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독교의 본질은 기도, 말씀, 선교이다.
이 본질을 외면하고 다른 것을 아무리 잘 감당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역을 결코 정상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없다.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해결책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에 전무하는 본질로 돌아가겠다는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이것이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1. 부흥 뒤에는 반드시 기도가 있다.
부흥을 이루는 분들의 목회현장에 가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부흥을 이룬 분들치고 개인 기도방이 없는 분을 본 적이 없다. 왜일까? 기도없이는 목회가 안되기 때문이다.
기도없이는 양떼가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없이는 양떼가 자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부흥을 이루기 위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부흥을 이루기 위한 본질이요 원동력이다.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글이나 말들을 통해서 잘난 척하는 사람에게 한번 사람을 붙여 주어보라.
기도없이는 단 100면도 제대로 품지 못한다.
100명의 양떼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100명의 양떼를 품을 정도의 기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100명의 성도가 모이는 것은 100명에 합당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1,000명이 모이는 것은 1,000명에 합당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없이는 양떼가 모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인 양떼를 맡긴다 할지라도 유지도 못하는 것이다.
2. 권위는 기도에서 나온다.
목회에서 분명히 능력이 필요하다. ‘
위로부터의 능력’없이 일하는 것은 마치 머리깍인 삼손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나이가 많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맞먹으려는 사람이 많다.
필자는 인격적 감화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내 인격에 감동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목회에는 어느 정도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외적으로 볼 때 필자에게는 원천적으로 의지할 권위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권위가 생긴다. 알기 쉬운 표현으로 한다면, 무게가 생기는 것이다.
필자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다 내려온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모세’를 항상 연상한다.
목회자는 이러한 영적 광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성도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없다.
목회를 하다보면, 교인들이 흩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때만틈 목회자를 당황하게 하는 때는 없을 것이다.
급하다보니 전화통에 먼저 손이 가고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거새을 통해서는 영혼을 건지는 데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위기의 상황에 주께 매달려 하루고 이틀이고 깊은 기도의 자리에 들어갔다 나오면
질서가 잡히고 영혼들이 끌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회자가 교회에서 영권(靈權)을 잃으면 교회에 재앙이 온다. 교회가 분열되게 된다.
그래서 모든 목회자는 엎드릴 수밖에 없다.
우리의 권세는 내 안에 있는 권세가 아니라, 주님께 종속된 권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목회자는 ‘얼굴에 광채가 나는 모세의 얼굴’을 자신의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권위는 기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도목회는 절대 필요하고 기도목회하는 목회자는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
3. 기도만이 해결책이다.
지난번 사역하던 교회에서의 일이다. 대학부를 맡은 초창기의 일이었다.
거의 피와 땀을 쏟아가며 설교를 준비했다. 설교 내용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정돈된 말씀을 증거했다.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영혼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라성과 같은 말씀이 증거되는데 영혼이 변화되지 않는다.”세상에 이보다 더 큰 낭패가 있겠는가?
그래서 말씀이 막힐 때마다, 무조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곤 하였다.
1시간 정도 말씀을 놓고 기도하다보면, 이상하게도 풀리지 않는 말씀이 풀린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말미암아 필자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말씀의 보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체험했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기도하는 자리 옆에 메모장을 두고 기도한다.
기도는 우리의 간구를 하나님께 아뢰는 의미도 있지만, 기도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특별히 목회자에게 있어서 기도시간은 하나님께서 작성하신 설교 원고를 받아 적는 시간이다.
어떤 때는 기도하는 자리에서 설교의 모든 부분을 다 받아 적고 더 이상 설교준비할 것이 없을 때도 있었다.
이런 설교는 항상 모든 성도들을 복음의 영광 가운데 이끄는 설교가 되었다.
기도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된다. 기도는 만능이다.
기도없이는 말씀의 능력도, 기도의 감화도, 문제의 해결도 되지 않는다. 기도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된다.
4. ‘끝장보는 기도’가 필요하다.
초대교회는 야성이 있던 교회였다.
핍박이 오면, 피를 흘려가면서 대항해내고, 시험이 오면 온 성도가 모여서 기도로써 그 위기를 극복해내곤 하였다.
초대교회는 세상의 관원들이 아무리 길들이려 해도 길들여지지 않던 야성의 호랑이 였다.
한국교회도 이 초대교회의 야성의 전통을 이어받아 무서운 교회가 되었다. 핍박에 대해서 피로써 항전했다.
시험과 환난이 오면, “소나무 뽑으러 가자”며 산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심장을 쏟아붓곤 하였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시험이 오면 오히려 기도의 불길이 타올라 더 부흥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가?
기도할 줄 모르는 성도가 양산되고 있다.
산기도, 철야기도를 통한 ‘끝장보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성도가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필자는 성도들에게 기도하다가 죽는 순교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교회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자리는 기도회의 자리이다.
이 기도회는 처음보는 사람들이 마치 전투장을 연상케 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서 제일 많은 전투를 하고 제일 많은 피와 땀을 흘린다.
기도의 승리를 이루고 난 뒤, 다만 사역의 현장에서는 승리의 노획물들을 거둘 뿐이다.
목회선상에서 승부를 거는 끝장보는 기도가 필요하다.
생명을 건 기도로 교회부흥과 성장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기도할 때 영권을 회복하며 능력있게 목회할 수 있다.
- 전 병 욱/삼일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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