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 시절 한 경제 부처 장관이 매일 새벽 다섯 시 서울대에서 관악산을 넘어 과천 청사로 출근했다. 그는 워낙 등산을 좋아했다. 세 시간 산길을 비서가 동행했다. 주변에서 "불쌍하다"고 했지만 특수부대 출신 비서는 "운동 돼서 좋다"며 웃었다. 그 부처 간부들은 단합 대회 하면 으레 산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 땐 관가에 테니스 바람이 불었다. 정권 실세에 테니스 애호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테니스 배운다고 야단이었다. 기업들은 서로 "우리 회사 테니스 코트를 쓰시라"며 실세 모시기에 바빴다.
▶'윗분' 취미를 '자의 반 타의 반' 따라 하는 건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사장은 소문난 책벌레다. 매주 직원들에게 책을 사주고 독후감을 쓰라고 한다. 직원들은 잘 써야 신임을 얻기에 머리를 싸맨다. 여행을 즐기는 중견 기업 오너는 부서별로 희망 여행지를 써내게 한다. 사장이 아마 바둑 고수인 중소기업에선 간부 열에 아홉이 기원에 다닌다. CEO 취미 따라 임원들 주말이 달라진다.
▶어느 중견 그룹 40대 직원이 지난 성탄절 단합 대회에서 지리산을 오르다 심장 이상으로 숨졌다. 서울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가 새벽 네 시에 시작한 산행이 무리였다고 가족들은 원망했다. 회사 측은 불참하면 자기 돈 들여 천왕봉에 올라 '인증샷'을 찍어 오라고 했다 한다. 점심시간엔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못 타게 하고 어기면 지하 2층부터 지상 10층까지 계단을 스무 번 왕복하게 했다.
▶오너가 등을 떠밀지 않았다면 어느 아버지가 성탄절에 가족과 떨어지고 싶었을까. 한겨울 새벽 칼바람 치는 등산로를 오르다 쓰러진 월급쟁이가 짠하다. 이 회사 오너는 회사 돈 210억원을 횡령했다가 처벌받은 일이 있다. 혹시 직원 취향도 회사 돈처럼 '내 것'이라고 여겼던 건 아닐까. 건강도 좋지만 강요된 '건강관리'는 고역이다. 도가 지나치면 이렇게 재앙에 이를 수도 있다.
▶세계 최고 IT 기업 구글은 직원을 뽑을 때 '무엇에 열정이 있는가'를 반드시 묻는다. 이유를 에릭 슈미트 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오래된 게임기 고치기, 망원경으 로 별 보기, 산스크리트어 배우기처럼 시시콜콜한 취미를 듣다 보면 사람 깊이가 드러난다." 구글 경영진은 세계에서 5만명 넘는 직원을 채용하면서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 일할 때도 참신한 의견을 내고 추진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혁신과 창의(創意)의 시대다. 우리 리더들도 자기 취미를 앞세우기보다 직원의 다양한 취향을 살리고 배려하는 미덕을 갖췄으면 한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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