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인정받는 일꾼

하마사 2006. 9. 6. 16:53
 

본문: 딤후 2:15-21                          찬송: 350장

제목: 인정받는 일꾼

목표: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요즘 수요기도회를 통해 ‘택함받는 일군’이란 제목으로 일꾼론을 배우면서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서 교훈한 내용 중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군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가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교관으로부터 들은 말 중에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정조를 바치고,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말을 인상깊게 들었습니다.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물불가리지 않고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말도 되는 것이지요.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 비단 남자뿐이겠습니까? 남녀노소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남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평가방법은 사람의 평가방법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평가에서는 후한 점수를 못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대신할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기 위하여 이세의 집을 찾았을 때 8명의 아들들 중에 장남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말씀하십니다. 7명의 아들을 모두 보았지만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여 그 자리에도 부름 받지 못하고 들판에서 양을 치던 말째 아들 다윗을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사무엘의 평가도, 아들을 가장 잘 아는 아버지의 평가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주의 종의 평가도, 자기를 가장 잘 안다고 하는 가족의 평가도 하나님의 기준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평가는 불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확실하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혹 인정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다면 그것이 진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꾼 즉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은 어떤 사람일까요?


1. 말씀의 사람입니다.

본문에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잘 분변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에베소교회를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에베네도와 빌레도와 같은 사람들이 거짓 교리를 가지고 교회를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18절에 보면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 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옛날의 사건으로 이미 지나간 것이며 현재의 신앙생활과는 관계없다고 잘못 가르침으로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관계없는 과거의 사건으로 취급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도 영적인 부활로만 간주하여 육체적인 부활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이단의 거짓 교리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적용하면 진리의 말씀을 잘 분변하여 말씀대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경주하는 사람이 달려가야 할 코스를 바로 알고 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와 생명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잘했다고 인정받는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하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른이 어린아이와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분별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별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는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고 헛된 가치를 추구한다면 결코 주님의 일을 감당할만한 성숙한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바로 분별하여 그것을 자신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여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갈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군임을 기억하고 늘 말씀중심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당당한 사람입니다.

‘당당한 사람’이란 말은 ‘교만한 사람’이란 말과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은 누구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검사 앞에 갈 때와 죄 있는 사람이 검사 앞에 갈 때 당당함에 차이가 있습니다. TV를 보면 죄 지은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잡혀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뉘우침이 없는 기색으로 잡혀가는 사람들을 보면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당당한 사람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울 만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히 4:15-16절에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말씀합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시기 때문에 그 분의 은혜를 입기 위하여 또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오늘도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끄러운 죄인들이지만 믿음으로 당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당당히 서는 종의 신분이 아닌 아들의 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당당해야 합니다. 특히 마귀에게는 더욱 당당해야 합니다. 미혹의 영 마귀와의 싸움에서 당당히 맞서 이겨야 합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말씀합니다. 마귀가 오늘도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우리를 죄인이라고 하며 기죽게 만들어 삼키려 하지만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할 때 마귀는 피하여 도망가게 될 줄 믿습니다. (벧전 5:8-10)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말씀합니다.

인정받는 일군은 사람 앞에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잘못된 습성과 죄악을 그대로 지속한다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지요. 매번 똑같은 죄를 짓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청산할 것은 청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청산해야 할 것은 없습니까?

오늘 본문 20-21절에 보면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말씀합니다. 깨끗하고 성결하여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고후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말씀합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인으로 당당하게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인정받는 일군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헌신된 사람입니다.

본문에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정받는 일군은 거룩하고 흠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롬 12:1에서 바울은 성도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제사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군은 헌신된 사람입니다. 헌신이 무엇입니까?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희생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나를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면 헌신된 일군이 아닙니다.

고기잡던 제자들을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자 그들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세관에 앉아있던 레위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도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실 때도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헌신이 필요합니다.

4/20일자 일간신문에 박세록장로님에 대한 기사가 크게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주립대학 의학교수로 있다가 1989년 북한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후 그의 인생은 급변했는데 북한의 열악한 의료수준과 환자들을 목격한 그에게 ‘교회가자’는 아내의 권면이 실감있게 들렸고 후에 적극적으로 ‘의료선교’를 생활의 중심목표로 삼고 교수직도 그만두고 사재를 털어 평양에 종합병원을 열었습니다. 1997년 쫓겨나게 되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SAM의료복지재단을 설립하여 중국 단둥을 중심으로 탈북자와 북한 주민을 상대로 6개의 병원과 진료소를 운영하며 비상구급약을 담은 왕진가방 1만개를 북한에 전달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기사의 마지막에 “북한전체로 본다면 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곁에서 자신을 위해 사랑과 소망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헌신된 일군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헌신된 사람의 한 토막 이야기입니다. 이 외에도 헌신된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자기를 희생하며 하나님의 일군으로 아름답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제 친구 목사중에 한명은 5월 11일 이집트 선교사로 가는데 결혼을 했음에도 부부가 합의하여 아기를 낳지 않기로 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이슬람지역의 선교사로 생활하면서 자녀 때문에 온전히 헌신하는데 지장이 있을까하여 자녀까지도 포기하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 친구에 비하면 저는 아이를 세 명 낳았으니 덜 헌신된 사람이지요.

주님을 위해 여러분은 어떻게 헌신하시겠습니까? 헌신은 희생이 동반됩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로 헌신합니다. 어떤 사람은 몸으로 헌신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도 없고 몸도 건강하지 못해 물질과 몸으로 봉사를 못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드려 하나님께 기도로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헌신된 일군은 무엇인가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은 말씀의 사람, 당당한 사람, 헌신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참된 일꾼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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