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보스의 취미

하마사 2016. 1. 8. 23:41

노태우 정부 시절 한 경제 부처 장관이 매일 새벽 다섯 시 서울대에서 관악산을 넘어 과천 청사로 출근했다. 그는 워낙 등산을 좋아했다. 세 시간 산길을 비서가 동행했다. 주변에서 "불쌍하다"고 했지만 특수부대 출신 비서는 "운동 돼서 좋다"며 웃었다. 그 부처 간부들은 단합 대회 하면 으레 산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 땐 관가에 테니스 바람이 불었다. 정권 실세에 테니스 애호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테니스 배운다고 야단이었다. 기업들은 서로 "우리 회사 테니스 코트를 쓰시라"며 실세 모시기에 바빴다.

▶'윗분' 취미를 '자의 반 타의 반' 따라 하는 건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사장은 소문난 책벌레다. 매주 직원들에게 책을 사주고 독후감을 쓰라고 한다. 직원들은 잘 써야 신임을 얻기에 머리를 싸맨다. 여행을 즐기는 중견 기업 오너는 부서별로 희망 여행지를 써내게 한다. 사장이 아마 바둑 고수인 중소기업에선 간부 열에 아홉이 기원에 다닌다. CEO 취미 따라 임원들 주말이 달라진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어느 중견 그룹 40대 직원이 지난 성탄절 단합 대회에서 지리산을 오르다 심장 이상으로 숨졌다. 서울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가 새벽 네 시에 시작한 산행이 무리였다고 가족들은 원망했다. 회사 측은 불참하면 자기 돈 들여 천왕봉에 올라 '인증샷'을 찍어 오라고 했다 한다. 점심시간엔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못 타게 하고 어기면 지하 2층부터 지상 10층까지 계단을 스무 번 왕복하게 했다.

▶오너가 등을 떠밀지 않았다면 어느 아버지가 성탄절에 가족과 떨어지고 싶었을까. 한겨울 새벽 칼바람 치는 등산로를 오르다 쓰러진 월급쟁이가 짠하다. 이 회사 오너는 회사 돈 210억원을 횡령했다가 처벌받은 일이 있다. 혹시 직원 취향도 회사 돈처럼 '내 것'이라고 여겼던 건 아닐까. 건강도 좋지만 강요된 '건강관리'는 고역이다. 도가 지나치면 이렇게 재앙에 이를 수도 있다.

▶세계 최고 IT 기업 구글은 직원을 뽑을 때 '무엇에 열정이 있는가'를 반드시 묻는다. 이유를 에릭 슈미트 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오래된 게임기 고치기, 망원경으 로 별 보기, 산스크리트어 배우기처럼 시시콜콜한 취미를 듣다 보면 사람 깊이가 드러난다." 구글 경영진은 세계에서 5만명 넘는 직원을 채용하면서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 일할 때도 참신한 의견을 내고 추진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혁신과 창의(創意)의 시대다. 우리 리더들도 자기 취미를 앞세우기보다 직원의 다양한 취향을 살리고 배려하는 미덕을 갖췄으면 한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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