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지가의 성금 끝까지 거절
"매일 땀흘려 버는 돈이 달콤… '0' 하나 더 얹어줘도 안받아"
한 독지가가 '의정부 아파트 화재' 당시 밧줄로 주민 10명을 구한 의인(義人) 이승선(51·사진)씨에게 성금 3000만원을 전하려 했으나, 이씨가 한사코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독지가는 "지금껏 좋은 일을 한 분들에게 성금을 전달해왔지만 끝까지 마다하시는 분은 이분이 처음이라 놀랐다"며 이 같은 사연을 본지에 알려왔다.
이 독지가 측은 15일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다른 사람들을 구한 행동에 깊이 감명받았다"며 성금을 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씨는 그러나 "이번 일로 칭찬을 받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소중한 돈이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이기를 바란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이씨는 본지 통화에서도 "그분이 주시려던 금액이 3000만원인지도 몰랐다. 그 돈에 '0'을 하나 더 얹어준다고 해도 받을 생각이 없다"며 "내가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 다른 것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가 부자는 아니지만 매일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얻는 돈이 달콤하지, 시민으로서 같은 시민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20년간 고층 빌딩 등에 간판을 다는 일을 해온 이씨는 작업할 때 '생명줄'로 쓰는 30m 밧줄을 항상 갖고 다닌다고 했다. 그는 지난 10일 불이 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에 이 밧줄을 갖고 올라가 유독가스에 갇혀 있던 주민 10명을 구했다. 밧줄 한쪽은 가스배관이나 옥상 난간에 묶은 뒤 주민들을 밧줄에 매달아 자신의 팔심으로 한 명씩 지상으로 내려 보냈다.
- 지난 10일 대형 화재가 난 경기도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 건물에서 간판 시공업자 이승선 씨가 불길과 연기 때문에 대피하지 못하고 있던 주민을 밧줄로 묶어 내려 보내고 있다. 오른쪽 위 얼굴이 이승선씨다. /의정부소방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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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저보다 어려운 이에게…" 3000만원 사양한 '의정부 義人'
세상에 선행과 미담(美談)이 적지 않지만 진짜 순도(純度) 높은 감동을 느끼는 일은 흔치 않다. 어제 본지 1면에 실린 '의정부 화재 동아줄 의인(義人)' 이승선(51)씨 스토리가 그런 뭉클한 감동을 줬다. 어느 독지가가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 밧줄로 주민 10명을 구한 그의 행동에 감명받아 성금 3000만원을 전하려 했는데 이씨가 한사코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그 돈이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이기 바란다"며 사양했다. 이씨는 본지 기자에겐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얻는 돈이 달콤하지, 시민으로서 같은 시민을 도왔다는 이유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이씨는 독지가가 전달하려 했던 돈이 3000만원이었다는 사실은 몰랐다면서 "3억원이더라도 받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10일 우연히 화재 현장을 지나다가 아파트 3~8층에서 유독가스에 갇혀 꼼짝 못하던 주민들을 보고는 갖고 다니던 밧줄을 이용해 10명을 구해냈다. 20년간 고층 빌딩에 간판 다는 일을 해온 이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화염이 넘실대는 현장으로 뛰어들어 귀한 생명들을 구해낸 것이다. 승객들을 팽개친 세월호 선원들의 행태를 목격했던 국민은 그의 용기(勇氣)와 의로움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씨는 독지가의 성금까지 사양해 감동을 몇 배 더 키워줬다.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서로 물어뜯기까지 하는 세상에서 자기의 의로운 행동에 보상으로 주는 명분 있는 돈을 뿌리친 것이다. 그는 "내가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작은 선행이라도 공치사를 갖다 붙이기 바쁜 우리 주변에서 좀체 만나기 힘든 겸손함이다.
그의 직업은 힘들고 고달프면서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땀 흘려 번 돈이라야 달콤하다"는 금전(金錢) 철학을 분명히 했다. 열심히 일하며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사는 건실한 삶의 자세를 볼 수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선행에 적지 않은 돈을 선뜻 내놓은 독지가도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분이다.
이씨처럼 밝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행동거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 사회를 비춰주는 횃불이 된다. 이씨 같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밑바닥을 굳게 받치고 있기에 이 나라가 이 정도 버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승선씨가 모처럼 대한민국 국민의 자부심(自負心)을 되살려 주었다.
-조선일보 사설, 20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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