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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개혁교회의 견해로 보는 세례

하마사 2006. 12. 12. 07:30

개혁교회의 견해로 보는 세례

 

 


Baptism reformed view.

  세례란 그리스도가 승천하기 전날 밤 제정한 의식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몸을 씻고 새 계약의 은혜와 구원을 상징하고 이를 보증하는 것이다.


1. 중요성

  세례가 새로 거듭나느 씻음과 그리스도의 피를 뿌리는 것으로 표시될 경우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것은 곧 세례를 받아 성삼위와 연합하며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보증하며 성삼위에 의한 연합과 친교 속에서 인간에게 승인해 준 두드러진 상호관계를 보증하는 것이다.


2. 양식

  세례가 시행되는 양식에는 물뿌리기, 관수식, 침례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침례교도들은 침례가 세례양식 중 가장 합당하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본질적으로 상징적이라고 한다. 침례교도의 논점은 그리스도가 땅에 장사된 것과 부활을 통해 땅 밖으로 출현한 것은 특정한 세례 양식을 제공해 주며 신자는 반드시 이를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례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침례를 뜻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기만성은 그리스도와 인간과의 연합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 중 특정한 국면만을 자의적으로 선택했다는 데 있다. 침례 행위가 그리스도와 연합이 갖고 있는 국면을 표시하고 상징한다는 것도 사실이고 세례가 보여 주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상을 뜻한다.

  즉 세례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징한다. 장사지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의 못박힘 중 어느 것과도 동일시될 수 없다. 바울은 우리가 예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와 연합한 자가 되었으며,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한다. 침례교의 논증체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장사지냄과 부활은 침례교적 상징주의를 변호해 주는 배타적 타당성을 갖게 된다.

  성경 귀절에서도 침례교의 견해가 장사지냄과 부활에서 유추해 낸 자의적 억설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데 갈 3:27절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한다. 또 이것을 근거로 세례의 양식을 논증하는 롬 6:4절을 근거로 정당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되는 것은 옷을 입는다는 것으로 침례와 절대 유사하지 않다. 고전 12:13절에는 세례가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것도 침례의 유비와는 유사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구원 성취 중 어떤 한 부분에 상징론을 제한시켜서 이것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전부 말하였다고 치부하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헬라어 ‘밥티조’는 어떤 효과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이것이 보증되는 확실한 양식을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세례의식에서는 물뿌리는 것이나 관수식으로 행하는 것이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3. 주요 쟁점들

  오순절에 베드로가 행한 훈계와 이 때 행해진 관행을 살펴보면 회개, 복음의 신앙, 말씀을 듣는 일 등이 전제조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다른 성경 구절에서도 사도적 관행이었음을 분명히 해주는데 여기서 제기되는 유일한 문제는 ‘교회는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이다.

  개혁교회의 고전적 견해로는 세례를 원하는 자들이 진정으로 회개하여 신앙생활을 하는가는 교회나 세례를 베푸는 자들의 특권이 아니다. 교회의 의무는 이러한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이 조건에 순응하는 자들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미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교회는 세례 지원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세밀히 점검하도록 도와주고 지적으로 모순됨이 없이 신앙을 고백하는 자에게 세례를 허락하여야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유아세례에서 나타나는데 침례교도들은 이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를 반대하는 입장은 은혜로운 계약의 본질적 통일성과 연속성에 근거를 두는데 이 은혜로운 계약은 아브라함과 맺어졌으며, 모세와 다윗의 계약으로 전개되었고 나아가 새 계약 안에서 가장 완숙한 열매를 맺었다. 또한 아브라함의 축복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해당되게 되었고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약속이 계약상의 보증과 더불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이 몇 개의 가지를 갖는 감람나무로 비유되는데 이 모든 가지들은 하나의 뿌리와 줄기에서 성장했지만 결국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가장 깊은 영적 의미에 있어서 계약의 표징은 할례인데 이것은 일종의 표징으로 계약과 동일시 된다.  또한 신실한 자의 어린 자손 역시 포함되며 계약 시행의 이러한 특색이 새 계약 가운데서 소멸되었다고 말하는 기사도 성경에 없기 때문에 은혜로운 계약의 통일성과 연속성에서 얻는 결론은 새 계약 아래 있는 신자의 어린 자손에게도 속한다는 것이다.

  세례가 유아에게도 베풀어질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이러한 하나님의 제정이다. 계약의 약속은 신자와 그 자녀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유아세례가 간혹 남용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유아세례 의식 그 자체의 거부를 옹호해 주지는 않는다.


4. 효력

  그리스도가 제정한 의식인 세례는 그 속에 표현되어 있고 보증되어 있는 은총과 동일시 될 수 없다. 제정의 말씀과 세례의 본질이 보증임을 고려해 볼 때 이 점은 분명하다. 세례 안에 은총이 보증되어 있다는 것은 이 보증이 세례를 통해 주어진다는 사실 속에 이미 전제되어 있다.

  세례의 효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 서약에 있다.  하나님은 남녀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화응케 하는 귀중한 약속을 넘치도록 주신다. 세례를 경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을 해치는 것이며, 특별히 그의 신실성을 해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하나님의 계약 신악 속에서 보다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세례의 보증을 도하심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을 우리에게 확립시켜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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