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기 전에 하나님 아들이던 너… 다시 만날 때까지 천국소망 함께 기도”
김재호 목사(왼쪽) 부부가 2010년 2월 경남 창원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고 김경민 소령(가운데)의 소위 임관식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지난 2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엄수된 순직 장병 합동 영결식에서 김 목사 부부가 오열하는 모습. 뉴시스, 김재호 목사 제공
“오늘이 며칠인가요? 그럼 2주가 지난 것이군요. 저에겐 2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10일 통화한 김재호(63) 목사는 기자에게 오늘 날짜를 물으며 지나온 2주간의 시간이 너무도 길었음을 스스로 깨달은 듯 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대북한 잠수함 침투작전 훈련 중 순직한 고(故) 김경민(33) 소령의 아버지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깊이 묻어났다.
33년이란 짧은 생을 살다간 아들에 대해 김 목사는 “내 아들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았던 청년”이라고 소개했다. “모태신앙을 갖고 성장해오면서 한 번도 주일성수를 어겨본 적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받으면서도 십일조를 꼬박꼬박 냈고요. 복무 특성상 비상대기에 걸려있어서 최근엔 1년에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았지만 휴가 때마다 같이 예배드리면서 하나님 말씀 따라 신앙생활 하라고 격려해줬습니다. 지난 추석 때도 휴가를 나오지 못해 전화로만 안부를 전했는데 이렇게….”
김 소령은 사춘기 때도 부모에게 걱정 한 번 끼치지 않았던 효심 깊은 아들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면서도 자격증을 15개나 땄다.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작은아버지를 보며 군인의 길을 꿈꿔왔던 김 소령은 2010년 해군 소위로 임관해 헬기 조종사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지난해에는 해군참모총장 표창을 받았고 2012년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바다에 떨어진 미사일 동체 잔해물을 성공적으로 인양했다.
삶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던 김 소령이 탄 헬기가 동해상에 추락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고현장에 도착했는데 수심 1000m 해상에서 시신을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무인탐사기 수색을 통해 아들의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적이 일어났구나’ 싶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금도 해군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김 목사는 2일 순직 장병 합동영결식과 5일 삼우제를 지내는 내내 “기도의 힘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김 소령과 함께 순직한 두 장병의 유가족을 위한 기도도 잊지 않았다. 유가족 보상금 중 일부를 순직자 유가족 자녀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한 것도 함께 기도하던 중에 내린 결정이었다.
“함께 순직한 고(故) 박유신(33) 소령의 부친도 크리스천이더군요. 우리 아들은 미혼이지만 박 소령의 경우 세 살배기 아들과 출산을 앞둔 아기까지 있어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서로 기도로 위로하면서 울컥했던 순간들을 이겨낸 것 같습니다.”
김 목사는 현재 인천의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강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김 목사는 지난주일 예배에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 목사는 “지금의 슬픔이 혹시라도 목회에 이양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교회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기를 희망했다.
헬기 조종사로서 조국의 하늘을 누비다가 천국으로 날아갔을 아들에게 김 목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지막 편지를 띄웠다.
“경민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이란다. 이제 아버지의 품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의 곁으로 갔으니 그곳에서도 하나님 말씀 잘 듣고 순종하는 그런 아들이 되길 바란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마. 다시 만날 때까지 천국 소망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자.”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10일 통화한 김재호(63) 목사는 기자에게 오늘 날짜를 물으며 지나온 2주간의 시간이 너무도 길었음을 스스로 깨달은 듯 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대북한 잠수함 침투작전 훈련 중 순직한 고(故) 김경민(33) 소령의 아버지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깊이 묻어났다.
33년이란 짧은 생을 살다간 아들에 대해 김 목사는 “내 아들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았던 청년”이라고 소개했다. “모태신앙을 갖고 성장해오면서 한 번도 주일성수를 어겨본 적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받으면서도 십일조를 꼬박꼬박 냈고요. 복무 특성상 비상대기에 걸려있어서 최근엔 1년에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았지만 휴가 때마다 같이 예배드리면서 하나님 말씀 따라 신앙생활 하라고 격려해줬습니다. 지난 추석 때도 휴가를 나오지 못해 전화로만 안부를 전했는데 이렇게….”
김 소령은 사춘기 때도 부모에게 걱정 한 번 끼치지 않았던 효심 깊은 아들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면서도 자격증을 15개나 땄다.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작은아버지를 보며 군인의 길을 꿈꿔왔던 김 소령은 2010년 해군 소위로 임관해 헬기 조종사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지난해에는 해군참모총장 표창을 받았고 2012년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바다에 떨어진 미사일 동체 잔해물을 성공적으로 인양했다.
삶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던 김 소령이 탄 헬기가 동해상에 추락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고현장에 도착했는데 수심 1000m 해상에서 시신을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무인탐사기 수색을 통해 아들의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적이 일어났구나’ 싶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금도 해군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김 목사는 2일 순직 장병 합동영결식과 5일 삼우제를 지내는 내내 “기도의 힘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김 소령과 함께 순직한 두 장병의 유가족을 위한 기도도 잊지 않았다. 유가족 보상금 중 일부를 순직자 유가족 자녀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한 것도 함께 기도하던 중에 내린 결정이었다.
“함께 순직한 고(故) 박유신(33) 소령의 부친도 크리스천이더군요. 우리 아들은 미혼이지만 박 소령의 경우 세 살배기 아들과 출산을 앞둔 아기까지 있어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서로 기도로 위로하면서 울컥했던 순간들을 이겨낸 것 같습니다.”
김 목사는 현재 인천의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강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김 목사는 지난주일 예배에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 목사는 “지금의 슬픔이 혹시라도 목회에 이양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교회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기를 희망했다.
헬기 조종사로서 조국의 하늘을 누비다가 천국으로 날아갔을 아들에게 김 목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지막 편지를 띄웠다.
“경민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이란다. 이제 아버지의 품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의 곁으로 갔으니 그곳에서도 하나님 말씀 잘 듣고 순종하는 그런 아들이 되길 바란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마. 다시 만날 때까지 천국 소망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자.”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국민일보, 20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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