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어떤 목자입니까

하마사 2006. 10. 16. 07:35
 

제목: 어떤 목자입니까?

목표: 바른 목자로 살게한다.


성경에는 목자에 대한 말씀이 많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친히 “나는 선한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말씀하면서 선한 목자와 삯군을 예수님이 직접 구별해주셨습니다.

다윗의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는 시편 23편에도 목자가 등장하는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노래하면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았더니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분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그리고 의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또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전하게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주시는 승리를 안겨주셨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가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윗은 보잘 것 없는 목동의 신분에서 목자되신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목자로 삼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엇을 목자로 삼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누구 혹은 무언가를 목자로 삼고 있는가하면 또한 누군가의 목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의 가장은 가족과 자녀들의 목자로, 사업가나 직장의 상사는 부하직원들의 목자로, 교회에서도 우리는 양인 동시에 목자입니다. 구역장, 권찰은 구역원의 목자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목자입니다. 남여선교회회장은 회원들의 목자입니다. 많은 양떼 아니면 작은 양떼를 거느리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양인 동시에 목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양이라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아침에는 목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어떤 목자가 되어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내용은 거짓목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한 목자로 오실 메시야를 이스라엘이 배척할 뿐만 아니라 ‘은 삼십’에 팔아넘길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 목자되신 메시야를 배척한 이스라엘이 고난당하게 될 것과 거짓 목자에게 임할 심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은 그 예언이 선포된 지 약 500년 후 역사적으로 그대로 성취되었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A.D. 70년 로마장군 디도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되어 수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세계 각지로 흩어지는 비극을 맞게 될 뿐만 아니라 성전이 훼파되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세 종류의 목자를 살펴보면서 ‘나는 어떤 목자인가?’ 함께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통곡하는 목자(3절 하반절).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여기서 목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들이 통곡하게 되는 까닭은 적군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의 온 땅이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영화가 철저히 짓밟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황폐함을 보고 통곡하는 목자입니다.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잣나무, 백향목, 상수리나무로 무성하던 삼림이 모조리 베어버림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통곡하는 목자들처럼 우리는 지금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훼파되는 이 교회의 황폐함을 보고 통곡하며 아파하고 있습니까? 이 땅의 가정들이 황폐해짐을 보고 우리는 통곡하며 아파하고 있습니까? 이 땅의 영적인 황무함을 보고 통곡하며 아파하고 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열 사람이 없어 망했던 것처럼 이 땅과 교회가 더 이상 황폐해지지 않도록 통곡하며 기도하는 목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망한 다음에 통곡하는 목자들이 아니라 망하기 전에 통곡하며 기도하여 이 나라와 교회와 가정 그리고 일터를 회복시키는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매한 목자(15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우매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할지니라.”

여기서 ‘우매한 목자’란 ‘악한 목자’, 즉 양떼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목자로서 자격이 없는 목자를 가리킵니다.

16절에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여기서 ‘없어진 자’란 ‘이미 죽어버린 양’ 또는 ‘죽어가는 양’을 의미하는데 선한 목자는 양을 사랑하므로 죽어가는 양을 돌보며 죽은 양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는 법인데, 악한 목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길을 잃고 흩어진 양을 찾지 않으며 다리에 골절을 입고 있는 상한 양을 고치지 않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아 결국 죽게 버려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목자는 양떼를 전혀 보살피지 않음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살진 양을 잡아먹음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급급하며, 또한 양의 굽을 찢어 움직이기 어렵게 만드는 것과 같이 양들을 해치기를 서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자의 기구’는 목자가 양떼를 돌보기 위해 가지고 있는 지팡이와 물맷돌과 주머니 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로 하여금 우매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하도록 명령하고 계신데 그 이유는 양떼를 돌보라고 주어진 기구들을 가지고 오히려 양떼들을 괴롭히는 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혹시 하나님께서 양떼들을 잘 돌보라고 맡겨주신 것들을 가지고 오히려 양떼들을 괴롭히는데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지위와 직분, 물질이나 명예와 지식, 혹은 힘을 가지고 양떼들을 괴롭히는데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 그것들을 빼앗아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내게 맡겨주신 양떼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는 선한 목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못된 목자(17절).

“화 있을찐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

여기서 ‘못된’이란 말은 ‘무가치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쓸모없는 무가치한 목자란 뜻입니다. 양떼를 보살피려는 사명감이 결여된 목자입니다. 사명을 받았음에도 그 사명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 쓸모없는 목자입니다. 그 사명을 받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받아 감당할 수 있지만 한달란트 받아놓고는 땅에 묻어두었던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쓸모없는 목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목자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말씀이 있습니다.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

여기서 ‘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며 ‘우편 눈’은 지각과 통찰력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칼’은 징벌과 재앙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못된 목자를 심판하사 그의 능력을 말살시키며 행악거리를 찾기에 빠른 그 눈을 어둡게 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또한 못된 목자가 더 이상 양떼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그의 힘과 능력을 완전히 말살시킬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선한 일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그 모든 것을 빼앗기고 오히려 징계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아침에 저와 여러분들이 망한 후 통곡하는 목자나 우매한 목자 그리고 못된 목자가 되지 말고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부지런히 살피는 선한 목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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