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엡 1:1-6
찬송: 189장, 214장, 173장, 464장/ 484장
제목: 바울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목표: 바울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확신가운데 살게한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62년경에 로마 옥중에서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에베소는 항구도시로서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헬라신화의 영향으로 아데미 신전이 있어 그것에 대한 숭배가 성행하였으며 경기장, 원형극장, 시민광장 등의 공동시설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러 얼마동안 전도하다가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그 후 3차 전도여행 중에 다시 이곳에 들러 회당에서 3개월 그리고 두란노서원에서 최소한 2년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무리들과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합세하여 일으킨 큰 소요와 충돌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목적은 흩어진 교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성을 강조할 목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에베소서의 주요내용은 네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선택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택하셔서 양자됨과 죄용서, 성령의 인침을 성도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화해를 강조하여 죄로 막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과 약속으로 나누어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간격을 메꾸어 하나의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셋째, 교회에 관한 강조로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으로 하나가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넷째, 위의 세 가지 교리의 적용으로 그리스도인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상전과 종과의 모든 관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6절 말씀을 중심으로 ‘바울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증거하겠습니다.
바울의 하나님은
1. 택하시는 하나님입니다.(1)
1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줄 믿습니다. 4절을 보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창세전이란 영원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공로나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전적인 은혜에 의해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사실에 자만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치 못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선택받은 자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죄악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죄를 범하며 살 수 밖에 없지만 예수님의 피로 인해 깨끗함을 받고 거룩하고 정결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훼방하고 핍박하고 폭행하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로 택함을 입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명에 대한 분명한 자기확신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르심과 선택하심에 대한 이런 자기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선택받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실 때는 일하지 말고 편히 쉬라고 선택하지 않습니다. 일감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모세나 바울을 선택하실 때도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선택하심에는 하나님의 일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많은 교회 중에 광성교회로 선택받은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여기에 있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피하거나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속담에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직면하시고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직면할 때 극복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바울의 하나님은
2. 복 주시는 하나님입니다.(3)
3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그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건강, 지혜, 재물, 영광, 생명, 자녀의 복, 평안, 장수의 복, 구원의 복 등 모든 좋은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주시는 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예수 믿는다고 이 모든 복을 다 누리고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흘린 땀방울은 헛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대에 받지 못하면 후대에라도 반드시 보상해주심을 믿어야만 합니다.
저희 할머니는 96세에 소천하셨습니다. 평생 성경을 사랑하며 새벽기도를 하셨던 저에게 믿음의 모델이셨습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각종 과일나무 심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손주들이 그 열매를 따먹을 것을 생각하며 심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가 열매를 얻지 못한다할지라도 후대를 바라보며 과일나무를 심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하는 예배, 선교, 교육, 봉사, 기도, 말씀순종은 언젠가 우리의 후배들과 후손들이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복에는 하늘에 속한 복과 땅에 속한 복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복을 신령한 복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신령한 복이란 세상적이거나 인간적인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적인 축복입니다. 인위적이거나 일시적인 복이 아니라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베푸신 은혜로운 축복이며 영생을 약속하는 복입니다. 이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받을 수 있습니다.
땅에 속한 복이란 기름진 윤택의 복입니다. 땅의 소산이 잘 되는 복입니다. 부귀영화의 복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복을 모두 누리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지요. 그러나 땅의 복을 누리고도 하늘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안목으로는 부러움을 살 수 있지만 영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잠시간의 영화입니다.
반대로 하늘의 속한 복은 누리면서도 땅에 속한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요한, 스데반이나 바울도 그렇습니다. 비록 땅에서는 환난과 핍박을 당했지만 하늘의 상급을 풍성히 누리는 분들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도 누리면서 땅에 속한 복도 풍성히 누렸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도 그렇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후에는 땅에서도 잘되는 복을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두 가지 복을 모두 누리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복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즉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먼저 추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일생을 그렇게 살았던 사도바울이 임종을 얼마 앞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나님은 이처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땅의 모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도하셔서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모두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의 하나님은
3. 찬양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4-6)
4-6절,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피조물 중에 특별히 인간은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게 할 목적으로 지으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본문 6절에도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마땅한 본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빌립보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고 환란이나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울 수 있었고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하나님은 택하시는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 찬양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택하신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땅에 속한 기름진 복을 누리고 그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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