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골 4:7-9 찬송: 202, 458, 313, 350
제목: 모델 되는 일꾼
아파트분양을 하기 전에 모델하우스를 짓고 어떤 집으로 지을 것인지를 구경하게 합니다.
집에도 모델이 있는 것처럼 교회일군들도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골로새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두기고라는 사람을 통해 전달합니다. 그 편지에 그를 소개하면서 모델이 될 만한 일군으로 언급합니다.
연말이라 내년에 새로운 일군을 세우기 위해 좋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모델이 될 만한 두기고와 같은 일군을 찾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본이 되는 일군으로 소개합니까?
1. 사랑을 받는 일꾼(7)
7절,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두기고는 소아시아 사람인데 골로새에 가게 된 것은, 그가 골로새서를 전달하는 동시에 사도 바울의 정황(情況)을 교회에 보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들에게도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주의 종 바울에게도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종과 믿음의 지체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은 모델되는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뿔이 난 사람, 즉 모가 난 사람은 본이 되는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뿔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감싸주고 격려하고 섬기는 사람이 사랑을 받습니다.
형제간에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믿음의 형제들끼리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서로 사랑하며 일해야 합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내가 사랑해야 합니다.
2. 신실한 일꾼(7)
7절,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일군에게 중요한 것은 신실 즉 충성입니다. 일군은 진실해야 합니다.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일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면 신실한 일군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일관되게 일하는 일군이 신실한 일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면 신실할 수 있습니다.
신실은 "하나님의 비밀" 곧 복음을 맡은 사람의 자격 중에 중요한 요건입니다. 그러므로 고전 4:1-2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신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일군의 신실은 (1)복음에 신실함이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가감(加減)하지 않고 그대로 보수하여 전함이고(고후 2:17), (2) 인격생활에 있어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고(고후 1:18-20), (3)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과 시련을 당하여도 변절하지 않는 진실입니다(엡 6:24).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신실한 일군은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3. 함께 된 일꾼(7)
7절,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그리고 바울이 두기고를 가리켜 자기와 함께 그리스도의 종 된 자라고 한 것은, 두기고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알고 절대로 충성하고 순종하는 자였음을 의미합니다.
종에게 있어 ‘함께 의식’이 중요합니다. 일을 할 때 독불장군이 되면 안됩니다. 함께 더불어 일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함께 섬김의 자세로 일하는 사람이 모델되는 일군입니다.
그리고 누구 안에서 함께 된 종이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 안에서 함께 된 종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명예 안에서, 혹은 권세 안에서, 혹은 어떤 사람 안에서 함께 된 종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함께 종이 되면 그 대상이 없어지면 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물질 안에서 함께 된 종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종은 노예입니다. 섬김의 노예여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종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네시모도 본이 되는 일군으로 두기고와 똑같이 소개하면서 그를 함께 보낸다고 말합니다.
9절,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는 빌레몬의 종으로 있다가 로마로 도피해 있던 중에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고 주님께 돌아온 사람입니다. 빌레몬서를 보면 바울이 오네시모를 가리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 1:10)라고 할 정도로 그를 귀중히 여깁니다.
“오네시모”는 헬라어의 뜻으로는 ‘유익한’이란 의미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사랑하여 빌레몬에게 부탁하면서 그 이름의 뜻을 음미해 말하기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몬1:11)라고 하였습니다.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유익한 사람으로 본이 되는 일군으로 만드셨던 것처럼 지금은 본이 되는 일군이 아니라고 해도 하나님이 쓰시면 유익하고 본이 되는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두기고과 오네시모처럼 사랑을 받는 형제로, 신실한 일군으로, 예수 안에서 함께 된 종으로 살아 모델 되는 일군으로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