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예루살렘 심판의 교훈

하마사 2008. 8. 29. 09:44

본문: 겔 9:1-11 찬송: 513장

제목: 예루살렘 심판의 교훈

목표: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 구별된 삶을 살게한다.

 

9장은 하나님이 큰 소리로 에스겔의 귀에 외쳐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성읍 관할하는 자들에게 살육하는 기계를 들고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살육하는 기계란 완전히 부수어 멸망시키는 기계를 말합니다. 6명이 살육하는 기계를 가졌고 그 중 한 사람이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차고 놋제단 곁에 섰을 때 그룹위에 있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읍 중에서 가증한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그 행위를 보고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인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5명에게 이마에 표가 없는 사람은 모두 죽이되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홀로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심판의 이유를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과 불법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머리에 갚겠다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심판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은

 

1. 구별된 심판입니다.(4)

4절,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심판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당시에도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노아에게 방주 지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노아처럼 심판에서 제외되는 구별된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그의 조카 롯을 구별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또한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 중에 장자가 죽는 10번째 재앙은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에는 내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도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사람은 구별되어 심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세에 세상을 심판할 때도 하나님은 구별된 심판을 하십니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명이 심판에서 제외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고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아무리 무섭다 할지라도 이마에 인을 맞은 구별된 성도들은 심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성전에서 가증한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불법과 불의를 행하는 중에도 그런 행위를 탄식하며 울면서 통탄해 했던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시대가 변하여 성전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진다할지라도 불의와 불법을 답습해서는 안됩니다. 탄식하며 울면서 안타까워했던 구별된 성도들처럼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말씀의 순결성을 지켜 심판을 면하는 구별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철저한 심판입니다(5-6)

5-6절,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하나님의 성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피의 보수를 당할 처지에 있는 자가 도피할 경우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부터 살육을 시작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가장 거룩하고 신성시되어야 할 성소에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우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떠나시고 이곳에서부터 살육이 자행되도록 허락하심으로 가장 불경하게 우상숭배 죄를 범한 자부터 징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성소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책임이 믿는 사람들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여 성전이 더렵혀지면 모든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또한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 성전이 수난을 당했습니다. 6.25사변 때도 교회건물이 공산당의 본거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행하는 것이 비단 교회의 일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녕에도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국가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행할 때 이 나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룹에 머물러있던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에서 떠나 성전 문지방에 이르러 심판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마에 인이 없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두 살육하였습니다. 아껴보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완전히 진멸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한 심판입니다. 노아의 심판 때 노아의 가족 8식구 외에는 모든 사람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 때도 롯의 식구들 외에는 모두 유황불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심판하실 때도 살진 소나 양을 남겨두지 말고 모두 죽이라고 하셨지만 사울이 그것이 아까와 남겨두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여리고성을 멸할 때도 그렇습니다.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사람을 제외한 남녀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철저히 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엄하고 철저함을 알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말씀을 준행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공의의 심판입니다.(9-10)

9-10절, “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이스라엘의 죄악과 불법으로 인해 심판이 임하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본문 9-10절을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족속의 죄악이 심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였고 불법이 성읍에 가득 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품어주시면서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렸지만 회개는커녕 하나님께 그 탓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셨으며 보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자기들의 죄악과 불법이 가득차서 하나님이 더 이상 함께 계실 수 없음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세상의 법정은 공의롭다고 주장하지만 잘못된 판결이 많습니다. 권력과 힘의 논리에 의해 판결이 굽어질 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정의롭습니다. 세상법정의 판결이 어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임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스겔은 8절에서 심판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 합니다.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에스겔 선지자는 롯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창 18장),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모세의 중보기도(출 32장)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경우 남은 백성들까지 멸망 받을 까 염려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별된 심판, 철저한 심판, 공의의 심판입니다. 세상의 조류에 흔들리지 않았던 이마에 인 맞은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철저하고 공의로운 심판에서 구별되고 승리할 뿐만 아니라 에스겔처럼 심판받는 백성들을 안타까워하며 중보기도하는 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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