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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회개에 대하여(2) (이명진목사 칼럼23)

하마사 2007. 7. 12. 10:12
회개에 대하여(2)

I. 회개 교육에 대하여

1. J. H. Westerhoff
J. H. Westerhoff 는 기독교 신앙은 양육만으로는 도달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양육과 더불어 본질적인 회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신아으이 형태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A. 주어진 신앙(횐경 속에서 양육을 통해 형성된 것이기에 )=양육단계
1) 경험적 신앙 ( experienced faith ) : 유아기 어린이들 ;다른 사람으로부터 규정되는 모양 으로 경험된다
2) 귀속적 신앙 ( affiliative faith ) :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개념으로서의 신앙
3) 탐구적 신앙( searching faith ) : 청년기 후에 주로 나타남 : 탐구함으로써 자신의 신앙 을 확장시키려는 신앙
B. 획득된 신앙 ( owned faith)
4) 고백적 신앙 ( confessional faith) :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회심의 단계이다

회심은 주체적으로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단계이다 인간 영혼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즉 무관심 혹은 경건의 초기의 형태로부터 정열적인 헌신을 동반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지각적인 변화이다 회심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 사는 것이다 신앙에는 양육단계와 더불어 회심단계가 중요하다 두 단계가 계속 반복되는 場이 신앙공동체이다

2. James E. Loder
회개는 확신 체험이다 변형이 주된 개념이다
기독교 교육의 핵심은 변형( transformation) 이다 변화이다 이 변화는 외부에서 은총이 주입될 때 가능하다
* 회심(변화)에 필요한 교육적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해석과 책임감 있는 행동
2) 인내심을 발휘하여 갈등을 대면하고 감싸 안는 것
3) 축제를 배우는 것
4) 명상에 잠기는 것
5) 확실한 경험과 명확한 통찰력

2. 회개 교육의 교육적 원리 (총회교육인적자원부 김치성 목사)
회개 교육의 교육적 원리는 누가복음 15;11-24(탕자 비유)에 잘 나타나있다
(10 인식의 원리 (눅15:17)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糧食)이 풍족(豊足)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알게되고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롭게 해석을 한다 이것이 인식의 단계이다 명상과 경험, 통찰의 단계라고 할수 있다
-무디어진 양심이 깨어난다 자신을 본다
-기독교 회개교육: 죄를 인식하게 (깨닫게) 한다 나의 주변을 하나님 말씀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교육으로 시작한다 ( 오늘 한국의 재미를 추구하는 fun 문화는 죄를 너무 안일하 게 생각하게 하고 죄에 대하 무관심하게 만든다 회개를 더욱 어렵게 한다)
(2) 마음 비움의 원리
(눅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 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자신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 단계이다 주변의 어떤 공격과 비난에도 감수하는 모습을 지닌다 (눅15:19) 갈등과 고난을 그대로 수용한다 ( Loder의 갈등 직접대면하여 이를 감싸안는단계) -아버지 아버지의 집 그 세계르 그리워하고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단계이다 -영성훈련가운데 무념적기도(동방교회)와 흡사하다 무념적 기도는 자아를 개방하고 비우는 훈련이다 자아를 비우고 하나님 임재를 기다린다
- 기독교 회개교육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욕망 , 세상적인 것을 하 나님 앞에 내려놓도록 훈련한다
(3) 돌아감의 원리 ( 눅15:20)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相距)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惻隱)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듯 히개하는 죄인은 하나님에게 돌이키는 것이다
-이는 채우기 훈련이다 영성훈련중 상념적기도(kataphatic prayer 하나님에 대한 미래적 전망을 얻어내고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서방 교회 훈련방법)훈련 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비전과 말씀으로 채우는 단계이다
-기독교 회개교육: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하고 스분에게 돌아가야 진정한 용서와 행복이 있음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 비전으로 채우도록 돕는다
(4) 공동체 속의 관계 회복 (눅15:21-24)
(눅15:24)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아버지만 아니라 모두 즐거워 했다
-돌아온 탕지를 아버지는 극진히 환영하고 잔치를 베풀고 모두 즐거워한다
-소원했던 관계, 깨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단계이다 회개는 공동체에 기쁨을 준다
-회개하는 공동체는 공동체가 더욱 회해하고 회목하게 되어 축제를 즐기게 된다

3. 신앙공동체의 회개교육을 위한 고려사항
(1). 구성원들로 하여금 회개는 성령님의 역사이심을 주지시키고 진정한 회개에 대한 열망을 일깨우고 회개할 수 있는 場을 마련해준다
(2). 회갸 교육은 전인격적이어야 한다 회개의 인지적 정서적 의지적 차원을 모두 포괄하고 아울러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인 측면을 포함하며 도한 과거를 고백함과 동시에 미래적 차원을 모두 아우르는 온전한 회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3). 학습자이 발달 단계를 고려한 동시에 '간세대적" 이어야 한다
(4) 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차원의 지능을 균형적으로 잘 고려해야 한다
(5) 온라인과 오프라이의 유기적인 연결을 지향해야 한다
(6) 다음 세가지 커리큘럼이 균형있게 조화되어야 한다
(가) 명시적 ( explicit) 커리큘럼: 공동체에 의해 미리 정해진 가시적 교육과정
(나) 암시적(implicit ) 커리큘럼 : 공동체의 분위기, 삶의 양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 지는 교육과정
(다) 영( null ) 의 커리큘럼 : 교육하지 않음으로 교육이 되는 역설적 커리큘럼 인종차별 등 사회문제에 대해 교히가 일체 언굽하거나 교육하지 않음으로 그것들을 묵시적으로 용인하는 것등이다
(7) 교회력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균형잡힌 교육이 가능하다 (사순절등)
회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4. 회개교육 방법
(1). 조사와 연구에 초점을 맞춘 방법 : 조사법 탐구법 귀납적 방법등으로 조사하고 연구한다 회개의 인지적 측면과 깊이 관련된다
(2). 고백적 방법 : 정서적 의지적 차원이다
죄를 인지한 후에 참회하고 고배하도록 한다 (목회 상담 , 갸인 고백기도등으로)
고백은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한다
(3). 성경독서 방법 : 영성 형성적 독서 ( formational reading) by Robert Mulholland
영성형성적 독서는 정보습득적 접근보다는 영성 형성을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순종과 수용의 자세로 말?슴을 읽고 회개하도록 한다
** 영성 형성적 독서의 특징
- 독서의 양보다는 질에 관심을 둔다
-정보 습득보다는 깊은 내용에 의미를 둔다
- 독자가 분문을 통제하지 않고 본문이 독자를 지배하게 한다
-본문은 독자와 관계에서 주체로 본다 독자가 대상이 된다
-분석적 비평적 접근 방법이 아닌 겸손 초연함 수용적 자세와 생동감을 가진다
(4). Modelling 방법
교회사 가운데 참회한 위대한 신앙인이나 주위 인물중 훌륭한 사람을 모델로 교육한다
(5). 예전적 방법
예배를 통해, 성만찬 예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개닫고 아울러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도록 한다
(6). 예술적 방법 :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한가지 예로 대조법을 보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죄악의 참상과 비참을 대조시키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7). 참여와 경함의 방법 :
회개 경험을 실제로 체험하도록 여러방법을 사용한다 금식 , 고난, 역할극 사회봉사 사회입법 등등

II. 성경에 나타난 회개의 모습

1. 모세 오경
오경에서 회개하는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역사과정을 통해 조금씩 발전되어 간다 초기 언역사나 조자들 기사에서는 회개 개념이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과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통해 하나님 백성으로서 새출발을 하게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법도를 따를 것을 명하신다 불순종이 죄악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무서운 징벌을 가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경우에는 반드시 용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인한 범죄의 겨웅에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죽을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등의 제사제도를 통해 죄를 용서해주시고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새출발을 하게되는 것이다 회개할 경우에 죄용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밝은 미래가 약속된다

2. 역사서
역사서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회심을 강하게 요청하고 강조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도착하여 여리고성을 점령후에 아간이란 사람이 범죄한 후에(수7:6-25) 이스라엘은 아이 성에서 패하여 큰 시련여 처한다 한사람의 범죄는 국가 전체의 범죄로 여겨진다 요호수아와 장로들이 민족 전체를 대표하여 회개하여 회복된다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죄악을 완전히 제거한다
사사시대에 이르러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면 하나님에게 징벌과 심판을(주위 이방민족을 통하여) 받는다 그러면 고통가운데 회개하고 부르짖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서 이방족속을 물리쳐 회복시켜주신다 평안을 누리게되면 이스라엘백성은 또 범죄한다 이런 사건이 계속 반복된다 (회개는 일생을 통해 반복되는 것이다 )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침공로 위기를 맞게 되자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하고 금식하며 민족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고 결국 블레셋을 물리치고 민족을 구원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 유다왕국)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바벨론에 포로 잡혀햐 간후에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고레스 왕의 칙령에 다라 스룹바벨과 에스라등의 지도자들의 인도로 많은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스룹바벨성전) 새로은 삶을 출발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금하신 이방여인들과 잡혼을 하여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에스라는 옷을 찟고 금식하며 회개기도를 드린다 나중에는 백성들도 이 회개 운동에 동참하여(지도자가 먼저 획해야 한다) 결혼한 이방여인들과 그 자녀들까지 고향으로 보내버린다 범죄한 흔적을 신앙 공동체에서 완전히 제거함으로 획에 하당한 열매를 맺도록 하였다

3. 예언서
예언서에서는 역사서와는 좀 다르게 개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심을 강조한다 각 개인은 범죄 시 새로운 마음과 새 정신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회개는 마음의 행위이다 그것은 정의와 자비, 신뢰로 인도되는 명확한 행동을 의미한다 회개란 과거 죄를 깨닫고(자카르) 그것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며( 보쉬, 칼람, 코트 ) 죄악을 뉘우치며(나함) , 이런 마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되며(야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구체적인 개인과 공동체적인 행위를 회개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당장 요절을 낼 듯 무서운 경고를 보내시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그들이 회개하고 살길을 찾는 것이다 (겔18:30-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 문(鞠問)할지니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 를 패망(敗亡)케 아니하리라(31)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 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 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욜2;12-17 미7:18-20 참조) 범죄한 이스라엘이 살수 있는 길은 오직 회개 뿐이다 이스라엘이 계속 범죄하고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권면하시고 경고하신다 예언서에서 회개란 하나님 뜻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않계신 것처럼 살던 자가 하나님 認識不在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회개이다 또한 죄악으로 인해 발생한 재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렘44:20-23 욘3:1-10)
회개는 미래를 향한 소망이다 이스라엘이 회개함으로 이방민족도 회개하게 된다 그들도 하나님을 알게되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그러므로 평화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 (슥8:20-23 사19:24-25) 하나님은 죄를 끝까지 미워하시고 징벌하신다 그러나 회개한 자의 과거 허물을 묻지 아니하신다 (탕자 아버지 처럼)

4. 복음서 와 사도행전
복음서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회개 , 믿음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례오한은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구약 마지막 선지자로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역설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군중들에게 외친다 하나님께로 돌이킴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임을 강조한다 세례요한은 회개를 죄의 용서와 셀p를 연관시킨다 이는 획하는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제공해준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와 있으니 회개하고 복음(예수그리스도, 그말씀)을 믿으라고 설교하셨다 죄인들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수용과 믿음을 근거로 회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회개는 믿음에서 시작되고 또한 믿음은 회개로부터 성장한다 (선행이 믿음에서 나오고 선행으로 믿음이 확실하게되고 성장하듯이 ) 하나님나라의 건설과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반드시 회개가 필요하다
사도들의 설교와 선포는 회개가 그 기본요소이다 ( 행3;19 5;31 8:22 ) 그것은 믿음과 용서와 관련되며(행20:21 26:18 행3;19) 그리스도 사역에 기초하여( 행3:19 5:31 ) 악으로부터 돌이키고 (행3:20)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행20:21 26:20) 회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행3:26 5:31 11;18 -저주, 심판을 모면하고 은혜와 구원이 주어진다)이자 즉각적인 인간의 책임이다( 행2:38 3;19 8:22 17:30) 사도들이 전한 회개란 악으로부터 전환하여 (행3:1)선한 것으로 돌이킴을 말한다(행3:20) 곧 예수그리스도에게로 향한 완전한 전환을 말한다 회개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인내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행위이며 하나님과의 새 언약관계를 가짐으로 새피조물로서 그분에게 헌신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안에서 새피조물이 되는 것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회개할 때마다 새롭게 갱신되는 연속적인 사건이다

5. 묵시서
회개는 죄 용서 받기위한 先行조건이다 하나님 구원의 은총 앞에서 자기를 개방하고 자기를 쳐서 하나님 뜻에 굴복시키는 행위이다 회개는 종말적인 것으로 하나님 나라 도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며 회개를 통해 이스라엘은 회복되고 갱신된다 회개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전면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렘33:5-6) 이 변화는 물론 하나님의 선물이다 (므낫세 유언 7절) 회개는 기존체제에서 탈출하여 더 큰 실체=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돌아서는 행위이다 회개는 영생을 얻어내는 희망이다 회개는 도덕적 행위전체의 변화와 성향과 기질의 변화를 그 목표로 한다 거기에는 개선과 보상(보속)이 필요하다

6. 외 경
지혜서 12:19-20
주님은 ...죄를 지으면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가르치시며 당신 자녀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셨다 당신 자녀들의 원수로서 죽어 마땅한 자녀들까지도 주님은 그들이 악을 버리고 회개할 기회와 여지를 주심으로써 세심한 배려와 신중을 다해 처벌하셨다
집회서 17:25-26 : 회개를 권고한다
주님에게로 돌아오라 죄를 끊어버려라 주님께 기도하라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지말아라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 돌아오라 부정한 행위는 버려라 그리고 악한 것들을 역겹게 생각하라

지혜서 12:9-10
주님은 악인들을 의인들 손으로 넘겨서 격렬한 전쟁터에서 죽게 내버려 주시거나 끔직한 야수들에게 짓밟혀 죽게 하시거나 단호한 말씀 한마디로 당장에 없애버릴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조금씩 조금씩 처벌하심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갓의 유언서 5:7
회개는 불순종을 쳐부수고 어두움을 물리치며 비전을 밝히고 용혼을 지식으로 채우며 신중한 힘으로 하여금 구원으로 인도한다


추서 : 회개한 사람들 :

A. 탕자의 회개 (눅 15:11-24)
눅15장은 우리가 잘 아는 탕자 비유이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바다 가지고 먼 타국에 가서 허랑 방탕하다가 거의 굶어 죽게 되었다가 돌이켜 회개하고 아버지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살게되었다는 예수님의 비유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떠난 탕자이었다 인간은 하나님 집을 떠나려 한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죄의 근본이다 하나님과 함께 살기가 싫어한다 탕자는 왜 아버지 집을 떠나려 했는가?
1. 탕자(인간이) 가 집을 아버지 품을 떠난 이유
(1) 아버지 간섭이 싫었다 자기 멋대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먼 나라로 갔던 것이다. 죄진인간은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한다 내 멋대로 살고 싶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비극의 원인이다 마귀는 우리를 죽이려고 지옥을 보내려고 간섭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 간섭하신다 하나님으로부터 교훈 받기를 싫어하고 간섭받기를 싫어하기에 하나님 품을 떠난다
(2) 일하기 싫어서 아버지 집을 떠났다
맏형도 탕자도 그가 집을 나가기 전에는 아버지 집에서 일하며 살았다 (눅15:25) 인간은 일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인생은 죽은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사는 거처에서 하나님이 주어진 사명을 하기 싫고 일하기 싫으면 그곳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 일감이 있다 인간은 그것이 싫어서 내 멋대로 놀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한가하게 편안하게만 살려고 하면 반드시 마귀가 와서 그를 넘어드리고 만다 하나님 의 맡겨주신 일을 하기 싫으면 하나님 품을 교회를 떠나게 된다이 탕자는 게으르고 나태해서 자기 나태한 죄와 불성실한 죄가 자꾸 드러났을 것이다 그럴 때 되먹은 인간은 돌이키고 반성하고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야 하건만 그 약접 허물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아버지 집을 떠난 것이다 . 재산만 보고 아버지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집에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아버지를 모시고 부요하게 산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일하는 가운데 아버지와 교제하고 그 사랑을 계속 깨닫고 감사하면서 영혼의 깊은 사랑의 교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 탕자가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사랑과 형제의 사랑과 섬기며 사는 것보다 육신의 쾌락을 더 좋아하여 집을 떠난 것같이 죄진 인간도 오직 일평생 육신의 것을 위해 살다가 가는 것이다
2. 아버지 품을 떠난 인간은 고통뿐이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얻은 것은 굶주림 외로움 고독 배신감이다 친구도 돈이 있고 형편이 좋을 때 모이는 법이지 돈 다 떨어져 신발 떨어져 깨지고 오그라지면 친구도 다 떠나는 법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비참하다 스스로 속고 삽니다 여러 가지 방편들을 마련해서 위안을 삼고 비참을 망각해 보려하나 죽은 후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그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위선도 체면도 않 통한다 하나님 배반하고 떠나는 것이 비극과 고통의 근원이다 . (렘2:19) 탕자는 굶어 죽게 되어 되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살았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신령한 하늘의 양식을 먹지 못하고 돼지처럼 더러운 것만 먹고산다 돼지신세가 되고 만다 돼지는 귀한 것을 모른다 가치를 모른다 배만 부르면 된다지금도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돼지 대가리를 놓고 귀신에게 제사를 드린다 외국 언론들은 우리나라 상품이 잘 팔리지 않기 의해 아프리카 미개인들이 드리는 제사 장면과 우리나라 제사 장면을 그대로 방영여하고 악선전을 한다 하나님 떠나면 고통이다 매일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예배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사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이다 하나님 품을 떠나면하나님의 능력있는 보호의 손길도 떠난다
3. 탕자는 회개의 과정
(1) 고난중에 자기의 비참과 잘못을 알게되었다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糧食)이 풍족(豊足)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인간은 죽을 지경 되어야 하나님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게 된다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알게되고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롭게 해석을 한다
-무디어진 양심이 깨어난다 자신을 본다 -기독교 회개교육: 죄를 인식하게 (깨닫게) 한다 나의 주변을 하나님 말씀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교육으로 시작한다 ( 오늘 한국의 재미를 추구하는 fun 문화는 죄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게 하고 죄에 대하 무관심하게 만든다 회개를 더욱 어렵게 한다 현대철학 현대신학은 죄를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2) 아버지를 생각하였다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재물만 보았고 세상의 쾌락만 보았으나 이제는 자기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본다. 그래도 나를 받아주실분은 아버지밖에 없다고.... 회개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자기의 비참을 잘못을 자백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자기를 뜯어고치는 혁명이 일어날것이다--휘징거.
(3) 마음을 비웠다
(눅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 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자신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 단계이다 주변의 어떤 공격과 비난에도 감수하는 모습을 지닌다 그는 이제 돌아가도 아들로는 못 간다 하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갈등과 고난을 그대로 수용한다 아버지의 집 그 세계르 그리워하고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욕망 , 세상적인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다
(4) 결단하고 일어서서 아버지께로 향한다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相距)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惻隱)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듯 회개하는 죄인은 하나님에게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는 행동이 따른다. 결단이 필요하다 탕자는 가만히 있지않고 일어선다. . 그리고 아버지에게 돌아와서 무릎꿇고 나를 품군의 하나로 받아달라고 말씀을 드린다. 회개한 증거는 겸손해지는 것이다.
4. 회개만이 살길이다 회개가 큰 축복이다
탕자가 살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회개의축복이 무엇인가
(1) 지은 죄를 용서받고 죽지않고 다시 살게된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과거의 좌를 묻지 않으신다 기독교는 회개하는 자에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 회개하면 하나님 아버지기 영접하시고 용서하신다 탕자의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아들을 알아보았다 달려간다 아들이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다 아버지의 사랑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큰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보기 전에 아버지는 아들을 먼저 보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전 주님은 우리를 먼저 보시고 알고 계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측은히 여겼다 측은히 여긴다는말은 고통을 함께 한다는 말이다. 우리하나님은 우리죄 때문에 고통을 함께하신 분이다. 아들은 힘이 없이 축쳐져서 걸어갔으니 아버지는 달려 갔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죄짔고 힘이 없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갈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려 오셔서 우리를 영접하시는 것이다
(2) 귀한 신분이 회복된다 인가의 가치가 회복된다
돼지와 더불어 살던 탕자는 이제 아버지의 귀한 아들로 회복 되었다 탕자가 돌아 올 때 아버지는 그를 영접하여 주셨다 범죄 했어도 아들이기에 용서하시고 잔치까지 베푸셨다 우리도 우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한다 간단하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그 순간 하나님 자녀가 된다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셨다 이는 아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발에 신을 신겨 주시다 이는 자유인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 옛날 노예들은 신발이 없었다 율법을 지켜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 사랑을 입어서 그 은혜로 가는 것이다 형은 율법주의자이다 허랑 방탕한 자는 벌을 받고 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을 베푸셨다 탕자는 염체 없었으나 아버지 사랑을 받아 들였다 은혜란 염체 없으나 그냥 감사로 받는 것이다. 아버지가 차려 주신 잔치 상을 염체 없다고 거절했다면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겠는가? 회개회개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회복의 역사를 가져오게 하신다 저주에서 축복으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멸망에서 구원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회복된다
(3) 공동체 속에서 관계가 회복되고 큰 기쁨이 생긴다
탕자가 돌아오니 그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고 모두 즐거워한다( 탕자의 형을 제외하고; 탕자 형은 당시 바리새인 율법주의자들을 말한다 세리 창녀 등 버림받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한사람의 회개가 공동체에 화평을 준다 (눅15:24)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만 아니라 모두 즐거워 했다 -소원했던 관계, 깨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단계이다 회개는 공동체에 기쁨을 준다 공동체가 더욱 화해하고 화목하게 되어 축제를 즐기게 된다
하나님 원치 않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을 위해 돌이키자 고정 관념을 바꾸자 . 돌이켜서 새로운 축복의 삶을 시작하자
(4) 교회가 부흥하고 국가 고침을 받는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사건도 선교사 교회 모가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함으로 전 교회에 회개운동이 번졌다 회개함으로 놀라운 교회부흥이 이루어졌다(세계 여러교회들도 마찬가지이다)
국가가 복을 받는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 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B. 베드로의 가롯 유다
베드로는 이미 동산에서 잠을 잠으로써 주님을 실망시켜드렸는데, 이제 자신의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자신의 충실성을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이었다. 옛 예언자는 양떼가 흩어지리라고 예언하였지만, 베드로는 하늘의 왕국의 열쇠를 받았기 때문에 자기만은 타락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위험은 "깨어 기도하라" 고 명하셨는데 베드로가 그 명을 지키지 못하였으며 그는 기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칼을 휘두름으로써 영성보다는 행동주의를 택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위험은 그가 그리스도와 취한 물리적인 거리( 예수님을 멀리서 따라갔다)는 둘을 갈라놓는 영적인 간격의 상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의 태양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것은 무엇이나 어두움이다. 베드로는 마당에 들어가 불가에서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마26: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 때 주님께서는 채찍질을 당하신 후 끌려가고 계셨으며, 얼굴은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수치스럽게 결박당해 있었지만, 스승께서는 무한한 연민의 정을 담은 눈으로 베드로를 찾아내셨다. 주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바라보시기만 하셨다. 주님의 그 모습은 기억을 새롭게 해주고 사랑을 일깨워주는 모습이었다. (눅22: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否認)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회개는 말씀이 생각 날 때 이루어진다)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痛哭)하니라"
베드로는 "이 사람" (예수)을 부인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베드로라는 인간을 사랑하신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보기 위해 돌아서셔야만 했다는 것은 베드로가 주님께 등을 돌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상처입은 숫사슴이 혼자서 외로이 피를 흘리고자 했으나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상처입은 가슴에서 화살을 빼내주러 오셨다.

우리말로는 베드로와 유다 모두 "뉘우쳤다" 고 하지만 그리스어 원본을 보면 유다와 베드로에게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다. 유다에 대해 사용한 단어는 단순히 감정의 변화와, 결과에 대한 후회, 이미 저지른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뜻한다. 이러한 뉘우침은 용서를 청하지 않는다. 지옥에 있는 악마들도 그들이 범한 교만죄의 결과에 대해 뉘우친다.유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뉘우치고 돈을 되돌려 줄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악마가 돌아와 그를 절망에 빠뜨린다. 주님을 단죄함으로써 두 가지 결과가 나왔다. 하나는 유다에게 그리고 최고의회의 대사제에게 영향을 미쳤다. 유다에게는 양심의 고뇌를 통해 죄의 굴레를 낳아주셨다. 그의 지갑속에 있는 은전 삼십 냥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성전으로 달려가 돈 주머니에서 세켈을 꺼내 성전 마당에다 내동댕이쳤다. 배반해서 얻은 거라곤 그가 벌은 것으로 더 부자가 되기는커녕 그 돈을 번 방법 때문에 무한히 가난해지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덧없는 쾌락이나 일시적인 보상을 보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팔아먹은 사람치고 주님을 제값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헐값으로 팔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유다는 흥정이 이뤄졌을 때 대단히 많은 액수를 받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는 돈을 성전에 가지고 가서 더 이상 자기가 교환한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전을 마루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는 스스로 속은 것이다. 죄의 열매는 잃어 버린 은총을 결코 보상할 수 없다. 이제 돈은 피의 밭을 사는 것밖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유다는 자신에게는 뉘우쳤지만 주님께는 뉘우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지은 죄의 결과에 대해서는 혐오했지만 죄에 대해서는 뉘우치지 않았다.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경우 외에는 모든 것이 용서받을 수 있으며, 생명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 유다의 뉘우침은 자아증오에 지나지 않으며 자아증오는 자살이다. 자신을 증오하는 것은 학살의 시작이다.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관계를 맺을 때에야 유익한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후회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양심은 가장 크게 말해야 할 때 가장 작은 소리로 말한다. 양심은 어둠 속에서 종종 나가는 전등과 같다. 사람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자신을 미워하고 하나님께 회개 하지 않으면, 죄를 지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 가슴을 칠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자아혐오에서 가슴을 치는 것과 용서를 청하면서 내 탓이요 (Mea Culpa)라고 가슴을 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어떤 때는 자아 증오가 너무도 강렬해서 생명을 빠져나가게 할만큼 두들겨서 자살을 하기에 이른다. 죽음이란 원죄에 대한 벌 중에 하나며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죽음에 뛰어드는 자도 있다. 유다가 죄를 짓기 전에 양심이 경고했고 뒤이어 양심의 가책이 뒤따랐다. 양심의 가책이 너무도 괴로워서 유다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을 너무도 혐오한 나머지 자아로부터 자신을 비우고자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운명과 종말을 말하는 것 같았다. . 자기가 서있는 언덕에서는 그가 사형선고를 내린 그 분께서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실 갈보리 산이 내려다 보였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힘 닿는껏 하늘과 땅을 가르려고 한다. 유다는 나뭇가지에 밧줄을 메고 자살하자 오장이 터져나왔다. 하나님을 팔 수는 있어도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유다가 하나님을 팔았지만 그의 공범자들은 하나님을 살 수 없었다. 하나님은 부활주일에 부활의 영광에 싸여 다시 현존하셨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유다를 보면서 아주 재미있는 비교를 할 수 있다. 몇 가지 유사한 점들이 있긴 하지만 엄청난 차이점들도 있다. 먼저 주님께서는 둘 다 "악마" 라고 부르셨다. 주님께서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히실거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반대하고 나섰을 때 그를 "사탄" 이라고 부르셨다. 두 번째로 주님은 둘 다 죄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이 스승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자기는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대해 베드로는 그날밤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배반하리라는 말을 들었다. 유다는 적신 빵을 받을 때 경고를 받았다. 유다는 자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배반자라는 말을 들었다. 세 번째로, 둘 다 주님을 부인하였다. 베드로는 밤중 재판이 벌어지는 동안 하녀들에게 넘겨주었을 때 부인한 것이다. 네 번째로 주님은 둘을 다 구하려고 하셨다. 베드로는 한 번 돌아보심으로써 그리고 유다에게는 "친구"라고 말씀하시면서 구원하려고 하셨다. 다섯 번째로 둘 다 뉘우쳤다. 베드로는밖에 나가 통곡하였고 유다는 삼십 은전을 되돌려 주며 주님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뉘우쳤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한 명은 사도명단의 맨 위에 자리하고 또 다른 사람은 맨 밑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그것은 베드로는 하느님께 뉘우쳤고 유다는 자신에게 뉘우쳤기 때문이다. . 유다는 "무죄한 피를 흘리게 했다" 고는 말했으나 자신이 그 피에 씻기기를 원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자기가 죄지은 것을 알고 구원을 찾았고, 유다는 자기가 잘못을 범한 줄 알고 도피처를 찾았다. 곧 유다는 십자가로부터 도피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하느님의 용서는 인간의 자유를 전제로 하되 그것을 말살하지는 않는다. 만일 죽음의 나무밑에 서 있던 유다가 계곡 주변을 둘러보고 생명을 가져다 주는 나무를 보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베드로와 유다처럼 주님께 회개하는 것과 자신에게 회개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나중에 이렇게 해설하였다.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유다의 인생의 비극은 성 유다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C. 요나의 회개
2006년 시내산 여름가족 수련회에서 필자의 요나서 강해를 참조하실 것.
출처 : 시내산선교회
글쓴이 : 이명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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