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책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에는 ‘날라리 벌’ 얘기가 나옵니다. 봄 여름 많은 꽃이 필 때 꿀벌들이 함께 행동하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벌들은 집단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 지역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읍니다. 하지만 일부 날라리 벌은 집단을 이탈해 따로 꽃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은 얼핏 보면 집단의 방해꾼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평소 꿀 채집방식이 위기를 만났을 때 그들은 벌집단에게 새로운 살길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새 물이 들어와야 물이 살아납니다. 사회공동체에 새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새 물을 성경에선 창조적 소수라고 합니다.
노아시대 대부분의 백성들이 성적 타락과 폭력의 죄악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들은 인류를 보존하는 창조적 소수가 됐습니다. 유다 백성이 우상숭배와 불신앙에 빠졌을 때 이사야는 거룩한 ‘남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창조적 소수가 되어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고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했습니다.
오늘날 위장전입과 동성애, 각종 부도덕한 일로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이처럼 집단지성이 혼탁한 시대에 창조적 소수의 지성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성령께서 새롭게 하시는 창조적 소수가 가정과 민족과 교회를 살립니다.
글=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삽화=이영은 기자
-국민일보 겨자씨, 2017/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