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결혼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하마사 2017. 6. 10. 09:43

지난 주말 매우 인상적인 결혼식에 다녀왔다. 경기 양평의 한 한옥에서 혼례가 치러졌다. 양가 합쳐 하객 150명가량 모인 작은 예식이었다. 신랑·신부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고 혼주(婚主)들은 아쉽고 섭섭한 표정을 땡볕에 일그러뜨리며 감췄다.

신랑은 멀끔했고 신부는 예뻤다. 신랑·신부 닮은 남녀가 깔깔 웃으며 오가기에 누군가 했더니 신랑의 남동생과 신부 여동생이었다. 두 사람은 예식에서 결혼반지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늘은 푸르게 높았고 가끔 낮은 구름이 볕을 가려줬다. 하객들은 한옥 처마 밑 그늘에서 속닥거리며 낯설고도 궁금한 예식을 기다렸다.

주례는 없었다. 새 부부가 행진할 때 결혼 행진곡 대신 재즈로 편곡된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곡이 라이브로 연주됐다. 결혼이란 게 땅과 바람과 불의 결합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요히 생명을 키워낼 수도, 땅을 가르고 바다를 뒤집을 수도 있는 그 엄청난 에너지 말이다.

혼례가 끝난 뒤 신랑 아버지가 인사말에 나섰다. "어머니가 20년 걸려 아이를 남자로 키워놓으면, 다른 여자가 나타나 20분 만에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입니다."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결혼한 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웃음소리가 컸다. 우디 앨런이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There are three rings involved with marriage. The engagement ring, the wedding ring and the suffering(의역: 결혼은 세 개의 '지'로 요약된다. 약혼반지, 결혼반지 그리고 이게 뭔지)."

혼주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희 아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8년을 사귀었고 바보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귀한 며느리를 얻은 덕입니다." 좌중에서 박수와 휘파람이 터졌다. "결혼이란, 여러 번에 걸쳐 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겁니다"라고 그는 말을 맺었다.


-조선일보, 2017/6/10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9/20170609024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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