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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리콴유가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하마사 2015. 3. 26. 17:07

싱가포르 국민들 '결국 그가 옳았다' 哀悼
싱가포르 못지않은 성취 이룬 우리 역사에 '결국 옳았던 그'가 어찌 한둘이겠는가


	양상훈 논설주간 사진
양상훈 논설주간













지난 23일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전에 서로를 보면서 마치 자신을 보는 듯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좁고 자원 없는 국토, 언제든 공격해올 듯한 지척의 적대 세력, 식민지를 막 벗어났으나 아직 낙후하고 분열된 국민과 그런 초창기 나라를 권위적이고 강압적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는 신념까지 비슷한 점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몇 분이 '만약 리콴유가 한국 대통령이 되고, 박정희가 싱가포르 총리가 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역사의 가정을 해보았다고 한다.

서울만 한 크기의 싱가포르와 그보다 인구가 10배 가까이 되는 한국을 비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두 나라가 처한 상황과 두 지도자의 인생 역정이 비슷해 그런 상상을 해봄 직도 했다. 그분들은 '박정희 싱가포르 총리'는 국부(國父)로서 온 국민의 애도와 세계의 찬사 속에 숨을 거뒀을 것이고, '리콴유 한국 대통령'은 국민의 한편으로부터 "일제(日帝)의 밀정" "우성(優性) 인간과 열성(劣性) 인간을 나눈 히틀러" "야당을 말살하고 정보 통치로 동토(凍土)의 왕국을 만든 파쇼" "사법제도조차 거부한 반민주 독재자" "권력욕의 화신" "세습 독재" "언론 자유 말살자" 등 들을 수 있는 비난은 다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가 일본군에 점령됐을 때 자진해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군 정보부에 들어갔다. 그러니 앞뒤 가리지 않고 지금 기준으로 과거 매도하기 좋아하는 측이 얼마든지 '일제 밀정'이라고 불렀을 법하다. 그는 "대학 나온 남자는 대학 나온 여자와 결혼하는 게 좋다"라고 공개적으로 권유한 사람이다. 세계 여성계가 들고일어나고 실제 '히틀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유전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낳아 엘리트로 키우는 것 외에 길이 없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때 성적으로 아이의 진로를 가르는 교육제도를 밀어붙였다.

싱가포르는 사실상 일당독재 국가다. 희귀한 야당 의원은 보이지 않는 손의 감시를 받는다고 한다. 리 전 총리는 "(지도자는) 사랑을 받기보다는 두려움을 줘야 한다. 아무도 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의미한 존재다"라고 했다. "말썽꾸러기는 정치적으로 없애버리는 게 우리 일이다. 모두 내 가방 안에 날카로운 손도끼가 있다는 걸 알 것이다. 나와 겨루려면 난 손도끼를 꺼낼 거고, 우린 막다른 골목에서 만날 것이다"라는 무서운 말도 했다. 그러니 그가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동토의 왕국을 만든 파쇼'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리 전 총리는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다른 주관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재판 없이 가둘 수 있어야 한다. 공산주의자든, 쇼비니스트든, 극단적 종교주의자든 그래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나라는 망가질 것이다"고 했다. 형벌도 관용주의가 아니라 엄벌주의를 지향했다. 일제 말기 싱가포르에 굶주림이 만연했는데도 범죄는 사정이 좋을 때보다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리 전 총리는 "그것은 일본군의 가혹한 형벌 때문이었다"고 대놓고 말했다.

리 전 총리는 무려 31년간 집권했다. 박정희보다 13년을 더 집권했으니 한국에서였다면 '권력욕의 화신'이란 비난을 들을 만도 했고 야당이 미약한 상태에서 자식까지 집권했으니 '세습 독재'라는 공격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언론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집·의료·직업·학교를 원하는지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도 지금 싱가포르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리 전 총리를 비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싱가포르가 선진 일류 국가로서 쾌적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고 그게 리 전 총리의 덕분이라고 인정한다. 어떤 이는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를 청렴 국가로 만들었고 박정희는 그러지 못해 평가가 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도 적어도 그 자신은 돈을 탐한 사람이 아니었다. 숨졌을 때 입고 있던 속옷은 낡고 해져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한 노인이 리 전 총리 영정을 향해 울면서 거수경례를 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반대도 했지만 결국 그가 옳았다"고 했다. '결국 그가 옳았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기보다는 '그때 그가 이끈 길이 옳았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그가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자세가 얼마나 돼있는지 생각해본다.

우리는 싱가포르가 꿈도 꿀 수 없는 거대 제조업과 기술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가 따라오기 힘든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결국 옳았던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혼돈의 와중에 대한민국 건국의 결단을 내린 이승만이 '결국 옳았던 그'였고, 수천 년 가난의 질곡을 끊어낸 박정희가 '결국 옳았던 그'였고, 민주주의의 신념을 지킨 김대중과 김영삼이 '결국 옳았던 그'였다. 우리가 비록 서로 의견은 달라도 '결국 그가 옳았다'는 역사만은 인정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라는 많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조선일보, 2015/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