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7:1-6
찬송: 415장
제목: 율법을 초월한 삶
목표: 율법에서 해방되어 주님과 연합된 성도로 살게한다.
율법은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신 것입니다. 율법의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며 이외에도 여러 가지 규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셨고 그 명령을 어길 경우 때로는 죽기까지 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이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못살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킬 수 없다고 해서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율법 역시 하나님이 주신 선하고 거룩한 것이지만 우리가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율법을 100% 온전히 지킬 수 없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초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율법을 초월한 삶은 어떤 것일까요?
1. 율법에 대하여 죽은 삶(4 상)
4절 상반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바울사도는 부부사이의 법을 가지고 율법을 초월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법을 설명합니다. 남편이 살아있는데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같이 살면 간음이라고 하지만 남편이 죽은 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그녀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다른 남자와 사는 것은 똑 같은데 판단이 다른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남편이 죽거나 아니면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는 것은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억지로 죽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죽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율법이라는 남편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책망하고 형벌을 주려고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율법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 동안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바울사도처럼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내려가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율법이라는 남편이 아닌 예수라는 새로운 남편을 만나서 결혼한 아내와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옛 남편인 율법과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새 남편인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새남편인 예수님은 우리가 부족해도 사랑해 줍니다. 심지어는 죄를 짓고, 방탕해도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면 따지지 않고 받아주십니다. 연약해서 주저앉으면 붙들어 세워주십니다. 진리와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고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제 과거에 정죄하던 전남편 율법과의 관계는 끊어졌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며 아직도 율법에 매여 산다면 이중 결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2:8-9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하여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므로 구원은 오직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주님과 연합한 삶(4 하)
4절 하반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을 초월한 삶은 율법에 대하여 죽고 주님과 혼인하여 새로운 연합을 이루는 생활입니다. 율법과는 결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관계를 끊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은 정죄를 합니다. 자꾸만 죄를 생각나게 하고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 죄의식 가운데 살게 합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죽고 주님과 연합하여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열매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6:22)로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과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의를 얻고 거룩하게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맺어야 할 구체적인 열매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리는 정한 세외에 더 받지 않고, 군인은 강포하지 않으며, 먹을 것이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와 자비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열매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착한 행실의 열매, 영생에 이르는 열매, 의의 열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 등입니다.
이러한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주님께 늘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주님과 떨어지면 열매를 맺지 못한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결국 불에 던져지고 맙니다. 주님을 떠나 자기의 노력과 열심만 가지고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붙어있는 가지처럼 늘 주님과 연합하여 아름다운 열매들을 많이 맺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자유로운 삶(5-6).
5-6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죽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우리는 이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은 얽매었던 율법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아하든, 싫어하든 율법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율법의 지배하에 있었고 율법과 결혼 관계에 있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통제하고 행동 전체를 주관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구원 받았기 때문에 율법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새 남편되시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기 때문입니다.
갈 5:1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으로부터도 자유를 얻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주님이 주신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율법을 초월한 삶은 율법에 대하여 죽은 삶, 주님과 연합한 삶, 자유로운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