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역사적 발전
장흥길
■ 들어가는 말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이 지으시고 택하신 백성과 만나는 자리에는 항상 예배가 있었다. 예배는 유사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예배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기에 구약 성경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민족사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역사이며 그 신앙의 중심이 되는 예배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기서는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역사만을 살펴 보기로 한다.
■ 구약 시대의 예배
1. 태고사(창세기 1-11장)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낙원을 잃어버린 것은 자연스럽고 항구적인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은 제단을 쌓고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를 그때 그때 회복시켰다(창 4:3-5). 그후 예배는 계속되었다. 에녹은 하나님과 끊임 없는 교제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창 5:22).
인류 최초의 예배가 고대 이교 예배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을 섬기도록 인간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이다.
2. 족장 시대
아브라함은 장막을 옮길 때마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고(창 12:9; 13:4; 13:18; 21:34) 이삭은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배워 제단을 쌓았으며(창 26:24-25), 야곱은 벧엘에서 돌단을 쌓고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하였다(창 28:18-22). 이 시대의 예배의 특징은 족장들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고 이 장소들이 후에 성소(sanctuary)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 가장이나 족장이 직접 제사를 주도하여 예배를 인도함으로써 최초의 집단 예배가 시작되었다. 족장 시대의 예배는 간단하면서도 개인적이었고 그 형식은 희생 제사(sacrifice)와 기도(prayer)였다.
3. 출애굽 시대
족장 시대의 예배가 개인과 가정적 차원에서 행해졌다면 모세 이후 시대의 예배는 그 범위가 확대되어 민족적 차원에서 실시되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과 제사장과 제사에 관한 제의법을 계시하심으로써 예배 절차가 마련되었고 무질서했던 예배의 형식이 제도화되었다. 성막이 완성되기 전에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재판이 행해졌으며 율법을 가르치던 회막(tent of meeting)에서 실시되었고(출 33:7 이하), 성막이 완성된 후에 예배는 성막에서 드려졌다.
제사법과 함께 주어진 예배와 삶의 기본 원리인 십계명은 예배와 삶의 일치를 의도하고 있다. 이 시대는 예배와 삶의 일치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예배 절차가 확립되고 강조된 때이다.
4. 사사 시대
가나안 정착 이후 이스라엘의 예배는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 드렸던 예배가 가나안의 토착 종교인 바알 종교(Baalism)의 영향으로 차츰 타락하게 되었고 예배와 의식들도 타락되어 갔다. 그때마다 사사들은 모세 시대의 예배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편으로는 각 지파별로 땅이 분배됨으로 인해 몇 군데 지방 성소들이 건립되어 예배를 드렸는데 그 대표적인 곳으로는 길갈(삿 2:1), 오브라(삿 6:24), 실로와 단(삿 18:29-31), 헤브론(삼하 5:3), 기브온(왕상 3:4) 등이 있었다.
5. 통일 왕정 시대
왕정이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의 예배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예배의 중심 장소는 성막 대신에 솔로몬에 의해 화려하고 웅장하게 건립된 예루살렘 성전(temple)이었다. 3대 절기인 유월절, 초막절, 칠칠절에 백성들은 십일조와 희생 제물을 준비하여 성전에 모여야 했고 예배는 더욱 발전되었다. 예배는 음악, 독창, 축송, 환성, 춤, 행렬, 기도, 악기 연주, 설교, 선조들에 대한 회상, 간구, 약속, 신앙고백, 봉헌, 거룩한 식사, 정결 예식 등으로 진행되었다.
성막 예배와 현저한 차이로는 전문적인 음악가의 지휘 아래 훈련된 성가대가 장엄한 음악을 준비하여 드림과 예배에 사용된 시와 노래(제의 시편)로 찬양과 감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성전 예배를 통해 예배는 더 공교롭게 다듬어졌다. 또 이 시대는 예루살렘 이외의 지방 성소(local shrine)도 있었는데 이곳에서 특별한 경우 개인이나 가족들이 제물(offering)을 봉헌하기도 하였다. 이 시대는 제의적 예배가 최고로 발전한 시대였다.
6. 분열 왕국 시대
제사 의식에 치우친 예배는 차츰 형식화되기 시작하여 그 본래적인 뜻을 상실해 버림으로써 차츰 타락하게 되었고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 조차도 통치 말기에는 예루살렘에서 이방신을 섬겼다. 많은 왕들이 한낱 형식주의에 빠진 예배를 드리게 되자 하나님은 여러 예언자(이사야, 미가, 아모스, 호세아)를 통해 왜곡되고 타락된 예배를 지적하셨고 진정한 예배에 대한 복고적 자세를 주장하셨다(사 1:10-17; 암 5:24; 미 6:8; 호 6:6). 그러나 예언자들의 이러한 경고는 예배의 폐지가 아니라 예배의 성실한 준행을 위함이었다.
주전 8세기 이후 예배에 대한 개혁 운동은 요시야왕과 예레미야, 에스겔에 의해 계속 일어났다. 요시야에 의해 제도적인 예배 개혁이 일어났다. 예레미야는 성문화된 율법 규정이나 성전 예배 의식만으로는 온전한 예배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영적인 예배를 강조하였고 개인적 회개와 심령의 변화를 부르짖었다(렘 31:29-30). 제사장인 에스겔은 죄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성을 강조하였다.
7. 포로 시대(회당 예배)
남북왕국 멸망 이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는 더 이상 성전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한 장소에서 한 의식에 따라 예배 드리는 것은 불가능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차원의 예배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회당 예배이다.
회당 예배의 중요한 내용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인데 성경을 읽기 전에는 축원(blessing)이나 기도를 먼저 하였다. 회당에서 드리는 공중 예배가 말씀과 기도를 강조하게 됨으로써 성전예배에서 드리던 희생 제사가 예배에서 필요 없게 되었다. 성전에서 매일 드리던 제사 대신에 정규적인 기도 시간이 아침, 오후, 저녁에 행해짐에 따라 예배 역사상 처음으로 희생 제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도 예배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회중은 희생 제물을 바쳐야 하는 성전 예배 대신 회당에서 개인적으로 또는 단체로 매주 또는 매일 예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회당은 각 지역 상황에 적합한 지역 교회(local church)로 발전하게 되었다.
8. 귀환 시대
주전 5세기 에스라, 느헤미야의 인솔 하에 바벨론에서 복귀한 후에도 회당 제도는 팔레스틴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예배의 주된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포로 귀환 후에는 성전이 재건축됨에 따라 성전과 회당이 공존하게 되었으며 때로는 성전 예배와 회당 예배가 대립 양상을 보인 적도 있었다.
회당 예배의 주요 순서는 성경 낭독과 해석, 유대교 신조와 쉐마(신 6:4-5) 암송, 시편과 십계명과 축도와 아멘의 사용, 기도, 성결의 기도 등이 있었다.
성전 예배와 회당 예배의 비교 1. 성전 예배 (1) 성전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예배 중심지였으며 유대 민족의 3대 절기가 지켜지는 장소였다. (2) 희생 제도가 중요시된 의식적 예배였다. (3) 개인의 참여보다는 제사장 중심의 예배였다. (4) 전문적 음악가가 지휘하는 찬양대와 많은 악기가 예배에 사용되었다. (5) 제사와 기도와 찬양을 갖춘 정규 예배가 드려졌다. 그러나 설교는 없었다. 2. 회당 예배 (1) 회당은 각 지역에 분산되어 있었다. (2) 말씀 중심의 예배로서 율법의 낭독과 해설이 있었다. (3) 제사장이 필요없게 되었고 대신 랍비(서기관) 중심의 예배였다. (4) 성전 예배에 비해 보다 비형식적 예배였다. (5)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고 제사 대신 기도와 찬송으로 예배하였으며, 예배는 안식일 또는 매일 거행되기도 하였다. (6) 회당은 율법을 가르치는 교육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
■ 신약 시대의 예배
1. 예수 시대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의 관례를 따라 성전과 회당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형식화하고 부패한 예배는 용납하지 않았으며(마 21:12-17; 막 11:15-18; 눅 19:45-48; 성전 정화 사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을 말씀하셨다(요 4:24).
예수님은 예배의 형식이나 제사 제도 자체보다는 그 내용 의미를 더 중요시하였고 개인의 예배 자세도 영적이고 내면적인 면을 더 강조하셨다. 성전 제사 제도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계획하시는 새로운 질서가 완전히 성취되면 이 낡은 제사 제도가 완전히 사라질 것을 예견하셨으며 예배의 초점도 예수 자신에게 맞추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유일회적인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써 더 이상의 희생 제사가 불필요하며(히브리서) 자신이 곧 성전(요 2:21)임을 말씀하심으로써 성전 예배가 예수님 안에서 예배 형태로 발전될 것을 예시하셨다.
신약 시대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의해 제정된 성례전(세례와 성만찬)이다. 예수님에 의해 세례에 새로운 의미가 부가되었으며 예수님은 직접 세례를 베풀지는 않았으나 제자들에게 세례를 명령하셨고(마 28:19; 행 1:5), 제자들은 이 명령에 따라 세례를 베풀었다(요 4:2).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친히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가진 유월절 식탁에서 비롯되었다.
2. 사도 시대
사도 시대의 예배는 차츰 구약식 예배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기독교적 예배를 구성하고 전개하였다. 이때 드린 예배로는 성전 예배, 회당 예배, 그리고 가정이나 특별 장소에서 별도로 모여 드린 반사적(半私的, semi-private) 예배가 있었다.
처음 기독교 예배는 유대인들의 전통적 의식과 대립되지 않는 상태에서 비공식적으로 시작되었으나 후에 유대인의 박해와 반대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조직하게 되었고 이에 적합한 예배 형식이 개발되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후 1세기말 랍비들의 모임인 얌니아 회의에서 기독교인의 회당 예배 참석 허락 금지 결정이 내릴 때까지 회당 예배에 참여하였다. 처음 기독교 예배는 안식일을 지켰으나 유대교에서 추방된 후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그때까지 모였던 안식일과 주일 모임에서 안식일 다음 날만 주의 날로 정하고 모였는데 이것은 주님의 부활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당시의 예배의 내용으로는 성경봉독, 찬가, 기도, 봉헌, 회중의 아멘 화답, 신앙고백, 평화의 입맞춤, 설교, 떡을 나눔, 주의 만찬, 세례 등이 있었다.
■ 맺는 말
예배는 인간이 창조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느 시대이든 예배는 의식(형식)과 의미(내용)가 함께 강조되었고 외형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그리고 예배의 형식과 내용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변화되고 보완되었다.
지금 우리가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리고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배학적으로는 제사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 결단과 기도
제사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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