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벨릭스의 실수

하마사 2009. 6. 3. 06:10

본문: 행 24:22-27

찬송: 521장

제목: 벨릭스의 실수

목표: 벨릭스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한다.

 

사도행전 24장은 바울에 대한 변사 더둘로의 고소와 그에 대한 바울의 변론 그리고 총독 벨릭스의 조치와 그 이후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약 10여 년을 팔레스틴 지역에서 계속 생활해 온 벨릭스는 유대인과 바울이 대립하게 된 원인이 단순히 그들의 종교적 견해 차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천부장 루시아가 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하고 바울에게는 많은 자유를 허용하였지만 무죄인 줄 알면서도 즉시 석방하지는 않았습니다.

벨릭스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1. 기회를 뒤로 미루었습니다.(22-25)

22-25절,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벨릭스는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났습니다. 이방땅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던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가 고소를 당해 자기가 살고 있는 가이사랴까지 오게 되어 복음을 듣고 새로운 인생으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무죄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을 석방함으로 인해 복음전파에도 큰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을 석방하지도 않고 재판을 연기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무죄임을 알면서도 자기 재임기간을 무리없이 채운 후에 후임자인 베스도에게 총독의 자리를 물려주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을 청하여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복음을 듣기는 들었지만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하여 듣고는 두려워하여 나중에 다시 듣겠다고 하며 변화의 기회를 뒤로 미루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말씀은 자기의 양심을 일깨우는 말이었습니다. 노예출신으로 로마 황실의 왕자 팔라스의 후광을 입고 불법적으로 유대총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독한 정치를 한 과거의 행위를 지적당하는 듯 했습니다. 또한 유대출신 부인인 드루실라와의 결혼도 남편이 있는 여인과의 불법적인 결혼이라는 점과 그런 행위들로 인해 장차 심판이 임할 것임을 증거했기 때문에 그는 두려워하며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가 올 때 잡는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이고 놓치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 됩니다. 벨릭스는 바울을 통해 복음으로 찾아온 좋은 기회를 뒤로 미루어 결국 영원을 놓치게 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2. 잘못된 탐심을 가졌습니다.(26)

26절,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잠시 마음에 찔림이 있어 두려웠지만 잠시 뿐이었고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벨릭스는 나중에 바울에게 뇌물을 요구했습니다. 석방되기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돈을 바칠 것을 은근히 종용했던 것입니다. 벨릭스의 이와 같은 행위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고 그 결과가 영원한 멸망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말씀처럼 과도한 욕심이나 잘못된 욕심은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장자의 달생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질그릇을 내기로 걸고 활을 쏘면 잘 쏠 수 있지만,

허리띠의 은고리를 내기로 걸고 활을 쏘면 마음이 흔들리고,

황금을 걸고 활을 쏘면 눈앞이 가물가물하게 되느니라.

그 재주는 마찬가지인데 연연해하는 바가 생기게 되면 외물(外物)을 중히 여기게 되니, 외물을 중히 여기는 자는 속마음이 졸렬해지는 것이니라."

'외물'은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뜻합니다. 남의 것에 눈길이 가면 마음이 흔들리게 되고, 마음이 흔들리니 손이 떨릴 수밖에 없고, 손이 떨리니 활을 제대로 쏠 수 없습니다. 외물에 욕심을 가지면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조차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는 결국 욕심의 문제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끝까지 우리는 자기 것을 손에 움켜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장례를 집례하면서 입관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어느 누구나 양손을 다 펴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다 놓고 가는 것이지만 생명이 있을 때는 양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으려하지 않고 자꾸만 쥐려고만 합니다.

이 욕심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 것이고 패배하여 움켜쥐려고만 하면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3. 사람들의 환심을 우선했습니다.(27)

27절,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이 말은 바울이 감옥에 투옥된지 2년이 경과하였다는 말입니다. 천부장 루시오가 오면 판결을 하겠다는 언질에도 불구하고 2년이 지나도록 재판이 열리지 않은 것은 의도적으로 바울을 구금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바울의 석방으로 인해 겪게 될 유대인들의 비난과 반감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무죄가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시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론의 동향이 중요했고 사람들의 인기가 중요했습니다.

사울왕이 왜 그토록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시기심입니다. 그 시기심의 출발점은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 쏠리는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기보다 여론의 동향에 더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인기는 내일의 손가락질로 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한데 반해서 사울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고 나중에는 백성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라의 문제도, 교회의 문제도, 가정의 문제, 개인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음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행 13:22절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벨릭스총독의 실수는 기회를 뒤로 미루었습니다. 잘못된 탐심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의 환심을 우선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와 결단의 기회를 주실 때 뒤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된 욕심을 버리고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환심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를 소원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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