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잘못할 때가 있다.
누군가로부터 책망을 받거나 충고나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이때의 반응이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반항할 수도 있고 회피할 수도 있고 핑계를 댈수도 있다.
이런 여러가지 반응을 상담학에서는 자기방어라고 한다.
어려움이 생길때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이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반대로 자기를 방어하는 대신에 인정하고 시인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가지 자기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자기를 방어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시인할 것은 시인해야 한다.
물론 무조건 시인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을 수 있다. 심약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상대방의 주장에 휘둘리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도 시인하고 인정하게 되면 자신감을 잃고 주눅이 들어 자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떤 책망이나 충고에 대하여 바른 것이라고 하면 시인해야 하지만 아니면 아니라고 단호하게 반응해야만 자기를 지키며 살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기시인이 필요하다.
잘못했을 때 누군가로 부터 충고를 받으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회피하고 핑계로 일관한다면 변화와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란 인물은 우리야라는 충직한 부하의 아내와 간음을 하고 그것이 탄로날까하여 치열한 전투현장에 앞장세워 죽게 한다. 치밀하게 준비하여 완전범죄처럼 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나단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신다. 그 때 다윗은 자기를 돌아보고 시인한 후에 침상이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한다.
왕이었지만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겸손히 회개하고 행동을 돌이킨 위대한 인물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조언을 해주면 자기방어기체를 발동하여 회피하거나 핑계를 대어 일단 모면하려고만 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말하는 내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루한 잔소리꾼 아빠인가도 생각해본다.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스럽게 바라볼 때가 있다.
자기를 바로 알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며 사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자기를 시인하고 인정할 때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사과하는 용기가 있을 때 내일의 잘못과 실수를 줄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