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책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에는 ‘날라리 벌’ 얘기가 나옵니다. 봄 여름 많은 꽃이 필 때 꿀벌들이 함께 행동하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벌들은 집단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 지역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읍니다. 하지만 일부 날라리 벌은 집단을 이탈해 따로 꽃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은 얼핏 보면 집단의 방해꾼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평소 꿀 채집방식이 위기를 만났을 때 그들은 벌집단에게 새로운 살길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새 물이 들어와야 물이 살아납니다. 사회공동체에 새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새 물을 성경에선 창조적 소수라고 합니다.
노아시대 대부분의 백성들이 성적 타락과 폭력의 죄악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들은 인류를 보존하는 창조적 소수가 됐습니다. 유다 백성이 우상숭배와 불신앙에 빠졌을 때 이사야는 거룩한 ‘남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창조적 소수가 되어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고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했습니다.
![[겨자씨] 성령의 창조적 소수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614/201706140005_23110923764537_1.jpg)
오늘날 위장전입과 동성애, 각종 부도덕한 일로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이처럼 집단지성이 혼탁한 시대에 창조적 소수의 지성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성령께서 새롭게 하시는 창조적 소수가 가정과 민족과 교회를 살립니다.
글=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삽화=이영은 기자
-국민일보 겨자씨, 2017/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