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양지와 음지

하마사 2007. 6. 7. 06:24
 

본문: 에 9:1-32                찬송: 434장

제목: 양지와 음지

목표: 하만과 모르드개의 인생역전을 통해 양지와 음지를 비교케 한다.


본문은 부림절의 유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림절이란 바사(페르시아)의 총리 하만이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음모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과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지혜와 결단력으로 유대인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만의 흉계에 의해 반포된 아하수에로왕의 조서에 따라 유대인의 멸절이 작정된 날에 상황이 바뀌어 하만이 처형되고 모르드개가 하만이 가졌던 권한을 다 갖게 됨으로서 오히려 유대인을 죽이려던 대적들이 멸망당하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역사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더불어 궁극적 심판이 이루어질 최후의 심판날에 악인과 의인이 당할 서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예표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정과 국가 그리고 개인의 일생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습니다. ‘양지’란 사전에서 ‘볕이 바로 드는 곳’, ‘혜택을 받는 처지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지의 반대말은 음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하만과 모르드개를 통해 양지인생과 음지인생을 비교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음지가 양지로 될 수 있습니다(4).

4절,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

하만은 양지인생이었습니다. 바사제국의 실권자로 권력의 양지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에게 반대하고 자기를 높여주지 않으면 여지없이 권력으로 처단하는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정착했던 소수민족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는 힘없는 소시민에 불과했던 음지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우주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만의 음모 앞에 힘없이 굴복하고 멸절될 수밖에 없는 위기 가운데서도 금식하며 부르짖을 수 있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음지인생이었던 모르드개는 왕궁에서 존귀한 사람이 되었고 점점 창대하여 그 명성이 각 도에 퍼질 정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중에 나는 음지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식물 중에는 음지식물과 양지식물이 있어 음지식물은 음지에서만 자라고 양지식물은 양지에서만 자라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모르드개가 음지인생에서 양지인생으로 변화되었듯이 하나님이 도우시면 누구나 양지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하는 도망자가 되었을 때 얼마나 심한 음지에서 살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양지에 서게 하시고 가장 높여주셨습니다. 시 23:5절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자기를 죽이려던 원수가 보는 앞에서 잔치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음지인생을 양지인생으로 만드시는 분이심을 믿고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도 능히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2. 양지에서 겸손해야 합니다(25).

25절, “에스더가 왕의 앞에 나아감을 인하여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양지인생이던 하만이 완전히 몰락하여 열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는 음지인생이 된 이유는 그의 교만과 악한 꾀 때문이었습니다. 잠 16:18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말씀처럼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기 앞에 무릎을 꿇거나 절하지 아니함을 보고 화가나 모르드개와 유대민족 전체를 멸절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교만과 거만함이 이렇게 무서운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런 악한 생각과 꾀를 가지고 왕을 충동질하여 조서를 내리게 합니다. 하만은 이처럼 자기의 높은 지위를 감당할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교만하였으며 악한 꾀로 남을 이용하여 자기의 목적만을 이루려는 잘못된 권력자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어떻습니까? 아버지 야곱이 죽자 복수할까 두려움에 떨고 있던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20-21).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의 총리로 높여주신 것은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있게 하셨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요셉처럼 우리들도 양지에 있을 때 하나님이 왜 거기에 있게 하시는지 사명을 바로 알고 겸손하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22, 31).

22절,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31절, “정한 기한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의 명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을 인하여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부림절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자손대대로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양지인생이든 음지인생이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비록 음지인생이라면 음지가 변하여 양지되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소망가운데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또한 양지인생이라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망각하고 하만처럼 교만하거나 악한 꾀를 부리면 양지가 변하여 순식간에 음지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양지인생이든 음지인생이든 하나님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은혜를 지속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삶의 환경이 음지입니까? 양지입니까?

음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양지에 대한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양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항상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음지이던지 양지이던지 늘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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