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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게 있어서 직설법과 명령법

하마사 2006. 10. 13. 12:00
 

바울에게 있어서 직설법과 명령법

-로마서 6장을 중심으로-


교회는 믿음없는 행함과 마찬가지로 행함없는 믿음에 대항하여 싸워왔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믿음없는 행위자가 되지않고 또 행함없는 신자가 되지 않으려면 신약성경에서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조사해야하는데 특히 선물인 구원의 직설법과 과제로 요구되는 구원의 명령법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1. 바울에게 있어서 직설법과 명령법 관계의 연구사

 1)직설법과 명령법의 공존을 바울의 윤리논의에서 처음으로 문제삼은 사람은 스위스 바젤의 신학자 파울 베른레였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미 주어진 구원의 약속인 직설법과 인의자에게 요구된 권고인 명령법의 관계를 일치될 수 없는 한 모순으로 규정하였다.

 2)그러나 불트만은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내용적으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진정한 이율배반” 혹은 “역설”로 이해한다.

 3)보른캄은 불트만의 견해를 넘어 로마서 6장 전반부의 주제인 세례와 후반부의 주제인 권면의 관계를 밝힘으로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해명하려 하였다. 그는 이율배반의 근거를 불트만의 경우처럼 인간론 뿐 아니라 나아가 더 넓은 시계인 기독론과 성령론을 포함하는 종말론적인 변증법 안에서 찾는다.

 4)보른캄과 다른 각도에서 캐제만은 바울에게 있어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에 대한 불트만의 해명시도가 충분치 않으며 인간론적으로 축소되었다고 비판하면서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

요약하면, 바울의 윤리를 이해하는데 베른레에 의해 문제제기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는 ‘모순’으로 규정될 수 없으며, ‘이율배반’이나 ‘역설’(불트만)로도 적절하게 해명될 수 없다. 또 단순한 ‘인과관계’(나우크)로도 충분하게 설명될 수 없다. 오히려 인간론보다 더 폭넓은, 기독론과 성령론을 포함한 종말론적인 시야에서(보른캄), 나아가 구원의 선물과 선물주신 하나님을 분리하지 않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바울의 본문진술 의도에 일치할 것이다.

2. 신학적인 결론

은혜로 주어진 구원의 ‘선물’과 이것을 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과제’는 양자 모두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있는 수세자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인의(직설법)와 성화(명령법)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구분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것은 성화란 수세자들에게 있어서 세례받은 이후 변화되는 다양한 상황 안에서 또 새로운 순종관계 안에서 늘 새롭게 경험하는 인의이기 때문이다.

바울에 의하면 인의와 성화는 “연속적으로 뒤따르는 두 선물이 아니다. 성화는 인의의 다음단계로 시간상 인의의 후속과정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의와 함께 일어난다. 바울은 자신의 신학핵심인 ‘하나님의 의’를 죄인을 의롭다 여기시는 구원주 내지는 심판주 하나님의 선물로 여길 뿐 아니라 인의자로 하여금 의로운 삶을 실제로 살 수 있게 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본다. 바울의 경우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인의-성화의 도식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세례시 인의자에게 일어난 죄의 권세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의 ‘주권이양’내지는 ‘주권교체’의 관점아래 인의와 성화를 상호 교류적인 통합적인 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울의 원래 진술 의도에 일치할 것이다.

3. 나가는 말

인의는 성화의 기초이며 성화는 경험되는 인의이다. 새 생명의 거룩함은 오직 하나님의 종이 됨으로서만 하나님께 자신을 드림으로서만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바울의 경우 인의자의 행함은 결코 업적이나 공로로 이해되는 ‘일’이 아니라 ‘섬김’으로 이해되는 열매이다. 행함이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해되고 섬김으로 파악될 때 믿음은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으로서 행함과 통합적인 관계안에 놓이게 되며, 직설법과 명령법은 쌍방향에서 서로 교류하는 통합적인 관계안에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바울 서신에 진술된 윤리적인 본문을 이해하고 전할 때 고려해야 하는 출발점이요 바울 윤리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