라마 등 이는 한 하나님의 여러 현현 방식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Rama, Krishna, Isvara, Puru, Tathagata 등 많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분명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다 타 종교에도 그리스도가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일수 있으나 그 역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여러 종교에서 여러 형태로 만나질수 있는 것이다
파니카는 롬10:20인용 (사65;1)을 인용 포용주의(포괄주의)를 옹호한다 (롬10:20)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이는 사람들이 기독교복으을 통해서만 하나ㅣ을 접촉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기에 인류 구원의 진리를 기독교 복음으로만 국한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 대표적 인물이 Wilfred Cantwell Smith 이다 스미스는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듯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구원문제에 대해 확정적으로 무슨 말을 할수 없는 것이다 교회 안이든지 밖이든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람들 마음 속에 들어가신다고 믿기 때문에 결국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본다
포용주의자들은 예수그리스도에서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킨다 그리스도는 다른 종교에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파니카는 궁극자의 외적 표현으로서의 로고스인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를 분리시킨다. 보편적인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 안에 성육신 되었지만 그 성육신이 유일한 것이 아니며 여러 종교들의 특히 힌두교의 여러 중보자들 안에도 성육신 되었다고 한다. 초기에 그는 그럼에도 역사적 예수 안에서 계시가 완성되었다고 했으나 후에는 어떠한 역사적 형태도 그리스도의 궁극적 표현일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기독교는 어떤 다른 종교에 대해서 역사적 예수의 규범성을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매이지 않은 그리스도(Unbound Christ)를 주장하는 사마르타도 파니카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의 분리를 받아 드린다. 그는 초기에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모든 종교에 미치고 역사적 예수에게 규범성이 있다고 하였으나 후에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궁극성과 보편적 규범성에 마저도 이의를 제기한다. 신비적 타자는 특수한 중보자를 통해 만날 수밖에 없지만 신 외에 어떠한 특수한 중보자도 궁극적이거나 규범적일 수 없다고 주장하기에 까지 이른다.
**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6 :가독교의 절대성을 계속 강조하면서 타종교에도 우호적 입장을 취하다 그러나 칼 라너같이 결코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표현이 없다 (우호적인 입장만 취함) 오늘날은 라너사상과 바티칸 공의회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
“ 타 종교인을 존경하라 선하게 대하라 거기에도 진리말씀의 씨앗이 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3) Paul Tillich
종교시대의 종말은 불가능한 개념이다 종교적 원리는 끝이 있을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인 한 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종교는 끝이 없으면 어떤 특정한 종교도 종교로서의 자신을 무시하는 정도만큼 더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도 자신의 특수성을 탈피할 때만 종교적 해답의 固守者가 될 것이다 ....헌신과 사색과 행동으로 자기 종교자체의 심연을 관통해야 한다 모든 산 종교의 심연에는 자신의 중요성을 포기하고 특수성을 탈피하여 영적 자유의 단계로 승화하고 그와 함께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의 다른 표현들의 영적 실제를 보게되는 면이 있다 이것이 세계종교들과 직면한 오늘의 기독교가 반드시 알아야할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궁극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종교의 본질로 생각하는 틸리히는 기독교만을 종교로 생각하지 않으며, 기독교의 절대성이나 배타성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틸리히가 만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동양종교에 접하고서 크나큰 인상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그가 이미 저술한 「조직신학」 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쓰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틸리히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상이 흔들린다 ). 틸리히는 '구체적인 영의 종교(the religion of concretespirit)' 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이것은 모든 것이 추진되는 목표로서 현실의 어느 종교와도 동일시될 수 없으며, 종교로서의 기독교와도 같지 않다고 말한다. 종교의 전체 역사는 '구체적인 영의 종교' 를 위한 투쟁의 역사이며, 틸리히는 그것을 곧 '종교 안의 종교' 에 대한 하나님의 투쟁으로 파악한 것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이신 예수에서 이 투쟁의 결정적인 승리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카이로스(kairos)때마다 '구체적인 영의 종교' 가 부분적으로 실현되는 일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다고 틸리히는 보았다.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인하며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배척하는 틸리히가, 종교간의 대화를 강조하되 기독교의 독특성을 내세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규범성을 부분적이나마 상대화시킨 틸리히의 뜻을 그의 만년에 확인할 수 있다.
(4) 한스 큉 (Hans Kung) 큉은 1960년 이래 튀빙겐에서 가르치고 있는 스위스의 로마 가톨릭 신학자이다. 로마 가톨릭의 교리(예를 들어, 교황무오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그의 급진적인 견해로 인해 큉은 1979년 로마 가톨릭 신학자로서 가르칠 권리를 박탈당했다. 잘 알려진 큉의 저서로는 「칭의」(Justification; 1965), 「교회」(Church; 1967), 「무오?」(Infallible?; 1971), 「크리스챤이 됨에 관하여」(On Being a Christian; 1967), 그리고 「영생?」(Eernal Life?; 1984)이 있다. 「크리스챤이 됨에 관하여」에 명백히 나타나듯이 큉의 신학은 근본적으로 기독론적이다. 다른 종교의 약점은 물론 장점도 인정한다:
큉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절대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편성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라너와 같이 포용주의에 속하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는 라너를 비판하고 종교간의 대화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큉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극단적인 입장 사이에서 어려운 길을 택한다.14 첫째로, 편협하고 우쭐한 절대주의를 배격한다. 타종교의 진리와는 무관한 자유로운 기원(absolute)이라는 뜻의 진리로 스스로의 종교를 절대화시키는 입장에 반대한다. 그러므로 타종교를 저주하는 배타적인 입장이나 스스로의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둘째로, 무책임하며 피상적인 상대주의에 반대한다. 다시 말해 진리나 가치가 냉담하게 상대화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의적인 다원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각각의 종교 속에 내포되어 있는 참됨과 거짓됨을 분별없이 승인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비판이 필요한 것이요, 이러한 비판이 없으면 값싼 관용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존재상황으로부터의 구원을 도모한다고 큉은 이해한다. 그러므로 "교회 밖에도 구원은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그는 시도한다. 포용적인 기독교의 보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기독교의 독특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끝으로 '익명의 크리스챤' 이라는 라너의 설명에 대해 큉은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라너의 이론을 따라가다보면 예수의 위상이 힌두교의 화신(avatar), 불교의 보살 그리고 이슬람의 예언자와 같이 되어버리지 않겠느냐고 큉은 반문한다.20 요컨대 교회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의 방법으로 옮겨가려는 큉의 설명도 그리스도 중심으로 끝나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의 비범한 독특성을 암시하는 큉은 광범한 의미에서 예수의 규범성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3. 다원주의 입장 : =상대주의 , 혼합주의
다원주의의 기본 전제는 절대종교라고 주장할수 있는 종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은 모든 역사 모든 문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 구원은 기독교와 모든 다른 종교에서 발견된다 는 것이다 다원주의는 타종교나 기독교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타종교에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 사상은 칼 라너의 신학을 정신적 모체로 이를 더룩 급진적으로 발전시킨 사상이다
급진주의 신학자들은 라너가 기독교의 절대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이 다원주의는 현대인들 다수가 신봉한다 감리교등 개신교의 급진적 신학자들이 찬성한다
다원주의는 포용주의자들의 논리적 모호성을 극복할 뿌만 아니라 전통적인 그리스도 중심론을 통째로 버리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는 사상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종교가 하나님으로 통한다 모든 강이 바다로 흐르듯이 모든 종교가 하나님에게로 간다 종교의 근본은 하나이나 그 형태만 다양하다 모든 병자에게 한가지 약만 필요하다고 말할수 없듯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말할수 없는 것이다
-존 힉, (J. Hick) , R. Panikar, P. Knitter 가 대표적인 학지들로 이들은 교회가 정통적이로 가졌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버리고 신중심의 신학을 주창하였다 왜냐하면 예수안에만 신이 절대적으로 계시되었다는 교리를 전면 부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평성을 강조한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 진리이며 합리적이며 자연스럽다 다원주의 밑바닥에는 합리적 요소가 다분이 깔려있다 (<-> 신앙은 논리가 아니다 )
종교다원주의에서 주장하는 만인구원론 , 보편구원설은 자유주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지만 또한 현대신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신정통주의의 영향을 무시할수 없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 산학을 반대하고 정통신학을 추구하면서도 현대인들 구미에 맞지 않는 비과학적인 것을 배격한다, 아담,하와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함)
신정통주의 신학자들 , 칼 바르트, 폴 틸리히, 에밀 부룬너등 의 신학은 물론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학이 논하는 구원론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칼 바르트는 1963년 미국을 방문하여 특강을 하였을 때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카넬로부터 지옥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고 분명히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지옥은 믿지 않습니다 ” 라고 하였다 (<-> 예수그리스도는 지옥에 갈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폴 틸리히 역시 그리스도와 같이 존재한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보는 존재의 영원한 근원으로 흡수된다고 하였다 ( ACTS 전호진 교수)
바르트가 보편구원설을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보편 선택 사상은 분명히 새로운 보편 구원설을 의미하는 듯하다 실은 천국과 지옥의 실제성을 부인하는 것 또한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구원의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예수는 만민을 위한 구원자라고 말하며 구원의 원(circle)은 너무 커서 유교도나 불교도 신교도를 포함하며 선택과 유기간의 분계선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날 현대신학자들과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만인 구원론은 그리스도의 주권이 우주적 주권에 근거하며 그리스도 주권이 모든 만물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같이 구원 역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1). 트릴취 :
오늘날 다원주의의 관점을 선구적으로 소개한 사람은 트릴취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 역사의 강을 흐르는 모든 것은 기독교를 포함하여 상대적이다 모든 것은 역사적이며 역사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성경도 예외일수가 없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상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아무 것도 , 예수그리스도라 할지라도 혼자 초자연적인 간섭에 의한 예외가 있을수 없다 이같이 어격한 역사진행의 법칙 속에서는 절대적인 종교란 있을수 없고 모두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유일한 계시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를 일괄적으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 ”
트릴취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고 본다 기독교가 독특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종교들도 그나름대로 독특성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독특성은 자기나름의 독특성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지만 각각 개별적인 특성이 있는 것처럼 종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의 죽기 직전에 1923년 옥스포드 대학에서 하기로 했던 강연원고에서 우리 세상에서의 경험에 따르면 신적인 삶은 하나가 아니며 많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2) 존 힉 ( John Hick )
힉은 기독교와 세계 종교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글을 쓴 저술가이다. 1968년에 그는 「중심되는 기독교」(Christianity at the Centre; 2판은 1977년에 출판되었고, 최종판은 1983년에 「제2의 기독교」(The second Christianity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를, 그리고 조금 뒤에「악과 사랑의 하나님」(Evil and the God of Love)을 출판했다. 후자에서 존 힉은 합리적인 기독교 신정론(神正論)은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 구원을 지지해야만 한다고 결론짓는다. 이같은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하나님과 종교들의 세계」(God and the Universe of Faiths;1973)에서 종교 신학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종교 세계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모델에서 하나님 중심의 모델로 축이 이동하는 것을 포함한다. 만약 힉이 이것을 이루려면, 전통적인 성육신 교리에 대한 문자적 이해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이해를 위한 지지를 얻기 위해 기독론 논쟁이 재개되어야 했다. 이것은 1977년 출판된 「성육하신 하나님의 신화」(The Myth of God Incarnate)에서 이루어졌다. 이 책은 일곱명의 영국 신학자들의 글을 모아놓은 것으로 힉이 편집한 것이다. 그는 또한 이 책의 결론적인 글인 "예수와 세계 종교"(Jesus and the World Religions)를 썼다. 여기서 힉은 니케아와 칼세돈의 전통적인 기독론을 '신화적이고… 전통적인 언어' 라고 거부한다. 편집자인 힉의 견해에 의하면, 예수는 초대교회에 의해 '신격화'된 것이다. 힉의 견해는 1980년에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God Has Many Names)라는 제목의 책에 잘 발전, 표현되었다. 여기서 그는 우리의 종교 신학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을 가져오기 위해 강력한 주장을 전개한다. 비유하자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으로 프톨레미적이다. 여기서는 기독교가 종교들의 세계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른 종교들은 그것을 중심으로 돌며, 기독교와의 거리에 따라 가치의 등급이 매겨진다"고 그는 쓰고 있다. 힉에게 이것은 불만스러운 일이다. 종교들의 세계는 기독교나 다른 어느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인류 역사의 종교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각사람의 내적 종교성으로 신앙생활을 했고
주전900-800년 경에 세계의 4대문명 발생지인 그리스, 근동, 인도 및 중국에 위대한 종교적 각성이 이어나서 고등종교가 형성되었다 이때가 인류문화와 종교의 기본적인 축이 형성된 시기인데 그즈음 히브리 예언자들이 살았고 페르샤에는 조르아스타, 중국에는 공자를 위시한 사상가들, 인도에는 부처와 우파니샤트의 기자들이 살았었고 그리스에는 피다고라스, 소크라테스, 및 플라톤이 존재하였다 히브리 전통을 받아 예수와 기독교가 출현하였다 후에 모하멧과 회교가 형성되었다 수천년 전에는 대륙간 통신수단이나 문명발달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각 사람들은 각기 다른 자기문화권에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인간들이 횡적 교류를 통해서 하나님 계시가 전달될수 없었고 수직적으로 각자가 분리되어 계시가 주어졌다 그 계시는 특정한 역사 문화 언어 기후등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므로 계시자는 동일했어도 그 계시의 문화적 형태는 시간과 장소를 따라 차이가 생겼다 “
존 힉은 예수의 유일성과 동정녀 성육신 사건을 부인한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 중에 상당부분은 예수의 말씀이 아니다 특히 그의 메시야로서의 자의식 은 부활사건 이후 그리스도인 고동체가 만든 작품이다 “결국 모든 종교의 근원이 동일하기에 종교 이름이나 나름대로의 특정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는데는 차이가 없다. 고 주장한다
(3) 폴 니터 :(Paul F. Knitter)
폴 니터는 칼 라너의 제자이다 독일 개신교 신학 전공하였으며 대표적인 저작은 < No Other Name >이다
교회중심의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하고 또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니터는 새로운 형태의 기독론과 기독교의 독특성을 제시한다.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는 기독교 및 예수의 독특성에 관한 물음이다. 옛날과 같이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기독교의 독특성이 주장되고, 예수에 있어서만 참된 계시와 구원이 성취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너와 마찬가지로 비범한 독특성의 암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당시 문화의 맥락속에서 궁극성이나 배타성의 용어로써 그 신앙 경험을 표현하게 되었음은 필연적이었다.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는 오직 하나이며 불변하는 규범적인 뜻으로 진리를 이해하고 있었다.그러므,로 여러 진리주장 가운데서 하나가 옳으면 다른 주장을 지배하거나 흡수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진리는 다른 주장을 포용하는 식의 진리가 아니었다고 니터는 말한다
예수역사는 유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역사가운데 하나이다 예수의 멧세지는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이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그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꾸었다 요14:6, 행4:12 말씀들은 사도들의 고백적인 언어이며 사실적 언어가 아니다 보통 종교적, 고백적인 언어는 절대성을 포함한다 사도들이 고백했던 종교적 ,절대성을 표현한 언어를 표편적 진리로 확대한 것은 종교적 언어표현 양식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 구원의 길은 여러길이 있다 노련한 등산가는 다른 길이있 다는 것을 안다 다른 종교 서인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나타나있다
성경의 증언은 오직 고백적 언어라고 주장한다 행4:12은 고백적 언어이다 모든 종교 언어는 고백적 언어이다 힌두교 불교등에서 “절대”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실제로 절대가 존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고백적 언어이다“ 애인에게 당신은 나의 생명이라고 고백함도 마찬가지=고백언어 라고 주장한다 ( <-> 성경은 고백적 언어인 동시에 하나님 계시의 언어이다 사실의 언어이다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
신중심 신학자들 , 다원주의자들은 진정한 종교간 대화를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절대성을 포기해야 한다 고 생각한다 포용주의자, 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신중심 신학은 최근에 비판을 받고 있다 “신중심신학” 이란 용어가 이미 신을 전제하고 있기에 종교간 대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 중심적 신학에서 구원중심적 신학 내지는 궁극적 실재 중심의 신학 에로의 방향전환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 제3세계신학자들) 이런 주장은 예수그리스도의 절대성을 상대화시키고 있다 모든 종교를 상대적 가치가 있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다원중자들 중 신약성경의 기적등 주요사건을 신화라고 주장하나 역사사건이 신화로 만들어지려면 300년 이상이 소요된다 신약성경은 초대 신약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수록했다 수처년간 성경은 영원한 진리로 선포되고 점점 위력이 증가되고 있다
다원주의의 구원은 건강과 평화 안식이다 구원이 그것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구원의 핵심은 죄에서 용서를 받고 죄에서 해방돠고 마귀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 자녀가 되어 영생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의 구원은 자기를 상실하는 것이다 자기 수양으로 무아지경에 도달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포기하는 것은 기독교신앙을 포기하는 것이다 타종교의 여러 문제점 들에 대한 해답이 성경 안에 다 있다
III. 포용주의 및 다원주의의 장점 (장신대 김명용 교수)
1, 타종교와 타문화에 대한 긍정성을 발견했다 과거 기독교는 타종교와 타문화를 마귀의 소산으로 보고 타종교 타문화를 박멸시키는 것을 선교목표와 일치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포용주의와 다원주의는 타종교에도(특히 고등종교) 선한 것들 , 이웃사랑 , 거룩한 삶, 초월적 세계에 대한 동경등 긍정적인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타종교 타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한 점 타종교를 무조건 멸시하고 박해하면 선교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2. 종교간의 분쟁을 방지하고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가능하게 하였다
타종교와 인권, 자연환경보호, 정의와 자유, 평화증진 등 많은 분양에서 협력이 가능하다
그것들의 실현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유익하다 하나님 나라 거설을 위한 성령하나님의 사역은 교회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움 분쟁 전쟁은 주로 마귀 역사이고 평화, 자유, 살리는 일은 성령님의 사역이다 성령님은 평화를 가져오는 영이시다 (갈5:22)
하나님은 교회 밖도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이방 신을 섬기는 고레스 왕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 해방은 물론 성전을 짓게 하셨다.
3. 포용주의는 기독교토착화 신학 가능성을 열어주엇다 기존 문화와 종교에 대한 거부는 사실상 신학의 토착화를 불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기존 문화에도 하나님의 계시와 은총의 파편이 존재한다는 신학 개념은 기존문화와 종교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그속에 존재하는 많은 가치있는 것들을 기독교정신 속에 수용할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진정한 토착화는 그곳에 들어있는 선한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VI. 포용주의, 다원주의 비판 :
21세기에는 다원주의가 더 극성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장과 함께 진리의 상대화등 교회가 이 문제에 더 심각한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많다 홍역을 치룰 것으로 예견된다 수년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WCC)에서는 예배시간 중에 무당이 하는 것처럼 죽은 혼을 불러 오기도 한다 지금 어떤 이들은 부처의 이름으로 기도도 한다 유니테리안 교회(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교파)의 찬송가에는 인도의 부처를 찬양하라는 가사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기독교신앙을 지키기 위해 종교다원 주의 사상의 단점과 해악을 바르게 알고 물리쳐야 할 것이다
1. 장신대 서정운 교수 및 기타 교수들의 비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가 출생하여 사는 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는 종교를 믿으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과 같다는 포용주의 견해는 하나님의 세계 구원의지와 예수그리스도의 구주성을 조화시키려는 의도가 강한 사상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론의 한계 안에 정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포용론은 어디까지나 기독교중심의 포용론이며 다른 종교를 무시하거나 열등하게 보는 종전 시각을 근본적으로 탈피하고 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독교복음도 손상을 시키고 다른 종교로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모호한 자리에 서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말도 않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공격하여 기독교 선교에 실제적인 무용론을 주장하면서도 익명의 그리스도를 말함으로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기독교의 말살을 기도하고 있는 것과 같다
다원주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부인하므로 기독교의 특징을 백지화하고 모든 종교를 상대화함으로 장기적으로는 모든 종교를 안락사시킬 위험이 있다 모든 종교가 진리라면 모든 종교가 허위라는 도전도 유발시킨다 (서정운 교수)
“ 종교적 상대주의에는 암흑한 그늘이 있다 종교란 이름으로 어두운 악마의 활동이 役事하고 있다 ”- Langdon Gilkey
" 다원주의는 자신의 모호성 때문에 상대성과 절대성을 포함하는 모순을 안고 이Tssm 것이다 “ =Newbigin
기독교 신앙은 " 예수그리스도가 주님이시다“ 라느 고백과 함께 살고 죽는다 그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었다 ” -ontario Costas
2. Handrik Kraemer 의 비판 :
< 비기독교세계에서의 기독교 멧세지> 저자 , 복음주의자 이다
WCC. 는 1928년부터 크래머가 제시한 성취설 경향을 취하였다 타종교의 가치와 기독교의 연속성을 시인한다 성취설이란 기독교와 타종교를 거짓과 진리로 보지 않고 우월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는 타종교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완성시키는 것이다
크래머는 복음주의 입장을 대변한다
“ 하나님의 계시는 종교의 폐지를 말한다 참된 계시와 종교는 상반된다 왜냐하면 종교는 신과 구원을 촉구하는 인간의 시도인 반면에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현시요 하나님의 구원의 제시이기 때문이다 ” (칼 바르트의 노선을 따른다 ) 기독교의 계시는 모든 존재를 이해하려는 많은 인간의 노력을 대치하여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기록이며 예수그리스도 안에 재창조된 진리이고 마귀적이며 죄악적인 부조화를 이룬 인간과 세게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으로 다른 종교적인 교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
“일반종교와 복음에는 전혀 다른 질적 차이가 있다 종교는 인간의 義를 주장하는 한편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가르친다 ” 종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자기 구속 , 자기 義, 자기 聖化에 불과하고 복음은 사람을 용서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하거나 동일시될수 없다 실제로 구원뿐만 아니라 신간, 창조관, 인간관, 등에 상당한 처이가 서로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적대시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종교와 기독교복음을 동일시하긴느 불가한 것이다 1970년 프랑크프르트 선언이나 1974 로잔대회 에서도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유일한 중보자 되심을 확인하고 어떤 형태의 혼합주의나 전도의 무용론을 부정하였다 1989년 2차 로잔대회에서도 종교간의 대화자체를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으나 혼합주의나 복음의 상대화를 엄격히 배제하고 온전한 복음을 주님이 오실 때가지 전하자는 결의를 하였다
3, 김명용 교수 (장신대)의 비판
다원주의의 핵심적 문제점 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유일성 해치면서 다원주의 포용하면 큰 문제에 봉착한다 )
(1) 제 1계명과 정면 충돌한다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말라는 제1계명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출20:2-3)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하나님은 토속종교에서 흔하게 보는 접신, 영매, 초혼등의 행위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신18:10-12)
오늘날 다원주의자들 대부분이 토속종교의 초혼, 영매, 무속등을 기독교 정신과 결합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불결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일한 주님이시오 참 신이시다 (막12:29-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唯一)한 주(主)시라(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誡命)이 없느니라....... 성경기자들도 성경시대에 다른 신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와 언급을 하였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고대 가나안 종교와 오늘 종교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당시 거대한 세계적인 종교 였던 바벨론 신이나 애굽의 신에 대해 분명히 우상이라고 언급하고 섬기지 말 것을 명령한다
카톨릭 신학자 H. U. Balthasar는 컬 라너 사상에 반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라너가 주장하는 타종교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이 맞는다면 선교도 불가능하고 더욱이 순교는 더욱 불가능하다 ” 기독교 교회는 한분이신 참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순교의 길을 걸어왔다 요한계시록은 순교지들을 위한 책이기도 한다 (계2:10)
(신11: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 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2) 선교의 절대성과 절박성을 위태롭게 만든다
선교는 기독교고동체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성경의 명령이다
(딤후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사도들과 , 주의 종들은 일평생 복음을 위해 살았다 (딤후1:11-12)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이요(마28:19) 절대적이고도 절박한 과제이다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기에 복음(예수님, 예수님 말씀) 전해야 한다.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받으려면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러기위해 누군가가 예수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이나 다원주의는 선교의 절박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들은 선교의 중요성과 절박성을 알지못하고 있다 다원주의에서는 선교가 불가능하다. 교회 감소된다 (유럽 미국등지) 그들은 선교란 제국주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다(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는 미혹케하는 악영의 심각성과 영적세계의 혼탁성을 간과하고 있으며 일반종교에 대한 낙관론에 근거한다
다원주의자들은 주장한다 “하나님은 선교사 등을 타고 다니시는 분이 아니다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한국에 계셨고 한국은 사랑하셨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지 못했다 거짓 사상으로 덮혀진 세계와 종교를 주시해야 한다 생명의 주님이 오셨을 때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다 구세주를 오히려 십자가에 못을 밖았다 (요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마귀는 속이는 자이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 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 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는 세상을 미혹하는 악영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이지만 악한 세력, 마귀에 의해 진리가 심하게 왜곡되어있다 (롬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 으로 바꾸었느니라"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감지하기 매우 힘들 정도로 어둠에 쌓여있다 마귀는 어둠의 영이다 세상을 점점 어둡게한다 진리을 왜곡하고 거짓사상을 유표하고 무신론을 만들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한다 마귀는 지금도 이런 일을 계속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참 하나님을 알개하기 전에는 우리 민족이 참 하나님을 아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만족은 조상 묘자리가 후손들의 길흉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인간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다 ) 부적과 미신, 무당과 점괘가 한국인의 신심을 지배하고 있다 혼탁한 한국인의 영적 세계는 상당부분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은 선교사의 등을 타고 비로소 오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복음을 한국에 전해준 이후부터 한국인은 비로서 참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방법을 깨닫기 시각하였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이를 증거하시는 성령하나님과 성경 없이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못하고 바르게 섬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들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마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 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타종교 내에 있는 영적 혼탁성과 악령의 역사를 간과하면 참 신앙은 파괘된다
(딤전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4) 중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으며 하나님자녀와 세상자녀의 구별을 간과하고 있다
다원주의는 인간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하나님과 새로운 생명적 관계가 바로 중생(거듭남)이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므로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다 (요3:5-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 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하나님은 거룩하시 신이시기에 하나님 자녀들 도덕적 표준이나 삶도 한다 구별되어야 한다 (마6:25-33 )다원주의는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 자녀와 세상자녀의 구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 세계와 세상을 구별하고 하나님 자녀와 세상사람을 구별하고 있다 예수님 가르침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하나님 자녀는 세상 일로 근심하지 않는다(마5:47)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 (요일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하나님 아들을 구졸 모신 생명을 가진자가 하나님 자녀이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 자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 요일5:4 )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인해 하나님 자녀가 되었고 생명을 얻은 자들이다 하나님은 비그리스도인을 통해서도 많은 선한 일을 하실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진정한 일군은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거듭난 하나님 자녀들이다 그들은 빛의 자녀요 빛의 하나님 나를 건설하는 일꾼들이다
(5) 다른 종교에 없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칼 바르트가 말한대로 성경 속에 나타나는 세계는 철학이나 도덕이나 다른 종교에서는 그 유비를 찾을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 . 세리나 창기가 율법학자보다 먼저 천국에 간다 일곱 번식 일흔번이라도 용서해주는 사건도 있다 마침내 하나님 아들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는 세계가 성경 속에 있다 율법적 세계에서는 도저히 찾을수 없는 은총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이 지극한 은총은 예수의 십자가 은총이다 성경은 도덕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책이 아니고 인간이 죄인됨을 깨닫고 예수십자가 은총을 믿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책이다 나아가 조이인]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원수까지 사랑하는 새 인간을 만들기 위한 책이다 예수십자가와 부활은 어느 종교에도 없는 독특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요 기독교의 핵심이다. 다원주의는 이 사실을 외면한다 십자가 은총은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뜻밖의 은총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하고 있다 죄인은 의롭다고 선언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계시는 죄인들에게는 소망의 메시지이지만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도덕군자와 종교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된다 다른 모든 종교 창시자들은 무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아들 구주 예수그리스도는 부활했기에 무덤이 없다 예수만이 죽음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그리스도 부활에서 시작된 새 생명, 영생을 주는 것이 참된 종교 기독교이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요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계시하신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결 론
하나님의 은총은 세상 도처에 빛나고 있다 하나님은 선한자나 악한자나 모두에게 해를 비추게 하시고 비를 내려주신다 (마6:45) 하나님 은총은 비기독교 세계속에서도 빛나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 속에서도 옳고 성스러운 것을 발견할 수는 있다 이란점에서 로마천주교회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리스도중심적 배타주의가 다른 종교에 대한 전적인 부정 내지 멸시로 이어지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모든 문화나 종교 속에 존재하는 선한 것들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또한 이 선한 것들이 참진리를 온전하지 못할지라도 상당부분 반사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을 유념해야한다
이런 이유로 다른 종교의 가치와 비기독교 세계의 문화적 가치를 긍정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긍정은 무한 긍정으로 이어져서는 아니된다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한 낙관주의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종교 속에 존재하는 영적 지식의 심각한 오류와 왜곡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일반종교와 문화 속에는 진리를 반영하는 것도 존재하지만 완전히 적그리스도적인 요소도 존재한다 우리는 인류가 죄와 오류에서 해방되기 위해 성경을 주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성령님을 보내신 하나님 은총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전적으로 육화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의미한다 예수그리스도를 상대화시키는 종교다원주의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고 기독교만은 절대화할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이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계시를 절대화하는 이유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그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계시는 절대적인 신의 계시가 된다 종교다원주의는 에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아낳는 신학적 경향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계시를 상대화시키는 신학적 귀결을 초래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포기해서는 않된다 그러나 이것은 타종교와 문화를 완전히 멸시하는 배타주의적으로 언급되어서는 않된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빛 아래서 타종교와 문화를 살펴보는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바라보는 변증법적인 시각에서 타종교와 문화를 언급해야 한다 이것이 타종교와 문화에 대한 바른 대화의 방법이고 또한 이것이 타종교와 대화를 향한 참된 기독교의 선교방법이다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반드시 성경적이어야 한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기독도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는 성경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다면 선택의 폭은 좁다. 그 결론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행4:12, 요14:6, 딤전2:5).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확신하는 동시에 타종교와의 폭넓은 개인적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알고 이를 접촉점으로 하여 적극적인 설득전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마28:19-20 등)에 대한 충성스러운 실천이며, 다원화된 이 사회에서 오히려 꼭 필요한 복음전도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V. 기독교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
서구 철학과 신학이 동양 종교의 가치를 발견하고 상대적으로 비평주의에 근거하여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비교종교학적 자세는 역사적 예수에 기초한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었다. 기독교를 이렇게 상대화 할 때 교회는 스스로의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호진 교수는 라토렛의 주장을 인용하여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강조하지 않는 어떠한 형태의 기독교도 수세기를 통하여 스스로 재생산하는 능력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한다.종교다원주의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들은 성경도 기독교 밖의 계시가 가능하며(멜기세덱,욥,발람 등)예수님과 바울도 대화를 통해 전도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시긴 했어도 그들의 잘못된 신앙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책망과 교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결코 그의 확신을 주저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가감없이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바울 역시, 그가 루스드라에서 신으로 예배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자연종교를 찬양하기 보다는 분명하게 그들의 종교와 신관을 책망하면서 헛된일을 버리라고 권고하였다(행14:15 이하). 물론 여기서 바울이 인간숭배를 금지했지만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개종을 권고하였다. 성경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을 말하는 교훈도 많이 있다(요4:22,14:6, 행4:12, 고전 10:14,21;12:2,고후6:16, 갈5:20, 요일 5:19,21; 19:20,21 등) 로쟌 대회의 그리스도 유일성에 대한 성명서에서도 “....일반계시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못박아 말하고 있다.
복음주의적 신앙고백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천명하고 있다.그리스도의 사역자가 가져야할 중요한 확신 역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 구원의 길이라는 것이다.이 확신이 흔들리게 되면 선교는 불필요하거나 허망한 일이 되고 말며,우리의 신앙 자체도 무너지게 된다.또한가지의 확신은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복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고 했듯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이 복음을 통해 구원을 얻으며 복음은 이와 같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 A.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거부하는 사상들
(1) 성경의 기록과 예수는 역사적 사실과 인물이 아니다
고등비평가들 중 성경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이 많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근거없는 가설일 뿐이다 기독교는 사실에 근거한 종교이다 누구도 반박할수 없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 엔더슨)
기독교 신앙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 그 가치나 소중함은 믿는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대상-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에게 달려있다
예수의 탄생 , 십자가 죽음 , 부활 승천, 무리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들은 등은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다 헬라 신화들에 나온 부활등은 비역사적이고 허구적이다 기독교의 가르침과 기적들은 역사적 나사렛 예수와 관련되어 있다
(가) 신약시대 신약 성경 저자들은 예수와 그의 사역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거나 직접 목격한 자들이 말을 직접 듣고 성경을 기록하였다 벧후1:16 요일1;1-3 눅1:1-3 행1;1-3 고전15:6-8 요20:30-31 행10:39-43 벧전5;1 행1:9 행2;22
(나) 신약 성경 저자들은 독자나 청중들이 예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했다 사도들은 원수들에게 “당신도 이것은 알고 있지 않소? ” (사실이 아닌것을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사도들의 이런 질문에 그 원수들은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해다
(다) 신약 복음서는 전설도 아니고 신화도 아니다 C. S, 루이스 : “나는 평생동안 전설, 신화를 읽어왔다 나는 그 작품들을 잘 안다 성경의 4복음서와 같은 그런 작품은 결코 보지 못했다 ” 역사는 증거에 대한 과거에 대한 지식이다
미국 과거 대통령 링컨을 보지 못했어도 그를 알수 있는 유일한 증거에 의해 그의 신체적 방법은 신체적, 구두적, 문서적 증거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알길이 없다
(라) 예수그리스도는 역사적 인물이다
1). 세속적인 권위자들이 이를 증거한다
Cornelius Tacitus (주후55-120) 는 네로항재 치하에서 기도교인들이 활동을 서설하고 있다 사모사타의 루키안은 . 로마 역사가인 수에도니우스는 예수가 선동하여 유대인들에서 소요가 일어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플리니 총독은 트라얀 로마 항제에게 기독교인들에 대해 보고하고 처벌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2). 유대교 문헌이 증거한다
기독교애 대해 비우호적인 유대교 문헌에도 예수가 유월절 전날밤에 잡혀서 죽었다고 말한다( 요19:14) 그리고 예수는 처녀아들(사생아)라는 말을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 탈무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주후37-100? ) 는 <유대인의 전쟁> <유대인 의 고대문화>에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한다
3). 기독교 자료
신역성경이 기록되기 이전에도 신앙고백문들이 있엇다 ( 눅24:34 롬1:3-4 롬4:24-25 고전15:3-5등) 신약성경 27권은 예수그리스도가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음을 결정적으로 중거하고 있다 사도시대이후 속사도 시대에도 여러문헌들이 에수의 역사성을 증명한다 로마 교회 감독이던 클래멘트의 서신, 안디옥 감독이던 익나티우스이 서신 , 그리고 바나바 편지등 많은 서신들이 예수을 증거하고 있다
4). 기타 역사적 자료들 ;
트라얀 로마 황제가 플리니 총독에게 보낸 서신, 하드리안 황재 편지,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글들이 역사적 예수를 증거한다
2974년 판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은 예수의 설명에 대해 2만자를 할애하고 있다 세계 유명인물 중 최대의 기록이다 18세기가지 예수의 역사성을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다
적대적 비기독교 자료들은 예수의 역사적 실재를 증명해왔다
(2) 기독교는 타 종교에 대해 관용하지 못하다,
관용이란 다른 사람들의 신앙이나 풍습등을 서로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알아주고 존중해 주는 것, 그리고 특별히 똑같지 않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일을 참아주고 견디는 것이다 (옥스포드 사전) 오늘날 관용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에 슬그머니 아주 조직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A. 헬름보크 : 관용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였다
“모든 개인의 신념,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진리에 대한 인식은 모두 동일하다 너의 신념이 내신념이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진리는 포용적이며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그 날개 아래 끌어모은 다는 것을 전제한다 “
반론 : 실제로 모든 진리는 어느정도까지는 배타적이다 왜냐하면 진리가 아닌 것은 거짓으로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도가 서울 하나뿐이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을 비관용적이라고 비판할수 없다
진리를 알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말하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냐 거짓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관용한가, 비관용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의 이말슴은 참이던지 거짓이든지 둘중 하나이다
결론이 오직 하나뿐일 대 열린 마음으로 있는 것은 닫힌 마음 못지 않게 오류이며 위험한 일이다 어떤 진정한 부인할수 없는 실재에 대해 마음을 열기가지는 그 열린 마음은 열린것이라고 말할수 없다 열린 마음은 텅빈 마음이 아니다 헷갈려서는 않된다
오직 하나만이 진리일 때 두 번째 대안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어놓아서는 않된다 그것은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가이슬러) 차선은 최선에 최대의 적이다 닫힌 마음으로 비관용적인 사람은 기독교를 지지하는 많은 강력한 증거에 대해 안면을 몰수하는 사람이다
(3) 포스트 모던 사상 : 절대적 진리란 없다
오늘날 철학의 주된 흐름은 해체주의 혹은 포스트모던 사상이다 포스트모던은 모든 의미와 진리의 상대성을 강조한다 제1원리 즉 모던 철학적 탐구를 시작하게 해주는 출발점을 구성하고 있는 보편적으로 수용된 진리를 부인한다 진리란 없으며 진리란 사로에게 상대적인 것로만 존재한다고 한다 지역의 다른 사람들 다른 문화속에 사는 사람에게 기독교는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절대 보편적 진리를 부인한다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우주가 존재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본다 우리가 만든 개념들을 사용해서 새상을 구성한다고 주장하며 객관적 시체를 부인한다 절대 진리란 없으며 도리어 진리는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마다 상대적이라고 한다 (이런 사상은 참으로 무섭다 나치 공동체, 스탈린의 공산주의도 진리라고 받아들여질수 있다)
반론 :
빌리 그래함이 말한 하나님은 분명이 살아 존재하신다란 말과 마달린 오헤어가 말한 하나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중 다른 것 하나가 진리이면 다른 것은 거짓이다 둘다 진리요 둘다 거짓일수 없다 만일 진리가 상대적이라면 누구도 절대로 틀린 사상을 가질수가 없다 실제로는 틀렸는데도.... 내가 잘모되었을 대도 나는 옳다 나느 아무것도 배울수 없다 배울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 잘대로 옳은 것으로 나아갈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명료성 위에 서있다 예수는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다 치우자이다 하나님과 인간(지인)사이의 화해자이시다 이런 사상에 예수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를 남겨주디 않았다 (요14:6) 사도 베드로도 이를 업그햇다 (행4:10-12)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시대의 누구에게나 해답이 되든지 해답이 되지 못하든지 둘중 하나이다
우리의 화신, 신념, 부인에 관계없이 진리는 존재한다 하난미은 존재하신다
과거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둥글다고 생각한다 지구가 평평했다가 둥글어진 것 아니고 지구는 그대로 있으나 우리 판단과 신념이 변한 것이다
진리는 우리 마음에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버트란트 럿셀 )
마음이 진리나 거짓 자체를 창조해내지 못한다
무지한자가 자기 신념대로 행동하면 대책없다 천하무적이다
“진리는 없다 ” 라는 진리를 확증한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며 동시시에 임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이 진술이 진리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없기 때문이다 “- W. Lane Criag 박사
포스트 모던 사상은 그자체에 모순을 갖고 있다 자가당착이다 그것을 수용할 어던 이유도 없다 객관적 진리가 없을 때 잘못이라는 것은 있을수 없다
인류가 끔직하게 싫어하는 범죄도 이제는 받아들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모던은 우리의 심상 이미지와 실제를 비교하기 위해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갈수 없기 때문에 실제를 객관적으로 알수 있다는 사고를 배척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반론 ; 우리는 완벽하게 알수는 없겠지만 추후에 새로운 조사를 통해서 입장변화가 가능하다 절대확신이 없다는 것과 우리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은 도무지 알수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포스트모단은 회의 주의 속에 딩굴 수밖에 없다
과학 기능의 성공은 세상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정확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독약인데도 내생각에 레몬주스라고 마시면 않된다 갚은 강 위의 얇은 얼음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걸어가면 빠져죽는다 포스트모던 사상은 결혼생활도 불가하게 만든다 남편은 나애 말을 , 아내는 남편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학 때문이다
(4) 동양의 신비주의
일본 선불교에서 선은 일반적 추론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 모슨되거나 일관성을 상실하느데 신경쓰지 않는다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은 논리에 정 반대되는 것이며 나는 이것을 이중적 사고라고 부른다 ( 스즈끼)
사물의 이해에서 직관적 투시를 선호한다 논리를 거부한다 동양 신비주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체계적이고 일관성이 있는 진리를 가늠하는 “기준” 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서구의 논리르 거부한다 이들은 신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한다 신은 동일한 의미에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이것 저것 다 포용해야 한다
힌두교는 전형적인 이것도 ,저젓도 다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비모순의 법칙이 부인된다면 아무것도 의미를 기질수 없다 논리를 부인할 때 그 어느것도 확신을 가질수 없다 모두를 포용하고 인정하는 범신론 사상은 아주 위험한 사상이다 자동차 3대가 내앞으로 달려오는데 환상이라고 착각하고 그냥 있으면 치어죽는다
Francis Schaeffer 가 영국 케믑리지 대학에서 남아프리카 유학생들 모임 방에서 토의하고 강의를 할 때 한 힌두교의 인도 청년이 기독교 사상을 비난하면서 모던 신념체계는 동일한 것이며 잔임함이나 비잔인함이나 근본적 차이가 없고 동일한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그때 어느 학생이 뜨거운 물이 든 주전자를 힌두교 학생의 머리에 부었다 인도학생은 뜨거워 펄펄 뛰면서 무슨 짓을 하느냐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때 뜨거운 물을 부은 학생이 말했다 “ 잔인함이나 비잔인함이나 동일하다며...뜨거운거나 찬거나 동일하다며 왜 그리 화를 내느냐 ? ..” 그 인도학생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강의실을 황급히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5) 무신론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신같이 전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주에 혹시 어딘가에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개인과 사회에 미래는 암울하다 하나님 없이 그 존재를 부인하며 혼자 살아보려는 무신론자들은 자살을 하거나 미쳐버렸다
사르트르 : 나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누군가가 준비하고 미리 작정한 산물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오직 창조주 대문에 나는 여기 존재해 있는 것이다...“
(6) 불가지론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고 주장한다 탄트는 말하기를 物 자체는 알수 없다고 하였다 칸트의 강경한 불가지론의 맹점은 사물 그자체는 알수 없다고 선언한 것에 관한 지식을 획득할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칸트를 포함하여 그누구도 그것을 알수 없을 것이다 칸트를 포함한 불가지론의 결론은 “ 나는 실제로 알수 없다는 것을 안다” 라는 것이다 기독교신학에서 불가지론은 하나님 실체가 존재하는지 알수 없다고 믿는 신념애 국한된다
B.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요 하나님 아들인 이유 :
기독교가 유일한 참 구원의 종교인지 아닌지 알려면 기독교가 구주로 하나님으로 믿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인지 아니지 살펴보면 된다 그는 유일한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스도의 탄생(도성인신 =성육신)은 안류 역사에서 유일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신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탄생을 수세기전 아니 수백년전에 예언되어져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예수만이 아주 수세기전부터 그의 탄생이 예언되어졌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 그 예언대로 정학하게 이 땅에 오셨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역사가가 타키투스의 증언에 의하면 “동방이 승하며 유대에서 세상의 지배자이자 주인인 그분이 나올 것이라는 고대 예언을 사람들은 거의 다 믿고 있었다고 하였다 고대 중국에서도 , 희랍에서도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새왕이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다 구주 예수님은 그탄생이 미리 예언된 유일한 분이다 그리스도 출현은 인류역사를 둘로 구분하에 하였다 ( 주전 , 주후=서기) 모든 사람은 살기위해 태어나지만 그리스도는 죽기 위해 태어나셨다(삽자가에서 죄를 대속하기위해 죽으심) 그리스도는 단순한 현자가 아니다 그는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다
역사를 보면 자기가 신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다 그 주장이 정당한가는 이성과 역사를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다 그가 신으로부터 왔다면 적어도 그가 탄생 전에 그주장을 뒷받침할수 있는 예고가 있어야 한다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등은 수많은 성현들이 그들이 탄생전에 수백년전부터 탄생하리라는 예언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랜 세월전부터 탄생할 것을 수없이 예언되었다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는 그의 탄생이 유일하게 예언된 사람이다 인류는 인류를 구원하고 해방시켜줄 구원자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출현으로 세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침으로 역사가 그리스도 탄생 전후 ( BC와 AD )로 서기 전과 서기후로 가르게 되었다 그누구도 인간 역사를 두 시대로 가르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기 위해 태어나지만 그리스도는 죽기 위해 테어 나셨다 그는 단순한 성현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세주이시다 예수가 유일하신 구세주요 하나님이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고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기독교 경전인 성경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기에 예수는 유일한 구세주시오 하나님이시다
문제는 성경이 과연 진리의 책인가 하는 것이다 성경이 진리라는 것은 성경 자체가 증거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아 기록한 하나님 말씀이다 (딤후3:16)
(1) 성경은 유일한 책이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한 하나님 말씀이다 성경 66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종적 게시가 된다 성경을 넘어서는 다른 계시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다른 종교 경전에도 물론 진리가 들어있다. 희랍 시나(행17:28) 외경(히11:35)에도 진리는 있다 그러나 성경만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주신 교리적이고 윤리적인 모든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만이 모든 진리의 기준 내지 정경이다 모든 다른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성경에서 성경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성경 66권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성경의 초자연적 예언과 그성취들, 놀라운 통일성과 월등한 도덕수준, 하나님에 의한 구원 방법의 예언과 성취 ,세계적인 공공성과 역동적인 힘등이 성경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하고 있다 성경은 예언을 기록하였다 : 코란, 몰몬경, 힌두교 베다등 거룩한 영감이 있다고 고 주장하지만 이들 가운데 그어떤 책도 앞날에 대한 예언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가이슬러) 성경에서 수세기 전에 에언된 것도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성취된 예언은 성경이 거룩한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구약성경에서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예언이 문지그대로 성취된 것은 332개이다 -헤밀턴
Payne은 모두 191개를 열거하고 있다 (그의 선구자 세례요한, 그리스도 탄생,소녀시절 ,
사명과 직분 ,수난 , 부활, 승천, 재림등) 성경은 세계에서 나온 책중 유일한 책이다
유일하다는 의미= 홀로 하나이다 모든 것과는 다른 , 똑같은 것이나 비슷한 것이 없는
세계 모든 책을 다 쌓아놓아도 성경 한권의 가치와는 비교할수 없다 성경책과 다른 책은 엄청난 간격이 있다 성경은 모든 것과 다르다
성경은 45인 이상에 의해 1500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상호 다른 수백개의 주제를 다룬다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이야기만 풀어간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간 구원이다 창세가의 실낙원은 계시록에서 복락원이 된다 성경 전체의 주인공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시자 구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역사상 그 어느 책보다 많이 제작되고 보급된 책이다 1998년에 제작 배포한 성경은 성경전서 2,80만부 낱권성경 2,010민권 부분성경, ,1,850만부등 모두 5,850만부가 발간 배포되었다 이 세상에서 이토록 지속적으로 보급된 책은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할지라도 성경이 유일하다는 것은 증명해주고 있다 성경은 파매부수는 물론 그 번역에서도 유일하다 아무리 유명한 책도 수십개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성경은 2200개 언어로(1999년)로 번역되었다 이세상에 아려져 있는 언어는 6500개인데 그중 1/3이지만 이 2200언어가 세계 인구의 90%가 넘은 사람들이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언어들이다 역사상 그어느책도 그 번역에 있어서 성경에 견줄만한 책은 없다
모든 문학 작품을 망라해서 성경만큼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은 없다
성경만큼 독자들에게 풍성한 것을 제공하는 책은 없다 (시반) 성경은 책 중의 책이다
인류 역사를 통털어 성경만큼 많은 책을 쓰도록 영감을 불어넣은 책은 이 세상에 없다
( Susan Gallagher ) 인류 문명은 그 어떤 것보다 성경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관점보다 더 고상한 영적 개념은 없다 성경은 인간이 알수 있는 최고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理想이 인간의 문명을 만들었다 (가이슬러)
성경이 참 진리요 유일하신 하나님의 참 계시의 말씀인 것은 성경 자체가 증거한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하나님이 증거해주신다 성경이 만들어진 자체도 도 성경 내부의 어떤 신적인 힘의 결과이다
아타나시우스의 말
“필자가 예기하거나 요청한 것도 아니요 어떤 시기에 어느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이 작성하여 된 것도 아니다 시일이 흐르는 동안 그 문서 내부의 어떤 힘이 신자를 만들고 교회를 형성하게 하여 마침내 권위 있는 글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
신역성경의 역사성과 진정성은 오늘날 확고하게 증명되었다 정확한 원본과 수많은 사본 증거는 고대 세속적인 문헌과 비교할수 없이 많다 신약성경 저자들의 결백성은 물론 그 증언의 독립적인 성격과 수에 의해 입증된다 성경본문에 대한 정확성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1세기 세속역사로부터의 뒷받침과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들로부터 증거되고 있다 성경 원본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격과 동일하다는 것은 많은 사본연구를 통해 의심없이 확증되었다 ( F. Kenyon)
2.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한분이시다 : 둘이면 전지전능자가 아니다 둘이 존재한다면 둘은 차이가 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한쪽이 갖고 있는 것을 다른 쪽은 갖고 있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전능이 아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임을 주장했을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 생애와 교훈을 통해서 증명하였다 그이 탄생과 생애가 기적으로 가득차있다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즉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다 그가 가르치신 것은 모두 진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가 하신 말과 행동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의 탄생이 독특하다 에수그리스도는 탄생이전 수백년, 수세기 이전에 그 탄생이 예언된 분이다 세상 어느종교창시자도 이런일은 없었다
(1). 예수그리스도가 직접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다
모세도 부처도 공자도 모하메드도 자신을 직접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예수만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으셨다 교회는 2000년간 그를 하나님으로 경배하여 왔다 예수가 자신을 하나니이라고 주장한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막14:61064 내가 그니라 요10:25-33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요5:17-18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알한다 요5:23-24 성부 하나님에게 돌려져야 할 영예는 예수그리스도에게 돌려져야 한다 요14;1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 요14:8-9 나를 본자는 하나님을 본 자이다 등등
내가 위대한 철학자라고 말한다면 나는 정신이 좀 나간 사람일 것이다 내가 나폴레온 같은 정치가라면 나는 정신이상자일 것이다 더구나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면 완전 정신 이상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셨다 예수임은 완전 정신 이상자가 아니면 참 하나님이시다 -Peter Kreeft
(2).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기를 허락하셨다
마8:2 요9:35-39 마14:33 요20:27-29 계19:10 마28:17 히1:5-6
(3), 제자들이 그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다
(가) 바울 : 롬9:5 빌2:6-11 골1:15-17 골2:9 딛2;13
(나)세례 요한 : 눅3;22 요1:29 요1:34 (다) 사도 베드로 : 마16:15-17 행2:36 밷후1:1 (라) 사도 도마 : 요20:28 (마) 사도 요한 : 요1;1 요1;14 요일5:20등
(4).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일을 하셨다
요5:11 죽은 자를 살리실수 있었다 삼상2:6 하나님이 생사를 주관하신다
요1:2 골1“16 만물을 창조하시다 사40:28 창1;1 렘10:16
막2:7 죄를 사하신다 렘31:34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신다 죄를 사하심 : 막2:5-17
행5:31 행13:38 예수님에게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부여하고 있다
(5)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말을 하였다
(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유한한 피조물은 누구도 이런 말을 할수 없다 )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요10:18, 등
(6), 신성에 대한 예수의 간접 증언
자신이 생명이라고 말씀함 : 요14:6 그안에 생명이 있음 : 요일5:11-12
예수는 권세가 있음 : 요5:27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나는 사람들을 안다 나는 그리스도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예수를 종교의 신들과는 비교할수 없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감만이 존재한다
그이 영혼이 나를 압도한다 그의 의자가 나를 꺽어버린다 그와 견줄만한 자는 아무데도 없다 그이 가르침이나 계시는 이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다 “
3. 예수의 십자가가 유일성을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좌를 대속하기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 당시 십자가 처형은 가장 고통스럽고 무서운 처형방법이었다 비록 그리스도가 무죄하였지만, 그는 ꡒ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ꡓ(요 1.29)으로서 최악의 죄인이 당하는 죽음을 죽었다. 그러므로, 그의 십자가 죽음은 다른 십자가 죽음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인류가 범한 모든 죄에 대해 하나님에게 형벌을 받는 저주 받은 죽음이었다. 로마 정부의 사형 선고는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을 처하라는 하나님의 선고를 시행하는 도구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것은 그 자신은 무죄하면서 동시에 인류를 대신하는 최대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버림과 사형이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할 자는 하나님뿐이다 전혀 죄가 없어야 하고 대속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은 모두 다 죄인이기에 이를 감당할수 없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그릿도는 인류의 조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인간이 받아야할 죄의 형볼과 저주를 대산 짊어지셔시고 죽음을 당하셨다 (죄의 심판은 죽음이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의 십자가 데속의 은총을 믿고 그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언을 받게 된다 타 종교에는 신의 아들이 인류 죄 위해 십자가지는 것이 없다 성경안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 칼 바르트 )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중 하나는 죄문제이다 죄 때문에 인간에게는 무서운 심판, 죽은, 고통과 비극이 왔다 죄는 용서를 받던지 아니면 형벌을 받아야 한다 유한한 죄인인 인간은 그 누구도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값을 치룰수 없다 무흠하시고 전능하신 하신 하나님 아들만이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벌을 받으셨다 누구도 인간의 죄문제 해걸할 수없다 그래서 공자도 인간이 하늘에 죄를 범하면 소고지할 길이 없다고 언명했고 우리나라의 유명한 성철 스님은 은 평생 도를 닦았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에 내 죄는 수미산 (불교에서 말하는 큰 산 높이가 500만 키로 이상이라고 함) 보다 높아 이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말하고 운명하였다
(자기 무서운 죄인임을 깨들은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 못하고 지옥으로 간 것은 안타깝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자기의 죄와 죄의 결과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인간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만이 참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 은혜로만 , 그리고 그 은총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하는 자만 구원을 받게 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표시하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그 어떤 종교도 은총에 의한 십자가 대속(대신 속죄)에 의한 구원을 주장한 일도 없고 할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만 가능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어 하나님과 원수지간이 된 인간을 십자가에서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인간과 하나님을 화해시키셨다 오로지 성부의 영원한 아들만이 그가 이간의 모양을 취하는 비하를 통해서 세상을 구속하고 은혜의 작정을 집행하는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제거되어야 할 악은 죄와 죄의 결과들, 하나님의 진노, 사탄의 권세, 그리고 일시적인 사망과 영원한 사망이었다. 그 자신이 역시 무한한 자의 수난이 아니라며, 그 누구의 수난으로 무한한 하나님위엄에 대한 모욕이 속죄되겠는가? 하나님의 극진히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라며, 그 누구의 중재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힐 수 있겠는가? 모든 마귀보다 더 강한 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의 힘으로 사탄과 모든 흑암의 권세가 정복 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심지어 죽음도 관장하는 능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히2:15(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
불교의 아미타불불교의 은총교리는 대승불교(2세기 용수보살이 창설) 의 교리로 이는 원래 부처 가르침에는 없다 주후 2세기 인도에 도마 사도가 전도한 후 기독교가 전파되어 기독교와 접목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불교가 변질된 것이다 용수 보살은 그시대에 이단으로 정죄되다 불교 윤회설을 볼 때 은총의 교리는 불교교리와 맞지않는 것이다
4. 예수의 부활이 그의 유일성을 증거한다
예수그리스도는 그가 미리 예언하신대로 십자가에서 완전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10여차례 나타나시다가 약 50일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다 이 부활은 죽음을 정복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유일한 구주며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초석이다 ”(마운스) ;그리스도 부활 없으면 기독교 신앙은 헛것이다 (고전15:14-19)"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한 신앙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요 구원의 완성을 입증하는 것이요 복음의 기초이다
타종교에는 교주가 부활한 종교 없다 그들 무덤이 다 있다 예수만이 부활하시다
-모든 종교의 교주들은 부들 죽음이 문제 해결 못했다 그들 자신도 죽음 영생의 문제 해결 불가능했다 부처는 불상한 과부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인간은 누구나 다 죽는다고가르쳤으나 예수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그 아들을 살리셨다
생명의 주는 오직 예수 뿐이시다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세계 4대종교외에 다른 종교들은 하나같이 단순한 철학적 가정을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철학 시스템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에게 토대를 두고있다 4대 종교 중 기독교만이 빈무덤을 그 창시자로 내세우고 있다 유대교의 조상 아브라함은 주전 1900년에 죽었으나 그는 한번도 자신이 불활했다고 말한 적 없다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는 그가 살아있을 때 부활같은 일들에 한번도 언급한 일이 없다 (윌버 스미스) 죽은 후에도 나타난 일은 더욱 없다 회교 창시자 모하메드도 자신이 부활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활이 없었다 그 사실을 수많은 그의 신도들이 알고 있다
예수님은 그가 예언하신대로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불활하였기에 그는 하나님 아들임을 증거하셨다 요10:18 그는 스스로 생명을 취할수도 버릴 능력도 있었다
성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동일하게 하실수 있엇다 주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했던바 그의 부활로 그것이 입증되었다 그가 부활하지 않고 사망에 매여 있었다면 그는 하나님 아들임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시도들과 교회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설교 핵심이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부활은 우리 구원을 완성시켜준다 부활은 다른 모든 종교 창시자들과 예수그리스도를 분명히 구분하는 역사적 징표이다 아브라함 모하메도, 석가모니, 공자, 조르아스타(배화교 창시자) 의 뼈는 여전히 이 땅 위에 있다 그러나 예수님 무덤은 여전히 비어있다
“ 실제로 모든 증거를 다 합쳐보면 예수의 부활보다 더 나은 지지와 다양한 지지를 빋고 있느 역사적 사건은 하나도 없다 ”
( Brooke Foss Westcott 영국 캠부리지 대학 교수 1825-1901)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변화되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체포되었을 때 그를 버려두고 다 도망했다 (마27:56, 막14:50) 그러던 그들이 예수 부활이후 목숨을 바쳐서 예수부활을 증거했다
환상이나 거짓을 통해서 제자들이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는 대가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얻은 것은 조롱, 채찍 작대, 순교의 죽음이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들이 동기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이 그일을 지속할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누가 거짓을 위해 그토록 오래동안 포기하지 않고 죽음을 무릎쓰고 예수부활을 증거할수 있는가? J. P. 모어랜드 제자들의 변화가 부활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존 스토트)
제자들이 부활 사건을 확실하게 알지못했다면 진리를 계속해서 확신할수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사회 도적 체계를 변화시켰다 그들은 완전히 변화되어 예수부활을 증거했다 (예수
동생 야고보, 처음에는 불신했다가 나중 믿고 순교했다) 사도 도마도 예수부활을 의심했다
가 나중 부활하신 예수를 마나고 믿고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거의 2000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부활로 인해 그 삶이 변화되었다
부활하신 하나님 아들 예수그리스도만이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킬수가 있다
예수의 부활로 인해 유대인들이 지켰던 안식일(현 토요일)이 제자들에 의해 예수가 부활하신 일요일(주일)로 바뀌어졌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 대신 주일을 준수하였다
결 론
오늘날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종교적 다원주의와 종교적 연합 운동의 실체는 진리를 말한다고 하나 성경적 진리와는 상극(相極)이다. ‘모로 가더라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어떤 종교든지 구원의 진리로 이끈다’는 생각은 사탄이 가장 애용하는 교묘한 속임이다. ‘당신에게 진리를 향한 진심과 열정이 있는 이상, 하나님은 당신이 무엇을 믿는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유사 이래 기독교의 유일성을 파괴하는 가장 은밀하고도 강력한 핍박이며, 도전이다. 기독교의 유일성에 관한 사색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오해와 배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보기에 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 14:12). 그 길에는 넒은 문과 길이 있어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그 길은 멸망으로 이끈다. 오직 진리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도 협착하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가는 자마다 생명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마 7:13-14). 기독교의 유일성과 진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만 진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현실이 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기독교가 참된 유일한 구원의진리임을 증명하기란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비한 신앙의 일 , 천국과 영생에 문제는 과학으로 증명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자들도 과학의 법칙이 완전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인간에게서 나온 것은 언제나 완전한 것이 없다 오직 하나님에게세 나온 것만 온전하다
우리 영혼의 본향인 천국, 하나님이 계신 곳,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뿐이다 다른 길은 없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은 예수님이 직접하신 말씀이지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신앙을 고백한 고백의 언어가 아니다 그들은 보고 들은 것을 진실하게 기록한 진실의 언어이다 성경의 사건들을 냉정하게 진실하게 살펴보면 제자들은 그런 사랑의 고백적 언어로 성경을 기록할 인물이 못된다
진리는 절대 배타적이다 비타협적이다 기독교는 진리이다 새 생명이다 절대 편견이다
예수 자신이 진리요 영적생명이다 다른 주장 못하도록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게로 올자가 없다고 하셨다 성경이 이를 증언한다
(고전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행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아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했는데도 다른 길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중환자가 유면한 전문의가 제시하는 유일한 치료법을 불신하고 자기 나름대로 치료방법을 찾아 보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다 하물며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유일한 구원의 길을 거절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이 주신 완전 처방책이 있음에도 그것을 거절하고 부인하며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를 반대하는 자는 예수를 하나님 아들 구세주로 믿지 않으며 또한 성경의 기록의 하나님 계시성과 神言임을 부인하는 자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부인하는 그것이 참인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런자들을 보시고 어리석은 자라고 판단하시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다른 구원의 방법을 알기 위해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 아들 구주 예수그리스도가 말슴하신 그대로 믿고 행하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또한 예수 외에 다른 길을 찾아가는 자는 반드시 절망하게 된다 모든 구원과 축복의 근원이 하나니이시다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간다면 필경 실패하고 절망에 처할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선을 추구하여 하나님에게 이르려고 노력하는 자는 결국 절망에 될 것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해 있다 인간 구원, 영생에 관해서 철학자들, 실존주의자들은 해답을 갖고 있지 아니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제시한 구원의 길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다 주 예수그리스도 말씀을 부인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은 구주 예수님에게 “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당신은 거짓말쟁이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당신의 말을 전혀 믿을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들 구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값을 치러 주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원 계획과 그 사랑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 제임스 보이스 )
주님은 말씀하신다 모든 다른 길을 포기하고 내게로 돌아오라“
(요5:40-41)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3:19-20)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인간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기독교의 유일성 또는 초월성은 어떤 명분에서도 양보하거나 제거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한다든지 자선과 구제에 있어서 범국민적인 참여가 필요할 때에는 종파를 초월하여 협조할 수 있어야 한다.
다원화된 사회 환경 속에서 배타적인 자세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타종교의 신봉자들도 사회 구성원들 중 한 부분을 이루고 있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한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따뜻하게 받아드리는 자세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야 하겠다. 이것은 그들의 구원관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회 속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며 보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에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적으로 잃어진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참 생명의길을 소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예수님께서도 불신자들이나 죄인들을 대할 때 사랑으로 영접하셨고 그들에게 진리를 소개하고 음식을 제공하셨다. 그리고 "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쫒지 아니하리라" (요 6:37) 고 말씀하시며 아가페적인 사랑의 자세를 보이셨다. 불신자들을 대하실 때 마음속으로는 민망하게 여기셨지만 결코 그들을 무시하거나 얕보지 않으셨다.
(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롬1:18-23)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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