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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복(예배복)에 대한 신학적 탐구(예배학을 중심하여)

하마사 2006. 12. 12. 07:23

예복(예배복)에 대한 신학적 탐구(예배학을 중심하여)

 

   박    은    규    교수(목원대학교 신학대학장)


들어가는 말

  본 소론의 목적은 예복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동시에 의미 있는 토착화의 길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입어 온 일정한 예복 대신 갑자기 다른 형의 예복을 입게 하는 것은 그리 쉬운 과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한 예로, 지난 몇 년 전부터 개량 한복이 시중에 많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것을 입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볼 때 이를 실증해 준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는 1994년 총회에서 종래의 검정색 가운 대신 토착적인 흰색 예복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그리하여 안수를 받는 젊은 교역자들은 의무적으로 새 예복을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새 예복의 가치와 의미를 받아들인 교역자들은 이 토착적 예복을 착용하였다.  그러나 새로 고안된 예복에 대하여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교역자들은 기존 검정색 가운을 계속 사용하였다.  여기에는 예복에 대한 보수적 입장, 예복에 대한 애해 부족 혹은 거부감, 그리고 새로 고안된 토착적 예복 자체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등이 관련되어 있음을 우리는 본다.  이런 와중에서 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선교국이 주축이 되어 예복에 대한 신학적 탐구를 다각적으로 시도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필자는 예배학적 관점에서 예복의 변천과 실상을 찾아내고, 예복 사용의 문제점을 분석하며, 의미있고 적합한 예복 사용의 길(토착화의 길)을 탐구하기로 한다.

Ⅰ.  예복의 변천과 실상

  원시 종교에서 신(神)과 인간 사이를 중재한 사람은 무당(shaman)이었다.  이 무당은 보통때 평상복을 입었으나 제의(祭儀)를 수행할 때에는 예복 혹은 제의복을 입었다.  이 무당이 제의복을 입었을 때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   이 제의복은 무당으로 하여금 자연계와 영계 사이의 틈을 연결시킬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의 하나였다.1)  그리고 제의복의 여러 가지 유형들은 제의자의 지위와 기능을 나타내 주기도 하였다.

  기독교 예복은 후기 로마제국 시대의 의상으로부터 주로 연유되었다고 본다면, 그 간접적인 영향은 구약시대에 사용한 예복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구약성서의 예복은 신약시대의 도래와 함께 폐기되었지만, 성직자의 예복에 대한 원칙과 필요성은 신약의 교회 안에서도 지도자의 전통적 의상(garments)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발전시키도록 하였기 때문이다.2)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전통적 예복이 마틴 루터에 의하여 지속되는 한편, 칼빈에 의하여 제네바 가운(Genevan Gown)이 출현하였다.  그리고 존 웨슬리는 맨 처음에 성공회의 예복을 사용했으나 후기에는 검정색 가운을 입었다.  이제부터 위에 언급한 예복의 변천사를 좀 더 자세하게 중요한 것만 들어가며 언급하기로 한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성별된 옷에 관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아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출 28:1-3.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한 옷의 구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지시해 주셨다.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출 28:4.

  출애굽기 28장과 29장에 나타난 제사장의 예복에 관한 지시에 의하면, 예복들의 질은 재료, 짜임새, 솜씨에서 최상의 것으로 하였다.  이런 제사장의 예복은 그 기본 구성에서 베로 된 흰 속옷(반포 속옷과 띠), 에봇의 겉옷, 에봇과 띠, 판결흉패로 되어 있다.  여기서 "베로 된 흰 속옷"에 관하여 구약성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해 준다.

너는 가는 베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놓아 만들지니라.  출 28:39.

  여기서 "속옷"은 히브리어로 "케토넷"(Kethoneth)인데 그것은 "감추다" 또는 "숨기다"라는 뜻이다.3)  이 속옷은 허리에서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도록 되어 있었다(출 28:42).
  슬레밍은 대제사장과 제사장이 공통적으로 흰 속옷을 입고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하나의 옷으로 보면 대제사장과 제사장이 모두 비슷하였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한 가지 차이점만 지닌 채 하얀 속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하얀 속옷은 대제사장에게는 속옷이었지만 제사장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의복이었다.4)

  구약성서가 언급하는 "속옷"은 가리거나 숨기기 위한 목적을 지녔음에 비해 "겉옷"은 직위와 권위를 표상하였다.  이런 점에서 하얀 에봇의 겉옷(청색)은 존엄성과 은혜와 신성함을 나타낸다고 슬레밍은 설명하고 있다.5)  그리하여 대제사장이 집례할 때 그는 흰 외투형 예복 위에 긴 청색 아마포를 입었으며, 짧은 소매의 외투와 금흉패를 붙인 옷을 입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흰 아마포 외투와 허리띠와 터번만 사용하였고 그 때 평신도도 흰옷을 입었다.
  제사장이 입은 옷은 계속 발전되어 네 가지 형이 형성되었는데 그것은 1)잠방이형, 2) 흰색의 풍성한 외투형, 3) 수놓은 긴 옷 형, 4) 터번(turban)이었다.  그렇지만, 회당이 출현한 후 거기에서는 희생제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율법해석과 종교교육이 시행되었으므로 예복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신약성서에는 예복 사용에 관한 언급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흰옷을 입는 것에 대한 언급이 요한 계시록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여기서 흰옷은 "이김"을 표상하며 하나님의 권속에 속함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니라.  계3:4.

  여기서 흰옷을 입은 사람은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신약성서에는 흰 예복을 입으라는 명령이 들어 있지 않다.  반대로, 신약성서 안에는 예복을 입지 말라는 엄격한 규제도 들어 있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의 교회는 성직의 구조나 예복에 있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개방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약의 교회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였으나, 지도자가 필요할 때 자체 안에서 장로와 집사를 선임하였으며, 이런 체계는 후기에 성직자 체계를 이루는데 영향을 주었음에서 나타난다.

  기독교는 초기 400여년 동안 특별한 예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존스(Ilion T. Jones)가 지적했듯이, 그 당시 모든 교회를 위한 분명한 정책에 따라 목사들이 예배를 집례할 때에는 매일 입는 평상복을 착용해야 했기 때문이다.6)  이 때 평신도들도 내적인 선(善)과 외적인 간소함(simplicity)을 나타내는 의상을 입고 다녔다.  주후 428년 교황 셀레스티누스(Celestinus)는 꼬올(Gaul)의 주교들이 평신도의 옷과 다른 의복을 입었음에 대하여 질책하였으며,7) 이런 현상은 대체로 5세기 중엽까지 계속되었다.  4세기 후반부터 세례를 받을 사람들은 세족 및 전신침례를 받은 후 흰색 의상(white garment)을 착용하였다.  이 흰색 의상은 결백과 무죄(innocence)를 표상하는 것이었다.8)  그 후 5세기 말엽까지 새 세례자는 부활절 전 주간동안 그들의 흰색 세례복을 입었으며 일반적인 주일에는 평상복을 입었다.
  6세기와 7세기 기간 중 성직자의 복장이 차츰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 예복의 역사에서 소위 서방교회가 말하는 "성만찬 예복"(the eucharistic vestments)은 6세기초에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세속 의상으로부터 연유하였다.9)
  7세기와 8세기 중에는 기간 중 성직자를 평신도와 구별하기 위하여 성직자의 예복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람들이 출현하였다.10)  9세기와 12세기 사이에는 당시 다른 전문직 의상인 학위복과 수도원복을 비롯하여 네 계절에 필요한 의상들이 발전하였다.  딕스에 의하면, 주교관, 코우프(Cope), 제의용 장갑, 백의(surplice)는 성직자들이 심사숙고하여 창안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성직자를 일반 신도들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11)
  13세기와 18세기 사이에는 예복의 여러 가지 유형과 장식이 다소 발전하였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고딕식 표현을 비롯하여 중세기에 사용하던 예복의 형과 양식과 상징을 다시 회복시키기도 했다.  이 때까지 널리 사용된 가톨릭 교회의 예복들은 장백의(alb), 아미스(amice), 영대(stole), 제의(chasuble), 백의(surplice), 허리띠(sincture), 수대(maniple), 주교관(mitre), 부제복(dalmatic), 교황 및 주교의 성대(pallium)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의미를 주는 의상들 중 하나는 긴 흰색 튜니크였는데 그것은 알브(alb)이다. 이 예복은 순결(purity)을 표상하기에 매우 알맞은 것이었고, 온전함(wholeness)을 나타내기에 훌륭한 것이었다.12)  그리고 예복의 짜임새와 장식이 예전적 의미(liturgical meaning)를 나타낼 때 훌륭한 예복의 특성을 지니었다.
  중세기 동안 예복의 원형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으며, 교회의 예복에 대한 이론적 해석이 다소 복잡하거나 단순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서방교회는 중세기 기간 중 예복의 상징성에 있어 세 가지 기본 경향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13) 
  첫 경향은 기독교 예배의 모든 형식상의 것들에 대하여 성서적 원리를 찾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것은 중세기 초기 예전학자들 사이에 특히 분명하였다.  특히 그들은 옛 언약의 제의(cultus)에 있어 기독교의 제의에 방해가 되는 유형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둘째 경향은 중세기 후반에 나타난 것인데 그것은 거의 모든 것을 예전(Liturgy)과 관련하여 해석하여 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성만찬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자세한 예전이 관련하였다..
  셋째 경향은 중세기 전반에 걸쳐 선언된 것인데 그것은 교훈주의의 경향이다.  이 교훈주의는 덕목과 은혜의 상징성 형식으로 예복을 설명하게 하였다.
  중세기 이후 반 종교개혁이 일어난 기간동안 예복은 불변의 예전과 하나로 연관되자 이런 것은 부자연스럽게도 예복의 존재를 의상이 아니라 장식으로 취급하게 하였다.  이런 것은 불행하게도 그들의 건축물과 심미적인 장식에 영향을 끼쳤다.  최근에 와서야 그들은 바로크 시대의 예복과 고딕체 부활의 시대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케 하였다.
  종교개혁이래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전통적인 예복을 버렸거나 크게 간소화하였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반대할 뿐 아니라 그 제의(cultus)도 반대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중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예복 중 상당 부분을 계속 받아들여 사용했음에 비하여 개혁교회 지도자들은 가톨릭 교회의 의상 전체를 거부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른 영역에서 일어났듯이 종교개혁자들이 저지른 잘못도 나타났다.  즉 그들은 중세기의 산물로 보아 거부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초대시대의 것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초대시대의 것을 거부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것을 지속시켰는데 그것은 초대시대의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중세기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개신교회의 예복 형성 과정에 영향을 끼친 것에는 두 뿌리가 있다.  하나는 희랍·로마시대에 사용한 상류층의 외출복을 본 딴 것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형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중세기 수도승들의 검은 외출복과 16세기에 이르러 교수, 법관, 관리들이 사용한 검정색 외출복이 변형된 것이다.  이 두 가지 흐름이 병합되어 개신교 성직자들이 입는 예복을 형성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검정색 가운(basic black gown)이다.  이 검정색 가운은 사실상 기독교 전통에서 왔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세속적인 전통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은 이 검정색 가운을 "하나의 거룩하고 세계적이며 사도적인 전통"14)(the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tradition)을 표상한다고 주장하였다.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회의 예복은 예배의 내용과 강조점의 차이에 따라 다소 다르게 사용되었다.  성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정한 예전을 사용하는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채스유블, 알브, 써플리스등의 예복을 받아들여 사용하였다.  그들은 다행히 가톨릭 교회 예복 중 의미있는 것을 지속시켰다.  이와 반대로, 설교를 주로 강조하면서 자유교회 예배전통을 따르는 개신교회들 즉 침례교회, 나사렛교회, 하나님의 성회는 특정한 예복을 입는 대신 자연스럽게 평상복을 착용하였다.  이런 교회들은 정규적으로 성찬식을 거행하지 않거나 거의 시행하지 않는 교회들이다.  한편, 이 두 주류의 중간 노선을 걷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는 설교와 성만찬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학위 가운 모양의 검정색 가운을 사용했다.  특히 개혁교회 목사들은 칼빈이 소개한 제네바 가운(Geneva gown)을 입었다.  이 가운은 검정색 바탕에 풍성한 소매를 가진 긴 가운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가운 위에 흰 띠를 둘렀다.
  초창기에 존 웨슬리를 위시하여 감리교회 목사들은 검정색 예복을 주로 사용했으나, 북미의 감리교회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예복이 출현하여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어떤 목사는 겨울에 검정색 가운을, 여름에는 흰 가운을 입었다.  다른 목사는 겨울에 두꺼운 천으로 짠 흰 예복(허리띠 포함)을 , 여름에는 얇은 흰색 예복을 사용하였다.  어떤 목사는 수도사들의 예복을 변형하여 입기도 하였다.  1993년, 필자가 1년간 펜실바니아 주 캠프 힐(Camp Hill, Pen.)에 있을 때 많은 목사들이 두꺼운 면으로 짠 검소한 흰 예복과 아마포로 만든 얇은 흰색 예복을 입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웠다. 
  미연합감리교회의 예복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나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학위 가운을 예배 때에 입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현상 속에서 어떤 교역자는 예복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착용하는가 하면, 다른 교역자는 단순히 예복을 전통적인 의상으로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입는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성직자들은 주로 겨울에 검정색 가운을 입었고 여름에 흰 가운을 입었으나, 1994년 총회의 결의에 따라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고안한 토착적인 흰 예복을 교회의 예복으로 공식화하였다.  그 후 젊은 교역자들과 안수 받는 교역자들은 이 새 예복을 착용하고 있으나 기존 교역자 중 상당수는 새 예복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예복사용의 문제를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Ⅱ.  예복사용의 문제 분석

  예복사용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평가 기준이 요청된다.  여러 가지 평가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든다면 아래와 같다.
              평가기준 : (1) 예복사용의 목적은 절절한가?(목적성)
                         (2) 아름다운 것인가?(심미성)
                         (3) 신학적이요 역사적인가?(상징성)
                         (4) 실용적인가?(실용성)
                         (5) 토착적인가?(토착성)

  1.  예복사용의 목적은 절절한가?

  예복사용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복 착용의 목적을 잘못 설정하는 일"이다.  예복사용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미(美)를 반영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직자 자신을 과시하거나 높이기 위해 예복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치 못하다.  교회가 지나치게 교권주의를 앞세우거나 성직자 우월주의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예복을 착용하는 것은 예배신학적으로나 예배지도력의 측면에서 볼 때 적합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기 보다 성직자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성직자 자신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성직자를 평신도로부터 구별해 내기 위한 방편으로 예복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복은 성직자만을 위한 것이다"라는 성직자의 사고방식은 개신교회의 만인 사제 신앙에 어긋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 개신교회의 어떤 교역자들은 박사 가운을 예배 때에 착용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예배를 위해 학위 가운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으면 예배복이 필요한가?"이다.
  때때로 어떤 교역자는 성직자의 위치와 지위를 외적으로 과시하려는 동기에서 예복 위에 지나치게 상징물이나 장식물을 부착한다.  이런 행위도 역시 예복사용의 순수한 목적을 상실한 것이 아니겠는가?

  2.  아름다운 것인가?

  예복의 가치는 "아름다움"에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사역에서 아름다움이 나타났듯이 예복은 하나님의 아름다음(beauty)을 반영하며 승인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름다움의 표준은 취향과 유형에 있어 다르지만, 의상의 미(美)는 주로 형과 색상과 옷감에 의해 이루어진다.15)  이 기준에 비추어 검정색 가운은 엄숙성과 권위와 중후성의 미를 반영한다고 본다면, 흰색  예복은 영광과 빛과 정결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검정색 가운이 지니는 "미"의 문제는 그 색상에 있다.  물론 검정색은 엄숙성과 존엄성을 나타내 주지만, 하나님의 미를 충분히 반영해 준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비하여 현재 기독교 대한 감리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토착적 흰 예복은 하나님의 미와 영광을 잘 나타내고 있으나, 토착적 "미"의 요소와 조화와 관련해서는 다소의 개선이 요청된다.

  3. 신학적이요, 역사적인가?

  예복의 가치와 의미는 "신학적이요 역사적"인 데 있다. 기독교 예배에 있어 근본적인 요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의 영원한 가치와 힘을 계속 증거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검정색 가운이 하나의 거룩하고 세계적이며 사도적인 전통을 표상한다고 주장했지만, 지금 우리가 그것을 그렇게 믿고 있는가? 물론 이 예복은 또한 존 웨슬리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검정색 가운으로부터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신학적 반영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검정색 가운이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과 정의를 나타내 준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교역자는 이 가운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통을 표상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주장과 생각은 일부 개인들의 상념일 뿐,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흰색 예복은 신학적이요 역사적인 면을 나타내 준다. 왜냐하면, 흰색 예복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정결(purity)과 빛(light)을 표상하기 때문이다.16)  따라서 흰 의상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시작하여 기독교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기본적인 평신도 의상 또는 성직자의 의상(예;알브, 써플리스)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는 한국의 개신교회 신도들이 흰색 예복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그 역사적 의미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관련한다.

  4. 실용적인가?

  훌륭한 예복은 "실용성"을 지닌다. 여기서 말하는 실용성은 무엇보다 편의성과 경제성을 의미한다. 검정색 가운은 이런 점에서 실용성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실용적인 예복은 세탁하기 쉽고 보관하기 쉬운 의상이다. 실용성 있는 예복은 자주 세탁하지 않아도 되는 의상이다. 이런 점에서 흰 예복은 검정색 보다 실용성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흰색 예복을 구성할 때에는 이런 실용성을 특별히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5. 토착적인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길 중 하나는 "예복의 토착화"이다. 예복의 토착화는 예배의 토착화, 찬송가의 토착화, 그리고 교회 건축의 토착화와 아울러 21세기 한국 개신교회가 이루어야 할 중대한 과업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검정색 가운을 입어온 한국의 개신교회 교역자들에게 갑자기 토착성 있는 모양의 예복을 착용케 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새 예복을 구입하려면 경제적 부담이 있게 되며, 지금까지 입어 온 예복을 갑자기 버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 만든 토착적 예복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기존의 예복을 계속 입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토착적 예복을 창안하여 사용하려는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Ⅲ.  적합한 예복사용의 방안

  예복을 적합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1) 예복착용의 신학적 의미를 이해하고, 2) 예복사용의
심리적 태도를 바르게 설정하며, 3) 예복사용의 가능한 방안을 몇가지 제시하기로 한다.

  1.  예복착용의 신학적 의미를 이해한다.

  예복착용의 기본 목적은 하나님께 예(禮)를 갖추어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복을 입는 사람은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지닌다.
  우리가 예복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함"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죄악 속에 있는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신성한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복을 입는다.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 된 모습을 "가리운다" 또는 "감춘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한편, 그리스도의 "정결"(purity)을 옷 입는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죄악으로부터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예복을 입는다.
  예복사용의 목적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미(美)를 반영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승리를 경축하기 위함"이다.  예배학의 견지에서 주일(主日, Sunday)은 "작은 부활절"이다.  이 날은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셔서 승리하셨음을 경축하는 날이다.17)  이 날은 기쁜 날이다.  이 날은 자유와 해방을 경축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이 작은 부활절에 입는 예복은 하나님의 승리를 축하하는 특별한 예복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인사제 신앙의 견지에서 예복착용의 목적은 평신도와 성직자 사이의 격차를 심화하는 대신 그것을 극소화하려는데 있다.

 

  2.  예복착용의 심리적 태도를 바르게 설정한다.

  그리스도인이 예복을 입을 때 필요한 마음가짐은 "하나님께서 나를 감싸주신다"라는 것이다.  예복을 입은 사람은 심리적으로 "예배의 진지성"과 "예식의 숭고함"을 깊이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복을 착용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특히 성직자는 예복을 입을 때 "설교자로서의 정체성"을 느낀다.  필자는 매주 예복을 입자마자 하나님의 인도와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필자는 예복을 입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느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다. 
  평신도가 예복을 입을 때에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의 정체성" 혹은 "예배인도자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예복을 착용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확실히 믿음으로써 예배의 진지성, 엄숙성, 경축성을 균형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동시에 예배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느끼고 경험한다.

  3.  적합한 예복사용의 모델 개발

  이미 언급했지만, 오늘날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교역자들의 예복사용에는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  1994년에 개최된 총회이래 안수받는 교역자들은 공식적으로 채택된 흰색 예복을 입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흰색 예복을 받아드린 교역자들도 이 예복을 구입하여 입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교역자들은 새로 고안된 흰색 예복의 착용을 거부하고 있다.  이를 거부하는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의견이 포함된다.
    ­넥타이를 입은 상태에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상복과 비슷하다.
    ­전통성이 결여되어 있다.
    ­디자인에 결함이 있다.
    ­품위와 미(美)와 실용성이 결여되어 있다.
    ­가격이 비싸다.
    ­팔 소매 모양이 너무 넓고 길어서 불편하다.
    -품이 좁게 만들어졌다.


  반대로 흰색 예복을 입고 있는 교역자들이 보여준 의견은 아래와 같다.
    ­맨 처음에는 좀 어색했으나 계속 착용하면서 좋아졌다.
    ­이 예복은 영대와 함께 입었을 때 품위가 생긴다.
    ­흰색 예복의 참신성을 느낀다.
    ­토착적 예복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
    ­영대의 착용이 편리하다.
    ­목 부위와 소매 부분이 조금 불편하다.
    ­품을 넉넉하게 했으면 좋겠다.
    ­가격이 저렴했으면 좋겠다.

  이런 실정을 파악하면서 필자는 예복을 토착화하는 길이 대단히 어려운 길임을 실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좌절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대안을 찾아 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제1안과 제2안을 제시한다.  제1안은 기존의 검정색 가운을 사용하되 주일 아침 정규 예배 때에는 토착적 흰색 예복(개선된 것)을 입게 하는 것이요, 제2안은 기존의 토착적 흰색 예복을 개선하여 입게 하는 것이다.

 가.  제1안 : 검정색 가운과 흰색 예복의 병용

  제1안을 형성케 하는 기준에는 두 가지가 있다.18)
              1) 상징적(symbolical)인가?
              2) 실용적(practical)인가?
  검정색 가운은 실용적이지만 상징성이 부족하다.  이와 반대로 흰색 예복은 상징적이지만 실용성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실용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검정색 가운을 계속 착용하기를 원할 것이요, 상징성을 더 의미롭게 여기는 사람들은 흰색 예복을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예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역자들은 검정색 가운을 계속 지속시키기를 원할지 모른다.  이와 반대로 "우리의 예복," 토착적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토착적 흰색 예복을 착용하고자 할지 모른다.  이 두 가지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길은 없는가?  이 질문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것이 제1안이다. 
 
   ●제1안의 내용
    ­감독취임, 감리사 취임, 목사안수, 장로취임의 경우 흰색 예복을 입는다.
    ­주일(主日) 아침 정규 예배 그리고 성례전(세례와 성찬)을 포함하는 예배 때에        는 흰색 예복을 입는다.
    ­주일 오후 예배, 주일 밤 예배, 수요일 밤 예배 등 다른 모든 예배와 예식에서        는 검정색 예복을 입는다.
    ­기존의 공식적 영대와 셔츠를 사용한다.

  만일 이 제1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연구와 의견수렴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나. 제2안: 기존의 토착적 흰색 예복를 개선하는 것

  우리의 예배, 우리의 찬송가, 우리의 교회건축과 아울러 우리의 예복을 창안하여 사용하는 일은 21세기에 주어진 우리의 과업이요 염원이다.
  훌륭한 예복은 하나님의 영광과 미를 반영하며 그리스도의 정결(purity)을 표상한다. 이런 점에서 검정색 가운 보다 흰색 예복이 기독교 예복으로 더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검은 색(black)은 예전 색깔(liturgical color)의 전통에서 볼 때 애도, 슬픔, 엄숙성, 죽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검정색은 회개와 겸손을 다소 표상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검정색 예복은 품위와 실용성을 지니고 있지만 기독교 예복의 깊은 의미와 포괄적인 내용을 표상해 준다. 그 이유는 흰색(white)이 다른 어떤 색깔보다도 더 심오한 뜻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흰색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purity)을 표상한다. 흰색은 그리스도의 빛과 승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흰색의 중요성은 신약성서 안에 언급되어 있다. 그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4:4)
  ●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주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계7:13하반절).
  ●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4하반절).
 흰색 초가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듯, 흰색 예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과 빛과 승리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수 받은 성직자의 예복은 흰색의 풍성한 예복형으로 고안한다. 특히 우리는 플뤼엘러가 기획한 새로운 예복형을 참고하게 되는데 그것은 넓은 소매를 가진 튜니카이다.19) 이 튜니카는 알브와 캐석의 기능을 병합하여 만들었고 위에서 아래로 자유롭게 드리워지는 형으로 되어 있다. 츄니카를 입으면 채스유블을 그 위에 입을 필요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츄니카의 형에다 우리 나라의 도포와 두루마기를 병합한 새로운 형을 설정해 본다. 감독의 예복은 그 예복 위에 특별한 상징을 붙이는 대신 위엄을 표상하는 자주색으로 만드는 덕이 좋을 것이다 안수 받은 목사는 교회력의 색깔에 맞추어 영대를 착용함으로써 항상 그리스도의 복종의 멍에를 메고 간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20)
  ● 토착적 흰색 예복에 대한 개선안
   - 우선 앞부분을 아름답게 토착화한다.
   - 목둘레와 소매 부분을 개선한다.
   - 저렴하면서도 유용한 옷감을 사용한다.
   - 동일한 흰색으로 예복을 제작한다.
   - 풍성한 소매와 품을 지닌다.
   - 겨울예복과 여름예복을 구별하여 만들 수도 있다.


  맺는 말

  예배학적 견지에서 개신교회 예배 기능 중 제 일차적인 것은 설교, 성서봉독, 기도, 예전, 찬송 부르기, 성례전 거행, 봉헌, 성도의 교제, 파송이라고 한다면 제이차적인 것은 예복착용이라고 볼 수 있다. 예복사용의 목적은 예복착용자의 지위와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미와 신성함을 기리고 높이기 위한 것이다.
  훌륭한 예복은 아름답고 신학적이며, 예배의 연속의 의미를 나타내고 상징적이며 실용적이고 또한 토착적이다. 우리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우리의 예배" "우리의 찬송가" "우리의 교회건축"을 찾아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예복"을 창안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註)
1) Mircea Eliade, ed.,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vol.3(New York: Macmillan      Co., 1987), 537.

2) Paul H. D. Lang, What An Altar Guild Should Know (St. Louise, Missouri: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68), 85.

3) Charles W. Sleming, 「대제사장의 예복의 비밀」, 형성사 편집부 옮김(서울: 형     성사,1989), 40.

4) 상게서, 41.

5) 상게서, 45.

6) Ilion T. Jones, A Historical Approach to Evangelical Worship (New York:           Abingdon Press, 1954), 116.

7) James Hastings,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vol.5(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81), 66.

8) Cheslyn Jones, Geoffrey W.Wainwright, and Edward Yarnold, SJ, ed., The        Study of Litur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104.

9) Ibid., 489.

10) Gregory Dix, The Shape of Liturgy (London: Dacre Press, A. & C. Black          Ltd., 1954), 410.

11) Ibid., 410.

12) The Study of Liturgy, 489.
13) Ibid., 489-490.

14) 박은규, 「예배의 재발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3), 293

15) The Study of Liturgy, 491.

16) S. Anita Stafuffer, Altar Guild Handbook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31.

17) 「예배의 재발견」, 294-295.
18) George Hedley, Christian Worship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53), 66.

19) J. G. Davies, ed., A New Dictionary of Liturgy & Worship (London: SCM        Press Ltd., 1986), 539.

20) 「예배의 재구성」,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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