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 91:14-15
찬송: 341장
제목: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려면
목표: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며 사는 비결을 알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
은혜란 국어사전에서 ‘고맙게 베풀어주시는 신세나 혜택’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와 질병으로 예상치 못한 곤경에 처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누구나 은혜를 받고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주시는 대상인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거나 알면서도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다양한 은혜를 받고 지속적으로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14 상)
14절 상반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세상에 모든 사람과 동식물들은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권사님 집을 심방했는데 그 권사님은 식물을 잘 가꾸시는 분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식물도 그 권사님의 집에만 가면 살아서 아름답게 변한다고 했습니다. 그 비결을 물어보았더니 식물을 사랑해주는 것이 비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물을 줄 때 뿐만 아니라 수시로 식물과 대화를 하며 만지며 사랑한다고 말을 해준다고 했습니다. 식물도 이렇게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다녀왔습니다. 두 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서로 사랑하여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한 쪽 귀퉁이에 개집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근처에 가기만 하면 세 마리의 새끼가 나와서 재롱을 피웠습니다. 한 마리를 쓰다듬어주면 다른 두 마리도 얼른 다가와 자기도 사랑해달라고 졸라댔습니다. 동물도 이처럼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심지어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쓴 어느 일본 학자는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면 물의 성분까지 변한다고 했습니다. 물까지도 사랑의 언어를 좋아하고 사랑받기 원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친히 건져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사랑한즉'에 해당하는 단어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6:5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주시고 건져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물론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가는 은혜를 주십니다. 내가 어떤 형편과 사정에 처해있다 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그러나 여러 시련과 역경가운데서 건져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의지하고 사랑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있는 사람을 찾거나 그 환경을 모면할 궁리를 먼저 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그 분께 헌신하라고 말씀합니다.
히말라야의 성자라고 불리우는 썬다싱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산불이 난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산불은 점점 크게 불어서 썬다싱이 서있는 언덕 아래의 큰 나무 가까이까지 번져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 꼭대기에는 새둥지가 있어서, 어미 새가 파닥거리는 아기 새들의 둥지 위를 빙빙 돌며 안타까이 짹짹거리고 있었습니다. 시뻘건 불길은 커다란 불혀를 날름거리며 그 나무 밑둥에도 번져, 이윽고 거목의 꼭대기에 있는 둥지를 삼키려 들었습니다. 불길이 꼭대기까지 닿으면 어미 새가 날아가 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안타까이 돌던 그 어미 새는 불길이 둥지에 붙는 순간, 쏜살같이 내려와 양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덮쳐 안은 체 함께 타죽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어미 새처럼 이렇게 목숨을 다하여 사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분명히 구원받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비록 어미 새는 타 죽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면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롬 8:28절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것도 마음과 성품과 힘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은 절대로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이루어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걱정과 근심이 있습니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방법을 찾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면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해 절망하고 낙망하며 한숨 쉬는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문제로 염려하십니까?
하나님을 지금보다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께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지속적으로 누리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려면 둘째로
2. 하나님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14 하)
14절 하반절,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교구를 돌보면서 사람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 참으로 난감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님들을 영접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분명히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얼굴은 알고 자주 인사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고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알고 그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애굽의 바로 앞에 설 때 자기를 보낸 자의 이름을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할지 하나님께 질문하자 하나님이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서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고 하자 바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면 이렇게 용감합니다. 그 결과 애굽에 10가지 재앙이 내리고 자기의 장자까지 죽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압니다. 그분의 존재를 상징하는 ‘여호와’라는 이름도 압니다. 그러나 아는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대통령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분과 실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군대에 가면 직속상관의 이름을 외우게 합니다.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의 이름을 알게 합니다. 자기 소속을 알고 있으라는 의미이지요. 소대장과 중대장 대대장은 자주 만날 수 있으나 연대장이나 사단장은 만나기가 힘들어 이름만 알뿐 얼굴도 가까이에서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름을 아는 것은 실제로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떤 도움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광주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때 같은 내무반 친구가 투 스타인 학교장을 알고 있어 만나고 오더니 자대배치 받을 때 좋은 곳으로 발령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군대에서 장군만 가까이 알아도 군 생활이 한결 쉬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와 동행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알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다'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진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피상적으로 대충알고 지내는 그런 앎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라고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힘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다프'는 '추적하다', '뒤따르다'란 뜻으로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열심히 좇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릴 때 집 뒤에 있는 뒷산을 자주 올라 간적이 있습니다. 어떤 날 집에서 기르던 개를 데리고 갔습니다. 산을 걷고 있는데 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에 왔으니 열심히 뛰어노나보다 하면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급하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았더니 개가 토끼를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토끼는 잡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었고 개는 잡으려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산허리를 감싸고 서로 달리는데 대단했습니다. 토끼가 한 발 앞서 도망을 치고 그 흔적을 개가 살피고 있기에 불렀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토끼의 흔적을 쫓아 달려갔습니다. 좌우를 둘러보지도 않고 토끼를 잡으려는 한 가지 일념에 집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사냥개가 토끼를 잡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알자고 호소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나가 승리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형들에게 음식을 전해주고 안부를 알아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골리앗이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의분을 느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신청했습니다. 돌 다섯 개와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 앞에 나가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군대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모두다 골리앗이 두려워 떨고만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유명한 장수나 전략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게는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의 이름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곰과 사자가 양을 빼앗으려 할 때 싸워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이름과 그 이름의 능력을 그는 분명히 체험했습니다. 곰과 사자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확신했던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애물도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개 목동이었지만 마침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왕보다 높은 영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체험적으로 알았던 다윗을 높여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냥 단순히 이름을 아는 사람과 그 이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기에 이 자리에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똑같이 불러도 그 이름의 능력은 차이가 있습니다.
시 124: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고 그의 이름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시고 높여주시리라 믿습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높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지속적으로 누리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려면 셋째로
3.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15절)
15절,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란 책자 표지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자주 패배하는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수많은 교회의 일꾼들이 그토록 자주 용기를 잃고 낙심하는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사람들이 그들의 사역을 통해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내는 영혼이 그토록 적은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하는 것은 모든 실패의 원인은 은밀한 기도에 실패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무릎을 꿇는 자녀를 붙잡아 일으키신다.
제가 질문하면 답을 하시는데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다같이 크게 대답하시면서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찌하여 나는 마귀와의 영적싸움에서 그토록 자주 패배하는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나는 그토록 자주 용기를 잃고 낙심하는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를 이길 능력이 부족한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나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이 타오르지 않는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예화) 기도의 위력에 관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프랑스가 겨우 두 주일 만에 독일군에게 완전히 점령당했을 때, 던커스 반도에 있던 35만 명의 영국군도 독일군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대단히 위태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영국의 죠지 6세는 전 국민에게 국가적인 위기를 알리고 ‘기도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국가의 위기 앞에서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음과 같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35만 명의 영국군이 도버 해협을 건널 때, 도버 해협은 맑은 날씨였으나 독일군이 있는 곳에만 큰 폭풍우가 일어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전투기는 물론 탱크 한대도 움직일 수 없이 고스란히 영국군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한편 영국군이 도버 해협을 건널 때는 물결이 어찌나 고요하고 잔잔한지, 탈출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으며 인명과 물자의 피해없이 영국으로 건너올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교회의 현실이 도망치는 영국군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가운데 도버해협을 무사히 건너고 후에 독일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케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십니다. 시 145:18-19,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길 원하면서도 막상 무릎 꿇어 기도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응답해주시겠다고 하셨고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또한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고 말씀으로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간절히 그리고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입술을 포함한 온 몸과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입으로만 기도하셨다면 땀이 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땀방울이 피방울로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할 때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엘리제사장이 보니 마치 술 먹은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사자굴에서 하는 다니엘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민족이 멸족당할 위험 앞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금식하며 하는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지난 번 교회재판 문제로 교회가 금식을 선포하고 전교인이 한끼 이상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저희 부부도 3일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온 교인들이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를 했지만 그날의 결과가 좋지 않았고 이런 사태가 발생하여 낙심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억하시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결과로 응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반드시 구원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책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가장 잘 무릎 꿇는 이가 가장 훌륭히 서는 자요. 가장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 이가 가장 강하게 서는 자이며, 가장 오래 무릎 꿇는 이가 가장 오래 서는 자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은 말씀합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지속적으로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어떤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구원해주시고 마침내 영화롭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지속적으로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건져주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체험적으로 알면 높여주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하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와 영화를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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