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낙심 중에도 소망을 가집시다

하마사 2008. 8. 16. 07:58

본문: 애 3:19-26

찬송: 535장

제목: 낙심 중에도 소망을 가집시다.

목표: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갖게 한다.

 

본장은 예루살렘 패망직후 쓴 애가서의 다섯노래 중 제 3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위치했던 예루살렘마저 처참히 함락되고 죽음을 모면한 거민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야 했던 B.C. 586년의 예루살렘 함락 사건을 예레미야가 온 몸으로 체험하고 나서 그 폐허의 현장에서 쓴 다섯편의 시 중에 세 번째 시입니다.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과 같은 어려움이 삶에 닥칠 때 누구나 낙심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유다백성과 자신이 처한 현실을 보고서 깊은 좌절을 느꼈던 예레미야가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 '소망'은 당면한 재난과 참상을 망각하거나 경감시킴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함으로써 생겨난 것입니다.

18-21절 말씀입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레미야처럼 낙심 중에도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입니다.(22)

22절,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여기서 ‘자비’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주시는 은총과 죄인을 향하여 발하시는 무한하신 사랑을 의미합니다. 비록 유다백성의 죄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지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다시 용서하고 회복시켜 주실 줄 믿고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를 연상하면 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허랑방탕하게 쓰고 돈이 떨어지자 아버지의 집을 연상하여 집에 돌아올 때 그 아들을 내치지 않고 다시 용서해주고 잔치까지 벌이는 무한한 아버지의 사랑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심지어 아버지의 품마저 떠났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그 넓은 품으로 안아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낙심 중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고 어떤 어려움과 낙심되는 상황이 있다할지라도 소망을 가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성실하심 때문입니다.(23)

23절,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여기서 ‘성실’이란 단어는 도덕적, 인격적으로 믿을 수 있는 신실함, 변함이 없이 꾸준하고 안정된 확고함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실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유다백성들의 거듭된 범죄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파괴된 하나님과 백성들 간의 교제를 회복해달라고 낙심 중에도 소망을 가지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다 할지라도 70년 후에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에 그는 소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셔서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성실하셨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성실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기업되심 때문입니다.(24)

24절,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업’이란 부모 혹은 근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토지 등의 재산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이 기업은 한 사람이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생계의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업이라고 한 예레미야의 고백은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이 소유한 최고의 가치요 소망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가진 예레미야를 본받아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어떤 낙심되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입니다.(25)

25절,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하나님은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고 기다리면 기꺼이 만나주시고 기도하면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낙심하는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믿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좋으신 아버지께서 구하면 좋은 것으로 주심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낙심되는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하며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낙심할 수 있습니다. 자녀문제로 인해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 인하여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때라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시고, 하나님은 성실하시며, 하나님은 기업이 되시고,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어떤 상황 가운데도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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