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술 총장! 아까시아꽃이 한창이야요. 엄영주 글 하나 올림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까시아 꽃이 활짝 피었다. 4월 중순은 온 산이 벚꽃으으로 장식하더니 지금은 아까시아 꽃이 온 산을 덮은 듯 하고 그 향이 주변에 울려 퍼진다. 요새는 스마트 폰 영향인지 사람들이 아까시아 꽃이라 하면 아까시 꽃이라 바로 잡아준다.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학명 '로비나 슈도아카시아(Robina pseudoacacia)의 pseudo는 가짜(의)라는 뜻이니 가짜 아까시아라고 부르기도 적절하지 않다. 아까시아라는 나무가 따로 있으니 그렇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대개 식물은 꽃이 필 때 곤충과 사람의 관심을 끈다. 오랜 시간 생존을 위한 공진화의 결과가 아닐까? 아까시나무 꽃은 너무 흐드러지게 피어 어린 가지들은 휘어진다. 어쩌면 정력 낭비처럼 보인다. 꽃이 지고나면 콩깍지 같은 열매는 이 나무가 콩과 식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아까시 나무는 1900년대 초 미국 동북부에서 귀화한 식물이라고 한다.
나는 아까시 나무와 많은 인연이 있다. 50년대 초등학교 시절 아까시나무 꽃으로 허기진 배를 달랜 적이 있다. 꽃에 꿀샘이 있어 꽃 뒤쪽을 자르고 쪽쪽 빨던 기억이 있다. 또 등하교 길 잎을 따 가위바위보로 소엽을 차례로 따가며 놀이기구로 사용한 적도 있다. 아까시나무 잎은 토끼가 잘 먹어 한 다발 따다 내 친구 토끼의 환심을 사곤 했다 .
우리는 아까시나무에 대해 애증이 교차하는 것 같다. 산림 녹화, 화목재로, 밀원으로 사랑 받기도 하지만 산림을 망친다고 묘지에 끈질기게 새 순을 낸다고 수난을 당하고 있다. 한때 서울 남산 남사면에는 많은 아까시나무가 있었지만 무참히 베어내고 소나무로 대체되었다.
서울대 관악 캠퍼스 초입에 큰 아까시나무들이 있어 생존을 걱정했는 데 어느 해인가 사라졌다. 그냥 두기에는 사람들의 눈을 거슬렸나보다.
아까시나무가 산림을 망친다 하지만 온 산을 덮지 못하고 그 세력은 산의 1/3 능선을 넘지 못한다. 아까시나무는 뿌리 깊은 나무는 아니다. 강풍이 불면 제일 먼저 뿌리가 뽑힌다. 고려말 둔촌 선생의 은둔지로 알려진 강동구 일자산의 아까시나무는 몇년 전 태풍으로 반 수 이상이 뽑혀 나갔다. 강동구에서 다른 나무로 식재한 것을 보면 사랑 받지는 못한 것 같다.
나는 아까시나무의 자유스럼을 사랑한다. 나무들은 나무 마다 일정하고 독특한 수형을 보인다. 전나무가 그렇고 느티나무가 그렇다. 아까시나무는 일정한 수형을 보이기보다 가지들이 이리저리 자유롭게 뻗어나간다. 나는 아까시나무를 보면 여유와 자유를 만끽하는 나무처럼 느낀다.
지금 서울과 하남시를 경계하는 일자산과 광나루 아차산에는 아까시나무 꽃이 시즌을 이루고 있다.
이글을 끝까지 읽으신 분들 한번 탐방하시길 바랍니다. 아리수 정수센타 주변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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