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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리 차이 (이명진 목사칼럼 39 )

하마사 2010. 6. 29. 22:32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리 차이 (이명진 목사칼럼 39 )

 

시내산 회원 여러분에게 주님의 크신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해외에서 한 영혼 구원을 위해  복음에 전념하시는  선교사님들에게 

성령하나님의 충만하심과 도우심이 을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리 차이를 올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고 도움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 교리 차이   


서   론


가톨릭은 이단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동일한 하나님과 구주 예수님을 믿는 교회로 별로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로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천주교를 알기 위해서 나타난 현상들만을 살펴보면 실패할 것입니다. 교리가 좋아도 좋지않은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들도 많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며 또한 시대 흐름에 따라 신앙생활 양식은 물론 교리 자체도 바뀌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를 알기 위해서는  그 교리를 집중 이해하고 개신교와 같은 점과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이해를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신교도들 중  천주교를 이해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이단같이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나의 신앙의 기초는 마리아도 아니고 교황의 권위도 아니고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아주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특히 제2차바티칸 공의회 이후(1962-1965) 천주교회는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미사를 드리고 신자들에게 성경 읽기가 허용되고 특히 우리나라 경우 성경 강해 (피정등)가 현재 활발하게 일어나서 천주교회도 개신교와  상호이해와 협력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봅니다  기독교인은 누구나 다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나 사람마다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다릅니다. 어느 교파이든 그 교파의 교회에서 자라온 사람은 그 교회가 교회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교회들을 제대로 모르면서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만으로 교회를 정의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개신교 교인들은 우리가 천주교라고 부르는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가 어느 교회보다 더 역사가 깊고 방대하고 영향력이 있는 교회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닌 오해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피차가 함께 얻을 수 있는 유익도 많이 놓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를 바로 알기 위해서 우리들에게는 베일로 가려져 왔던 가톨릭을 한번 집중적으로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글을 통해  개신교회나 천주교회 성직자들은 물론 신자들도 상대방 교리의 올바른 이해와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교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I. 전통과 성경


A. 전  통(승)


천주교 주장 :

1. 전 승(전통) 이란 ?. 

전승이란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현재까지 전해 내려온 교회의 신앙과 실천,교리적 가르침은 물론  전례, 행동규범, 경험 ,거룩함등 전체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성서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초기 교회공동체로부터  전해 내려온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을 의미한다 전승이란 말은 라틴어의 트라디치오 ( traditio) 란 말인다 이말은“전달하다 부여하다 주다  넘겨주다” 란  말이다


기록된 말씀 외에도 기록되지않은 말씀 곧  구전전통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다   구전전통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 가르쳐졌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않고 여러세대를 거처  구두에 의해 물려받은 것이다  이구전은  교회 회의들의 선언과 교령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기록된  말씀보다 우선권을 가지며  기록된 말씀을 해석한다  지상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은 새로운 상황들이 발생할 때  성경에 첨부해야할 것을 제정할수 있다  트렌트 공의회는 1546년 하나님 말씀과 전통이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고 선언하였다  양자에게 동등한 숭배를 돌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천명하였다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그리고 사도들이 교회에게 넘겨준 것은 무엇보다도  기쁜 소식인 복음이다  즉 구원 현실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하나님과의 일치  친교 교통을 위해  구원 현실을 전파하며 전달해주고 있다   똑같은 유일한  구원의 현실이 역사 안에 지속된다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신적 구원 현실, 구원의 복음은  교회의 살아있는 신앙이라고 할수 있는 전승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역사 안에 드러나고 현실화된다


2. 전승의 근거및 필요성

(1)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 말씀들 사도들 말씀이 있다

(요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살후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요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두가지 방법으로  실행하였다 즉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성전(聖傳)과 기록된 가르침(성서) 이다  성전의  가르침이 시간적으로 성서보다 앞선다  기록된 것은 필연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과 현실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전체가 전해지는 집약적이며 우선적인경로는 전승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전승이란 개념을 통하여 신적 구원 경륜이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행적과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인간과 교통하고 내어주셨음을 즉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음을  성서는 확인하여 준다 (계시2항)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초기 공동체의 그리스도께 대한 특별한 체험은  사도시대 이후로 이어지는  모든 세대가 갖는  신앙 체험의 규범이다  사도들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의 신앙 체험과  삶과 가르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규범으로 남았다 이렇게하여 신앙의 유산이 형성되었다  기초적 계시가 사도시대로 끝났지만 사도들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신앙의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또다른 형태의 공적 계시를 기다려서는 아니된다   그리스도를 초월한 다른 새로운 계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나타나기 까지는  어떤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계시 4항)



3. 성서와 전승 & 전승의 원천

성서와 전승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수 없다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 유산  안에 내포된 신적 진리에 대해 확실성을 얻기 위해  성전 혹은 성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성서와 성전 모두에 의존한다  성경은 성서뿐먼 언러 전숭도 동일하게 지키라고 명령한다 (살후2:15)

두가지가 모두 하나님 말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인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전승과 성서를 분리시키거나  상반되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은  복음 전파에 역행하는 것이다

전승과 성서는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서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하다 (9항)

거룩한 전승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성령하나님은 전승이 내적인 초자연적 주체가 된다  성령은 전승의 영혼이라고 할수 있다 교회는 전승의 역사적, 가시적인 주체이다  그리고 이 교회 안에서 구원의 복음 이 더 올바로 이해되고  보존되며 지속적으로 발전된다 전승은 특히 믿는 이들의 관상과 연구, 신앙심, 교도권, 전례, 교부들의 가르침 등에 의해 발전된다


개신교 주장 :

1. 전통은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에 일치하는 전승만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전통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이 성경과 일치하고 진리 위에 세워져 있는한 그것을 신중하게 사용한다  예컨대 우리는 다양한  교회들의 고백과 회의의 선언들  특히 고대교회와 종교개혁 당시의 그런 것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다루어야 하며 신중히 보존하고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교리나 전통도 성경에 위배되는 것,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교리나 전통은 마땅히 반대하고 폐기되야 함을 주장한다  과거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지도자들이 실수로 많은 전통과 교회 선언들이 나중에 오류이었음이 밝혀진 것은 셀수없이 많은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개신교는 잘못된  교리나 교회 전통이 성경에 비추어 위배된다는 것이 발견되면 즉시 고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성경만이 진리와 거짓, 선과악의 최종 판단의 근거가 된다 로마천주교는 교회가 성경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개신교는 성경의 능력이 교회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아타나시우스의 말

“필자가 예기하거나 요청한 것도 아니요 어떤 시기에 어느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이 작성하여 된 것도 아니요 시일이 흐르는 동안 그 문서 내부의 힘이 신자들을 만들고 교회를 형성하게 하여 마침내 권위 있는 글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2. 성경은 전통보다 엄청난 큰 권위를 가진다

개신교나 로마교회나 모두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이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개신교는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권위있고 충분한 규칙이라고 믿는다 로마천주교는  외경,  교부들 저서,  엄청난 교회선언들 과 교령들로 이루어지는 전통들도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고 한다  우리 신앙과 행위의 규범은 성경외에 전통에 의해 보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멧세지가 전통과 교회에 의해 말해진 해석에 의해 족쇄가 채우질 때 그것은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중단하고   교구민들의 조절을 위해  성직자들 손에 들려진 도구가 된다  로마교회는 성경을 전통의 빛 아래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실상 전통을 성경 위에다 둔다  그결과 로마천주교는 성경이나 혹은 성경과 전통에 위해서가 아니라  전통을 세우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하는  교회 자체에 의하여 지배를 받게 된다 


3. 전통은 성경을 파괘시키는 이유 :

자유주의가  하나님 말씀을 삭감한다면 로마교는 성경에다 무엇을 덧붙힘으로  성경과 기독교를  파괘하고 있다 구전전통은 가치가 없다   전해 내려오는 소문은 권위있는 진리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1) 이야기는 운반 도중에 상실되지 않는 것이 없다 변질되게 마련이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다 

 (요21:21-23)  .....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 일련의 전통은 신적 혹은 사도적  기원을  갖는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전통들은 다른 전통과 서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초기교부들은  성경을 자유롭게 읽고 사용하는 것 그리고 성상을 갖고 예배드리는 것을 을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  후기 교부들은 그것들을  정죄하였다  교회교부들이 , 교회 회의들,  교항들의 교령들은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로마천주교 저술가  벨라민은 전통을  신적인 전통( 그리스도가  가르쳤고 제정하신것중 기록않된 것) , 사도적 전통(사도가 말한 것), 교회적 전통들(수많은 교회선언들과교령들)을 구분했다. 그러나 이모두 수세기 동안 계속 그대로 전승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엄청난 전통들은 중세기에 수도승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연옥, 사제직, 미사 ,화체설,  죽은자르루아한 기도, 면죄, 고해성사, 동정녀마리아 숭배,  예배사 성상사용, 성수,  묵주알 ,  사제와 수녀독신주의,  교황제도  등등 은 오직 불확실한 전통(민간에 유포된 소문) 에 근거해서 세워진 것들이다 로마교회 성직자라도 수많은 책들, 교회 선언, 교련 , 수천가지 규칙들을 다 알지 못하고  그 방대한 자료들에 오류가 있는지 판단이 불가능한 실태이다


4.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 말씀들, 사도들 말씀에 대해

(1) 기록되지 않은 주님 말씀이 있음을 인정한다 (요20:30-31) 그러나 기록된 말씀으로 충분하다 기록된   말씀 제쳐놓고 굳이 기록되지 않은 말씀을  찾을 이유가 없다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다  교회의 선언등이 신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져서는 않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와 절대성이 약화된다  기록된 정경으로 충분하다 수많은 구절들이 성경의 충족성을 를 증거한다 (사8:20)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충분히 유익하다)  주님은 성경의 무오성을 말씀하셨다 (요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

(눅16: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나사로와 부자 예화에서 부자 형제들은  구원에 필요한 충분한 정경을 알고 있었다)

신약저자들은 성경을 권위있고 최종적인 것으로 분명하게 언급한다  외경이나 교회 선언으로 보충되어야 한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불충분하지 않다)


(2)  전통을 말씀보다 우위에 두었기에 성경에 의해 전통이 정죄받았다

(막7:8-9)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7:13)  (마15:3) 

(마15: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


(3)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삭감하면 저주가 임한다(신4:2)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결론

말씀보다 전통이 성경과 동등하게 되거나 우위가 되면 결국 교회는 변질되고 타락하게 된다 예수님 당시 전통주의는 너무도 잘못되고  강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떠났던 이유는 그들이 성경자체보다는 전통과 교회 회의의 결정들을 따르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흥정했기 때문이다 성경과 전통을 동등하게 두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반드시 다음 단계인 전통이 성경보다 우위에 두게되는 단계로 진행하게 된다  전통이 인간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ㅈ변ㄹ화시키지 못한다 오직 성령께서 기록하신 성경의 말씀곧 하나님 말씀만이 인간을 변화시킨다 천주교 신자들이 성경을 배우고 강해를 들을 때 성령하나님으로부터 그들 심령에 큰 은총이 임하여 은혜가 충만한 것을 수없이 본다   


B. 성  경  

천주교 주장

1. 성경은 교회와 사도들의  유산이다

신약성서는  교회 신앙의 확인을 통하여 글로써 태어난 사도들의 유산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교회의 거룩한 책이다  교회 안에서 기록되었고 교회를 통하여 존재하게 된  성서는 교회 신앙을 통해서만  그 의미가 바르게 이해되고 해석되고 보존될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영원한 삶의 규범인 성서를 받았다  교회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적 말씀인 성서를 태어나게  해주었으며  그것을 자신의 규범으로 보존하고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하면 성서는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태어나게 되었지만  교회의 역사적 설정 요소가 되며  교회 삶의 영원한  규범으로서  교회를 역사안에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하며  생활하게 해준다  이렇게 성서와 교회사이에는 내적인 긴밀한 관계, 변증법적 관계가 존재한다


2. 성서는 기록된 전승이요 교회의 영원한 기초이다

신구약성서는 사도전승과 히브리 전승에 의한 결과이다  이러한 전승이 없었다면 성서는 이세상에 존재할수 없었을 것이다  교회가  믿고 소우하고 있는 모든 것은 성서의 본문에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도들의 믿음과 체험, 그분과 내적인 관계, 살아있는 삶에 의한 것이엇다  성서는 복음을 전달하고 있는 사도전승의 일부가 기록된 것이다 교회 전승을 통해 교회는 어떤 것이 경전이고 어떤 것이 위경이지를 식별할 수가 있었다

기록된 가르침(성서)는 그 개념의 의미로 볼 때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의 결과이며  그 표현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사도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신앙 유산은  성서뿐만 아니라 여러 구원현실  , 신앙체험과 이에 대한 이해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로부터 사도들에게   전달되고  사도들을 통해 교회에게 전달되는  모든 것 , 그들이 전하여  주고있는 신앙 유산에 포함ㄷ되어 있는 모든 것을 사도전승이라고 한다  예수그리스도안에 성취된 신적 계시는 두가지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기록된 가르침과(성서)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전승)  이다  성전은  성서보다 더 온전하게  신적 계시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성서는 복음을 온전하고ㅠ 생생하게 전달되게 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성전(전승)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한국카톨릭대사전)


3. 성서의 이해와  해석은 교회 권위와 성전을 통해서 가능하다 

성서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전승의 힘을 빌리지 않을수 없다  성전의 도움이 없다면  성서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할수도 없고  그 확실성을 증명할수도 없다  따라서 오로지 성서만으로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9항)  초기의 여러이단들은  신적 계시를 성서에만 의존하여 해석함으로써 등장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벧후3:16-17)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성경은 결국 최고의 권위와 교회전승을 따라 해석해야한다 그래야 수많은 교파가 발생하지 않고 교회 분열을 막는다  성경이 결국은 교황에 의해 권위있는 해석이 되는 것이며 학자의 학식이나 지식에 의해서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오경환 신부).


4. 정경은 개신교가 주장하는  66권이 아니라 외경이 포함된다

 가톨릭은 성서목록을 만들던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성서인 73권을 가지고 있고 개신교는 66권만을 가지고 있다. 이 엄청난 차이에 대해서 신중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 1세기 경전의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의 대립된 이견이 있었다.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다음 그곳에 있던 유대교 교사들은 얌니암(Iamniam)으로 피난하여 살았다. 그러다가 90년에 회의를 열고 경전목록을 결정했는데 그때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역'을 배척하였다. 이것이 소위 제 2경전에 해당되는 책들이다. 개신교는 당시의 이들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들 유대인들보다 훨씬 먼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유대인들은 제 1경전, 제 2경전(외경)의 구분 없이 전체의 성서를 다 인정하였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제 2경전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다음의 성서구절을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마태오6:14와

집회28:2, 로마1:20∼32와 지혜15:7, 에페6:13∼17과 지혜5:18∼20, 히브11:34∼35와 마카후서6:18∼7:42, 야고1:19와 집회5:11, 그리고 베드로전서1:6∼7과 지혜35:7 등이 그 예이다. 초대 교부들도 제 2경전을 성서로 인정하고 인용했다. 예를 들어 1세기엔 글레멘스 로마누스가 유딧서와 지혜서를, 2세기엔 폴리카르포가 토비트서를 그리고 이레네오가 바룩서를 인용했다.까따콤브에도 토비트의 생애와 수산나의 이야기 등이 벽서로 남아있고, 4세기에도 유명한 성서학자 예로니모는 두 경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초대교회로부터 약 1,500년간 성경목록에 문제가 없었는데 소위 '종교개혁' 이후에 갑자기 제 2경전을 삭제하였고. 이로써 오늘날 개신교는 66권, 가톨릭은 73권의 성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 박도식 신부)


개신교 주장: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최고의 권위를가진다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무오한 규칙이며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성경의 권위에 의하야 지배를 받아야 하는 하나의 절대규범이다 로마교회는 교회가  신앙과 행위의 문제에서  최고의 권위자이다  교회가 정경을 만들었다 고 주장한다 우리는  교회가 성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의 권위와 능력이 신자와 교회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아타나시우스)

로마천주교는 교회가 정경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칼타고 회의에서 신약정경27권을 제정했는데 이때는 교황이 없었다  주후 451년 칼타고 회의에서 로마교황이 인정되었으나 동방교회에서는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모든 사제를 모든 사제들과 감독들이 교황(파파)으로 불리웠다  또한 기독교 시작된 후 약 400년동안은 로마교회보다는 동방교회가 주도권을 가졌다 그레고리1세(주후590년 임명  604년 사망) 실제로 교황제도의 창시자이다 칼타고 회의 전부터  교회는 신약성경책들이 하나님 영감으로 된 거룩한 하나님의 계시인것을 것이 인정되었다 성경 자체의 능력이  그것을 증거하고있다 이미 존재하였던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교회는 나중에 추인한 것뿐이다 경찰은 위조지폐를  참지폐여부를  감식할수 있으나 참지폐를 만들 수는 없다 참지폐는 조폐공사만 만든다 하나님만이 참성경을 만드실수 있다 로마천주교는 전통적으로  일반 신자에게 성경을 금하여 왔다 6세기부터 16세기 동안 1000년간 로마교회가 지배하였을 때 성경은 금지된 책으로 머물렀다

 

2. 성경은 완전하므로  무엇을 추가하지 말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로마 천주교는 성경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전통을 성경과 동일한 권위에 올려놓고 성경을 보중한다고 한다 전통이 성경과 동일하거나  우위에 있게 된 때는 교회는 계속 부패의 길을 걸었다 오직 성경만이 영원한 진리요,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의 모든 삶과 믿음의 절대적인 표준과 기준이 됨을 믿는다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자로 지혜롭게한다고 말씀했다.

성경만이 절대진리이다 천지가없어지기전에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마5:18, 24:35)  

추가하거나 삭제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한다 (신4:2, 계22:19) 그 누구도 성경을 추가하거나 삭제하지 못했다

 

3. 성경 해석은 성경자체가 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한다

천주교 사제들은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수 없다  교회가 해석하는 방법으로 교부들이 만장일치로 동의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만장일치란 순전히 신화에 불과하다. 동정녀마리아 무염수태 교리는 만장일치가 아니다   안셀름  보나벤투라 토마스아퀴나스는 이 교리를 반대하였다 스스로의 해석을 금한 결과로  그들은 성경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어느 교파도 성경을 완전무결하게  해석할수 없다 각 교파는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성경 해석을 한다  로마천주교는  성경 그 자체에서 교리나 신조를 만들기 보다는 먼저 생긴  전통(특히 민간에 유포된 민간 신앙이나 소문들)을 제도화하면서  앞서 생긴 전통을  후대에 성경을 가지고 그것을 변호하고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연옥 교리와 마리아 숭배가 가장 대표적인 성경 일방적 해석 가운데 하나이다  마리아의 무흠수태 (예수님의무흠수태가 아니다) 교리는 중세 아퀴나스나 버나드등도 반대한 교리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참가회원 1/3이상이 반대했었다   1950년  11. 1일은 교항 비오12세는  창3;15, 아가서 3:6  4:8  사60:13  눅1:28을  근거로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리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애매한 것은  마리아 승천은 교리이지 신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고 신조는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 해석의 원리는 어디까지나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그 성령과 동질의 성령을 받을 때 바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하나 . 성경은 독자적인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한 구절 해석할 때에 문맥만 중요하지 않다. 성경 전체를 보면서 맥을 잡아서 해석하는 것이 옳은데, 결국은 성경 자체가 성경을 풀어주는 것이니다. 우리는 이런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목사나 신학자만이 성경을 바로 해석한다고 하지 않는다. 어떤 가톨릭 신자 한 분이 있는데, 이 분이 성경을 많이 읽어보니까 도저히 마리아에 대해서 용납이 안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에게 가서 이것이 잘못 아니냐 하니, 그 신부도 들어보고 동감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 성경의  무오를 절대로 믿고 읽는사람들에게 성령님은 그 본래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주신다다    천주교는 마리아론은 세우면서 민간에게 유포된 전승을 교리화 하기 위해 전통적인  성경해석방법을 왜곡하여 해석한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1:20)라는 말씀에서 천주교 주장대로 이는 성경을 개인이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해석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저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이유는, 곧 이어 나오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는 말씀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임의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것이므로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해석해야함을 강조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요 16:13).( 골3:16을 보자).(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 주님의 말씀은 어느 특정 계층에만 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히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4. 외경은 정경이 아니다 :

로마천주교는 14권의   외경을 동일한 성령의 영감된 정경으로 받아들인다

외경이란 헬라어 “ 아포크리파”  란 단어에서 나왔는데 교회 저술가들은 그 의미를 1) 순겨진 비밀, 2)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날조된  3) 정경에 속하지 않은 , 인정받지 못한 ,위조된“ ;  로 말하였다 (외경 15권중  제2에스드라서는  트랜트 공의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주로 죽은 자를 위한 기도, 그럼에도 로마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널리 행하고 있다 )  외경은 구약의  종결과 주님 오신 그사이에 기록된 것들이다


외경이 정경이 아닌 이유:

(1) 예수그리스도나 사도들이 외경을 인용한 적이 없다  신약성서에는 구약성경의 절로부터 직접 인용한 것이 260군데나 있고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이 370군대나 있는데  외경 인용은 한군데도 없다  이는 그리스도나 사도들이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은  증거이다

예수님 당시 구약성경은 소위 70인역인 알렉산드리아 역본(히브리어 성경을 핼라어로 번역함) 과  히브리어 역본이 있었는데 로마교회는 외경을 포함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역본을 따르고 있다 이 70인 역본은 원래의 히브리어 역본과 아주 다른 것이다 히브리어 원본에는 외경이 없다  유대인들은 한번도 구약외경을 정경으로 말한 적이 없다

 

(2) 저명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주후 90년경  유대 율법서와 예언서등 구약성경 목록을 작성 했는데 외경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른 유대자료도 요세푸스를 지지한다  초대교부  오리겐,  터툴리안과  , 니케아회의에서 정통의 옹호자이었던 아타나시우스도  벌게이트의 번역자이덨던 제롬도  외경을 배척하였다 제롬은 외경이 구역성경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였지만  친구 권유에 못이겨 즉석에서 토비트서와 유디트서를 번역하였는데 불행하게도 나중에 이것이 벌게이트번역판에  섞여지게 되었다 (로레인 뵈트너)

(3)  트렌트 공의회(1546 )가 가 외경이 정경이라고 선언하기까지 약 2000년이상 외경은 정경으로 인정되지 아니했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에 위배되는 교리를 맹공격할 때 로마교회는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외경들을 정경으로 포함시켰다  마카비서12:40-45에  연옥에 관련된 구절이 나오는데 연옥교리 수호를 위해 마카비서를 경으로 채택한 것이다   로마교회는 구약외경은 정경으로 포함시켰지만 신약외경은 정경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자들 주장을  반박할 내용이 없고 오히려 종교개혁자들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4) 외경 자체가  그 어느 책도  스스로 하나님의 영감된  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5) 외경 안에 내용들이 오류가 많다 정경과 비교해서 위배되는 사상을 언급한다

유딧, 토비트서는 역사적 연대적 지리적 오류들이 있다 거짓과 술수를 정당화하고  구원을 개인 공적에 의존토록하고 있다   인간 구원을 하나님 은혜가 아닌 인간 공적에 의존하도록 한다 이를테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구제를 해야한다고 한다( 집회서3:30,토비트서 12:9, 4;10  14:10-11)  바룩서3:4 에는 하나님이 죽은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유디트서는 거짓 ,기만의 삶을 사는 가운데 하나님 축복을 받는다  집회서 ,솔로몬지혜서는  우주가 무로부터 하나님말씀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선재하는 물질로부터  세계창조를 가르친다 ( 지혜서11:17 ) 창세기 기록과  정반대이다 다른 정경의 교훈과 상반된다

 

(6) 히브리어를 라틴어로 번역한 벌게이트 역 서문에서  제롬은 말하기를 오늘날  구약에 포함된  책들만이 성경에 속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외경은 단지 참고서 역할을 할 뿐임을 말한다

-성경의 권위가 다른 것과 동일하게 취급될 때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교회 선언, 교회의 교령등이  전면에 앞서게 된다는 것이 성경과 교회 역사의 교훈이다 인간이 만든 전통과 사상과 관습이 성경보다 앞서게 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그러하였다  로마교회는 교회의 전통과  권위가 성경을 앞선다 그러나 그 권위와 전통은 비합법적이요 비영감된  것들이기에  온갖 오류와 모순을 야기하게 되었다

Beckwith : " 여러 외경과 위경들을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정경에 포함시킨 것은  일치된 생각으로 그리된 것도 아니고  초기에 그렇게된 것도 아니다  다만 교회가 회당에서 분리되어 나오면서 초기 기독교 경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이방인 신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외경과 위경의 정경성에 대해여 초기기독교의 참된 증거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II. 마리아 숭배


마리아에 대한  카톨릭교회의 주요교리는 다음과 같다

(1) 평생 동정녀이었다   (2) 하나님의 모친이다  (3) 원죄에 물들지 아니했다

(4) 사망 후에 승천하였다 (5) 인류 구원의 동역자, 협력자이다

(6) 교회의 어머니로 모든 신자들의 공경을 받아야 할 중재자이다

 

1. 평생동정이신 마리아

초대교부들은 마리아가 해산 전에 동정이었다고 증언하였다   주후553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신조안에  영원한 동정이란 용어거 등장하였는데  사실 이는 그 이전부터 이뤄진 표현이다  마리아는  해산전에  해산중에, 해산후에 영원한 동정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마리아는 항상 동정녀로 표현되고 있다  마리아는 이방여신도 아니고 인간 여성과 신의 성적 결합으로  묘사되는 이방인들의 신화도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정 잉태는 초대교회에  두루 알려진 사실이었고  이 전통을 마태 복음기사와 누가복음 기사가 이어받아 복음서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성서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평가는 확대 발전되어 교의로 확정되어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성서에서의 마리아는 복음 선포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언급되었으며  또한 교회론과 관련되어  하나님의 뜻을 찾고  행하는 제자 공동체 안에서  "예"로 응답한 신앙인의 모범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교부들이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보였던 까닭은  예수의 인성이 오해를 받을수 있기 때문이었다

 

2. 하나님의 어머니

니케아 공의회, 에베소 공의회(431년)  교의로 선포되었다

칼케돈 공의회는 에베소 공의히 선언을 재확인하였고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553) 그리고 마침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재학인되었다  신적 모성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육을 따라서 말씀을  출산한 마리아는  말씀의 어머니이고  그말씀은 곧 하나님이기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인 것이다


3. 원죄가 없으신 마리아 잉태

1854년  12월 8일 교항 비오9세 교서:“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전되었다"  이 교리의 출발은  신적 모성의 직무와 품위는  신성성과 비례해야한다는  사상에서 비롯하였다 즉 하나님의 아들 거처가 될 수 있는 자격 조건으로서의 신성성이다  마리아의 거룩함은  교회의 거룩함과 연결되어 있는데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언급되었다  교부들은 이러한 순결한 교회상을  계속 발전시키며 마리아에게서 순결한 교회 모습을 찾았다  원죄에서 보호되었다는 것은  마리아가  자신의 존재, 삶, 그리고 의지를  하나님께 자신을  봉헌했다는 뜻이다   교회는 마리아도 구원을 필요로하는  인간임을 인정하지만  마리아가 지닌 무죄성이란 특권은  마리아가 예수그리스도의 모친으로 그리스도께 완전히 참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그것은 성서가 계시를 통해 드러내고 있듯이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이란 는 의미이다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에 관한 교의는 한분이고 유일한 중재자 예수그리스도의 구원론의 핵심에서 나온 한 신앙조항인 동시에  교회론적 조항이기도 하다  교회의 거룩함은 모든 신자들의 원형인 마리아 안에서 완전히 실현된다  따라서 이 무염시태 교의는  바로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하고 있다  1858 년 3월 25일  루르드에서 발현한 마리아는 자신이  원죄없이 잉태된 자라고 밝혔다


4. 마리아의 승천

교황 비오12세는 1950년 11월 1일  발표한 교황령에서 선언하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었던 하나님 모친인 마리아가  지상생애를 마친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신앙의 진리이다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  성경구절은   세례받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천상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모든 세례 받은이 들의 예형이요  모범으로서  죽음을 극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리아 현양은 세상 종말에서의 교회의 현양을 위한 보충이 된다


5. 마리아은 인류 구원사역에서 그리스도와 동역자이다

이레니우스 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 '하와의 불순종 죄악의 매듭은  마리아의 순명(종)을 통해  풀어졌다   하와가 자신의 불신앙을 통해 얽어맨 매듭을 동정녀 마리아가  자신의 신앙을 통해서 풀었다

교회헌장 8장   1절(52-59항) : 공의회가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전부 설명하거나 신학자들의 노력으로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다

구원 계획안에서의 성모의 역할은 성서와 교부들의 이론에 근거한다  창3:15 및 사7:14을 인용하여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의 모친으로 마리아를 이레니우스 이론을 바탕으로 마리아를 두 번째  하와라고 하였다  마리아는 자유로운 신앙와 순종으로 생활한 사람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인류구원의 협력자임을 강조한다  예수그리스도와 마리아의 밀접한 관계는

눅1:41-45  눅2:34-35  눅2:41-52  요2:1-11  요19:26-27 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6. 마리아는  온 신자들의 중재자인바  공경을 받아야 한다

교회헌장 8장 3절 (60-65항) : 딤전2:5-6 을 근거로  분명하게 중재자는 오직 한분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마리아도 분명 중재자 또는 협조자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중재는 하나님 호의에 의한 것이고 그리스도 중재 역할에 근거한다  마리아 인격과 사명이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일치되어 있듯이  교회도 긴밀하게 일치되어 있으며 마리아는 교회의 원형이 되며  교회를 우이한 성덕의 모범이고 종말론적 교회의 모형이며 시작이다

교회헌장 8장 4절( 66-67항) :마리아는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 받아야 한다  신자들의 마리아 공경은 에베소 공의회 이후 전례적인 표현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마리아 공경은 그리스도인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주며 특히 갈라진 형제들과( 개신교) 교회일치를 위해  마리아 공경문제로  오해를 일으킬 여지를 피해야 한다 마리아신심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자녀다운 사랑과 덕행의 실천적인 본받음이 있어야 한다


7. 마리아는 모든 신자의 모범을 보이신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다

교부들의 마리아에 대한 진술은 성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진지하게 성서를 숙고하고

찾아낸 마리아와 하와의 대비관계는  마리아가 하나님 구원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독특하게 드러내고 있다

교회헌장 8장  1절(52-54항) :마리와 교회 연결점은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점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며 동시에 교회의 모친인 것이다  마리아 공경에 관하여 종교개혁자였던 루터나 칼뱅은 긍정적인 이장을 표현하였으나  "성서로만, 은총으로만, 믿음으로만, "을 내세운 루터는 마리아의 중재성을 반대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신자들과의 논쟁 중에 마리아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였고  카톨릭에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마리아 신심이 더욱 확대되었고  19세기에 샤로 설립된 수도단체 및 선교 수도회는 사도직을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역할과 관련시켜 마리아를 사도적 사명의 모범으로 생각하고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마리아를 본받음으로 사도적 열성을 드러내려하였다  또한 라 살레트, 루르드, 노크, 파티마등지에 마리아 발현과 관련된 성지 순례는 신자들의 마리아 공경에 큰 역할을 하였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마리아의 성실성은  눅2:19, 51 막3:35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마리아는 결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임을 명시하고 있다   성모신심에 관한 현대 교황의 가르침은  마리아 공경이 성서적 사목적, 및 교회일치의 관점에서 정립되고  신심행위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에 많은 유통성을 가질수 있지만  성모신심이 전례적이며  전통적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리아공경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되었고 4-5세기경 동방 교회에서는 마리아 축일이 제정되어 전례적  공경이 시작되었다

마리아가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낳아 육친의 어머니가 되듯이 교회와는 신앙과  사랑의 모범으로 어머니가 된다고 믿는다 이를 교회의 어머니란 의미이다 (교회헌장8장>


(결론)

마리아는 구원주 예수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잉태할 때부터 그리스도가 죽을실 때까지   성자와 결합하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신다  성자와 함께 고난을 당하셨다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 함께 바쳤으며  당신이 낳은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보소서 아들입니다 ”(  요19:26) 란 이 말씀으로 제자의 어머니가 되고   아울러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후에는  기도로 초기 교회를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리아는 당신 아들의 구원 사업과 성령 할동에 전적으로  참여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었다   이런 삶의 모습이  마리아를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독특한  지체의 전형으로  보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또한  지상에서 한 역할 못지않게 은총의 세계에서도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에 함께하여  구원 사업에  협력하신다고 본다  (61항)


개신교 주장 : 


마리아에 대한 개신교의 태도

여자중에 복이 있도다하신 말씀대로 그에게 부여한 명예와 함께 우리는  주님의 어머니를 지극히 존경한다  인류가족 가운데 그 어떤 사람도 성모 마리아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그러한 높은 명예를 받지 못했다  마리아는 참으로 높은 미덕과 뛰어난 믿음을 가진 여인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를 충실하게 완수하였다  마리아는  죄로 인해 저주받은 세상으로 생명의  떡이 오게한, 선택받은 도구이다  그녀는 생명의 그릇이었지  생명의 떡 그자체는 아니다 생명의 떡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구세주는 마리아가 아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마리아를 존경하며 그녀를 축복받은 여인으로 부른다  그이유는 천사의 말을 듣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를 신격화시키지 않는다  그녀에게  기도하지 않고 경배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두 서신을 통해서 마리아를 언급하지 않았다  유일한 구주요 , 중보자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였으나 마리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성경에는 어느 누구도 마리아에게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다


1,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여러 아들들을 두었다

(마13:53-56)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막6:3)  (요7: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마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을 낳은후에는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 그후 다른 자녀들을 출산하였다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예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로마교회 주장 : 성경에 나오는 예수 형제들은 사촌들이었다 고 주장한다

반론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생질(조카)는 “아내프시오” 이다  복음서의 예수 형제에는  사용되지 않은 단어이다


2. 하나님의 어머니

주후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451년 칼세톤 회의에서도  칼세톤 신조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공의회에서 의미하는 ”하나님의 어머니“란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 셰력에 대해 단호하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장하려는 의도에서 ”하나님의 어머니“란 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로마교회에서 불려지고 사용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


3. 마리아도 죄 가운데서 태어났다

죄가 없는 순결한 임신:  이 교리는 마리아가  무죄사태애서 태어났으며  존재의 시초부터 원죄의 흔적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원죄를 갖고 태어나지만 오직 마리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으로 예외적으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이교리를 선언하였다 이는 마리아의 탄생에서  완전 무죄를 주장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후 마리아는 이세상에 살면서도 일체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녀를 신격화하는데 일조한 사상들이다


마리아도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필요로하는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난다

(눅1:46-47)  (롬3:23) (롬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요일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그녀는 무죄하지 않다 예수님 십자가 은혜로 성령님에 의해 다시 태어나야할 죄인이다

-마리아도 예수님 탄생 후에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다 (눅2:22-24) 

-마리아  순결임신 교리는 1854년까지 공식 교리가 되지못했다

어거스틴은 마리아의 순결한 임신을 반대하였다  크리소스톰 , 유세비우스 , 보나벤투라

그레고리 대제, 교황 인노세트 3세.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교리를 반대했다 예수회 사람들은 이 교리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새롭게 선전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대부분 중세 신학자들은 마리아 무죄설이 보편적 원죄교리와 조화를 이룰 수 없기에 이 교리를 반대했다  만약 무죄라면 그녀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간 본성을 위해 요구되는 인성 사이에 접촉점이 될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4. 마리아 승천은 근거없는 주장이다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의 승천을 선언하였다 그녀의 육체는 죽은 지 얼마후 무덤애서 부활하였고  그녀 육체와 영혼은 재결합되었으며 그녀는 승천하여 하늘의 여왕의  자리에 앉으셨다고 선언하였다 

반론 :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19세가까지 이 교리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초대교부들은 마리아의 승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로마교회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무죄하기에 그가 무덤에 머물러 있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아가 진정 무죄하다면 왜 그녀는 죽었어야 하는가? 죽음은 죄의 결과가 이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은  무죄한 마리아에게 죽음을 허락하셨는가?  마리아는 죽지 않았거나 죄가 있기에 죽어서 무덤에 머물러 있든지 둘중 하나의 이론을 택해야 한다

로마교회는 예수님에게 직접 나아가지 않고 보통  먼저 마리아에게 가서 기도를 올린다

마리아에게 먼저 나아가서 구해야 효과적으로 예수님에게 하나님 에게 응답을 받을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마리아를 성자 예수님과 더불어 구원의 동반자로 구원의   하나님 위치까지  높혔다 성경에 근거없는  순전히 민간에  유포된 소문들과 전설에  의해 가장 최근에 그런 교리들이 확립되었다 마리아는 예수의 존재의 근원이 되게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무색케 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그리스도는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온다” 그리고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 예수에게 가야한다 “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상치되는 주장이다

예수님 십자가에 다리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은 찢어졋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이계신 지성소에  누구나 들어간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후 요엘2;28말씀대로 만민에게 성령이 임하였기 때문에 개인이 직접 하나님을 만난다 


초대교회는 마리아에 대한 숭배 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다  또한 수세기동안에 마리아 숭배를 하지도 않았다  오랜후부터 마리아에 대한 전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 이후  교회에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이  오래동안 섬기던  여신들  이시스, 이스타, 다이아나 , 아테네 , 어테미스, 비너스(아프로다이트) 등 우상에 여신에게 바치었던 미신과 숭배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런 다음에 편리하게  마리아를 숭배하였다  이방 우상들에게 절했던 방식 그대로 마리아에게 절을 하고 숭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방신들과 영웅들의 형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발전하였다  서서히 성자들의 형상으로 대체되었다   역사적으로 수세기동안 로마교회는 성자들과 같은 지방 신들에게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리고 마돈나의 형상 속으로 지방의 여신들을 흡수하였음을 보여준다

15세기부터 마리아 숭배는 널리 보급되었다 마리아에 의한 이적과 치유기적도 있으나 개신교신자는 물론 천주교신자들도  성령하나님에 의한 기적치유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경험하고 있다


5. 마리아는 구원의 동역자나 협력자가 아니다

로마천주교는 " 마리아는 그리스도 대신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다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축복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리아에 의해 보호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멸망을 받을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반론 :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0:1)   (요10:7)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행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런 성경구절은 천주교교리가 잘못되었음을 중언하고 있다

 

천주교가 주장하는 성경근거 ;

(눅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그러나 눅1:42의 말씀을 보면

(눅1:42) 큰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반론:여자 위에 있는 그대가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여자가운데 복이 있는 마리아라고 하였다  마리아는 여자가운데 복이 있는 여자이었지 모든 여자위에 있던  존재가 아니었다 

619년 교황 보니파스4세는 성자들을 그 축일에 찬양할 것을 명령한다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로마신전 판데온을  기독교회로 전환시키고  그장소에 성자들의 유골을 안치하도록 명령했다 그는 그 교회(판데온)를 축복받은 마리아와  모둔 순교자에게 헌납하였다



6. 마리아는 중보자가 아니다 그많은 신자의 기도를 다 듣지 못한다

천주교회의 주장과 그 반론(개신교) :

천주교 주장 :

(1).마리아는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진정한  평화의 중보자이다  죄인들은 오직 마리아를 통해 죄를 용서 받는다 그녀의 중재에 의해 죄인들에게 하나님 은총이 내려진다

반론: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 마리아는 그리스도 대신 우리 평화의 조정자이시다

마리아는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평화의 조정자이시다  마리아에게 요청함으로 우리는 구할 것을 더 빨리 얻게된다

반론: 예수님은 먼저 마리아에게 구하라는 말씀하신 적이 없다 (요16:23-2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엡2:13-14) 참조


(3)  예배의 대상, 중재자로서의  마리아,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옳은가?

보통 로마교회 신자들은 마리아가 신적 능력을 가졌다고 믿고 그에게 기도한다 마리아는 신이 아니다 성자들도 신이 아니다 신이 아닌 인간존재가 어덯게 게 그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언어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다 들어줄수 있겠는가? 하나님만이 전능하시고 편재하시므로 모든 사람의 기도를 들으실수가 있다 기도 들으시는 것은  인간 존재가 할수 없는 일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일이다 마리아나 성인들에게  기도하라는 구절이 성경에는 한곳도 없다 그것을 암시하는 구절도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별도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 마리아가 수천만 신자들의 기도를 다듣는다면 그는 신이다  

마리아는 죄인들을 위해 그리스도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고 한다 이는 신약성경 아무곳에서도 발견할수 없는 주장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 옆에서 죽어가는  강도가 회개할 때  그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낙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때 마리아의 중재를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요14:6) (행4:12) ......  (요일2:1)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롬8:34)

-마리아가 우리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기도하고 계신다

(히7:25)  ....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경은 중보자로 교황 ,마리아 성인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마리아가 중보자라고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로마천주교는 제2차바티칸공의회에서  중재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이라는 성경의 진술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마리아도 중재자이다" 라는 이해못한 말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을 민간 신앙에 유포된 것을 가지고 교리화할 때 모순된 진술이 나온다 지금 남미에서는 성령 운동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성경을 많이 읽을 때에 교회에 있는 마리아 동상을 막 부순다. 그러니까 가톨릭 안에서 정말 성경을 많이 읽으면 문제는 해결이 된다고 본다 그들은 마리아도 해방신학도 원치않고 성경과 성령충만을 원한다 (이장식 교수)

성경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다  성경만이 절대진리이다  모든 교리는 성경에 비추어 검토되어야 한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7.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가 아니다 숭배를 받고 경배를 받을 대상이 아니다

성모마리아  숭배는  비교적 최근에 새워진 것이다   사실 지난 100년간은 마리아 숭배의 시기로 불리워진다  대략 주후 4세가까지 마리아 숭배사상은 전혀 없었다  당시에는 성인( saint) 라고 불리워지는  사람들을 숭배했는데 마리아는 제외되었다 왜냐하면  오직 순교자만이 그런 숭배를 받기 시작했는데 마리아는  순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시녀이다

성경에는 동정녀마리아에 관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가 예수께 요청하는 모습, 사람들이 예수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였을 때 걱정되어 예수르 찾아온 일 그리고  행1;14에 제자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등이 나온다

사도들은 마리아를 경배하지도 않았고 그녀에게 기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리아에개 특별한 존경심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베드로 ,바울, 요한등 모두 그들의  서신에서조차  그녀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요한은 예수님의 부탁으로  죽을 때가지 마리아를 돌보았지만   그가 기록한  요한 서신이나 계시록에서 마리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은 마리아에게  어떤 기도나 예배나 숭배를 언급한 일이 없다

-성경은 성인숭배를 거절한다 (행10:25-26)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행14:15)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 사역지에서 앉은뱅이를 고친후 군중들에게 신으로 추앙되어 경배를 받아려 할 때 나도 사람이라고 하면서 급히 말렸다  (계22:8-9)

로마교회가 마리아를 극도로 숭배하는 이유는  수녀들과 여인들을 사제의 말에 복종시키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뵈트너) 그녀는 순종의, 겸손의 여인이다 여인이 따라야 할 모델이다


8. 마리아 숭배는 우상숭배이다

로마교회는 공식적으로 마리아 숭배를 부인한다 마리아는 단지 피조물이며 앚 고상하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전히 수백만의 신자의 기도를 듣고  세계 각처에서 자기를 따르는 신자들을 보호해준다고 가르친다  수백만 로마교회 신자들은 무릎을 끓고 마리아 형상 앞에서 그녀에게  기도를 한다  수백만의 신자들은  신학자들이 만든 하나님 경배(라트리아)와 마리아 숭배(하이퍼 둘리아), 성인들과 천사를 숭배함(둘리아)의 구분을  하지 못한 채 마리아에게 기도하며 보호를 요청한다

 

마리아 숭배가 우상숭배인  이유:

1) 이  기도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과 구분할 수 없다.  같은 용어 같은 종류이다

2) 이 기도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과정으로 드려진다

3) 무릎을 끓고 기도한다

4) 기도의 형식과 내용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과 동일하다

마리아는 수백만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줄수 있는 신적 속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마리아는 구원에 이르는 수단으로 숭배되고 있다  구원의 수단으로서 그에게 신적인 영예가 부여되었다  마리아 숭배는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는 기회를 종종 제공하기에 그녀에게도  커다란 불의가 된다  (마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마도 성모마리아는  이 말씀을  생각하며  자기 형상 앞에서 무릎끓고 기도하는 수백만 신자들을  보고 슬퍼할 것이다  신자들은 예배시 하나님께 대한  경배, 마리아 숭배, 천사들 성인들 숭배를 구분하지 못하고 예배드린다  어덯게 자기 감정을  예배  대상에 따라 그토록 정확하게 나누워서 경배와 숭배를 드릴수 있는가?


9.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예수님은 12세 때에도 사사로운 그 자신의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성부 아버지 일에 관심을 기울였가 ( 눅2:48-50)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도  그 어머니 마리아가  자신의 사역 시작에 에 대해서 어떤 지시도 해서는 않됨을 보여주셨다 (요2:1-5)  -마리아는 이제 에수님에게 복종해야 하는 위치에 선다. 마리아  숭배란 개념은 있을수 없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런 위치라면 예수님은 신속하게 그녀의  요구를 즉시 들어주셨을 것이다

(마12:46-50)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기를 희망해서 누구를 통해서든 그이 듯을 전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는 그녀의 요구를 무시하고 거절하였다

(요7: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마리아도 예수를 염려하고 불신 했을 것이다 (막3:20-21)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로마천주교 신자들이 마리아 숭배 근거로 삼는 구절

(눅11:27-28)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로마교회에 의해 가장 오해되고 오용되는 구절이다 마리아는 더 높은 위치에서 숭배의 의 대상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자는 누구나 복이 있다고 강조하심으로 오히려 숭배 사상을 거부하신 것이다  "복이 있다는 하나님 음성은 마리아뿐 아니라 다니엘등 여러 신앙의 위인들이 들었다


주님이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이후 “마리아의 호칭은 ”어머니“에서 ”여인으로 변경된다  (요19:26-27)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로마교회는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마리아를 숭배하고 있다   이 말씀은 요한과 마리아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며 교회전체에게 주어 진 것이 아니다 교회에게 주어진 말씀이었다면 사도행전이나  사도등 서신 ,바울 사도서신에 왜 그토록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단 말인가 오직 행전1; 에 그녀는 오순절 강림 전에 예수님 제자들과  합심해서 기도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요한은 그의 저서 요한서신 3권에서나 요한계시록에서 마리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III. 교 회 관

천주교 주장

1. 가톨릭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교회의 공식 명칭은 “ 거룩한 카톨릭교회 그리고 사도적인 교회” 이다

가톨릭은 마태오복음 16장 13절에서 19절까지의 성서내용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베드로에게 세운 교회이다.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 그래서 2천년의 많은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던 교회이다. 가톨릭의 본모습은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의 지상대리권(地上代理權)의 행사에 있다. 오늘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초대교황 베드로의 264번째 후계자이다. 2천년의 역사 안에 264명의 베드로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바로 가톨릭이다.

그래서 가톨릭을 '사도전래성의 교회'라고도 한다. 곧 가톨릭은 모든 가르침과 신권(神權)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소급되는 정통성의 그리스도교라는 말이다.그런데 혹자는 베드로에 대해 혹평을 한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신 마태오복음 16장 23절을 놓고 단순히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장애물이었다고 일축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해석상의 문제이거니와 여기서 베드로가 힐책을 받는 것은 그가 그릇된 생각 즉 너무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진정 그리스도의 장애물이었다면 어찌하여 그분께서 "그러나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라는 말씀을 하셨는가?(루가복음 22장 31∼32절) 우리는 또한 "네가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하신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도 기억해야 한다. 게쎄마네에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돌아오신 그리스도는 먼저 천국 열쇠를 수여했던 베드로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타이르셨다(마태오복음 26장 41절). 또한 그가 그리스도의 장애물이었다면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버렸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비록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배반은 했어도 또다시 눈물로 참회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였다. 혹자는 또 이르기를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그의 신앙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하나의 인격과 신앙은 엄격히 분간은 될 수 있으나,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운다면 신앙인은 모두가 교회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무교회론이 대두되게 된다. 왜냐하면 각자 모두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명칭을 붙여서 모일 필요가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오복음16장 16절의 교회는 신도대중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조직적인 교회임을 성서는 다른 곳에서 또다시 말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오복음 18장 17절) 교회는 벌써 신도 대중을 선도하는 한 조직체였음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신앙'이 '교회'라면 가르침을 부인하는 이들을 어떻게 신앙(교회)에 알릴 수 있겠는가? (박도식 신부)


2. 교 회의 원천과 기초   

교회는 베드로 위에 건설 되었다  교회라는 단어는 오직 신약에서 두 번만 나온다

마16:19, 18::17  이다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는 말은  교회가 예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원천은  예수적인 것 위에 다시 말해  예수와 베드로의 관계에서 주어진다    예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베드로가  맺고 푸는 종말로의 열쇄이다   예수는  시몬을 당신의 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바위의 기능을  정하고  베드로를 자기 자신의 바위 기능 ,기초기능에 참여시킨다 . (마16:17-19) 바위가 되신 예수가 시몬을 통해  자신을 대변하게 하신다  시몬은 바위로서 예수의 바위기능을 현대화시키고 중재하고 대변해야 한다


3.  교회의 본질 

3세기: 교회는 신비이다  교회는 자신을 예수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신비로운 결의를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세례, 성찬, 죄사함(참회)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부름받고  모이고 거룩함에 참여하게 된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엡5:22-23)  교회는 어머니이다  마리아이다  하와이다 교회는 달의 신비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태양이시다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고 태양빛을 받아 반사한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이다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  (  Extra ecciesian nulla salus )  교회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아니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7):

-일방적인 법률적 교회 개념을 거부함 -사회와 역사로부터 그리스도 신비를 분리시키는 것을 거부함   교회는 구원의 보편적 표지이며  성사로서 드러난다

교회는  볼 수 있는 집단이며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이다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잡한  실체를 구성한다 (교회헌장 8항)  위계질서적 개념이 직무 봉사와 연결됨  제도적 관점보다는  개별적이고 인격적인  관점에서 확대되었다  교회 안의 모든 개별적인 존재들은 모두  하나님 백성의 동료이다  그리스도적 봉사의 힘으로 일치되어 있다  그리스도적 봉사가  교회조작과 과제의 다양성의 뿌리이다 갈라진 그리스도 신도들의 공동체도 교회라고 불렀다 (교회 헌장 15항)


이스라엘이 교회를 처음부터 부분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으로 이해하였던 것처럼  신약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도  보편적이며 동시에 지역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제2차바티칸 공의회에 나타난 주교 형제단은  지역교회가 전체 교회임을 말해준다


개신교 주장

1.  교  회 기 원 과  정의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구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교회르 세우셨으며  그자신이 교회가 근거하는 기반이며 동시에 그는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가르친다  고전3:11 엡2:20  엡1:22-23 교회는 참된 기독교인들 모두로  그리고 모든 민족들과 교파들로부타 다시 태어난 혹은 거듭난 자들로  구성된다  지역적으로 위치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는 (롬16:16) 예배와 선교활동을 위해 함께 모인 기독교인들 공동체(모임)이다  그리고 그거드리 n는 많지만  그것들 모두는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의 구성원들이다 

(롬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유형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참 종교를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권속이다 이 교회를 떠나서는 즉 교회 밖에는 통상적으로 결코 구원 받을 수가 없다.


2. 참 교회의 표식:

1) 하나님 말씀이 참되게 선포된다    2) 주님이 제정하신 성례가 바르게 시행됨

3) 제자도를 신실하게 수행함 :   제자도란 교리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성례의 거룩성을 지키는데에 매우 근본적인 것이다  제자도를 다소 소홀히 여기는 교회들은 곧바로 그들 모임 내에서 진리의 빛의 상실과 거룩한 그 빛의 남용을 발견하게 된다-루이스 벌코프

-교회의 표식은  말씀의 선포와 합당한 성례의 시행이다

성경에서 교회란 결코 교파를 의미하지 않는댜 성경은 교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지교회가 독립적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아니면 여러교회와 협력할 것인가  그리고 교회이름을 무엇으로 할것인가 등에 대해 성경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런것들은 온전히 지교회 자신들의 선택에 맡겨져있다 신약에서 교회란  지역적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말한다

때로는 엡5:25 와 같이 일반적인 교회를 언급하기도 한다히12:23의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는 모든 세대에 속한 그리스도의 몸 전채를 말하기도 한다


3. 로마카톨릭교회만이 참교회가 아니다

카톨릭교회=공교회   이는 보편적인 교회를 말한다  카톨릭=헬라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단순히 “보편적”이란 말이다 (카톨릭 사전) 로마 카톨릭이란 말은 엄격히 말해 용어에 모순이 있다  카톨릭이 의미는 보편적이란 말인데  로마는 특정적 이름이기 때문이다 로마교회 교인들은 보편적인 교뢰르 믿지 않는 거이다 개신교교회 교인들은  교회가 카톨릭(공교회)임을  믿는다  개신교는 “성령하나님이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라고 주장하지만 로마교회는 교회가 있는 곳에 성령이 계신다고 주장한다  즉 로마교회가 있는 곳에 성령이 계신다고 말한다  로마교회는 보편적이란 말(카톨릭)을 독접할 권리가 없다 -John Gerstner 박사


“주예수그리스도게서 그의 교회를 세우셨다 (마16:19)  이른바 콘스탄틴 황제의 회심후(주후310년) 기독교는 국교로 선언되었고 많은 이교도부리들이 개종없이 오로지 세례만으로 교회에 들어오는 거이 인정되었다  그들이 점차 기독교인이라는 이름하에  교회로 유입됨에 다라 자신들의 이교적인 의식들 , 예배형태들, 생활모습들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왔다

결국 그러한 모든 것이 본래위 신앙을 부패시켰고  교회는 로마화되었고 이교화되었다  로마교회는 너무도 많은 이교적인 교리와 생활모습을 더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로마 교회를 기독교 혹은 카톨릭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Stephen  L. Testa 

교황들이  베드로로부터 시작된 직접적인 연속선성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증명할 길이 없다 설령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사도들의 가르침과 삶과  다른 로마교회는 그주장이 전혀 무의미하다 로마카톨릭 교회는 교회이며 동시에 정치체제이다  카톨릭교회는  인간 전영역에 영향을 미치려한다 정치적인 세력으로 영향을  가장 미치고 있는 것은 바티칸이다  바티칸은 국가로서의 모든 특권을  요구하지만  그러나 교회라는 핑계로 국가로서의 모든 책임은 거절한다  ( C. Stanley  Lowell )로마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로마에 있는 교항의 통제하에 견고하게 놓여져있는  독재체제이다


4. 개신교의 통일성과 다양성

로마교회는 개신교를 끊임없이 사로 싸우며 분열되는 교회로 치부한다 물론 개신교가 많은 교파가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개신교 정신 저변 바탕에는 영적통일성이라는 강한흐름이 있음을 볼수 있다  그것에 비하면 기계적인 혹은 조직체적인 통일성은 이차적인 것이다  대부분 개신교회 교인들은 자신들만이 유일한 참된교회라고 주장하는 교회는 없다 

오직 복음이 신실하게 전파되는 교회라면  어디에서든지 구원이 발견되어질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한다  다양한 개신교 교파들은 실제로 신앙의 모든 핵심들에서는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성경이 교회내의 모든 일의 권위적인 안내자로 받아들인다  예수의 신성 십자가 은혜를 믿고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심을 믿는다   타교파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는 반목과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협동과 우정이다 다교파 교인들을 참 교인으로 인정한다  그들은 로마천주교회에서 잘못 믿고 있는 사제직  미사 , 연옥, 동정녀마리아 숭배등을  거부하는데 하나가 되어있다


찰스 핫지 : 개신교 교회의 통일성

“서로 분리되어 있는 이 교회들은 실제로는 하나이다 왜냐하면

1) 그들은 동일한 주님에게 계속 복종하며 동일한 성령에 의해 생명을 받으며 동일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모든 기독교인들이 모든 다른 기독교인들을 동료신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 그들은 서로서로를  교회로 인정하며 결과적으로 서로의 구성원들, 규칙들, 제자도의 행위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3) 그들은 공동법정에 속해 있기 때문에 계속 한몸이다  첫째 법정은 사도들이 있으며  지금은 성경과 그리고 어?떤 때는 이렇게 저런때는 저렇게 표현되는 전체로서의 교회의 마음이다 “

개신교들 사이의 영적인 통일성은 교파들간의 차이점을 근본적으로 매우 최소화시킨다   로마교회신자들은 자신의 교회를 떠나  개신교 신자가 되었을 때에 일반적으로  신앙과 예배의 통일성을 발견하고 놀란다  로마교회보다 개신교교회에서 더많은 통일성이 있음을  발견한다 수세기동안 도미니크 수도회, 예수회 사이에 그리고 많은 수녀원 수도원 간의 날카로운 대림과 경쟁으로 인한 차이점은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밝혀졌다

개신교 교회 사이의 차이점은 설사 교회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대개는 피상적이며 비본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 통일성이 다양성을 훨씬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분열의 과정은 개신교가 처음이 아니라 초대교회부터 있었다  행전 15:39에는  신실한 동역자들인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때문에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셨다

(고전1:12-13) 을 보면  1세기부터 분파가 있었다  교회가 하나의 굳건한 하나가되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진리보다  통일성을 앞세워 분열을 방자할 때 교회는 독재체제가 되고 진리가 질식되는 위험이 상존하게 된다 참된  영적 통일성을 가질 때  외적 통일성의 결여 때문에 신자의 신앙생활이 훼방받고 훼손되는 일은 거의 없다


IV  교황제도 베드로 수위권


천주교 주장 :

1.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베드로 후계자로서 교회의 최고 수장이다

교황이란 명칭의 원어  Papa 는 아버지란 뜻이다 이 용어는 본래 지역의 장상에 대해 사용하던 말이  8세기 이후에는 로마 주교 곧 교황에 대해 사용되어졌다 중세 그레고리 7세에 와서는 교황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되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서방교회의  최고 사제이며 사도베드로의 후계자이다 바티칸의 원수로  실제적으로 세계주교단의 단장으로 현세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이다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다 그리스도는 당신 교회를 순수한 사상운동으로만 선포하지 않고 구체적인 공동체를 세우셨다 교회 이념인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열두사도를 선택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지도할  권한을 주시고 파견하셨다 ( 마10:1-4  막16:15  마18:18  마28:19-20  행1:8 ) 사도단을 구성하실 때  그들 중 시몬을  베드로(반석)라고 개명하여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다  주님은 분명코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이요 그리스도의후계자로 세우실 의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2. 베드로는 사도들의 수장이며 로마 주교인 초대 교황이었다  

베드로 사도는  초대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1) 사도를 보선하다  행1;15

2) 최초 공개 설교를 하였다  행2:14 이하

3) 유대 원로원에서 사도들 활동을 변호하다  행4:8   행5:29

4) 구약 율법 문제에서 (행15:7-22) 단장격으로 행세하였다

베드로는 팔레스틴에서 선교하다가  로마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 (행12:17)  역사의 증언에 의하면 42-43년 에 로마에 가서 로마교회르 창설하였고  거기서 그의 첫 번째 편지르 썼다 (벧전5:13)  그는 네로 박해 대인 주후64년에 순교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후계자인  로마주교는 당연히  베드로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확신하였고 교회도 그렇게 인정하였다  교황의 수위권은 이론적으로 정립되기 이전에 이미  고대교회에서 실시되고 있었다  그후 역사적인 기복을 거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신조로 정의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재확인하였다  (교회22항)

베드로사도를 교회의 초대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마16:17-19을 보면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마16:18-19)


베드로의 특수한 지위를 언급한 구절

(눅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마16:18-19)보다 더 확고한 구절이다  그리스도 기도덕분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그의 신앙은 반석같이 되어  동료 사도들에게도 힘이 되었다  다라서 이구절은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의 수위권과 무류권의 보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의 양떼의 목자로 임명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는 교회의 양과 어린양 즉  교회 내의 모든 구성원들을 돌볼 책임과  권한이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21:15-17) ....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3.  베드로는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다

교황의 수위권이 아무리 강하고 확고할지라도  각 지역 주교들의 공한 사목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거나 대행하지 아니한다  주교들은 주교품을 받음으로서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고 위임된 지역교회의 완전한 사목자가 되며  로마교황과 더불어  한 죽단을 이룬다  베드로가 사도단의 단장인 것처럼   교황도 주교단의 단장이며  따라서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수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부터  로마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위치로 인하여  전체 교회의 중심인물이었으므로  이단자들도 자기네 주장을 변명하기 위하여  로마로 갔으며( 말키온, 노바티안, 몬타누스, 그노시스 이단파 지도자들)  교부들도 반대파들의 핍박으로 피하여 로마의 보호를 요청하였다 ( 한국카톨릭 대사전  )



개 신 교  주장 :

1. 교회는 베드로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마16:16-18 근거로 로마교회는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반석은 베드로이다  대적자가 교회를 공격한다는 것은 헛되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교회는 결코 정복되지않는다  교회는 교사의 직무를 하며  여전히 무오하며 잘못된 공격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천국열쇄는 권위의 상징이다 베드로는  교회에 들어오게하고 오지못하게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단순한 문지기가아니라  교회 안에서 완전한 권세를 가진다 "매고 푼다는 " 말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요구하는데 이는 베드로가 지상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결정한 것을 하나님은 하늘에서 재가해주신다는 것이다

반론

"반석" 에 대한 바른 해석 :

(마16:18)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베드로=헬라어로 "페트로스"이다 인격을 나타내는 남성명사이다 조그마한 움직일수 있는 돌, 단수한 조약돌을 말한다  연약한 베드로의 인간성을  상징한다

:반석"은  헬라어로 "페트라"이다 이는  돌을 말하는 여성명사이다 이돌은 확고부동한 견고한 돌이다 이는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진리르 말한다  교회는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의 진리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위 성경구절을 로마교회 주장대로 그대로 번역한다면 다음과  된다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미스터 반석이다  그리고 이 미스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  짧은 한 문장 안에서 性이 바뀌어 나타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교회는 베드로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 터위에 세워졌다 (엡2:20)

2) 교회는 그리스도 터위에 세워졌다 (고전3:11) 

3) 주님은 내가 너(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반석(명사의  성이 다름) 위에 세운다고 하셨다.

4)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은  베드로 개인의 권능이나 무오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곧 음부의 권세에 의해 무너졌다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26:35) 참조


2. 베드로의 수위권, 교황권은 근거없는 것이다

(1) 교황권이란 말은 성경에 없다

로마교회의 수장으로 알려진 “교황”(파파) 이란 말 , 교황 아래 교회의 정치제도를 의미하는 “교항권”이란 말은 성경에 없는 말이다  “교황‘이란 말은 ” 아버지{란 말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지상의 그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마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서방교회의 교황주의에 의하면 교황을 피라밋의 꼭지점으로 하여 추기경(cardinals), 대주교(anchbishops), 주교(bishops), 사제(priest), 그리고 사제(신부) 밑에 집사(deacons), 서리집사(subdeacons), 시중드는 사람(acolyte), 귀신 쫓아내는 사람(exorcists), 성경 읽는 자(lector) 및 문지기가 있고 그 밑에 평신도가 위치하고 있다.

성직자들 가운데 특히 교황은 "최초의 주교(bishop)인 베드로의 후계자요",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천국의 문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는 권한을 가졌는데, 교황 레오 1세(AD 440∼461)가 교황지상권을 개인인 베드로에게 근거시킨 이래로 교황은 중세교회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2) 초대교회에서는 그 누구도  교회의 머리가 되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였다  초대교회 조직과 운영은 은 사도행잔 15장에 잘 나타나있다  문제 발생할 때 로마 교회에 편지하지도 베드로에게 문의해서 결정한 것도 아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도들의 모임”에 편지를 하엿다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사도들은 성경을 깊이 상고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지시를 받아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하여갔다  베드로나 그 어떤 사도도 교황으로 있지 않았고 따라서 교황권을 행사한 일도 없다


(3)그 러나 베드로가 모든 사도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교황이 아니었다 그는 바울에게서부터 책망을 받았다   (갈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베드로 잘 아는 제자? 친구인 마가는 베드로에 대해 반석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막8:27-30


(4) 베드로가 로마 있었던 로마 주교, 최초 교황이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마16:13-19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교황으로 임명하였다는 것을 가르치지않는다

2)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3) 베드로 사도가  쓴  신약성경  베드로 전후서에서 그는 자기가 다른 사도나 교회보다 높은 권위를 가졌다는 어떤  가르침도 발견되지 않는다


(5) 제자들이 누가 높으냐에 대해 논쟁을 할 때도 주님은 베드로가 가장 우위에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막9:33-35)  (막10:35-44 참조) 교부들 중 어거스틴과 제롬은  “반석”을 베드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해석하였다   벧전2:6-8에서 그리스도를 반석이라고 말씀한다  베드로는 그 자신은 아무것도 어니라고 주장한다 


(6)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후 성령충만하여 설교할 때도  자신에게 순종하거나 교황에게 순종하라는 설교를 한적이 없다  로마교회는  열쇠의 권세를 남용하여 교회 교인들에게 명령하여 로마교회에 온전히 순종하도록  하게 하였다


(7)로마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라고 주장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이 첫 번 교황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교황의 기능과 권세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을 하였다 

(벧전5:1-3) ....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는 자신은 장로라고 말한다 이는 속죄제사를 드리는 사제직이 아니다  그는 높은 위치를 주장하지 않았다  겸손하게 그가 권고하는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말했다 오히려 그는 교회지도자들이 군림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의 서신에는 자신이 교회 최고 머리라는 어떤 암시도 없다 오직 자기는 사도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했다    권위를 부인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베드로 후계자인 교황의 권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탈리아 조차에서도 대학생들 데모로 교황의 강의계획이 무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8)베드로가 진정 첫번째 교황이었다면 바울도 베드로에게 임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흔적이 성경에는 없다  바울은 베드로 허가없이 자유롭게 더많은 교회를 새웟다  로마교회에서 베드로보다는 바울이 더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많은 바울 서신에서 베드로의 우위성이나 교황을 언급한 구절은 하나도 없다


(갈2:7-8)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이는 교항제도에 반하는 언급이다


(9) 바울은  공적으로 베드로를 책망하였다 베드로가 교황이었다면 이런일이 가능하였겠는가? (갈2:11-14)  기타 사도들도 어느곳에서도 다른 사도들도 베드로위 우위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행8:14에는 시도 요한과 베드로가  사마리아 지방에 복음 전하기  다른 사도들에 의해 파송되엇다  베드로가 교황이었다면 이런일이 불가능하다  교황이 추기경들에 의해 복음전도자로 파송되는  일이 있을수 없다 행15: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의장은  베드로가 아니라 야고보였다  더구나 예루살렘 공의회이후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다시언급되지 않았다


(10) 로마카톨릭 전통에 의하면  베드로는 주후42년부터 67년까지 로마에서 교황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행15장 예루살렘 공의회 때문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안디옥으로 갔다가  이전에 있었던 로마로 돌아갔다고 주장한다 제몸도 베드로가 25년간  로마 교황으로 있었다고 진술지만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헬라 사본에는 그 어떤 사실도 발견되지않는다 아마도 제롬은 그당시 소문을 듣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들은 전설, 소문에 의한 것이다  고고학자 로시,  마루치등도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어떤 역사적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증언하였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은 그편지를 로마교회에 58년경 써서 보냈다 로마교회 주장에 의하면  베드로는 주후 42년부터  67년까지 로마 교황으로 있었다 그런데 로마서에 보면 베드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로마서 16장에는 27명에게 문안 인사를르 한다 그런데 베드로는 없다 베드로가 로마의 교황이었다면 그리고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면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 안에 베드로가 분명 언급되었을 것이다  주후61년경 에 바울은 로마로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왔다 그곳에서 옥중서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등)  두 번째 투옥후 쓴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에도 베드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초대교회 교부들중 그 누구도  주후 5세기가 지나기까지는 베드로를 교황이라고 말한 사람이 없다 

초대 교부들도 그런 기록을 남긴 사람이 없다


(11) 베드로는 그의 죽음을 앞두고 (예견하고) 그가 교황이었다면  분명히 그 계승자에대해 한마디 언급을 했을 터인데 그런 흔적이 없다  (벧후1:14) 


로마천주교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식 교권위계 제도이다

교권적 권위주의 제도는  현대 목회에서 목회기능을 발휘하는데 아주 부자연스럽고  신학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다   베드로는 주님의 사도이었지만  자기를 장로와 동일시하였다   (벧전5:1)  제2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사도성"을 제시했으나  그것은 제도적인 것이 아니다  이장식


3. 매고 푸는 권세, 천국 열쇄는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천국 열쇠 :난해구절이다 : 매고푸는 권세가 베드로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마18:18)  진실로 너희(베드로만 아니다) 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바리새인들 서기관들도 매고 푸는 권세가 있엇다  (마23: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그들 손에 하나님 말슴을 쥐고 있었다  그말슴을 사라들에게 선포하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왕국의 문을 열게도 하고  아니면 그들이 말씀을 지키지 않고 보루함으로  하나님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게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매고 푸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언적인  권세이다   천국문을 열고 닫는 절대적인 권세가 아니다 그런 권세는 오직 한분이신 참 하나님이 가지신다

(눅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 “매고 푼다‘는 말씀에  푼다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사물임을 주의해야 한다  누구든지가 아니라 “무엇이든지’이다  즉 구약시대의 의식법이나 관습들은 폐지되었고 신약 복음시대의 새로운 의식들이나 관습들은 확립되었다  이와같이 ”열쇠는 아런한 경우에 복음 선포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열도록  해주는 권위를 말한다

다른 제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백했던 베드로는 그문을 열수 있도록 첫 번째로 위임을 받았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베들에게 열쇠가 처음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복음으로 하늘왕국문을 여는  열쇠는 다른 제자들에게도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했을 때 주어졌다  베드로의  권위는 다른 제자들이 행한 것같이 마찬가지로 모든 점에서 동일한 기반위에 서있다  궁극적인 권위는 그리스도에게 있다  (계3:7)


v.  교황 무오설(무류설)


1. 교황 무류설이란? :

무류를 뜻하는 라틴어 infallibilitas 란 말은 “속이다”란 말  fallere에서 온 말이다

속임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적극적인 속임과  속임을 당하는 소극적인 속임이 있는데

인팔리빌리타스는 두가지 속임으로부터 보호를 듯한다  다라서 무류성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절대 오류에 빠질수 없다는 의미이다

무류성의 긍정적인 내용은 “진리”  혹은 진실성이라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속이는 것과 반대되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말2:6  잠11:8  12:9)  본질적으로 무류성은  이미 주어진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성령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교회가 무류성에 근거하여  어떤 새로운 교의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주어진 복음을  계속 믿고 그에 따라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교회는 자신의 무류성 때문에  어떤 종류의 오류나 잘못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 말은 곧 교회가 성령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류성은  진리의 성령(요14:16-17)께서 카톨릭 교회가 그 참된 신앙을 지켜가도록해 왔으며  항상 지켜나가게 할 것이라는   교회의 믿음에 기초한 로마교회의 교의이다


교회의 무류성은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성서의 무오성과는 구별된다  도한 사도들로하여금 계시의 증언을 하게한 성령의 감동과도 구별된다  시도시대 이후에 교회에 부여된  성령의 도우심의 한 요소에 속하는  무류성은  예수그리스도 이후 , 계시의 종결로 말미암아 교회와 교의 역사의 발달에 대한 하나님 섭리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에  주어진 계시진리에 대한 보다 깊고 폭 넓은 이해를 위한 교리의 발달에서 추론될수 있는 명제이다


2. 교황의 무류성

교황의 무오성은 교황이 그 지고한 사도적 권위를 인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을 목양하고  치료하는 직무를 수행하기 우하여  그의 자리에서 말할 때  신적 구속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향하여 믿음과 도덕에 관계된 교리들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부여하신 무오성을 소유하게 된 축복받은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신적인 지원에 의해  온 세계가 지켜야할  신앙과 도덕에 관계된 교리를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자신이 언급한 이러한 정의들은  교회의 동의가  있더라도 병경시킬 수 없다 -1870년 바티칸 공의회


교황이 장엄교도권으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초종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르칠수 없다는 것이 카톨릭교회의 신앙이다  교황의 이 특은을 무류지권이라고 한다  교황이 교좌에서 선언한 것이 무류이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1)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으로 선언한다 따라서 교황도 로마교구장의 자격이나  개인 학자의 자격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류하지 않다

2) 계시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의하려는 의도를 밝혀야 한다  따라서 교황의 자격으로 할지라도  통상적인 지도 , 권유, 해설, 반박, 경고등은 무류하지 않다

3)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것에 국한되기에  과학 ,예술,  사회,경제, 장치 ,기타 문제에 관한 교황의 선언은 무류하지 않다


주교단의 무류성과 함께 전체교회의 무류성의 특별한 예인 교황의 무류성은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정적인 교리로 선포되었다 교황이 최고의 사도적 권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에서 최종 판결을  내릴 경우에  그결정은 무류하다는  선언이다  교황은 주교단의 단장으로 공의회에서  다른 주교들과 함께  장엄한 교도권을 행사하기도하지만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단독으로 장엄한  교도권을 행사할수도 있다   무류적 선언들은  전체교회에서 나와  전체교회의 신앙의식 안에 흡수디어야 한다  :

“교황의 결정은 로마교황이 개인 자격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교회 자체의 무류의 은사를 특별히 지니고 있는 세계 교회의 최고 스승으로서의 행위이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25항>


교황 무류의 조건 :

교황의 무류성은  직무자체의 자격이 아니다  즉 교황이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무류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의 최고 스승으로서  교리상의 결정을 내리고저 할 때에 무류성을 지닌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황에게는 무류성이 있다라는 표현보다는  교황에 의한

교도권  행사는  일정한 조건하에서  무류성을 지닌다고 함이 옳다


성서와 전승에 의한 증명

마16:18-19에서 알수 있듯이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기초이고  (사28:14-18)  하늘나라의 열쇄르 주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하는  교회의 관리권을 주는 것이며  무엇을 매고 푸는 권한은  그것에 대한 전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구절은 그리스도에 의해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인  로마교황이 교회의 토대가 되고 교회를 지탱할 기초가 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만일 교황의 사도좌 선언 의 장엄 교도권이 무류하지 않다면 베드로와 그의 후계들은 결코 교회가 토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카톨릭사전


개신교 주장을 보면 (1)  주님의 이런 말슴은  베드로 개인에게 국한 된 밀씀이지 그 후계자들까지 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리스도는 그 후계자를 언급하지 않으셨으나 

그리스도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교회를 세우신 점(마28:20  요13:-17장)을 감안한다면  그들 주장하는  논리적으로 맞지않는다  (교회 20항 참조)   사도들의 직무중에 교회 창립에 필요한 권한은 계승될수 없는 것이지만  교회를 구성하여  유지하고 계시 진리를 보존, 해석, 교도하는 데 필요한 권한은 계승될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제2차바티칸 공의회는  앞서 열린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함으로써  교황의 무류성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눅22:32  <교회 25항>


개신교 주장 : 


 

1. 교황 무오성 이론은 비성경적이다

무오성이론이 사실이라면 제1대 교황이라는 베드로는 왜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교황 무오성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가? 1대 베드로 교항도 무오하지 않았다 갈2:11-16  베드로는 유대주의자들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 외식적인 행동을 해서 바울에게 책망 받았다


2. 교회 역사에서 교황무오 사상은  없었다

2-3세기에도 교황, 추기경, 주교에 대한 용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교황 무오는 1870년에야 나타난 교리이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교황 무류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레고리 대제조차도 교황의  무오를 가르치지 않았다

1870년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권위는  공의회보다 더 높다” 고 선언하였다  이전 고으이회는 이런 교리를 가르친 일이 없다


3. 역사적으로  교황들이 공포한 법령들 중에는 하나님 말씀에 위배된 것들이  많다

이 법령이 발표딘 이전 교황들은 이 교리를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교황들의 무오한 선언들이 오류임이 발겨졌기 때문이리라

바티칸은 무소리니의 침공을 지지하였다  히틀러와는 정교조약을 맺엇다

교황이 무오이면 왜 신학자들과 주교들과 협의를 거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무오한 선언과 교령들 그리고 무오하지 않은 것들은 왜 차이가 나는가? 교황의 자리에서 선언한 것과 다른 장소에서 선언했기 때문이가?  그것을 구별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4. 무오성은 하나님 속성이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무오하시다 

무오성 교리는 교황들에 의해 교묘하게 사용되어졌다 무오성 교리는 단지 세 번만 사용되어졌다   무오성은 교황에 의해 되어진 모든 진술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교황의 자리  즉 성베드로의 의자인 교황의,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 할때  교회의 머리로서  그의 공적인  직무 안에서  말하고 있을 때의 일들에 대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는 오직 믿음과 도덕에 관계된 일들에만 적용된다 고 한다

반론 : 그러나  종교적이고 일반적인 삶  모두를 거의 전반에 걸쳐 포괄하기에  충분하고 광범위한 용어이다  권위를 무시하고 상대주의를 신봉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종교다원화를 지향하는 천주교는 이제 교황 무류는 고사하고 권위마저 지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VI. 성례와 고해성사, 사죄권 

A. 성례의 종류

개신교는 7성례전이 아니라 2성례전을 주장한다. 세례와 성만찬이 그것이

가톨릭은 7성례전, 즉 세례, 견신례, 미사(성만찬), 고해성사, 종유, 혼례성사, 서품성사(사제를 안수하고 수녀의 봉헌)를 주장한다. 교황을 머리로 하여 계층질서를 이루는 사제체제는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서 중보역할을 함으로써 초자연적 은총을 평신도들에게 베풀어주는바 이때에 7성례전이 은혜의 통로가 된다. 이 7성례전에 관하여 처음 말한 사람은 피터 롬바르드(AD 1100∼1164)였고, 이것을 공식적으로 확정, 공포한 공의회는 1439년대 열린 플로렌스(Florence) 공의회였다. 그리고 이어서 트렌트회의는 다음과 같이 잘라 말했다.

누구든지 새 법이 정하는 성례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 아니라고 하든지 그것이 7 이상이거나 그 이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여기에서 "저주를 받을지어다"는 실제로 로마의 교회법과 나아가서 종교재판으로 이어진다.


천주교  주장

1. 세례

가톨릭은 세례가 신비적으로 작용하여 원죄와 과거의 모든 자범죄들을 몽땅 씻어버린다고 가르친다(개신교는 세례 후에도 원죄의 영향이 상당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세례는 구원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유아들도 세례를 받지 않으면 중간상태의 고통을 받는 "Limbus Infantum"으로 간다고 본다. 개신교는 일반적으로 세례 자체의 신비적 역사 보다 복음 메시지와 성경의 가르침에 강조점을 둔다. 개신교가 중요시하는 것은 세례의 물이나 교역자 자신의 역할보다 복음 메시지 그것이다.


2. 견신례(Confirmation)

주교들은 이미 세례 받은 유아가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아이의 이마에 안수함으로써 그에게 성령을 매개시킨다. 그래서 가톨릭은 견신례 받은 사람을 교회의 정식회원으로 여긴다. 개신교의 경우 유아세례를 받은 이들이 장성하면 입교문답을 통하여 정식 교회회원이 된다. 개신교는 이 경우에도 역시 유아세례 받은 자가 그 동안 배워 온 복음 메시지와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신앙고백에 초점을 맞춘다.


3. 성만찬(mass, 미사)

7성례전 중 이 미사가 가장 중요하다. 이 미사행위의 초점은 성체성사에 있다. 대체로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께서 대제사장이시요, 제물 그 자체로서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는 제사를 유일회(唯一回)적으로 하나님 앞에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가 일어났다고 가르친다. 이 화해사건은 "복음"으로서 교회의 복음 메시지는 성령을 통하여 믿는 자를 구원하는 것이다. 대체로 이때에 교회의 설교와 세례 및 성만찬이 은혜의 통로이다. 그래서 인간은 복음과 성령을 통하여 은혜와 신앙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가톨릭은 저 갈보리 산상에서 유일회적으로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근거한 복음 설교로 만족하지 않고 사제들에 의하여 십자가 위의 희생제사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재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톨릭에 의하면 떡과 즙(bread and wine)이 사제의 봉헌과 더불어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聖體)로 화체(化體, Transsubstantiation)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이 성물(elements = bread and wine)들은 피가 흐르고 있지 않으며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나 그 본체에 있어서는 실제의 예수의 살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거룩하게 된 혹은 성체가 된 성물(elements)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연장이 되는 것이다.

개신교의 경우 세례가 그러하듯 이 성만찬에 있어서도 복음 메시지와 성경의 가르침이 선행(先行)한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나 공존을 확증하고 증거하는바 보이는 말씀(Verbum visible)이다. 비록 개신교 교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물(elements)에 임재하시는 양태(how)에 대하여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나, 성만찬 예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사귐을 갖게 되고 성도의 교제를 돈독히 한다는 점에서는 가톨릭과 상당한 정도로 의견을 같이 할 것이다.


4. 고해성사(penance, 告解聖事)

세례 받고 견신례 받은 정식 가톨릭 신자는 성화의 과정 속에 있다. 이 성화가 곧 구원이다. 이는 어거스틴의 전통에서 온 것으로서 루터의 이신칭의와 대조를 이루며 이신칭의에 이어 성화를 강조하는 개혁교회의 전통과도 거리가 있다.  가톨릭 신자는 이 성화의 과정 속에서 자범죄(원죄는 이미 세례에 의하여 제거되었지만)를 사제 앞에 나아가 통회(contrition)하고, 고백(confession)하고, 만족케 하고(satisfaction), 사면 받는다(absolution). 여기에서 만족이란 금식, 기도, 시편 외우기, 구제행위, 성지순례, 자신이 부과하는 가벼운 고행 등을 뜻하고, 사면이란 미사행위(제사)에 의한 사죄를 의미한다. 그러나 개신교는 신자가 사제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낱낱이 통회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소에 들어가서 만민의 죄악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희생제사를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히9:12 이하, 10:19)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통회자복하고 회개한다.


5. 종유(Extreme Unction, 終油)

종유성사란 병으로 인하여 임종에 가까운 사람에게 사제가 특별한 기도 후에 거룩한(봉헌된) 기름으로 바르는 예식이다. 여기에서 종(終)이란 병든 신자가 생(生)의 끝에 있다는 뜻이다. 사제는 자범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기도문을 읊으면서 거룩한 기름으로 죽음에 임박한 신자의 눈, 귀, 코, 양손, 양발에 기름을 바른다. 그런데 임종시 사제의 종유성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연옥으로 갈 수도 있다고 가톨릭은 가르친다. 그러나 요한 복음은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라고 말씀하신다.


6. 서(신)품성사(Orders, 敍品)

교황, 추기경들, 대주교들, 주교들, 사제들은 안수례를 통하여 직분을 받는다. 교황은 추기경을, 추기경은 대주교를, 대주교는 주교를, 주교는 사제를, 그리고 사제는 집사를 안수한다. 이 안수례가 바로 서품성사에 해당한다.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 계열로서 추기경들 가운데서 추기경들에 의해서 선출되어 사도적 승계의 안수를 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자연적 은총을 더 많이 받은 성직자가 그 밑에 있는 사람에게 성직의 서품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크게 문제되는 것은 "사도적 승계"의 실질적 내용이다. 개신교는 베드로 개인의 승계를 이어온 교황의 계열을 중요한 것으로 보지 않고 사도들의 뒤를 잇는 모든 교역자들에 주의를 돌리며, 무엇보다 사도적 말씀 설교, 사도적 신앙과 삶, 사도적 선교, 사도적 교회통치 등을 중요시한다.


7. 혼례성사(matrimony)

가톨릭은 에베소서 5:31∼32에 근거하여 혼례성사를 주장한다. 그 이유는 제롬의 라틴어 성경 (Vulgata)의 오역에 기인한다. 즉,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에서 "이 비밀"을 "성례전"으로 번역하였다. 그리하여 가톨릭에서는 결혼이 7성례들 중 하나가 되어 오직 사제만이 이 혼례성사를 집행한다. 즉, 이 혼례성사도 다른 성례전들처럼 은혜의 통로인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는 결혼을 "성례"로 보지는 않으나 결혼식을 예배순서의 형식으로 집례하는데, 역시 말씀 설교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 신 교 주 장

앞서  가톨릭의 7성례전에 대하여 논했는데. 개신교는  "세례와 성만찬"이라고 하는 2개의 성례전 만을 인정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 설교가 세례와 성만찬 예배에 선행(先行)한다는 사실이다.

 

1. 성례 종류 

(1)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성례는 그리스도가 세우신  세례와 성만찬 두가지이다

로마교회는 여기에도  견신례, 고해성사,  종부성사 , 결혼(혼배성사), 성직수임(신부 및 수녀) 등 5가지를 덧붙혀 7성례를 주장한다 여기서 결혼과 성직수임은 선택되어진 것으로 보고 기타 5개 성례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말한다

-어떤 교회지도자도  그리스도가 제정한 성례와 다른 성례룰  제정할 권한이 없다

-견진 성사, 고해성사, 종부성사는 성경에 언급조차 없다 

-로마천주교는 성례의 자동적인 수행으로 하나님은혜가 주어진다고 믿고 있다  축복은 성례 그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직자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성례를 통한 성령하나님이 부여하심으로 우리가 받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한 믿음을 가지자만이 받는 것이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신4: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2. 역사적 근거도 없다

그리스도 이후 1000년간 교회는 세례 및 성만찬 외에 5성례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 일이 없다  1439년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7성례가 공식교리가 되고  후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확고히 선포되었다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7성례를 부인하는 자에게 저주가 선포되었다


B. 고  해  성  사

천주교 주장 :

1. 고 해 성 사의  개 념 과 기 원  

고해성사는 죄의 온전한  표명, 즉 재치권이 있는 사제 앞에서 사죄를 얻을 목적으로  세례후  범한 죄들을 고백하는 것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초대와  죄인의 회개와의 만남과 대하를 강조하여  화해의 성사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기원 :

고해성사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상의 재사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셨다  이것이 예수께서  설정하신 고해성사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해시키는 중재자일뿐만 아니라 다인의 권세로 직접 죄인의 죄를  용서해주는 분으로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  (마9:2-13 눅5:17-26   눅19:1-10 요4:6-42  요8:1-11)

부활후에는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어 죄를 사하는 참된 권한을 부여하셨다

(요20:21-23) ....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는 분명한 사실이며 사도들은 이 권한을 후계자들에게 전수하였다  고해성사에 대한 실천에 관한 증언은 로마의 클레멘트 안디옥의 익나티오스 등 교부들 의 저작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도고  3세기  타툴리안  키프리안  오리겐  등 문헌에서 더욱 풍부하게 발견된다

4세기 몇몇 공의회에서  참회의 규율이 제정되었다   이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원칙이 유효화되었다   즉 모든 대죄는 법적 참회에 예속되고 가벼운 죄들은 기도와 단식 ,자선행위를 통해서  사함받을수 있다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죄의 경중(대죄 혹은 소죄)에 따라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는 죄와 그냥 기도로서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죄로 구분된다.

가톨릭 신자라면 의무적으로 반드시 일년에 두 번(성탄절, 부활절)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이를 판공성사라고도 한다. 신부가 고해소에서 신자들의 죄를 사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죄권(죄를 사해주는 권한)을 받은 사도직인 사제(신부)로서 죄를 사해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12사도(지금의 가톨릭 사제와 같음)에게 사죄권을 주었고 그 사죄권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교회가 갖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1-23 )

(약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행19: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 사죄권 :

교회의 사죄권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도들의 권한을 지금까지 이어온 정통 그리스도교인 가톨릭(천주교)에서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따라서 가톨릭의 사제만이 사람의 죄를 사하여 줄 수 있으며 이는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하여 주는 것이고,예수님의 말씀대로(성서에 기록된 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문제다. 바로 여러분들의 구원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부가 고해소에서 들은 누군가의 죄는 절대로 타인에게 발설할 수 없다. 이는 신부의 생명을 걸고 지켜져야 하며, 그렇게 되어 왔다.

개신교에서는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개인적인 기도로써 용서를 청한니다.

개인적으로 용서를 청하고 나서 그 죄가 사해졌는지 사해지지 않았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지..확신할수 없을 것이다


개 신 교 주 장

세례 받고 견신례 받은 정식 가톨릭 신자는 성화의 과정 속에 있다. 이 성화가 곧 구원이다. 이는 어거스틴의 전통에서 온 것으로서 루터의 이신칭의와 대조를 이루며 이신칭의에 이어 성화를 강조하는 개혁교회의 전통과도 거리가 있다.  가톨릭 신자는 이 성화의 과정 속에서 자범죄(원죄는 이미 세례에 의하여 제거되었지만)를 사제 앞에 나아가 통회(contrition)하고, 고백(confession)하고, 만족케 하고(satisfaction), 사면 받는다(absolution). 여기에서 만족이란 금식, 기도, 시편 외우기, 구제행위, 성지순례, 자신이 부과하는 가벼운 고행 등을 뜻하고, 사면이란 미사행위(제사)에 의한 사죄를 의미한다. 그러나 개신교는 신자가 사제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낱낱이 통회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소에 들어가서 만민의 죄악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희생제사를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히9:12 이하, 10:19)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통회자복하고 회개한다. 고해성사의 초점은 회개에 있는데 개신교는 복음과 성령, 성경과 성령을 통한 하나님 앞에서의 참 회개를 강조한다. 가톨릭의 "고해성사"에 반하여 개신교는 요한 일서 2:1∼2을 중요시한다.


1. 고해성사는 성경에 없는 제도이다    초대교회에도   흔적이    없다

천주교는 주장하기를 : 고해성사란 죄사함을 얻고저하는 목적에서 공인된 사제에게 우리의 죄를 말하는 것이다

공인된 사제는 죄를 사해줄 권한과  거기 나오는 사람들을 관찰할 권한을 가진다 사제는 고해에서 세례 이후에 범한 모든 죄를 사해주는 권세를 가진다  (교회법 870)  사제는 고해를 들을 때  자신이 재판관 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반론 :

-고해성사는 성경에 없다  -초대교부들에게도 전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제는 고해성사에서 하나님 ,성모마리아 천사장과 같은 위치에 놓인다

-고해자의 죄고백은 그들 모두에게  죄를 범했다는 고백이고 또한 그들 모두가 죄를 사해줄수 있는 성스러운  존재로 취급된다 

-죄를 사해주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그리스도와 성령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다

- 교회 앞에서 공식적인 죄 고백은 있었다  이는 개방되어 있었고  자발적이며 일반적이었다  비밀스러운 고해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비밀고해가 (대죄는 반드시 고해해야함) 의무적으로 되었다  이때가 교황권이 크게 확장되는 때이었다

반론 : 성경은 죄를 대죄와 소죄로 구분하지 않는다 물론 죄의 경중은 있으나 모든 죄가 죽음을 초래한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겔18:4) .....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약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자가 되나니

큰돌뿐 아니라 작은 돌도 물에 가라앉는다  작은 죄도 죽음을 초래한다  야고보, 바을등 모두 죄를 구분하지 않았다   사제는 대죄만 용서한다 소죄는 금생에서 속죄 받든지 아니면 연옥에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  사죄는 초대교회에는 없던 것으로 중세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495년  로마주교 겔라시우스 가  죽은자에 대해서도 죄사함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장은 “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주님이 말씀했기에 그런 주장은  불가능하다  1096년 클래맨트  종교회의  십자군 참가자에게  무제한의 면죄를 약속함


2. 그리스도 외에 누구도 죄를 사할 권세가 없다 

-하나님 외에 그누구도 죄고백을 듣고나서 죄를 사해줄수 없다

(막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마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죄인인 인간을 하나님 자리에 놓을수 없다

-고백하지 않은 죄는 사제도 용서할수 없다 그러므로  수많은 영혼들은 고백 못한 죄를 용서받기 위해 연옥에서 보충해여 하느 큰 영적 교통을 맏고 산다

-아무리 큰 범죄 (살인 강간등..)를 저질러도 사제의 사죄선언과 가벼운 보속을 행함으로  죄가 완전 용서되기에 이런 수월한 면제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도덕적 율법을 더욱 가볍게 여겨 재볌하는 것을 쉽게 한다 일반적으로 카톨릭 국가에는 범죄가 많다

-사제가 죄사하는  사도의 권세가 주어졌다면  이적을 행하는 능력도 주어져야 할 것이다

(마9:5)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사제에 의해 사죄와 영생이 좌우되는 것 아니다 로마교회는 가르치기를 누구나 영생의 확신을 가질수 없다고 한다

반론: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는 주님의 말씀을 믿을 때 구원확신을 가진다


3. 누구나 범죄할 경우 하나님에게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수 있다


(1)고해성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누구나 하나님께 직접 죄고백이 가능하다

눅18:9-14 에서 부르짖으며 회개하는 세리는 사제가 없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죄의 고백은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다 사람에게 대한 고백이 아니다


(2)13권 이상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도바을도  그누구도  사도나 감독에게 비밀고해를 하라고 가르친적이 없다  주님도  죄지으면 먼저 사제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일이 없다


(3)사도들은 고해소 같은 것에 대해 전혀 말씀하신 적이 없다

(요일2:1)  .....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4) 사도들은 그누구도 자기들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졌다고 말한 사람이 없다

“내가 당신의 죄를 사한다고  하거나  당신의 죄가 사함받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행10:25-26)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행14:15) 참조


(5) 범죄자에 대한 징계의 치리권은 한사람 성직자나 사제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교회 회중에 의해 수행된다 (마18:15-19)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치리하고 교회에서 공개적인 방법으로 치리하고 징계하면 그런 행위를  존중하겠다는 말씀이다


(6)  고해제도는 자칫 남용되어 큰 폐해를 교회에 초래할수 있다 이것이 교회사가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7) 로마교회 주장 : 비밀 고해성사의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들: 

(약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요20:21-23)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행19: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반론 : 약5:16을 보면 사제도 평신도에게 고백해야 한다 (서로)

-비밀스러운 고백이아니라  공개적인 고백이다 -개신교에서도 공개적인 죄 고백은 좋은 전통이 되었다 - 죄는 본래 하나님께 범한 것인즉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고해야 한다  사람에게만 고하는 것은  타락하고 퇴폐적인 것이며 하나님께 망령된 것이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반론 ; 사도에게 준 권세는 상징적이고 단언적이다 단지 선언하는 권세이다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믿는자는 반드시 사함을 받는다는 선언을 하는 권세이다  그러나 용서하는 분은 사제기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권세는 복음을 전하는 권세이다 기독교인은 누구나 이런 권세를 가진다 (눅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행10:43)   (행13:38-39) 

천국열쇠는 성경말씀이다  복음이다

구약에서는 구약성경이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이 구약성경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백성들에게 구원의 바른 지식을 전하여  천국가게 한다 이것이 천국열쇠로 천국을  여는 것이다 거라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므로 천국가는 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신약에서는  천국열쇠가 복음이다 복음를 잘 전해고 가르쳐서 천국문을 여는 것이다 천국열쇠가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복음을 맡았다는 것이다 (살전2: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8) 개신교 신자가 범죄할 경우에는  그것의 사유를 위한 내면적 개인적 고민과 갈등은 심각한 것이며  목사나 그누구의 용서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사죄확신을 추구한다  로마천주교는 신자가 범죄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함으로  사유함을 받고 곧 안심하게 된다   신부의 말은 곧 하나님음성으로 들려지게  됨으로 메디아와 영적 실체의 동일화가 쉽게 이뤄진다 천주교는 고해성사가 합법적이요 교리적이기에  심리적으로도 승산이 있다  개신교는 이러한 합리적인  종교적인 교리와 장치가 없기에  교회 목사나 교회제도자체가 권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사회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개신교가 우세한 사회에는 심리안정이 결핍으로 정신질환자가 많고  로마천주교가 우세한 시회에는  정신질환보다는  개인의 도덕적 긴장의 박약함으로 범죄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고 한다    개신교는 청각의 요소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천주교에는  심미적 시각요소가 많아 경건성을 자생시키고 엄숙함과 신비감을 안겨다 주기도 한다 이것 역시 상징주의의 혜택과 위험성이 교차되고 있는 것이다 -이장식 교수


(9) 기 타   

1) 구원에 관한 용서 :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믿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 모든 원죄를 단번에 용서하시고 지옥의 형벌을 면케하시는 용서이다

2) 일상적인 범죄에 대한 용서 :  주님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후에도 계속 범죄할 것을 아셨기에 주기도문에 이런 기도를 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로마 천주교는 위 두가지 용서를  구분하지 않는 것같다 


VII.  미  사

천주교 주장 :

1. 미사란 무엇인가

미사: 미사Missa  란 용어는 로마시대 일반 사회에서 통용돠던 용어로 ":  재판이  끝났다 " 혹은 왕에게 알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는 즌 말이었다 미사란 거룩한 미사성제가  끝났음을 선포하는 말이다 미사는 또한 "파견한다 , 파송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신자는 이제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총을 받고 감사하였으므로 이것을 모든 사란에게 나가서 전파하기 위하여 파견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미사는 로마교회의 거룩한 제사이다  제사란 인간이  종교의 본질적인 요소인  신, 혹은 자연의 힘, 혹은 초월자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온전히 바치는 종교심성의 표현이요 행위이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왼전한 최상의 제사는  생명을 바치는 행위이다 (창22:1-11) 인간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목적은 다양하다  노아는 감사제사를 드렸고  아론은 백성들이 속죄를 위해 제사를 드렸다


거룩한 미사는 실제적으로 제단 위에서 빵과 포도주의 형태에 의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희생이며 그리고 산자와 죽은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말한다 “


2. 미사의 제사성

제사적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전 존재를 헌신하여 자신이 확신하는 시적 존재와의 만남과 일치를 꾀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극치의 행위요 의식이다  미사의 제사성은 구약과 신양성서에 잘 나타나있다  구약시대 유대교의 이러한 여러 가지 형태의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희생된 짐승의 피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피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야훼하나님 홀로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그분께 최상의 경배를 드리는 제사에서 피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였다 구약의 제사는 거위가 다 피의 제사이다 신약에 와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음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드린 희생제사이었다  (막15:33-39  마27:45-56  요19:20-30   사53:6-10) 이제  이 구원의 업적인  십자가 상의 제사는 그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 안에서 새롭게 재현되고  기념되고 영속되어야 한다  구약에서 시행하던 제사는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예표이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없애주시기 위해 단한번 십자가 상에서 희생제물로 자신을 바침으로 당신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 안에서  그 사건을 재현하면서  기념하는 방법으로 미사를 마련해 주셨다 이는 역사의 절정이요  분기점에서 단 한번만 이뤄진  십자가상의 피흘림의 희생제사인 구원업적을 영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당신의 희생제사를 영속시키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최후 만찬이며 그 만찬의 내용과 사용된 용어들이  제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미사의 제사성은 부인하지 못한다   마26:26-29  눅22:17-20   고전11:23-26 여기서  “내어줄  몸  죄사함을 얻게하는 피, 새로운 계역을 맺는 피 등은 제사용어이다


3. 미사는 성찬의 제사이다

다른 제사도 마찬가지이지만 미사도 성찬의 제사이다  봉헌된 제물을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함께 나누어먹는  잔치 행위(음복)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과 제물을 바치는 자들과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같은 빵과 같은 잔,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시는 (고전11:23-29) 모든 사람들을  성령의 힘으로 하나가 되게 한다

개신교회도 성찬식이 있기는 있으나  일년에 한두번정도 시행한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개념이 희박한 것 같다 .교회 초기에 성찬식은 일반식사와 함께 거행되었으나 나증에는 신자들이 증가함에 다라  분리되어 시행되었다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성경봉독이  결부되었다  이러한 성경봉독 예배인 말씀이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연결되어 미사의 형태를 이룬 것은 대략 150년 경이었다   개신교는 예배가 설교와 찬송 위주의 "말씀 전례 "에 의존하는  한편 로마천주교는 말씀전례와 더불어 성찬 전례를 나란히 두 기둥으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 해방 구원을 감사하며 기념하여 드리는 구약제사는   그리스도의 완전무결한  신약제사를 준비하는  예시였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대제사로서(히7:26-28) 자신을 인류의 죄악에 대한 대속제물(히9:23-28) 로 바칠 것을 예견하고  자신의 몸과 피를 사도들과 최후 만찬을 하며 내어주셨다 로마천주교는  이가르침을 초대교회로부터 계속하여 실행하여 왔다  이것이  바로 미사성제이다  따라서 미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제사를 새롭게하고  죽음에서 영원한 삶으로의 빠스카(유월절)신비의 재현이며 예수그리스도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준 최후만찬의 기년제사로 우리 인간들과  함께 그리스도 자신을  흠없고 티없는  제물로 신비롭게 하나님께 바치는 신약의 유일한 제사이며  성찬이다


4. 성찬식에서 빵와 포도주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보화는 '성체(聖體)'교리이다. 이 성체는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사항이다. 요한복음 6장에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누차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요한복음 6장 51절) 성경은 이 빵을 참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6: 54-58)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이 있은 후 다시 최후의 만찬 때 예수께서는 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시고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오복음 26장 26∼27절)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루가복음에는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고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하는 사제직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이것이 오늘날 가톨릭의 소위 '미사성제(聖祭)'이다.사도 바울로도 이 성체를 대단히 강조했고 그 교회들에서 이 예식을 행하였다.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먹는 것이 아니겠읍니까?"(고전 10: 16). 그들은 그들이 축성해서 먹는 빵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자신의 유산으로 성체를 주셨고 그의 유언으로 '사제권(司祭權)'을 주셨기 때문이다.


개신교 주장 :

 

1. 미사는 성경에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1) 로마교회는  미사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위에서 희생하신 것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미사는 실제로  되풀이 하녀 피흘림이 없는 방법으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희생은 십자가 위에서 희생이 죄를 제거한 것 같이 효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미사가 행해질 때마다  전세계의 로마교회에서 그리스도는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것이다  미사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포도주와 빵이 문자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이다  이 때 참된 희생으로 제사가 드려지게 된다  이와같이 로마교회는 2000년 전에 완성되었다고 증거하는 행위를 계속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 어떤 이들은 천주교의 미사가 교회의 예배와 같은 것인 줄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천주교의 미사는 성찬의 요소인 떡과 포도주를 사제가 봉헌기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살과 피로 변화시켜서, 신부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의식인데 이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린 제사의 재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미사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와 똑같이 흠숭(예배)과 감사, 보속(죄의 대가를 치룸)과 구원으로 무한한 효과를 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미사는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화체설”과, 이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친다는 “희생제사설”의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희생 제사설이란 “미사”가 일종의 제사로써 신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적인 희생 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이라는 말이다. 즉 그들은 이것을 갈보리 제사의 재현이라고 주장한다.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순간에  그의 능력에 의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 (화체설)  그때 그리스도의 가정돤 몸과 피가 사제의 손에 의해 제단 앞에 올리워져  산자와 죽은 자들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드려진다

-복음서,사도행전에는  기도 ,찬양, 복음전ㅍ등 많이 기록되었으나 미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바울도 그서신에서 미사의 희생에 관한 글을 기록하지 않았다

희생제사의 반복은 있을수 없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그가 자신을 단번에 드리셨다고 말하므로 모든 희생제사의 영원한 종결을 선포하고 있다  (히10:10-14)


2. 성찬에서 빵이 실제로 그리스도 몸과 피가 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1)로마교 화체설은 성경과 모순된다 사도바울은  성찬요소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눅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전11:23-26)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빵과 포도주 자체가 새언약이 아니다

문자적으로 빵이 그리스도 살이라며 그것을 먹는자들은 모두 육신의 고기를 먹는 것을 의미하기에  카니발니즘 형태를 이룬다 고대 이방종교 제사장들은 신의 살을 먹는 풍습이 많았고 제물이 인간일 경우 실제로 인간 살을 먹었다

역사가 Durant는 로마교회 성찬예식의 개념은 고대 원시종교의식과  동일하다고 언급하였다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성친을 받아 먹었다 성찬의 의도는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이지   다시 육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2)문자적 해석은 많은 어려움을 가져온다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것과 "이것은 내 몸이 되었다"라는 것과는 같은 말이 아니다. 예수께서 빵을 보면서 "아! 이것이 내 몸이 되었구나"라고 하실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그냥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런 표현은 성경에 꽤 많다.

(요10:7) ...나는 양의 문이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문자적으로 피를 먹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피를 먹지 못하게 되어있다(신12:16  행15:29)실제로 떡이 그리스도의 살로 변한다면 빵이 성분은 온전히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가?  빵 , 포도주 가운데 인간의 살과 피의 성분이 거기에 없었다면  거기에는 인간 몸과 피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3) 로마교회는 평신도들에게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는 분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주어진 성례의 일부를 뺏어버리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성찬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해놓은 곳이 없다  -주후 12세기까지는 평신도들도 포도주잔에 참여하다가   1415년 콘스탄티 공의회에서 평신도에게  잔이 보류되었다 -오브리언


3 그리스도의 희생은 완전한 것이며 반복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유일한 제물로서 완전한 것이며 결코 그것은 반복될수 없는 것이다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22-25)   (히10:10-14) 참조

-죄에 대해 계속적인 제물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갈보리 위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제사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이다 


4. 미사 제도는 오래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초대교회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미사제도는 베네딕트  교단 의  수도승 라드베르투스 에 의해 처음으로 고안되었다

1215년 라테란 공의회(인노센트 3세 치하 때)에 처음으로  공식 교리 부분이 되었다

-1545 트랜트 공의회에서 재차 확인되다  -화체설은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에서 언급되지않았으나  1564년 비오4셍에 의해 처음으로 언급되어졌다

-1415 콘스탄틴 공의회  이후에야 평신도에게 잔을 주는 것을 거부하였다


VIII.  전례, 의식주의


, 천주교에서 성사(례)를 보는 입장은 이렇다. 성사 자체가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고 본다. 예수님의 의도가 그랬다.대개의 종교에는 교리가 있고, 예식이 있고, 조직이 있다. 이 예식에는 주기적으로 하는 예식도 있고, 출생이나 성년, 결혼, 죽음과 같은 어떤 전환을 맞아 하는 예식도 있다.  개신교에서는 이 예식을 무리하게 너무 없앴다고 생각된다. 인간이 종교를 생활화 할 때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을 통해서, 즉 어떤 예식을 통해서 종교적인 세계에 파묻히기도 하고 예식을 행하면서 좀더 신앙이 굳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심을 길러주기 위해서 사실 교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식에 참여하라고도 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것이 교리를 배우고 신앙심을 길러주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 너무 말씀에만 의존하고 예식을 폐지한 것은  천주교에 대한 일종의 반발에서였다고 보여진다. 여러 종교를 연구해 볼 때 개신교만이 이 예식을 너무 많이 없앴다고 생각된다.


천주교 주장 :

1. 전례란 무엇인가    김정남  서울 카톨락 대학교 교수

전례 :  히10:11    레이트루기아 :  라오스(군중)  에 대한  에르곤 (일)   전례란 군중에 대한 봉사를 말한다      고후9:12  빈자에 대한 구제사업을 말함

(히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고후9: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구제사업등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졌기에 나중에  교회의 의식이 전례라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전례란 카톨릭 교회의 의식이다  교회가 성서나 거룩한 전통(승)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예배의식이다    개인 신앙 생활과는 구별된다

전례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미사이다 

기타 7성사, 준성사, 성무일도,  성스러운 행렬, 성체강복식 등이 있다 

성사란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것으로  인간 감각이 도달할수 없는  감추어진 하나님 은총이

외적 행위로 드러나는 감각적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즉 7성사를 말한다  준성사란: 구마, 어린이 측복기도  치유등 인류에게 유용한 물건과 사람을 축성하고  축복하여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성무일도란 :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이고  공통적인 기도를 말한다 ( 행2:43-46 )


2. 전례의 주체 :

전례의 주체는 교회이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수하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  전례가 비록 성직자에 의해 거행이 되더라도 그것은  그 속에 현존하시는 예수그리스도 자신의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전례는 교회의  위임에 따라 지정된 성직자가  거행하는 의식적 행위 전체라고 말할수 있다

사제의 권한 :

사제는 원래는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  그분은 대사제이시며  다른 모든 사제는  그분의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제가 수행하는 모든 전례에 있어서 그 권능은  예숙수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아 거루하게 된 사제는 특별한  위치를 지닌다  사제는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한편으로는 신자들이 대변자이다

전례는 신자공동체를 위한 의식이고 기도이다  신자는 이 공동체에 참여함으로  비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신자는 주일  및 다른 의무축일에 반드시 전례에 참여하여야 한다  전례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다  일정한 장소와 시간을 지켜서 시행한다 


3. 전례의 중심인 미사 성제(거룩한 제사)

영적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인간 차원에서 볼 때  형식과 의식이 요구되는 필연적이다

어느 종교이든지  일정한 예식과 의식을  갖추고 있다 성사란 로마 교회에서 거행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예식을 일컬어 성사라고 한다 성사는 형식이나 예식자체만 아니라 역동적이고 풍부한 의미를 전달한다 주님이 인간에게 초자연적 은혜를 내려주실 때 그것을  인간에게  맞추어서  인간적으로 주시는 방법을  육화(인카네이션)라 한다  성사란 인간을 위하여 인간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육화이다


4. 성상과 성화의 사용은 당연한 것이다

"(출애 20, 3-5) 의 성서 내용은 하느님 외에 다른 어떤 물건을 또는 잡신을 하느님처럼 만들어 섬기지 말라는 말이다. 하느님의 모상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속죄판은 마치로 두드려 늘여서 거룹(천사의 이름 저자 주)둘이 양쪽에 자리 잡게 만드는데 거룹 하나는 이쪽에 또 한 거룹은 맞은쪽에 자리 잡게 만들어라."(출애 25, 18-19) "야훼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게 하여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민수 21, 6)

구약 시대 솔로몬도" 성전의 온 벽을 돌아가며 거룹과 종려나무와 핀 꽃 모양의 돌을 새김으로 새겨 놓았다. 또 성전 안팎의 바닥을 금으로 입혔다."(1열왕 6, 27-29).구약의 성전을 장식하기 위해 이렇게 정성을 기울였다면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는 신약의 성전(교회)을 예수예수님의 상이나 성화 기타 사도들의 성상이나 성화로 장식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또한 성상과 성화는 신앙 교육에 있어서 시청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예수님의 십자가상 고통을 말로써 여러 번 되풀이하는 것보다 실상 그 고통의 십자가상을 한번 보여 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개신교회도 성서에 묘사된 그림을 통해서 선교를 하고 있다


개신교 주장 : 

1. 종교의식(형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종교에서나 도덕행위에서도 형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형식이 없다면 내용을 담을수가 없어 내용은 곧 소실된다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게 된다

문제는  형식에 치우치다 보면 내용을 간과하는 수가 많고 외식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옛날 바리새인 같이 독선과 위선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로마천주교 의식들 중에는 전혀 성경에서 언급되지 않은 이교도의 풍습을 본따서 만든 의식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아브라함 시대 아브라함에게 당시 이방 민족의 풍습이었으나  할례를 행하라고 지시하엿다 그러나 그 할례는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개념과는  완전 다른 것이다  아브하람과 그후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표기하는 의식이다 로마 천주교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이방  의식을 무차별하게  도입한 것 같다


2. 성례의 올바른 의미와  제도문제

사크라멘토 : 영적인 보이지 않는 은혜를 보이는 것을 매개로 하여 보장하거나 약속한다는 말이다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유카리스트(성만찬)과 세례식을 로마교회는 성사라고 번역한다개신교는 그것을 성례전이라고 번역하나 원래 사크라멘토의 본래의미를  흡족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로마천주교는 은혜 메디아로서 물질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성사는 사제의 의도와 물질(덕, 포도주)만 갖추어지면 성만찬을 거행할 수 있다 천주교는 성사에서 물질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는가하면 개신교에서는 그 반대로 로마교회가 경건의 한 요소로 강조하는 물질적 요소의 가치가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례전의 신비와 엄숙성이 결여되는 폐단이 있다  천주교회가 물질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개신교 신자들 눈에는 그것들이 우상숭배 관념과 연관시키게 된다   은혜의 메디아는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만 아니라  순교자의 유골 과 유품등 다양하다  로마천주교회는 성례전이나 성상경배가 물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높이고  사제의 의식집행 행위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신 하나님 말씀, 성령의 감화와 역사하심이 경시되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성례에서 메디아의 강조는 신자들에게 신앙의 객관적 징표를 보여주기에 쉽게 믿게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개신교 신자들은 신앙의 내적 확신과 성령의 내증을 강조하고 있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교회의 메디아 신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대체로 개신교의 경건의 스타일은  주관적 혹은 자주적인데 비하여  로마천주교의 경건은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이는  그 교회의 제도와 온갖 장치의 정당성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천주교의 메디아 신학은 상징주의라는 말로도 표현되지만 사크라멘토의 본래의 의미는 가시적 물질이 불가시적 영적 실체와는 구별되는  것인데 일반 신도에게는 그 두가지가 동일시되어 버려서 메디아가 곧 영적인 것으로 변신하는 위험이 있다  여기에 개신교가 우려하는 우상숭배의 위험성이 상존한다


2. 천주교 의식중 많은 것은 초대교회에 없었고 성경에도  없는 것들이다

로마교회의 인간이 만들어낸 의례  의전등은  성경 어느곳에서도  발견할수  없다

10세기 이전에는 교황의 대괸식이 없었다 카타콤 교회 300년간 교회 의식은 없었다 주님은 어던 의식을 만드라고 명려하신 일이 없다  예배자를 돕기위해 만든 의식과 의전들은 오히려 그 반대 결과를 초래하였다 영적인 것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화려한 것에 마음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의식과 의례등은  로마 이방종교와  유대교에서 가져온 것이다 로마교회의 이 의식들로부터 어떤  역사 영적, 물질적 유익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1500년 로마교회 의식은  세상을  향상시키는 힘이 없음을 증명해주었다

로마카톨릭국가들은 가장 서구 남미국가중   가장 문맹률이 높고 가장 가난하고 부패가 많은 나라들이다 (욜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사1:11-14) 참조


3. 로마천주교회는 의식이 너무 많다


(1) 여러 형식 의식들 :아베 마리아, 미사 성상 사용 등등

로마 천주교교회는  정경법 ( Canon Law )만도  2000가지 이상 이다. 로마천주교는 신학자들이 만든 예배의식, 규정이 너무 많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라트리아) 마리아에게 드려지는 헌신(,하이퍼 둘리아)  성인 성상 성물에게 드려지는 헌신(둘리아) 가 정당하게 주장되고 시행되나 신자들은 이런 구분을 예리하게 할줄 모른다 그리스도에게 대한 경배보다 성모마리아나 성체에게  더 큰 절을 올린다 


(2) 성상 사용은 성경의 교훈을 거역하는 것이다 

(출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 (레26:1)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신27:15)    (요일5:21)   (계9:20) 

트랜트 공의회는 성경과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을 공포하다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들 성상은 교회안에 보존되어야 한다  영광과 경의가 그들에게 돌려져야 한다”  로마교회는 제3계명을  제2계명으로 만들어벼렸다 언래 재2계명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의 계명에서 삭제하였다   열 번째 계명을 둘로나누었다 이웃 아내를 탐내지말라는  계명과 이웃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으로 나누다


(3) 형상에게 기도하고 절하는 것은 우상 행위이다

로마 교회는 우상에게 형상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대표되는 영에게  기도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런 대답은 모든 우상숭배자들이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대답하던   말이었다  (출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로마천주교회 무지한 신도들은 현상과 영(혹은 신)사이의  구별을 잘 모르기에  형상 숭배는 우상숭배가 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데 형상 사용을 금하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이시다  마리아 성인들이 아니다

처음에는 형상과 영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세월이 지나다보면 형상 자체에 신이 있다고 믿게된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주후 754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예배시 성상 사용을 금지시켰다 787년 니케아 종교회의  예배시 성상 성화 경배를 승인하다 (이전 공의회 결정 번복함) 이것은 우상숭배를 일반적으로 변호해왔던 논리인즉  이예배는 성상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대표되는 대상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상 사용을 지지하였다 왜냐하면 성상을 글을 전혀 모르는 자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죽은자를 위한 기도 : 로마천주교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된다 연옥교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죽은자는 상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로 그 위치가  개선되어 질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론 : 이 세상 사는 동안만 구원을 얻는 기회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그의 운명이나 상태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 그들은 우리 기도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성경에는 죽은자를 위해 기도하는 경우가 없다


(4) 의식주의의 위험성

화려한 의식주의는 겉만 보고 그 배후의 진실은 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 어떤 조각 형상등은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책이 없을 대 대부분 문맹인 교인들에게

성경의 주요  내용과 교리를 간단히 설명하고 가르치는 데 효과가 있었다


IX. 구 원관 


천주교 주장

1.구원의 조건

개신교와 천주교는 구원의 근본조건이 믿음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천주교는 구원이 선행으로 완성되어야한다고 믿는다.-구원의 방법이 복수임을 강조한다.

선행, 성사는 모두  '구원의 수단들'이라고 말한다(제2바티칸,71)“"교회의 자녀들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뛰어난 신분을 주신) 이 은총에 보답하지 못한다면 구원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더욱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제2바티칸, 71)  트랜트종교회의(1545-1563)에서의 결의: "믿음만으로 사죄와 구속함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한다" 7성사(7 sacraments): 믿음이 구원의 시초라도 평생 그 과정을 완전케 하기위해서 선행을 하여야 하는데, 그들은 7가지성례를 구원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지켜야만 된다.


2. 구원의 확신 문제

구원의 확신은 불가능하며 이생에서 정결하지 못한 자는 연옥에 가서 정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원받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구원관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은 사후세계 즉 '연옥'의 문제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직까지 많은 개신교에서는 제2경전(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이 연옥의 존재를 거부하고 있으며 오직 천국과 지옥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에선 오래 전에 이미 이 연옥교리를 확립해 놓았으며  그것은 성서(신약과 제2경전)의 말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연옥이란 천당과 지옥의 중간계로 쉽게 이해되는데 사람은 세례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 손 치더라도  인간은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주체임으로 인간 개개인이 지은 죄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고, 보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대로 죄로 남아있게 되고 잠벌(남아있는 벌)에 대한 보속은 사후에 연옥으로 가서  그 잠벌에 대한 단련(연옥단련)을 통해 값아야 한다는 것이 연옥교리의 핵심이다.


개 신 교 주장

1. 구원의 조건은 오직 믿음이다

마틴 루터는 왜 종교개혁을 시작했는가 그는 구원을 선행으로 얻기위해 온갖 일을 하였다. 그러나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을 놓고 고통받았다. 그는 로마서 1:1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에서 생명의 열쇠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천주교에서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음뿐아니라 선행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위배이다. 선행은 구원받은 이후에 따르는 것이다. 엡 2:8, 9.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이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인데, 자격없는 자가 받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확신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요5:24절에 분명히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요6:47 에도 구원의 확신을 가르치고 있다. 요일5:13절에서도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다.

개신교 신자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진다 그러나 로마교회 신자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다  천국열쇠를 가진 교황 베네딕트 15세도 임종시 큰 고통과 번민을 느끼고 죽엇다-월터 몬타노 박사


2. 인간 공덕이 아닌 오직 예수그리스도 심자가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

로마교회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하고 사제가 지정한 보속행위를 해야만 죄가 온전히 용서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의 속죄가  죄를 속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선행으로 어느정도 보충을 해야한다고 한다  마리아와 성인들은 굉장한 공덕(공로)를 쌓아두었기에  교횡이나 사제들에 의해  할당된 일을 한자들은 거기에서 그 공덕을 꺼내어 사용할수 있다

(풀턴  쉰)

반론 :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행은 회개가 아니다  우리 선행으로 죄사함 받지 못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로 하나님  공의는 완전 만족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마음이 변화요 죄를 이제 버리는 것이다 선행이 아니다 고행은  가짜 회개이다  로마교회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충분하지 못하며   그것을 효과있게 하기위하여는  우리의 고난이  첨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견해에 다라 고행 금식, 구제  등 행위가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골1:24)  내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이 고난은 복음 전도. 복음 사역을 위한 고난이지 구원 죄용서를 위한 고난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에게 먼저 선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돌이킴)를 요구하신다

(사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우리는 스스로 훈련과정을  선책할수 없다  우리는 그의 지으신 작품이기 때문이다

각자는 하나님 섭리에 따라  적합한 훈련을 받는다

  -로마교회는 치명적인 약점은 예수의 십자가 희생의 충분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분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는 구세주로 충분하지 않다  그가 갈보리에서 이룬 역사를 미사에서 반복되어야 한다  고행의 행위를 통해 보완되어야한다 그래서 성찬 중시픙조가 생기고  복잡한 행위 구원의 체계를 만들었다 -코울 박사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2. 구원은 하나님  은혜에 관한 것이다 

(엡1:7-10) 은혜란 무가치하고 죄인인 자에게 행사된 하나님의 값없고 한없는 호의요 선물이다  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가치없는  것이다 (사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시115:1) 참조

-바리새인들은 자기 이를 구축하려다가 구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롬4:3-5) (롬3:21-22) (롬11:6) 

-로마천주교 구원은 미래적이다 개신교는  현재적이다


X. 연  옥


천주교  주장

1. 연  옥 이 란 무엇인가    

집회서 7:33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전사한 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제사를 지내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조국을 위해 순국하여 선한 일을 하고 죽었으나  죄인은 죄인이다 이런 어정쩡한  상태의 사람들은 바로 천국의 하나님 보좌 앞에도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바로 지옥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가되 어느정도 정화의 과정을 거쳐 천국에 가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그들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벧전3:19)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기쁜 소식은 천국에 있는 이들에게 전할 필요없다 그렇다고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할 필요도없다 그러므로 분면 이 복음의 소식은  중간 지대,  중간 상태에 잇는 영혼들에게 전해졌음이 분명하다

연옥은 천국의 일부이다   개신교 교회도 천국 가는 성도들에게는  등급이 있음을 인정한다  엉터리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국가는 자와 순교자는 천국에 가서 누리는  영광도 다르다  지옥의 형벌도  그 등급이 다르다  왜냐하면 알고도 잘못한자는  매를 많이 맺을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연옥은 장소 개념보다는 상태의 개념이 강하다

이 세상에서 어정쩡하게 신앙 생활한 자들은 하나님 부좌 앞에 나아가기 전에  정화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하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연옥이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사람들이 죽은 후에 하나님과의 영원한 일치를 충만히 누리는데 장애가 되는 온갖 흠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거쳐야 하는 정화 과정의 상태를 말한다


2. 교리 및 그  근거

하나님 은총안에서 죽었으나  완전 깨끗하여지지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을 보장은 받았으나  천국에 들어갈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지기 위하여  죽음 후에 정화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리서1030항) 이 정화과정은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연옥은 죄스러운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결정적으로 만나는 순간 즉 인간이 최종적으로  하나님 심판대에 서는 순간 이다  연옥이란 말이나 그에 관한 교리는 성서에 분명히 나타나지는 않는다  연옥을 직접 언급하는 성경구절은 어디에도 없지만  연옥에 관한 교리는 하나님 심판에 대한 성서의 명백한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  구약시대 마카베오가 죽은자들을 우이해 속죄제물을 드린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마카비 2서 12:45) 또한 교회는 초기부터 죽은자들을 존경하고  기념하였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특히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정화되어   지복지관에 다다를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교회는 죽은 자들을 위한 자선과 대사와  보속도 권고하였다  따라서 연옥 교리는  죽은이들을 위하여 교회가 꾸준히 실행해 온 기도의 관습과도 관련이 있다 생존자들은 죽으자들을 위한 기도,선행, 미사 봉헌을 통해 연옥의 의인들을 도울수 있다 (교리서 1032-1033 항).  이를 위해서 교회는  매년 11월을 세상 떠난 이들 즉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 성월로 지정하였다  특별히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하여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고 있다


연옥 교리의 타당성은 고전3:13-15에 잘 나타나있다 :

(고전3:13-15)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인격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인 연옥은 인간이 자기모순과 이기심을 하나님과 최종 만나는 순간까지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이기심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쓸어낼수 있다

그때에 우리는 결함과 과오를 보다 뚜렷이 의식함으로써 큰 고통을 겪게된다  그런 순간은 결정적인 행복이 시작되는 때이다  그 순간은 하나님의 구원하는 사랑에 의해 마련된다

사랑은 정화시킨다  고통은 사랑의 배면이다


개 신 교    주 장

1. 연옥 교리는 인간이 만든교리로서 불합리한 근거없는 교리이다 

신자가 교회와 함께 편하롭게 죽었어도 완전치 못한 모든 자들은 연옥으로 알려진  증간 영역에서 형벌에상당하고 정결케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상태에 도달한 자만 천국에 즉시 간다  셰례받지 않은 영혼과  세례후에도 대죄를 지은자 들은  즉시 지옥으로 간다  부분적으로 정결함을 받았거나 어느정도 죄를 짓고 있는 성태에 있는 자들은 모두 연옥으로 간다  그들은 죄가 일소될 때까지 고통을 받은후에 천국으로 옮겨간다고 가르침을  받은   로마천주교 신자들은 항상 연옥의 고통으로 두려워하며 영생과 천국에 대한 확신없이 산다  있지도 않은 연옥 공포에 사로잡혀 일생을  산다  연옥의 고통은 지옥의 고통과 동일하다 연옥에는 고통의 기간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영리한 로마교회지도자들은 연옥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 연옥은 다만 중간기라고만 말한다

-(히2:14-15)  ..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로마교회 장례식에는 위로의 설교가 없다 찬송이 없다 오직 연옥에서 고통이 경감되기를 바랄 뿐이다 


천주교 주장은 이렇다 :교회에 영광을 가져온 성인들 순교자들의 희생과 공덕이  연옥의 고통을 가장 적절하게 상쇄시켜준다  연옥은 교황에 의해 관할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상의 대리자이기에 연옥의 고통 받는 자들이 고통을 경감시킬 권세가 주어졌다  또한 일정한 한도 내에서 사제도 그런 권세가 주어진다 신자는 하나님이 죄는 용서해주는  대신에 천국가기 전에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죄에 상당한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 (다윗  이 밧세바 범죄후 벌 받았다)고 주장한다


반론 :하나님이 죄인의 죄값을 용서하시고도  죄인이 형벌받도록  저 세상에 까지 가서 죄값을 치루게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죄용서받은 자는 다시 감옥에 가지 않는다

고통 그자체가 인간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경우는 고통이 더 마음을 강팍하게 만든다 성령하나님의 사역이 없다면  고통만으로 인간 정화는 불가하다 연옥교리는  초대교회 교부들에 의해서도 가르쳐지지 않았다 주후 6세기에 교황 그레고리 대제(교황권이 할발하게 발달함)에 의해  공식적인 형태를 가진다  (교부들이 연옥을 발견하는데 600년이 걸리고 교회가 승인하는데 1000년 걸렸다 439년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신조로 선포되다1548 트렌트 공의회에서 승인되었다  

알렉산더 히솝 : 연옥교리가 이교 신앙  즉 바벨론, 그리스 . 로마신화에서 채택한 것을 보여주었다  죽은자와 교제, 죽은자를  위한 기도는 비성경적이요 이방종교의 특징이다


2. 성경에 없는 사상이다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연옥 교리의 성경적 근거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  실 것이요 (고전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유1:22-23)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벧전3:18-20)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그리스도께서 노아를 통해 말했을 때  그리스도의 영의 증거를 거절했던 사람들이 바로 연옥에 있던 사람들이다

 

반론 :

위 본문은 연옥 교리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위 구절들은 어느것도 연옥을 말하지 않고 있다 억지로 연옥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해석을 하고 있다 

마카비2서 12:39-45 죽은자들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는  기사가 나온다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본문에도 죽은자들이 받는 불(연옥의 불)에 관한 언급은 없다

우상 숭배하다가 죽은 군인들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로마교회는 가르친다  이것은 대죄중에 죽은 자는 지옥으로 간다느 로마교회 교리와도 상충된다 마카비서는 히브리인들의 정경이 아니다 외경이다    성경은 연옥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그교리에 반대되는 말씀들이 허다하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십자가 상에서도 주님은 회개한 강도에게 즉시 낙원에 이르리라고 하셨다 연옥에 가서 고통받는 다고 하시지 않았다 )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다이루었다 :구원에 관한 사역을 다이루신 것이다

 

기원전 고대인들은 샇에 불에 의해 정결케 된다는 관념이 많앗다  특히 인도나 페르샤에 있엇다  이집트인 그리고 후애는 그리스인이나 로마 사라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 정복후에 헬라의 사상적 영향력은 팔레스틴 지역에 들어와서 여러나라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마카비 2서에 그런 사상이 잘 반영되었다  랍비들은 속죄물에 의해 자녀들이 죽은 부모의 고통을 줄일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방풍습 좇아 죽은자에게 예물을 드리는 것 혹은 죽은 영혼을 달래거나 접촉위해몸에 어떻한 표시고 하지말라 고 한다   연옥에 있는 죽은자릉 위해 그 자손이나 친척은  많은 헌금을 한다 그럼 그 고통의 기간이 단축된다 이교런 교리는 하나님을 사람 차별하는 분으로 만든다  미신적인 사상이다 


3. 신자들의 영혼의 정화 방법은 하나님 신비에 속해 있다

신자의 아직도 남은 죄가 어덯게 정결케 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인간 이성과  이해와 경험의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다 

신29:29 오묘한 일은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라

우리에게 필요항 모든것이 다 성경안에  있다. 알 필요가 없는것은 기록되지 아니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만큼만 알면 된다

칼빈 선생이 말씀하신대로 성경이 가는데가지만 가면 된다 또한 성경이 분명하게 말한것은 분명히 알고 말해야하고 성경이 애매하게 말한것은  애매하게 말해야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더 좋기에 하나님은 그렇게 계시하신것이다

고후4:2 에는 하나님의 말슴을 혼잡케말라고 하셨다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는 그대로 우리는 믿고 행하면 되는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도 다 알수가 없는데 그것에 다른 것을 추가하면 이단이되고 신비주의자가 된다

성경은 증언하기를 죽은자가 갈 곳은 오직 두곳, 천국이나 지옥이다

의롭게되는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되는 것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갈2:16)    신자는 죽을 때  거룩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저 세상 어두운 곳에  있는 자들은 다른 곳으로 옮길수 없다

(눅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회개하고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으로 간다 (요일1:7)  (계14:13) 

-구원을 얻기 우해 우리가 할일은 오직 주 예수를 믿는 것이다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롬8:1) 

(벧전3:18)=두번째로  죄값을 치루기 위해 고통 당할 필요없다

하나님 공의는 그리스도의 한번의 희생으로 충분 하였다  우리 모든 죄를 정결케 하시기에  충분하다

구원받은 영혼은 연옥의 불로 정결케 되는 것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된다

그것도 금생에서 정결케 된다  (요일1:7)  연옥 교리는 성경에 없는 인간이 고안해서 만든 교리이다 고해성사와  연옥교리만큼 신도들을 사제에게 속박시키는 교리는 없다  천주교는 성인들의 공덕교리를 주장하면서 어째서 자비로운 교황과 사제들은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위해 성인들의  큰 공덕을 사용하지 않는가?



XI. 사제 독신 주의


A. 사 제  직

천주교 주장 :

사제:

원래는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  그분은 대사제이시며  다른 모든 사제는  그분의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제가 수행하는 모든 전례에 있어서 그 권능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아 거루하게 된 사제는 특별한  위치를 지닌다  사제는 한편으로는 글스도의 대리자이며  한편으로는 신자들이 대변자이다

전례는 신자공동체를 위한 의식이고 기도이다  신자는 이 공동체에 참여함으로  비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신자는 주일  및 다른 의무축일에 반드시 전례에 참여하여야 한다  전례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다  일정한 장소와 시간을 지켜서 시행한다


2. 사제직,   제사

초대교회는 성서가 말하는 세가지 성직  즉 예언작, 사제직9제사장직), 왕작을 예수그리스도에게 적용하였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세사아르 통한 길(목자의 왕)이요

진리(예언자 스승)이요  생명(사제)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잇는  사제의 직무라고 하면  이 세가지 기능이 모두 포함된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였기에  제물인 동시에 제사를 드리는 사제이다  사제란 인간과 하나님을  교통하게 하는 행위이다

제사의 본 의도는 제사를 봉헌하는 자가  죄의 영역을 벗어나서  하나님을 참된 생명으로 알고   하나님과 화해를 하고 친교를 나누는 데 있다  이런 제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숭배는  어떤 개인적인 용무가 아닌  엄연한 하나의 공무이다  그래서 제사에는   공적으로 임명을받아 직권을 행사하는  사제가 필요한데  사제는 백성의 이름으로  제사를 바친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공적으로  생명을 얻어주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어 주셨다

예수님의 사제직은 무엇보다도 구원의 제사가 된 죽음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제로서 인간과 하나님을 화해시키고  상통하게 하였다  예수께서 사제로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 1초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수 없다

히브리서에는  예수님의 사제직에 대해 여러가지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목자나 사제들의 사제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예수는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로 증명되었다 ( 히5:6-10  )  그의 사제직은 본질적으로 천상적인 것이다    희생, 봉헌은 사제 행위이다


교회의 사제직

교회 사제직은  그리스도 사제직에서 유래하였다  다시 말해 교회 사제직은 그리스도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사도들을 위한 사제직을 새로이 제정하지는 않으셨다  사도들을 자신의 제사장 직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주셨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제직 사명을 사도들의 사제직으로 지속시키고 발전시키기를 원하셨다


초대교회 :

열두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였다  복음의 선교의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가시적 대변자로  성장하는 교회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신약성서는  사도와 그 후계자들의 사목적 기능을 강조하지만  이어지는 교회의  모든 정황들은  그들 직무가 희생적 의미에서 사제직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사제만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다  주교는 신부보다 우위에 있으며 주교, 신부, 부제로 이어지는  위계는 신성한 질서이다  ( Ds 1768, 1776 )


공통 사제직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은 세례로 재생되고  성령으로 축성되어  하나남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적 사제직을 수행하는 백성들이다  따라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산제물로 봉헌하고  세상에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영원한 생명에 ei한 희망을  전해 주어야 한다 (교회 10항)  그래서 비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전체를  사제적인 것으로  보며  그들 몸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롬12;1  참조 빌3:3  히9:14  12:28)

이와같이 모든 신자에게 공통되게 주어지는 사제직을 공통 사제직,  일반사제직,  신자사제직,이라고 한다  이 사제직은 그리스도 사제직의 일반적 성격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직임이  아닌 “삶으로서  자신의 희생과 말씀의 봉사로써  사제가 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사제직의 자격은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 부여된다   특히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사제적인 능력과 권한을 받은 신자는  메시야적 백성의 일원이요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다 (교회 9-10항)

신자들이 공통적 사제직은 지위적 사제직과  그 임무가 다를지라도 근본적으로는 모두  그리스도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제2바티칸 공의회

사제직은 신자들로부터 위임되는 것이 아니라 성부께로부터 축성되어  파견된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이다  (교회 28항  사제2항)  교회 직무는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우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사제직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중재직이다

교회의 사제직의 목적은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한 신자들이 성화이다  교회가 자신의 사제직을 통해  제공하는 성화의 방법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적으로 은총을 나누어주는

전례 행위이다  그중에서도  성사성례는 가장 뛰어난  은총의 통로이다 (전례 6항)


개신교 주장 :

1 사제만이 아니라  신자는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메시야(그리스도)의 그림자, 도는 전형에  불과하였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이직분은 각각 그안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삼중직분들(왕,예언자, 제사장)은  인간 수준에서 그역활을 다하였기때문에  그것은 절정에 도달하였고 폐지되었다  제사장직에 대해 말하자면  그리스도만이 현재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그는 단번에 그자신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의를 성취하기위해) 그 직을 성취하셨다 그래서 다른 모든 제사들이 불필요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이런 제사장역활로  그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새로운 교제의 길을 여셨다 그는 부활 승천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성부하나님께 영원히 중하고 계신다

다음 성경 구절이 이것들을 증언한다(히9:11-12)  (히9:14) (히9:24)  (히9:26)  (히8:1-2) 


신약성경이 말씀하는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미리 보여주신 종교적 의식과 제사의 옛 질서가 성취되었으며 예수그리스도만이 오로지 우리의 참된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볼때 인간의 독특한  그리고 구별되는 질서로서의 인간적인 제사장직은 그역활을 다하였고 폐지되었다  나아가 그리스도를 통해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게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들은 자기 자신들이 제사장이 되었다 (원래 구약의 제사장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음으로  짐승희생제물을 통해 속죄제사를 드려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왜냐하면 이모든 것들이 제사장의 역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들의 만인제사장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벧전2:5)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때문에   참되고 유일한 제사를 단번에 드리셨다 그의 제사는 완벽하였다 그는 구속의 십자가 상에사 “다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19: 30)

하나님은 그의 희생제사에 만족하셨다 그러므로 로마천주교같이  그의 희생제사가 반복될 필요가 없다  도한 다른 방식으로 보완되거나 수정될수 없다


2. 사제직은 신약 성경에 없다 

트랜트 공의회 “사제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역자이다  사제를 경멸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다  사제는 하나님으로서 죄를 경감시킨다  근 교회 안에서 하느님으로 숭배된다 그들은 영원하고 불변하신 하나님의 권세와 권능을 우리 가눙데서 행하고 있다

카나다  오타아와 주교 “내가 만일 사제와 천사를 만나다면 나는 먼저  사제에게 절할 것이다 사제는 하나님과 동등하다 ‘

 

로마교가 주장하는 사제직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마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반론 : 성경을 일방적으로 해석하였다 

신약성경에 어떤 사역자나  직분자의 역할도  로마교회 사제와 닮은 것은 없다  대주교, 교항같은 명칭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딤전3:2-7  딛1:5) 설교하느 장로는 사제로 대치되고  치리하는 장로의 기능은 실제로 어던 권위도 회중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트렌트 공의회 : “ 죽을죄를 짓고 사는 사제라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역자들과 동일한 죄를 사하는  기능을 행한다”  라고 공언하였다  사제가 교회에 충성하는 한  그들의 공적 할동은 그들의 인성과는 상관 없다고 한다  그들에 의해 행해진 기도와 성례등은 모두 옳다, 환자에게 주어지는 의사의 약이 의사의 도덕성과는  무관하듯  말이다 ...   


3. 기독교 성직자는 희생제물을  바치는 성직자가 아니다

유대교를 포함한 모든 기독교 이전의 종교가 가지는  공통된 요소들은

1) 인간 제사장   2) 불완전한 구원을 제공하는 가르침  이 있다

이런 경우 제사들은 본성상  제한된 가치를 가졌으며 따라서 불완전하엿다  그러므로 이방종교에서 이는 일반적으로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한 죄인이 그의 죄를 더욱 속죄받도록 해주는 죽음 이후의 후생에 대한 믿음을 이끌어냈다  유대교에서 그것은 날마다  똑같은 의식이 반복되는  결코 끝이 없는 제사로 나타났다  로마교회는 이런 두요소를 지니고 있다 로마교회는 인간 제사장을 주장하나  그리고 이생에서 구원은 불완전하여  죽은 후 연옥에서  상당기간 고통을 받아야 하며  반복되는 미사만이  죄의 댓가를 지불한다고 가르친다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이 두가지를 모두  제거하여버린 복음이 주어졌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완전하며 최종족이며  유효한 것으로 믿는다 

(히10:10-14)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신약성경은 옛질서 제사제도가 그목적을 다했음으로 없어졌다는 것을 말씀한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위한 제사장 역할을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하신다  그래서 인간의 제사장 제도는 필요없게 되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여러 교회직분을 열거했는데 제사장 직분은 없다  (엡4:11)  (고전12:28)   중재적인 대제사장은 오직 멜기세덱반차를 다른  그리스도뿐이다 (히7: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히7:24-27)  (히10:14)  (히10:12) 

-이제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지성소와 성소의 사이의 휘장이 찢어졌 다 대제사장만 들어가는 지성소에 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신자는 누군나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손에 의해 찟기웠던 제사드리는 장막을 로마천주교는  다시 깁고 있다  제사는 계속 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가 단번에 다 드렸기 때문이다   (히9:26)  (히10:10)  주님의 제사는 단 한번만의 완벽한 제사이었기에 그 제사가 반복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제사장직은 필요없게 되었다


사제직 제도는 인간의 고안품이다(해리 박사)  3, 4세기까지 사제는 없었다  베드로는 자신을 사제중 사제가 아니라  많은 장로들 중 하나라고 불렀다  (벧전5:1-3) 

성경에는 평신도란 말도 발견되지 않는다 누구든 왕같은 제사장이다 로마교회는 평신도의  성경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경을 공부하다보면 성경과 배치되는 수많은 로마교회 교리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류시엔 비네트(과거 카나다 신부) 가 고백한것처럼  개신교는 매우 단순하고  매우 명확하고  그 교리는 성경에 굳건히 기초하고 있다  인간의 오류로 가득찬 로마교회 교리들은 비성경적인 것이 너무  많아 참된 교리라고 말할수 없다



B. 독 신 제  도

1. 로마카톨릭교회는 사제, 수도사, 수녀의 결혼을 금한다 결혼을 하나의 성례라고 주장하면서도  사제 수도사 ,수년에게만은  독신을 강요한다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독신을 더욱 거룩한 것으로 본다 이런 사상은 2-3세기 물질생활은 악하고 영적 생활은 선하다는 영지주의 사상이나 마니교에서 온 것이다  교회가 시작된후 1000년 교회에서 전혀 강요되지 아니했다


2.성직자의 독신 생할은 많은 장점이 있다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사람만 자원하여 시행할 것이지 제도적으로 일률적으로 강제로 시행할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독신은사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여 독신생활을 하는 것은 큰 축복이될수 있다

강요된 독신은 인간 본성을 거스림으로 욕망을 억제하고 가소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크게 증가시킨다 실제로 그것은 정신적 육체적 기능을 약화시킨다 독신은 불교에서 오래전부터  발달된 것이다  딤전4:3)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골2:23)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1123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성직자 결혼은 무효하고 선언했다 트렌트공의회에서  성직자 독신 엄격하게 선포함  교회 세워진 후 1000년간 공식적인 독신제도 없엇다


3. 주님은 사도들에게 독신을 하라고 명하신 적이 없다

베드로는 적어도 25년이상 아내를 데리고 있었다  (고전9:5)  교회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딤전3:2-4)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

(딤전3:12)참조  (딛1:5-6)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

구약에도 선지자 ,제사장들은 대부분 결혼한 사람들이었다  (마19:12)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고전7:9)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전7:7)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수많은 로마교회 역사학자들은  사제들의 독신법과 수도사에게 행해진 순결서약이  역사적인 실패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과거 독신제도로 인한 도덕적부패와 타락은  이루말로 다할수 없이 많다


4. 로마천주교는 자연법을 중시한다  독신은 자연법을 거스리는 것이다  유럽 ,미국에서 독신제 폐기를 결의하고  있으나 교항청의 허가는 요원한 것같다



XII, 기타 : 한국의 조상제사 

조선 천주교회는 1791년  윤지충과 권성연등이 조상제살르 폐지하여 발단된 신해박해를 필두로 100여년간 1민여명의 순교자를 배출하였느데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조상제사이었다 로마교황청의 제사금령은 조선교회의 신앙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강화시켰다


1984년 천주교회창설 200주년을 맞아  1962년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금지되었던 지방을 모시고 축문을 읽는 것도 허용했다 2002년  10월 한국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제사는  각 가정에 따라 그풍습과 규례대로  폭넓게 허용하였다 그 이유는 제사금지가 아시아 복음 전파에 지장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천주교는 과거 천주교신자들이 조상제사를 거부하였기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1715년과  1742년 두차례에 걸쳐 로마교황청은 조상제사가 성경과 교리에 위반되는 미신적이고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금지시킨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39년 교황청은 조상제사의 극히일부 행위만 금지하고 전면 허용하였다 일본 신사참배도 일본 요청에 의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허용하였다 (당시 2차대전중 이태리와 일본은 동맹국이었다)  이로써 약 80여년간 조상제사로 죽은 1만여명의 순교자들은 개죽음을 하게 된 것이다

교황청이 조상제사를  허용한 이유는 과거에는 제사자들이 미신적으로 제사드렸으나 이제 현대에 와서는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나 미신이 아닌 고유의 미풍양속으로 생각하고 지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기가막힐 이론이다 과거 2백년 전에 한 남자가 바람을 피웠다 첩을 얻기 위해서이다 교황청은 그것이 십게명에 ,교리에 위반되기에 금지시켰는데 (당시는 축첩제도가 있었음) 지금은 남자가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바람을 피운다고 하니끼 허용할 수 있는가? 바람피우는 행위 자체가 악한 것이다 죽은 조상에게 성경이 금하는 절하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이다 로마천주교는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 명령보다 시대 형편을 더 소중히 여긴다     ( 조상제사가 왜 우상숭배인지는  "시내산선교회" 카페  이명진 목사 칼럼' 을 참조하시기 바람) 


결               론

 

기독교 모든 교파에서 온전한 교리는 없다 성경만이 완전하다 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회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경해석에서 독일 개신교에서 기원된  자유주의 성경신학을 상당부분을 도입하여 (문서비평등) 성경의 전통적 정통 해석을 벗어난 부분이 많다 (개신교자유주의신학을  추구하는 교회는 말할것도 없다) 또한 개신교 신정통주의의 신학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들이 있어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신정통주의는 과학만능주의사상에 빠진 현대인 입맛에 성경을 맞추기 위해 아담과 하와등 과학적으로 설명이 잘 않되는 것을 신화로 취급해버렸다 (칼 바르트, 에밀 부룬너등)

제2차바티칸공의회에서 가장 뼈아픈 실수는 칼 라너가 제시한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어느종교에도 구원의 길이있고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존재한다는 이 사상으로 인해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는 주님의 말씀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수 없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없다" 고 선포한 사도들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이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었다       

 

 

카톨릭 신학자 H. U. Balthasar는 컬 라너 사상에 반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칼  라너가 주장하는 타종교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이 맞는다면 선교도 불가능하고 더욱이 순교는 더욱 불가능하

 

 

 다 ” 기독교 교회는 한분이신 참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순교의 길을 걸어왔다

 

 

 

지상의 교회는 왼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천주교나 개신교나 잘 못된 교리는 항상 고쳐지

 

고 갱신되고 보충되어 왔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은 계속 될것으로 본다  한국에는 천주교와 개신교들이 서로의 장점을  배우려하여 교회에 유익을 주고저 노력한 흔적들이 많다 이를테면 개신교는 천주교의 경건의식과 예배의 엄숙함등을 배우고  천주교는 개신교회 같이   말씀전례(성경공부 ,성경강해등)가  더욱 활발하게 발전되어 왔다 앞으로도  양 교회는 서로의 장단점을 살피면서 교회 개혁과 유익을 위해 이해하고 배우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한줄로 믿는다 개혁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1. 바른 이해를 위한 자세    :           

 

일반적으로 가톨릭이 바티칸의 권위 아래 있다고는 하지만 가톨릭을 한 모습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리 깊이 살펴보지 않아도 현대의 가톨릭은  제 2차 바티칸 회의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전통주의자들, 개신교의 자유주의자들처럼 전통도 성경도 무시하고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진보주의자들, 개신교의 오순절교파와 비슷한 성령운동 그룹, 그리고 일요일마다 습관적으로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석하는 관습적인 신자들의 네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개신교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듯이 가톨릭 역시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가톨릭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가톨릭을 우리가 이미 내린 제한된 정의에 끼워 맞추려 하기보다는, 가톨릭이 스스로 내린 정의를 평가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후 성경적인 입장에서 비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누구나 자기가 자란 교회를 가장 좋게 생각한다 배고플 때 먼저 먹은 밥이 가장 맛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다느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고  닮아 끊임없이 교회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톨릭과의 대화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면서 가톨릭이 이미 범했던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겸손과 확신의 자세가 필요하다. 가톨릭의 실체를 좀더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2차 바타칸 공의회( 1962-1965 )를 통해 현대교회에 맞는 교회 혁신을 시도하였다 대부분 카톨릭교회 국가들의  가난 ,범죄, 교회정체를 극복해보고자 했던 공의회는 기대한 만큼 전혀 교회가 부흥하지 못했다 현대 과학과 다원주의 사상에 맞는 혁신적인 교리들(종교다원주의등) 을 채택했으나 오히려 교회는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교황청 스스로 과거 잘못된  극복하고  혁신적인 사상을 도입한 것등은  앞으로 또다시 교회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 다시 개혁하는 시도를 할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였다고 볼수있다  


2,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한 노력  : 

교회는 본래 하나였어야 했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둘로 나뉘어진 사실에 대하여 우리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을 뉘우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 이래로 등장한 교파주의에도 장점은 없지 않다. 즉 루터 이래로 개신교는 성경해석의 문제, 신앙 고백의 문제, 신학사상의 문제, 국교의 억압에 대한 문제, 교회의 부패와 세속화의 문제 등으로 교파적 다원주의와 신학적 다원주의를 지향해 온 것이다. 19세기말과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은 각 교파 안의 연합운동을 경험했고, 교파를 초월하며 사귀고 일치하며 함께 일하는 WCC(세계교회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그리하여 이 에큐메니즘의 활성화로 WCC가 6번 거듭되었고 동방 정통교회까지 여기에 가담하였으며 가톨릭 역시 접근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장식  교수(한신대)


3. 교회일치 ,하나됨의    문제

한국에는 비교적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에 외국같이  큰 갈등이 없다

어느 성당 주임 신부는 시나들이 헌금을 잘 내지 않아  개신교 목사를 초청하여 설교 하게하는 경우도 있다  11조 헌금에 대해 설교를 부탁한 것이다

1971년도에는 개신교와 천주교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성경 공동 번역 작업을 수행하여  성경전체 공동 번역을 완수하였다   교회 일치 운동도 활발하게 그리고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2010. 5. 27. 개신교와 천주교의 심학자 성직자들은 교회와  신학의 일치를 모색하는 포럼이 열렸는데  이 신학적 이해와 일치를 우이한 노력은 2000년 1월에 시작되었다 이 포럼에서 양측 신학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자신들이 고쳐야 할것과  상대방의 장점을 배웠다 한국기독교 협의회 총무 권오성 , 목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 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등이 중심이  되었다


기독교는 유대교처럼 두 가지가 형성 요인을 갖고 있다 1)  온갖 제도와 교권 ( 제사드리는 일로부터 시작)  2) 복음 선교운동  그러나 어느 하나에 치우치면 비정상 교회가 된다

한국은 선교에서 신구교 갈등이 없었다 앞으로 계속 양 교회가 마음을 열고 대화함으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은 먼저 영적 통일성  즉 마음과 신앙  사랑과 순종  참신자들이 하나됨이다  조직체 하나됨 이전에 신앙의 하나됨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교회가 신앙과 조직체 모두 하나되면  이상적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교리적인 하나됨이 우선적이다  보수주의와 자유쥬의가 한 조직체로 결합되었을 때는  더 심각한 비극이 초래된다 세상이든 교회든 강제적으로 하나의 조직체로 만들려는 시도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간구하셨던 하나됨은 외적인 그리고 유형적인 교회가 아니고 바로 영적인 무형의 교회이었다 조직체로서  하나가 않되었을지라도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진실로 영적인 무형교회이다  교회는 기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적절한 한계들 내에서 건강한 경쟁의식을 가진 교회들의 다양성은 아마도 기독교가 침체되어 썩어져가는 것을 방지하는 하나님의 한 방법일 것이다  교회역사는 강제로 통합된 곳은 어디든지 그 교회가 썩어갔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딤전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후4:2-5)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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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ne and Anti - Nicene Fathers The Christian Church I-X

Nicene and Anti - Nicene Fathers The Christian Church 1-XX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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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International Commentary,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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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gel , New Testament Commentary

World Biblical Comment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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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츄헨리, 신구약 성경주석

이상근, 신구약  성경주석

박윤선,  신구약성경 주석



 

출처 : 시내산선교회
글쓴이 : 이명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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